저자: 박정훈플러스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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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113%대 물가상승률과 기준금리 인상 지연 문제를 다룸. 중앙은행이 물가보다 낮은 금리를 방치해 인플레이션이 가속됐고, 부유층·기성세대는 자산 보유로 이득을 봤다고 분석. 2023년 8월 예비선거 1위 밀레이 후보의 중앙은행 폐지·달러화 도입 공약과 그 한계를 설명. 자산 가격 직접 전망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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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정훈 플러스입니다.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이 갈수록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데요. 그런데 대선에서도 정말 특이한 이변이 일어났죠. 장기매매 합법화, 중앙은행 폐지 같은 독특하고 특이한 주장을 하는 대통령 후보가 예비선거지만 어쨌든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과 대통령 선거 결과가 아르헨티나를 어디로 이끌지 살펴보겠습니다.
지금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이 진짜 끔찍합니다. 물가가 하도 폭등하다 보니 황당한 일까지 일어났어요. 아르헨티나 국경지대에 있는 파라과이 상점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점원이 강도에게 아르헨티나 페소를 건네자 강도는 그 돈을 거부하고 그대로 자리를 떴습니다. 아르헨티나 돈 따위는 필요 없다는 거죠. 제가 고정 출연하는 특파원 보고 3개에서 다뤘던 내용인데요, 이 소식을 전한 파라과이 TV 기자가 옆 나라 사정이 너무 웃기다는 듯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보도하는 모습도 화제가 됐습니다. 이 정도로 아르헨티나의 물가상승률이 심각하다 보니, 돈이 휴지가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강도조차 거부하는 거죠.
얼마나 심각하냐면, 지난 7월 기준 전년 대비 물가상승률이 113.4%였습니다. 한 해 만에 두 배가 넘게 오른 거예요.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공식 통계입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정부 공식 통계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실제로 체감하는 물가상승률은 이보다 훨씬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렇게 물가가 자고 나면 폭등하는 나라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존할까요? 일단 아르헨티나에서는 1인당 200달러까지 달러 환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돈이 생기면 무조건 환전 한도까지 달러로 바꿔 놓습니다.
그런데 이건 여윳돈이 있는 부유층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아르헨티나의 중간 정도 되는 월급은 공식 환율을 적용해도 우리 돈으로 80만 원 정도입니다. 먹고살기 정말 벅찬 거죠. 그런데 공식 환율로 거래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암시장 환율로 따지면 우리나라 돈으로 30만 원어치도 안 됩니다. 실제 월급을 암시장 환율로 환산하면 30만 원도 안 되는 돈인 거죠.
이 30만 원 남짓한 급여가 들어오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요? 달러로 바꾸려 해도 돈이 어디 있겠어요. 결국 모두 월급이 들어온 첫날 전부 물건으로 바꿔 놓습니다. 물건은 무조건 사야 합니다. 다음 날이면 가격표가 1~20%씩 막 올라 있고, 가게들도 가격표를 제때 바꾸지 못할 정도로 물가가 폭등하니까요. 그래서 이런 나라에서 서민들의 생존 전략은 뭐든지 빨리 사 놓는 것입니다. 실물을 갖고 있어야지, 돈을 갖고 있으면 다음 날 휴지가 되는 상황이니까요.
이 정도까지 왔는데 이상한 점이 있지 않나요? 물가가 이렇게 오르면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데, 아르헨티나 정부와 중앙은행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요?
완전히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닙니다. 아르헨티나의 기준금리는 지난 8월 14일 전까지 연 97%였습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와, 기준금리가 97%면 물가 잡으려고 노력했네"라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 텐데, 아닙니다. 이미 물가상승률이 113%를 넘어선 상황에서 97%는 사실상 너무 낮은 금리예요.
간단하게 생각해 봅시다. 볼펜 하나 값이 내년이면 세 배가 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은행에 돈을 예금하면 두 배밖에 되지 않는다면, 합리적인 선택은 오늘 하루라도 빨리 물건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물가는 당연히 잡히지 않아요.
그래서 물가를 잡으려면 기준금리를 물가상승률보다 크게 올리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1970년대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끝장낸 폴 볼커 연준 의장이 바로 이 방법을 썼습니다. 당시 미국 물가상승률이 14.8%였는데, 기준금리를 20% 가까이 확 올려 버렸죠. 충격 요법으로 올리니까 물가가 잡혔습니다.
이렇게 검증된 방법이 있는데도,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물가상승률보다 살짝 낮게 두면서 물가가 더 오르도록 사실상 방치하거나 조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상한 행태를 보였습니다. 그러니 아르헨티나는 지금과 같은 엄청난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막을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당장 2년 전에도 절호의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기회들을 놓치고 한발 늦게 금리를 올리면서 물가를 더 올리는 짓을 반복했습니다.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려서 물가를 잡는 방법은 전 세계에서 이미 여러 번 검증됐습니다. 그것도 물가상승률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확실하게 잡아야 하는데, 과연 물가를 잡을 의지가 있었던 걸까요? 의심할 만한 이유가 여럿 있습니다.
정치권의 문제는 워낙 유명하죠. 좌파 정권은 복지 포퓰리즘과 과도한 재정지출로 무리를 일으켰고, 우파 정권은 해외 자본에 알짜 자산을 매각하거나 공공요금을 급격히 올려 인플레이션을 자극했습니다. 경제를 망칠 때마다 상대 정권 탓을 하며 좌우가 번갈아 정권을 잡았습니다. 새로 들어선 정권은 아르헨티나를 살릴 새로운 경제 정책을 내놓기보다 임기 내내 전 정권 탓만 했습니다. "이렇게 망친 건 좌파 잘못", "이렇게 망친 건 우파 잘못"이라며 서로 탓하다가 아르헨티나를 살릴 기회를 결국 잃었습니다. 이것이 아르헨티나 경제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더 망가진 근본 원인 중 하나입니다.
2021년부터는 여기에 또 다른 이유가 더해졌습니다. 금융권과 기성세대의 탐욕입니다. 이들은 주가와 부동산 가격, 즉 자산 가격의 하락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서민, 청년, 부유층과 기성세대의 상황은 완전히 다릅니다. 하루하루 살기 급급한 서민이나 사회에 막 진출한 청년은 월급이 생기면 물가가 오르기 전에 생필품을 사고 돈이 떨어져 버립니다. 하지만 부유층이나 기성세대에게는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물가폭등에 대비해 미리 모아 둔 자산이 있으니, 실물 자산이나 주식, 부동산을 선호하죠. 그래서 기성세대와 부유층은 인플레이션을 오히려 반기는 입장이고, 자산 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집값과 주가가 떨어질까 봐 항상 노심초사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중앙은행이 물가를 못 잡았다기보다는, 인플레이션보다 항상 조금 낮게 기준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켰습니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의 주가지수인 메르발 지수가 지난 2년 동안 무려 10배나 올랐습니다. 나라가 파산 직전이고 도탄에 빠졌는데도 주가가 10배가 오른 것입니다. 부유층과 기성세대는 돈이 생기면 달러로 바꾸고 남은 돈은 자산 시장에 묻어 두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오히려 그들의 부를 늘리는 수단이 된 것입니다.
결국 2021년 여름,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시작되기 전에 충분히 막을 기회가 있었는데도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집값과 주가 하락을 더 우려했습니다. 물가가 뛰는 것을 사실상 방치하면서 2021년 한 해를 크게 낭비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나타났고, 청년층과 서민들만 큰 고통을 받게 됐습니다. 부유층과 기성세대에게는 지금의 인플레이션이 나쁘지 않습니다. 주가는 10배 오르고 부동산 가격은 계속 폭등하니까요.
답은 분명한데 기성 정치권이 이런 문제에 답을 내놓지 않으니, 아르헨티나 청년들은 기성세대 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됐습니다. 좌파와 우파가 번갈아 집권했지만 결과는 똑같다는 거죠. 그러면서 정치권에 놀라운 이변이 나타났습니다.
지난 13일 아르헨티나 대선 예비선거에서, 그동안 좌파와 우파가 교대로 정권을 잡아온 전통 정치권이 아닌 자유주의자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가 깜짝 1위를 차지했습니다. 밀레이 후보의 공약 중 눈에 띄는 것은 중앙은행을 아예 폐쇄하고, 페소화를 없애고 달러화를 공용화폐로 도입해서 물가를 잡겠다는 것입니다. 중앙은행을 "지상 최대의 최악의 악의 집단"이라 부르며 없애 버리겠다는 파격적인 주장이죠.
그런데 밀레이 후보의 1위에 충격을 받았는지, 예비선거 다음 날인 지난 14일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97%에서 118%로 높였습니다. 118%라고 하면 놀랍게 들리겠지만, 공식 물가상승률이 113%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공식 통계를 믿는 사람은 없죠. 폴 볼커식 충격 요법을 쓰려면 적어도 130~140%는 되어야 했고, 아르헨티나 물가 통계가 과소평가된 것이라면 150% 이상으로 높여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더 아쉬운 점은 실질 금리를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경제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지난 2년 동안 하지 않다가 예비선거에서 패배하고 나서야, 그것도 중앙은행을 폐쇄한다는 말이 나오자 깜짝 놀라 금리를 올렸다는 점입니다. 이는 정말 아쉬운 금리 인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전히 118%도 인플레이션을 잡기에 충분히 높은지 애매한 수준이라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밀레이 후보의 열풍이 과연 10월 22일 본선 1차 투표까지 이어져 실제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관심의 대상입니다. 아르헨티나는 선거권이 16세부터 주어질 만큼 일찍 선거권이 생기는데, 특히 16세부터 30세까지의 청년층에서 밀레이 후보에 대한 지지가 굉장히 높다고 합니다. 인구도 많아서 열풍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다만 밀레이 후보의 공약은 검증이 필요합니다. 달러화를 공용화폐로 쓰는 것은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는 분명 효과적인 대책입니다. 확실하게 잡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달러를 공용화폐로 쓴 나라들의 경험입니다. 국가 경쟁력이 강한 나라라면 상관없지만, 경쟁력이 약한 나라는 자국 통화 가치를 지속적으로 낮춰서 수출 경쟁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달러를 계속 쓰면 경쟁력이 떨어져도 통화 가치를 낮춰 수출을 늘릴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나라들의 공통점은 만성적인 무역적자에 시달리면서 반복적으로 국가 부도를 겪는다는 것입니다. 밀레이 후보가 당선되어 중앙은행을 폐지하고 달러를 공용화폐로 채택한다고 해서, 아르헨티나의 고질적인 반복 경제 위기가 해결될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또한 밀레이 후보는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강경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다른 공약들이 워낙 독특합니다. 장기매매를 자유화하자는 것입니다. 내 장기를 내가 파는데 정부가 왜 규제하냐는 주장이죠. 그리고 총기를 슈퍼마켓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하자는 등 파격적인 공약을 내놓고 있습니다. 실제로 밀레이 후보가 당선되면 경제 문제 외에도 여러 파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의 변화는 앞으로도 전 세계의 큰 관심을 끌 것으로 보입니다.
박종훈 플러스, 이제 마칠 시간이 됐습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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