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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오태미입니다. 반갑습니다. 우리는 입문학적 상상력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들한테 제가 라방에서 얘기했지만 좀 한 40분 모아놓고 한 일주일에 한 번씩 공부를 하자. 이게 도저히 뭐 어 가격이 침체되고 그러니까 맨날 가격만 얘기하시고 가격만 보고 이러면 참 피폐해진다. 공부해야 된다.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40분을 선별할 방법도 없고 예전처럼 시험을 치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고민고민하다가 이제 한 달에 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게 굉장히 긴 스토리입니다. 긴 이야기의 시작인데요. 그 긴 이야기를 이제 하나씩 풀어가 볼 생각입니다.
저도 이게 어떻게 어디로 갈지 아직 잘 모르고요. 다만 뭐 제가 한 30년 독서를 했기 때문에 어 한 20년 독서할 때 비트코인을 만난 거고 그로도 계속 10년간 독서를 해 왔기 때문에 여러분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되게 많아요. 그게 다 뭐 맞다, 진리다 이런 뜻은 아니지만 아 우리가 이렇게 같이에 비트코인이라는 빅딩을 놓고 또 혹은 모빅이라는 걸 놓고 많은 고민이 있을 거예요. 여러분들이 많은 갈등이 있을 거고 그때 우리가 어떤 임문학적인 이야기를 해 볼 수 있을까? 그런 아주 긴 이야기에 아마 천일야와 같은 이야기의 시작이 될 거 같은데요.
우리가 한번 갈 때까지가 보는 거죠. 입문학의 시작은 철학입니다. 철학에서 제일 중요한게 인식론인데요. 인식론은 어 내가 그것을 알고 있는 걸 어떻게 알지라는 질문이에요.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데 그것을 내가 알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지? 여러분들은 제 고민을 들어 보셨기 때문에 아실 거예요. 제가 11년 전에 뭐에 쉬었는지 계시를 받은 건지 아니면 진짜로 깨달은 건지 아니면 득도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저는 비트코인 1억 간다고 알고 굳게 믿고 오템이라는 인물이 뭔가 액팅을 합니다. 굉장히 그것도 활발한 액을 해요. 그래서 제가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그때 정말 알았던 걸까?
내가 알고 있었다라는 걸 나는 어떻게 확신을 했을까? 이런 질문이 저의 화두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무모했던 거 같기도 해요. 어떻게 내가 알고 있다라는 걸 나는 확신했을까? 그 애가 셋시나 되고 그런 가장이 어 제가 연봉 한 2억 가까이 됐었거든요. 어 근데 이게 자이반 타입반 비트코인을 만나고 나서 그게 다 끊어졌어요. 그게 어떤 느낌이냐면 제가 이게 빠져 있으니까 입시를 위해 가지고 이제 그 학원에 대치동 학원에 온 엄마들한테 제가 비트코인 얘기를 했거든요. 입시 설명에서 11년 전에 대치동 그 그 엄마들이 저주를 받은 거죠.
아이들이 명문대를 가는 거 대신 그때 비트코인을 선택해야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너는 무조건 저 선생님한테 들어라. 이렇게 되는데 그때부터 제가 학생들이 극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학원 원장들도 막 짜증을 내고 그러면서 이제 소득이 톡팍 줄어들었죠. 우리 아내가 이제 고생을 해 갖고 지금 완전히 이제 유한마담으로 살고 계신데 제 카드와 제 코인을 많이 물수들이 쓰고 있습니다. 잘 고생했다라는 근거로 해 갖고 근데 어쨌건 저는이 문제를 풀어야 돼요. 그거는 확실해요. what we know에서 what I know.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었던 것 이건 확실한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지?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내가 안다라는 것을 내가 어떻게 확신하지? 이런 질문인데 이게 철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화두입니다. 철학을 몰라도요. 우리는 와인을 마시고 취할 수 있고요. 우리 일부에서의 그런 음악도 있잖아. 이런 거 듣고 다 행복해 할 수 있습니다. 그 철학을 왜 하는 거야? 예. 그죠. 철학하면 갑자기 와인을 먹어도 맛이 없어지고 그리고 저 음악을 들어도 어 행복해지지 않을 수 있어요. 하기 싫어지죠 갑자기. 근데 왜 할까요? 풀리지 않는 질문들이 있어서 그렇겠죠. 이건 르네 마그레드라는 벨기의 화가가 1923년도인가 뭐 20년대에 그 유럽이 서유럽이 굉장히 그 데카당트하고 막 그랬었어요.
1차 세계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에 좀 이렇게 패배주에 젖어 있었고 어 그때 그린 그림인데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그림이에요. 그래서 갤러리에 걸어 놨는데 르네 마그네트가 워낙 유명하니까 이제 사람들이 와서 이게 이게 무슨 뭐 이게 파이브가 아니면 무슨 뭐 어린왕자에 나오는 무슨 뭐 코끼리를 먹은 보아뱀인가 뭐 이런 생각을 했는데 르네 마그네트가 이렇게 농담처럼 얘기를 해요. 이거는 파이프를 그린 그림이지 파이프가 아니잖아 얘기를 하는 거죠. 그게 너무 당연한 거 아니에요? 당연한 거지만 이거는 마그네트가 그냥 말한게 아니고요.
이게 인식론의 중요한 그 화두를 가지고 영감을 갖고 그림을 그린 거죠. 어 모형과 실제 모델과 리얼로티라고 하는데요. 모형과 실제가 있고요. 그다음에 그것을 인식하는 인식 주관이 내가 있습니다. 나야 나. 나 나라는 존재가 있고 그래서 나라는 존재와 대상과 그 대상을 모형화한 어떤 그런 것이 있겠죠. 그 모형이라는 건 내 머릿속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저라는 실제를 보고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철학적으로는 그렇지 않고 여러분들의 시 지각에 인식된 오태민을 보고 있는 거죠. 그래서 그것은 여러분들의이 인식에 따라서 다 주관적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 철학에서 물리학기수도 그런데 사실 철학에서 객관이라는게 정의가 잘 안 되죠. 아무튼 그래서 이렇게 세 개가 있는 건 확실해요. 모형이 있고 실제가 있고 인식하는 주관이 네가 있는데이 세 가지의 상호 작용 혹은 뭐 상호작용으로까지 말할 수 없지만 어쨌건이 세 가지가 어떻게 배열되는지에 대해서 철학자들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다른 생각을 합니다. 그게 이제 인식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지각의 매개성의 문제 표상의 문제라고 합니다. 자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지각의 매개성이라는 건 우리의 오감과 내의 해석 메커니즘을 통해서만 세계를 인식한다는게 문제인데요.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북극성을 보면 런 북극성을 보면 여러분 북극성을 본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철학자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북극성은 그 빛을 수십만 년 전에 바했고요. 그게 수십만 년 동안 이렇게 지우까지 와 가지고 내 막까지 오는 동안 어 시간이 걸려서이 북극성이 저기에 있는게 아니라 내 머릿속에 있는 거죠. 그 매개에는 시간도 매개가 있거든요. 그래서 실제 부극성이 지금 어떤 모양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죠. 가까이 있는 건 그러면 어떠냐? 가까 있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철학자들은 얘기하니까 여러분들은 믿거나 말거나 그냥 믿으십시오.
이거는 철학에서 천재들이 고민을 다 끝낸 겁니다. 이거에 대한 이론이 없어요. 우리가 대상 자체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은 없어요. 우리에게 슬프지만 그 표상의 문제라고 합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그대로의 세계와 일치하는가? 이런게 이제 칸트라는 사람이 정리를 했고요. 그래서 이런 질문이 가능한 거예요. 우리는 세계로부터 완전히 기만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예. 이거는 되게 철학적으로 진지한 질문입니다. 어, 여러분 플라톤 아시죠? 플라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가 우리가 실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림자가 동굴의 벽에 이렇게 비치는 걸 보는 거고 우리는 실제를 향해서 있는게 아니라 그 동굴 벽을 향해서 있는 거다라는게 이제 플라톤이라는 현자가 이미 오래 전에 얘기를 했고요.
데카르트는 이제 그것을 1 + 1은 2다라는 걸 내가 어떻게 확 알지라는 거 1 + 1을 2라고 악마가 내 머릿속을 조작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고요. 현대 철학에서는 그것이 시뮬레이션 가설이라 그래 갖고 진지한 철학자들 사이에서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밀러 머스크도 이걸 언급했다라고 알려져 있나 봐요. 어, 이게 다 시뮬레이션인 거예요. 그러니까 저라는 존재는 없는 거고 그냥 여러분 각각의 인식 주관이 있는 거고 여러분들은 어디든가에서 매트리스라는 영화처럼 이렇게 뇌에 뭔가 꽂혀 있는 거고 이게 다 허상이라는 거죠. 중요한 건 이러예요.
이게 좀 황당하겠지만 여러분들 설사 아닐 수도 있어요. 시뮬레이션이 아니 아닐 수 있어요. 여러분들이 진짜로 여러분이 믿고 있는 것처럼 살아 있고 여러분들이 만지는 것이 실제하고 여러분들이 보는 것이 실제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시뮬레이션 이론처럼 대가설이라고도 돼요. 워낙에 큰 가설이라서 대가설이라고 하는데 여러분들은 잠들어 있는 거고 누군가 여러분의 뇌만 살려 놓고 뇌에다가 여러분들이 김밥을 먹을 때 그 오감을 여러분들 머릿속에 그때 맞춰 가지고 프로그램에 따라 가지고 이제 입력해 줄 수가 있어요. 중요한 건 뭐냐면 둘 사이에 어떤 것이 진실이냐가 우리는 알 수가 없죠.
중요한 건 뭐냐면이 둘이 구별이 안 된다는 겁니다.이 둘이 엄밀하게 구별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물론 현실에서 이것을 구현하려면 약간의 기술적 오류라든가 버그가 발생할 수가 있겠죠. 근데 만약에 이제 어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절대자가 만든 프로그램 속에 우리가 있는 존재라면 우리는 그 프로그램 속에서 이것을 실제라고 믿을 거 아니냐라는 질문인 거거든요.이 두 개가 구별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두 개가. 그러니까 색이라는게 대표적이에요. 색 빨간색, 파란색, 보라색 이렇게 있는데요. 색이라는 건 대상에 있지 않아요. 왜냐하면 빛이 빛이 이렇게 와 갖고 그 대상의 표면에 부딪혀 가지고 반사되는 반사되는 그 프리즘을 통해 갖고 내 뇌가 이제 인식을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색이라는 건 뭐냐면 우리 뇌가 어떤 대상의 표면을 읽어내는 하나의 신호의 방식이지 색이 빨간색이 그 대상 자체에 있다라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파란색이 그 대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음악도 어떤 일정한 그 공기의 밀도를 우리 내가 인식하는 방식일 뿐이지 그게 음악이다라는 참 절대자가 있다면 진짜로 대단한 거예요. 그게 음악이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도록 인지가 될 뿐이지 그건 그냥 주파수예요. 주파수. 그래서 음악도 우리 머릿속에 있는 거고 색깔도 우리 머릿속에 있는 겁니다. 이거는 뭐 이거는 뭐 인지각을 또 다 동의하는 거니까 이거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제 이런 거를 철학자들은 수천년 전에 다 알고 있었다라는게 놀라운 거죠. 사업학자들은 이런 이런 거 고민하는 사람들이니까 도움 하나도 안 되는 이런 거 공부하는 사람들이니깐요. 그럼 철학에도 이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식이 있어요. 그거를 극복하는 방식은 이겁니다. 진화론적 인식론이라는게 있어요. 우리가 생존을 위해서 진화된 존재기 때문에 완전히 우리가 허상 속에 있다면 우리는 멸종했을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그 빨간 것이 실제로 대상에 있는 것이 아 우리 머릿속에 있더라도 그 빨간색과 그 대상관에는 어떤 함수적 관계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낭설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빨간색을 보면 기분이 나쁘거나 피를 연상하거나 하는 것들이 우리의 감정이라는 복합 복합적인 인포메이션으로 오는 것뿐이지만 우리에게 어떤 그런 진화적 정보를 준다. 그래서 우리가 서바이벌 하는데 굉장히 도움이 되는 거다라는 거죠. 칼을 딱 뱉는데 맑은 물이 나올 때가 있고 빨간 물이 나올 때가 있잖아요. 맑은 물이 나오면 우리가 별일 아니다라고 생각하는데 빨간게 갑자기 확 나오면 갑자기 아파지는 거죠. 갑자기. 그래서이 순서가 되게 중요한데요. 아프고 나서 보니까 빨간색이 아니라 빨간색을 보니까 아픈 거예요.
궁금해서 해보지는 마세요. 되게 유명한 이거에 대한 실험이 있어요. 왜냐면 어떤 철학자가 쓴 아주 짧은 에세인데 자기 아들이 자기가 미국 사람이니까 소파에 앉아 가지고 미축구를 보면서 이렇게에 테이블 안은뱅이 테이블에 낮초하고 뭔가 음료수를 넣어 놓고 있는데 자기 아들이 밖에서 씩씩거리면서 운동을 하고 들어와 갖고 그 검은색 그 잔에 들어 있는 물방울이 맺혀 있고 시원해 보이는 그 음료수를 순간적으로 입에다 딱 대는 먹는 거죠. 당연히 콜라를 연상하고 먹었을 거예요. 근데 그건이 흑맥주였어요. 흑맥주. 이때이 아들의 머릿속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냐면요.
여러분도 이거는 가끔 경험하실 수 있어요. 콜라맛이 나는 것도 아니고 흑맥주 맛이 나는 것도 아니고 잠시 아주 순간적으로 아무 맛도 안 납니다. 만약에 그게 진짜로 콜라였다면 바로 콜라맛을 느꼈을 거예요. 그리고 흥맥주였고 아빠가 흑맥주를 놓고 미식 축구를 보는 습관이 있다는 걸 아들이 알고 있었다면 또 바로 흑맥주 맛이 났을 텐데요. 콜란 줄 알고 흑맥주를 마시면 아주 짧은 순간 동안 아무 맛을 못 느낍니다. 그러다가 머릿속에서 데이터를 찾아요. 이건 콜라가 아니다. 그럼 이건 뭐지? 흑맥주네. 그럼 흑맥주맛이 나는 거예요. 제 말이 뻥 같죠?이 철학자들은 이거를 다 알고 있었고요.
어, 현대 인지과학에서 이걸 가지고 실험을 했는데 철학자들이 옳다라는 걸 증명을 하고 있어요. 우리가 그런 존재예요. 우리가 인식 주관이 굉장히 그 창의적이고 주관적이고 굉장히 풍부합니다. 상상력이. 아무튼 이게 그러면 적합하지 않냐? 적합하다라는 거죠. 또 이제 수학을 좀 아는 사람들, 통계학을 하는 사람들은 아, 이게 우리 우리가 예측하는게 있고 우리가 우리 인식 주관에서 예측하는게 있고 사태의 변화가 있는데 이게 5차가 있지만 계속 따라간다. 트라이하고 에러를 발견하고 수정하고 또 트라이하고 에러를 발견하고 수정하고 트라이하고 에러를 발견하고 수정하고 아까 그 철학자의 아들 머릿속에서 전형적으로 발생한 거죠.
트라이 했는데 콜라 아니야. 그래서 콜라를 이게 마치 단백질 수용체처럼 콜라를 인식하는 머릿속에 수용체가 있는 거 같아요. 수용체가 안 맞는 거죠. 배열을 바꿔 갖고 다시 흑맥줄을 인식하는 수용체를 바꿔치게 해 갖고 이제 인식을 한다는 거죠. 트라이하고 에러를 발견하고 수정하고 그래서 근사해진다라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의 우리의 뇌가 우리의 신체하고 구별돼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체의 상호 작용 우리의 혀, 손, 발 감각할 수 있는 어떤 그런 거 상호 작용하기 때문에 철학자들 생각하는 그 완전히 뇌만 고립돼 갖고 뇌에다가 어떤 그런 자극을 줬을 때하고 다르다.
이게 상호 작용하는 그런 과정 속에서 이게 완전히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다. 철학자들의 그런 시뮬레이션 가설 같은 거는 좀 황당하다. 여러 가지가 이렇게 복합적으로 교차하면서 검증한다. 우리 우리의 주관적인 인식이 그렇게까지 주관적이진 않다. 세 번째 행위 기반 인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세 번째랑 비슷하고요. 여러분은 어떤 게도 다 상식적인 거 같아요. 아까 제가 얘기한 데카르트, 플라톤, 뭐 시뮬레이션 이런 우리의 인식과 세 개를 구별하고 세계가 어떤 식으로든지 우리의 인식으로 들어오는데 색도 우리의 인식 속에 있을 뿐이고 우리가 재창조한 거고 소리도 음악도 우리가 재창조한 거고 그래서 이거는 두 개가 구별된다는 철학자들의 생각이 맞는 거 같아요.
이런 그걸 이제 인식론적 인식론적 비관론 회의론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인식론적 비관론 속에서는 어떻게 세상을 보냐하면 인식하냐하면 제가 어느 정도 이거 이런 태도를 갖고 있는데요. 세 개가 이렇게 어느 여러분들이 깜깜한 깜깜한 어떤 공간에 있어요. 그 공간 안에 들어가서 진짜 아무 빛이 없는 겁니다. 그 공간 안에 들어가는데 그 방이 네모만 네모 낮게 생겼을지 세모 낮게 생겼을지 다각형일지 여러분들은 감을 잡을 수가 없죠. 여러분들 여러분들이 오감을 이용해 갖고 상상을 하는 겁니다. 그게 모델이에요. 둥그런 돈같이 생겼을 거라고 상상할 수도 있는 거고 사각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삼각형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물론 가서 만져 가지고 이렇게 더듬을 수는 있는데 그러기 전에 여러분들이 어떤 모형을 갖고 있는 거죠. 근데 그 모형하고 그 실제의 방의 구조하고는 차이가 있겠죠. 근데 이제이 사람들이 얘기하는 건 뭐냐면 그래서 오태민이 그렇게 해서 더듬고 프레시를 비춰볼 순 없어서 전체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그런 여건 되지 않지만 여러 번 뭐 그 안에서 계속 뭔가 뒹굴다 보면 어 동그라미라면 있을 수 없는 현상일 거고 네모라면 있을 수 없는 생각 뭐 뾰족한 각도가 나온다거나 이런 걸 통해 갖고 try앤트 try이앤를 통해 갖고 대충은 근접한다. 대충 우리의 인식이 실제를 모사한다. 이렇게 이제 보는 거예요. 낙관론이죠. 그 인식론적 낙관용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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