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박종훈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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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란 전쟁이 장기화되며 미 장기금리(30년물 5.3% 돌파)가 상승하고 국채 투매 우려가 커진다. 국채 하락은 중앙은행의 달러 자산 매도로 이어져 달러 기축통화 지위를 흔들 수 있다. 영국(1956 수에즈), 소련(아프간)의 사례처럼 중동 전쟁은 강대국 통화의 무덤이 되어 왔고, 미국 국가부채 40조 달러와 이자지출 증가도 위험 요인이다. 다만 달러의 대체재는 당장 없어 붕괴는 장기 과정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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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란을 침공했을 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이 이란을 아주 쉽게 이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이 전쟁이 자꾸 장기화되면서 미국의 10년물, 30년물 장기 국채 금리가 계속 올라가고 있죠. 그 얘기가 무슨 말이냐? 국채 가격이 떨어지고 너도나도 미국 국채를 투매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국채를 던지면 결국 달러도 흔들립니다. 그래서 이란이라는 수렁에서 미국이 빠져나오지 못하면 앞으로 달러가 약화되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과거 역사에서 중동은 원래 강대국 통화의 무덤이 된 적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번에도 중동이 혹시라도 강대국 통화의 무덤이 된다면 달러에도 굉장히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겠죠. 그래서 이란이라는 수렁에서 미국이 빨리 빠져나와야 달러를 계속 강한 통화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란 전쟁이 계속 장기화된다면, 이건 미국에도 절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은 달러의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 과거에 중동에서 영국의 파운드가 왜 박살이 났고, 소련의 루블이 어떤 식으로 무너지면서 결국 소련이 붕괴됐는지 역사를 통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런 전쟁이 좀처럼 풀리지 않으니까 결국 베선트 재무장관도 총대를 매고 나섰죠. 이란과 거래만 해 봐, 그러면 우리 미국이 경제 제재를 하겠다고요. 그런데 아직까지 제재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임시로 여러 얘기들이 나오다가 또다시 미사일 공방이 벌어졌고,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이 미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냐? 미국의 국가부채가 40조 달러를 처음으로 돌파했습니다. 그리고 8월 17일에는 30년물 미국 국채 금리가 5.3%를 돌파했는데, 이건 2007년 이후 최고치입니다. 거의 20년 만에 가장 높은 금리인 거죠. 2007년에 이렇게 금리가 높았을 때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났습니다. 지금의 높은 금리는 결코 미국에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금리가 이렇게 높을 수밖에 없는 게, 미국은 지금 한 해 이자로만 1조 달러 이상을 쓰고 있거든요. 이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이자로 쓰니 금리가 좀처럼 낮아지지 않고, 전쟁 때문에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공포까지 겹쳐서 금리를 계속 위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국채 금리가 흔들린다는 건 그 나라 통화 가치를 흔드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물론 아직 달러는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앙은행들은 자산을 어떻게 갖고 있을까요? 중앙은행이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는 건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중앙은행들이 가진 달러는 대부분 뭔가를 사는 데 쓰이는데, 중앙은행이 주식을 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물론 스위스 중앙은행은 아주 독특하게 미국 빅테크 주식을 준비 자산으로 갖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아주 특이한 케이스이고, 대부분의 중앙은행은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죠. 그런데 국채 금리가 올라간다는 건 국채 가격이 하락한다는 뜻입니다. 국채 가격이 계속 하락하면 결국 중앙은행들이 미국 국채를 던지게 되고, 그건 곧 미국 달러를 던진다는 얘기니까, 언젠가는 달러 가치가 흔들리거나 기축통화의 지위에 작은 흠이라도 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입장에서는 국채 금리가 지금처럼 계속 오르는 것을 방치할 수가 없겠죠.
20세기 들어 아주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중동이 강대국 통화의 무덤이 되었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1956년 수에즈 운하 점령입니다. 영국은 아주 쉽게 점령했는데, 이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파운드화가 박살이 났습니다. 그리고 소련은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는데, 여기서 10년 동안 전쟁을 하면서 결국 소련의 루블화가 박살이 났고, 이 아프간 전쟁이 소련 붕괴의 큰 원인을 제공했죠. 미국은 지금 20년째 중동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고, 여기에 들어간 돈이 어마어마합니다. 그러다 결국 이란과 싸우게 됐죠. 이 과정에서 베선트 재무장관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 가치와 국채 금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이것이 앞으로 미국 달러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칠 겁니다.
도대체 왜 중동은 강대국 통화의 무덤이 됐을까요? 그리고 미국은 그 조건에 들어갔을까요? 이걸 알아보기 전에 중동이라는 지역을 명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동의 범위는 학자마다 다릅니다. 좁게 보는 사람은 사우디, 이라크 같은 나라를 중동으로 보고, 이란은 민족이 달라서 제외하기도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중동이 아니라고 보는 사람도 있고, 파키스탄은 더더욱 아니라고 하죠. 그런데 중동을 넓게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레이터 중동이라고 하는데, 이집트부터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까지 전부 중동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전략적으로 보면 어떨까요? 미국의 중부사령부는 이집트부터 파키스탄까지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략적으로는 이 전체를 중동으로 보는 게 맞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과거 중동은 정복의 고속도로라고 불린 적이 많았습니다. 지난 2500년 동안 강대한 제국이 형성됐을 때 중동은 아주 쉽게 점령된 적이 정말 많았죠. 알렉산더 대왕이 중동을 점령한 적도 있고, 그 뒤로도 여러 세력이 이 지역을 차지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1516년부터 400년 동안 이 지역을 지배했죠. 그런데 1840년 이후부터 중동의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중동이 본격적으로 강대국의 무덤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건 1842년 영국의 카불 철수부터 따져볼 수 있습니다. 아프간의 카불에서 영국이 탈출을 했는데, 철수한 인원은 병력 4,500명과 수행원 12,000명, 합치면 16,000명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철수한 사람들 대부분이 숨지거나 포로가 됐고, 탈출한 유럽인은 사실상 한 명이었다고 합니다. 영국 입장에서는 엄청난 치욕이었죠. 세계에서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을 만들었던 영국이 카불에서 치욕적인 철수를 한 겁니다. 그런데 36년 뒤 영국은 설욕을 합니다. 1878년부터 1880년까지 2차 아프간 전쟁에서 승리했고, 1919년까지 외교권을 박탈했죠. 그래서 강대국의 무덤이라는 별명이 생기긴 했지만, 영국은 설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강대국이 이길 확률은 점점 떨어졌습니다. 토프트의 논문을 보면, 강대국과 약소국의 전력 차이가 1대 5를 넘어가면 강대국이 다섯 배나 센 상황입니다. 이때 약소국이 이길 확률이 시기별로 어떻게 변했을까요? 19세기 전반기에는 약소국의 승률이 11.8%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후반기에는 20.5%로 올라갔고, 20세기 초반인 1900년부터 1949년까지는 34.9%로 올라갔습니다. 5대 1로 엄청난 전력 차이가 나는데도 약소국이 이길 확률이 34.9%나 된다는 겁니다. 더 놀라운 건 1950년부터 1999년까지는 51.2%로 올라갔다는 점입니다. 과반의 확률로 약소국이 이긴 겁니다. 우리는 강대국이 무조건 이긴다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이건 미국과 유럽의 많은 학자들이 여러 전쟁사를 연구해서 얻은 학술 결과입니다.
특히 중동이 화폐의 무덤으로 떠오른 건 이 지역의 특성 때문입니다. 첫째, 이 지역에서 석유가 많이 나옵니다. 둘째, 중동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잇는 교차로에 있어서 물류망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죠. 셋째, 초국적 동원, 즉 신앙의 네트워크를 통해 국민 모두가 종교를 믿으며 전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이 강대국의 무덤을 넘어 화폐의 무덤을 만든 중요한 이유입니다.
중동 전쟁에 개입해서 가장 먼저 통화를 잃은 나라가 바로 영국입니다. 1956년 수에즈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먼저 미국과 영국이 이집트의 아스완댐 건설 자금 지원을 철회했습니다. 당시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에게는 공개적인 모욕이나 다름없었죠. 그러자 나세르는 반격에 나서 수에즈 운하회사의 국유화를 선언했습니다. 다만 무력으로 빼앗은 건 아니었습니다. 운하회사 주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시장가로 사주겠다고 제안했고, 주식을 팔라고 했죠. 그런데 영국은 이것을 영국의 패권에 대한 도전으로 봤습니다. 당시 영국 총리 이든은 나세르를 '제2의 무솔리니'라고 부르면서 프랑스와 힘을 합쳐 결국 수에즈 운하를 점령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로 파운드의 지위는 완전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영국은 이미 파운드의 힘을 잃었다는 것을 간과했고, 더 이상 패권국가가 아니라는 것도 오판했습니다. 무모하게 수에즈를 점령했다가 외교적으로 완전히 패배했고, 결국 파운드와 영국 패권이 저물었다는 것을 전 세계가 공인한 셈이 됐습니다.
영국은 수에즈를 점령할 때 프랑스, 이스라엘과 비밀 협약을 맺었습니다. 파리 근교 세브르에 모여 비밀의정서를 만들었죠. 그런데 워싱턴에는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먼저 이집트의 시나이반도를 선제공격했고, 그러자 영국과 프랑스는 "두 나라가 싸우니 우리가 양측을 분리해 평화를 만들겠다"는 핑계로 수에즈 운하 지대에 군대를 보내 장악했습니다. 영국은 여전히 자신들이 패권국가이고 파운드가 기축통화라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었지만, 패권은 이미 미국으로 넘어와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크게 분노했다고 합니다. 영국이 미국에 통보도 없이 수에즈를 점령했기 때문입니다. 마침 대통령 선거 6일 전이었고, 아이젠하워는 평화의 대통령을 공약했기 때문에 이 싸움을 어떻게든 말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같은 주에 소련의 탱크가 헝가리로 들어갔습니다. 소련을 비난하는 미국이 영국과 프랑스의 무력 침공을 봐준다면 두 입으로 말하는 셈이 됩니다. 게다가 당시 아랍 지역은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의 수에즈 점령을 눈감아 주면 아랍 여론이 소련 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영국 편이 아니라 놀랍게도 이집트 편을 들었습니다.
미국이 영국을 손보려 한다는 걸 시장이 먼저 알아챘습니다. 투기세력은 영국 파운드를 공매도했고, 파운드 시장에 투매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외환보유고를 파운드에서 달러로 바꿨습니다. 이것이 파운드에 치명타를 안겼죠. 다급해진 영국의 이든 총리는 미국에 살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아이젠하워는 영국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창구를 모두 막아버렸습니다. IMF의 의사결정을 미국이 좌지우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영국의 IMF 자금 인출을 봉쇄했습니다. 수에즈에서 철군하면 IMF 돈을 줄 수 있다는 식이었죠.
결국 1956년 수에즈 사태는 영국이 패권을 잃었음을 만천하에 증명한 셈이 됐고, 파운드는 더 이상 미국 달러와 범접할 수 없는 변방 통화가 됐습니다. 영국은 그해 12월 철군을 완료했고, 책임을 지고 이든 총리는 1957년 1월 사임했습니다. 사실 파운드는 2차대전 당시에도 계속 돈을 찍어 전쟁 비용을 마련했기 때문에 이미 반쯤 죽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200년간 패권국가였다는 후광 때문에 1956년까지는 어느 정도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죠. 그런데 수에즈에서 미국의 공격을 받자 아무런 방어 능력이 없다는 것이 전 세계에 드러났고, 파운드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영국의 패권국가 지위는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한 나라의 통화가 패권 통화가 되느냐 아니냐에 중동의 영향력이 점점 커졌습니다. 1971년 닉슨은 달러를 가져가면 금으로 바꿔준다는 약속을 깼습니다. 이것이 바로 닉슨 쇼크입니다. 그 뒤에도 달러가 기축통화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1974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비밀 협약 덕분이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것이 페트로달러 체제인데, 인류 문명은 에너지 의존도가 굉장히 높고, 그 에너지는 달러로만 거래된다는 겁니다. 닉슨 쇼크에도 달러 패권이 오랫동안 유지된 건 중동과 손을 잡은 것이 굉장히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중동을 적으로 만든 나라가 있었습니다. 바로 소련입니다. 미국과 소련이 패권 경쟁을 벌일 때, 미국은 중동을 아군으로 끌어들였지만 소련은 중동을 적으로 만드는 큰 실수를 했습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겁니다. 소련도 중동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중동 무슬림들과 잘 지내려고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겁니다. 소련 입장에서도 달가울 리 없었습니다. 무슬림들에게 공을 들였는데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고, 그 정권이 소련에 도움을 요청하니 소련으로서는 지원을 안 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아프가니스탄의 공산 정권을 열심히 지원했지만, 신을 믿지 않는 공산주의를 무슬림들이 받아들일 리 없었습니다. 곳곳에서 반군이 등장했고, 소련은 정권이 붕괴하면 중동에서 영향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우발적인 일이었습니다. 소련은 6개월이면 이길 줄 알았습니다. 자신들의 군사력이 아프가니스탄보다 10배 이상 강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개월 내에 끝낸다며 병력 10만 명을 보냈지만, 이것이 결국 전쟁의 수렁이 됐습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힘을 합쳐 아프가니스탄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베트남전의 복수를 하고 싶었을 것이고, 사우디는 공산주의가 정권을 찬탈하고 소련이 돕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 나라는 물밑에서 아프가니스탄을 지원했습니다. 얼마나 많이 지원했을까요? 1979년 소련이 처음 침공했을 때 69만 달러를 지원했는데, 1987년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는 6억 3천만 달러를 지원했습니다. 8년 만에 지원금을 900배나 늘린 겁니다. 1988년 개봉한 영화 '람보 3'를 기억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한 이 영화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자헤딘과 함께 소련군에 맞서 싸우는 내용입니다. 당시 무자헤딘은 소련과 싸우던 무장단체였고, 영화에서는 정의롭게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이 무자헤딘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벌어졌고, 그 결과 탈레반이 등장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죠.
소련이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얻은 결과는 어땠을까요? 10년 동안 소련군 1만 4천 명 이상이 숨졌다고 합니다. 이것은 소련 측의 공식 집계입니다. 미국과 사우디의 막대한 지원, 그리고 미국의 스팅어 미사일 같은 무기를 받은 무자헤딘이 소련군의 무기를 노획하며 환호하는 모습은, 소련이 철수할 때 나온 사진들에 담겨 있습니다. 소련은 완전히 참패했습니다.
그런데 소련에 더 큰 타격을 준 건 경제 문제였고, 여기서 사우디가 경제 공격을 했습니다. 당시 유가가 30달러 수준이었는데, 사우디가 원유를 대거 증산해 유가를 엄청나게 떨어뜨렸습니다. 소련의 외화 수입은 200억 달러가 줄었고, 소련은 동유럽을 지원할 수 없게 됐으며 군비 지출도 감당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결국 1989년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했고, 2년 뒤인 1991년 소련이 해체됐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참패가 소련 붕괴의 원인이라는 분석이 많은데, 러시아의 초대 총리 대행이자 옐친의 재무장관이었던 가이다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대 실책은 석유 수입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지출한 것이고, 침공은 사우디를 미국 쪽으로 넘겨준 것이다." 중동이라는 지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사우디가 유가를 반토막 내자 소련의 재정 수입이 박살났고, 루블화도 박살나면서 소련이라는 나라가 무너진 것입니다.
지금 미국도 중동의 전쟁 수렁에 자꾸 빠져들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2001년에 시작됐습니다. 탈레반이 빈 라덴 인도를 거부하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는데, 이 전쟁이 20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미국은 막대한 돈을 썼습니다. 이라크에도 대량살상무기가 있다고 주장하며 아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침공했습니다. 침공하고 점령하는 것까지는 잘했지만, 문제는 지키는 데 드는 비용과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겁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쓴 돈은 8조 달러가 넘습니다. 미국의 국가부채가 40조 달러인데, 그 중 5분의 1이 중동 전쟁에 쓰인 돈인 셈이죠. 그래서 이 중동 전쟁을 '신용카드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전액 차입으로 전쟁을 했다는 뜻입니다. 미국은 2021년 8월 카불에서 철수했지만, 문제는 그동안 쓴 전쟁 비용의 이자가 남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2024년에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이자 지출이 국방비보다 많아졌습니다. 이것을 '퍼펙트 스톰'의 한계선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미국의 패권이 좀 더 유지되는 것이 한국에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제조를 못 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한국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중국은 제조업을 잘하기 때문에, 만약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고 그 자리를 중국이 파고든다면 우리나라처럼 제조업을 잘하는 나라에는 유리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패권이 조금 더 오래 가는 것이 우리나라에 유리하다고 봅니다. 문제는 영국이나 소련처럼 파운드가 박살나고 루블이 박살난 것처럼, 미국의 달러도 기축통화의 지위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패권이 서서히, 3~40년에 걸쳐 약화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조건은 어떤 경우에 작동할까요? 첫째는 재정 압박입니다. 둘째는 외부 지원입니다. 미국과 이란이 일대일로 붙으면 미국이 압승하겠지만, 지금 이란은 중국과 러시아가 뒤에서 몰래 돕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에도 똑같았습니다. 영국이 수에즈를 침공했을 때 영국은 이집트보다 훨씬 강력했지만, 이집트를 미국이 지원했기 때문에 파운드가 박살이 났습니다. 소련도 아프가니스탄보다 훨씬 셌지만, 아프가니스탄을 미국과 사우디가 엄청나게 지원했기 때문에 결국 소련과 루블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니 중국과 러시아가 이란을 언제까지 지원할 수 있을지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셋째는 시간의 비대칭입니다. 미국 국민들은 빨리 지칩니다. 물가가 조금만 올라도 "세계 최강 패권국가인 우리가 이란 때문에 물가가 오르는 걸 못 참겠다"고 생각하죠. 반면 이란 사람들은 "세계 최강 미국과 버틸 때까지 버텨 보자. 내가 좀 굶더라도 마지막까지 미국에 타격을 주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시간의 비대칭입니다. 이 세 가지가 이란 전쟁의 향방을 결정지을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될 겁니다.
중동 지역은 석유를 가지고 있고, 길목에 있으며, 초국적 동원이 가능합니다. 신앙의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에, 서방의 시각으로 보면 "저렇게 굶는 국민들이 있으니 좀 지나면 항복하지 않겠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중동은 신앙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끝까지 버티자고 하니, 전쟁을 그만하자는 말을 정치인이 쉽게 할 수 없습니다. 정치적으로 누가 목소리를 내느냐 하면, 끝까지 싸우자는 쪽이 훨씬 강성으로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시간의 비대칭성이 극대화됩니다.
다만 이번 이란 침공은 과거 수에즈 사태나 소련군 사태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영국도 지상군을 보냈고, 소련도 지상군으로 수렁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지상군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점령한 곳도 없죠. 이것은 그동안 20년 전쟁의 교훈 때문이기도 합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지상군을 보냈지만, 결과적으로 얻은 것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이 교훈 때문에 아직 지상군은 보내지 않았고, 그래서 아직은 발을 빼기가 비교적 쉬운 상태입니다. 하지만 세 가지 조건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금융과 채권 시장에서는 분명 미국에 악재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재정 능력이 충분한지가 앞으로 큰 문제가 될 겁니다.
정리하면, 20세기 현대사를 보면 중동이 강대국 통화의 무덤이 되어 왔고, 달러가 흔들릴 수 있는지가 앞으로 가장 큰 문제입니다. 달러는 아직 너무나 강력하고, 달러와 경쟁할 수 있는 통화도 제가 보기엔 현재로선 없습니다. 그래서 달러가 흔들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문제는 중동이 워낙 강대국 통화의 무덤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전쟁의 수렁에서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겁니다. 달러의 위상이 어떻게 되느냐는 우리 한국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겁니다. 이렇게 강대국 통화의 무덤이 됐던 중동 지역의 정세를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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