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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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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영의 위기에서 찾은 경제의 법칙 8

소오강호 · 2024-04-29 · 유튜브 시청 127 · 게시판 조회 7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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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환율#나스닥#헤지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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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오건영 · 한국인

요약 보기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저성장 속 미국 신경제·닷컴 열풍으로 자본이 미국에 몰리며 달러 강세·나스닥 급등이 발생. 러시아 모라토리엄과 LTCM 파산 이후 금리 인하가 자산 거품을 키웠고, Y2K 우려로 금리 인상이 늦어지다 뒤늦게 올리면서 닷컴 버블이 붕괴. 나스닥은 고점 대비 약 78% 하락, 회복까지 약 15년 소요. 버블 붕괴가 이후 금융 역사로 이어진다는 예고로 마무리.

다듬은 글

※ AI가 다듬은 글(오탈자·군말 정리)

외환위기의 여파와 동아시아 경제의 흐름

01. 안녕하십니까, 오건영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닷컴 버블의 붕괴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외환위기는 2023년까지 영향을 준, 우리나라 경제에 굉장히 큰 단절점이었습니다. 첫 강의에서 말씀드렸듯이, 역사에는 단절과 연속이 있고, 큰 단절이 일어나면 그 이후에 새로운 연속이 이어집니다. 그 연속을 저성장과 저금리로 설명드렸던 기억이 나실 겁니다. 외환위기는 긴 관점에서 그런 영향을 줬는데, 짧은 관점에서 97년, 98년 이후에는 무언가 새로운 문제를 만들지 않았을까요.

닷컴 버블은 금융위기가 아니었다

02. 닷컴 버블의 형성과 붕괴를 살펴보겠습니다. 닷컴 버블을 금융위기나 외환위기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산 가격, 특히 주가가 크게 하락한 것은 맞지만, 금융 시스템을 완전히 뒤흔들지는 않았습니다. 국가에서 자본이 빠져나가 외환이 부족해지는 상황으로 이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자산 가격 급락은 미국의 일시적인 경기 침체를 낳았습니다.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세계 경기의 침체

03. 97년, 98년의 외환위기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외환위기였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태국, 인도네시아도 힘들었고, 말레이시아도 부도 위기를 간신히 버텼습니다. 일본 경제도 좋지 않았고, 잘나가던 중국도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특히 중국은 기업 부채 문제가 어마어마했고, 4대 은행의 부채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04. 90년대 말 유럽도 불안했습니다. 독일이 통일하면서 독일병이라는 문제가 생겼고, 유럽 통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높아져 유럽도 불경기를 겪었습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유가 폭락과 신흥국들의 연쇄 위기

05. 공업 국가들이 불경기를 겪으면서 원자재 수요도 줄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국제유가입니다. 98년 8, 9월에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둘째 시간에 말씀드린 석유 파동 때는 국제유가가 순식간에 40달러를 넘었는데, 그 뒤 계속 흘러내려 20년 가까이 지나 10달러 아래까지 떨어진 것입니다.

06. 기름값이 크게 떨어지자 산유국들이 힘들어졌습니다. 러시아가 대표적입니다. 그 결과 98년 8, 9월에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했고, 99년 초에는 원자재 강국인 브라질이 외환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99년 말부터 2000년 초에는 아르헨티나가 흔들린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07. 이렇게 보면 동아시아, 일본, 중국, 유럽, 러시아, 브라질, 중남미, 동유럽까지 거의 모든 지역이 힘들었습니다. 세계 지도에서 좋은 나라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 하나, 미국만 예외였습니다.

미국의 호황과 인터넷 혁명

08. 당시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말이 나올 만큼 경기가 좋았습니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였고, 미국이 혼자 세계 경제를 끌고 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에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습니다. 인터넷은 지구 반대편을 연결했고, 과거에 없던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기술이었습니다. 그 발전 속도가 어디까지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09. 생각해보십시오. 인터넷이 전 지구에 깔린다면 성장세는 어떨까요? 무궁무진할 것 같지 않으십니까? 인터넷 기업뿐 아니라 인터넷 장비를 까는 기업들도 엄청난 성장을 보일 것 같지 않으십니까? 예측 자체가 불가능할 만큼 경제가 활짝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신경제'라고 불렀습니다. 다른 나라는 다 어려운데 미국만 좋았고, 미국 안에서도 신경제라는 혁신 산업이 생겨났습니다.

10. 투자자 입장에서 생각해보겠습니다. 흔들리는 미국 이외의 국가에 투자하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미국에 투자하고 싶으십니까? 당연히 미국입니다. 전 세계 자본이 미국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미국에 투자하려면 달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달러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고, 이때부터 달러가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달러 강세가 가져온 역설

11. 달러가 강해지면 환율이 오릅니다. 환율이 1,000원에서 2,000원으로 오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달러가 강해지면 달러 빚을 가진 나라들은 앉은 자리에서 빚이 늘어납니다.

12. 미국 자산시장은 어땠을까요? 엄청난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미국 주식 중에서도 기술주 중심의 지수가 나스닥입니다. 나스닥은 90년대 초반 500 근처에 있다가, 닷컴 버블의 정점인 2000년 3월 10일에 5,100을 넘었습니다. 10년 가까이에 열 배가 뛴 것입니다. 이것이 닷컴 버블의 핵심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부진한 동안 미국만 핵심 성장 동력을 가지고 있었고, 자금이 그쪽으로 몰려든 것입니다.

13. 그런데 나스닥이 500을 기록할 때 사람들은 어떻게 느꼈을까요? 이제 다 왔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더 간다고 생각했을까요? 나스닥이 1만 포인트를 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인터넷 기업의 성장은 예측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만큼 버블도 크게 나타났습니다.

금리로 버블을 막을 수 있었을까?

14. 여기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을 겁니다. 자산 가격이 너무 오르면 금리를 올려 버블을 제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일반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주가가 너무 오르면 물가가 오르고, 물가가 오르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려 버블을 꺼뜨린다는 것입니다.

15.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으로 돈이 몰리면서 달러가 강해졌습니다. 달러가 강해지면 미국 입장에서 수출은 어려워집니다. 미국 제품의 달러 표시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내수, 즉 소비가 워낙 강해서 수출이 어려워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달러가 강하면 해외에서 수입되는 물가가 낮아집니다. 신흥국들이 흔들리면서 유가도 바닥에 붙었습니다. 유가가 바닥인데 달러까지 강세이니, 미국의 물가는 안정되었습니다.

16. 그렇다면 금리를 많이 올려야 할까요? 올리기가 참 애매했습니다.

러시아 모라토리엄과 LTCM 파산

17. 98년 8월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는데, 미국의 대형 헤지펀드인 LTCM이 러시아에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LTCM은 순식간에 파산했습니다. LTCM은 덩치가 커서 미국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18.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은 경기가 양호한 상황에서도 일시적으로 금리를 인하했습니다. 경기가 나쁘지 않은데 금리를 내린 것입니다. 장작에 불이 붙어 있는데 기름을 부은 것과 같았습니다. 자산 가격은 확 뛰어올랐습니다. 이때부터 나스닥 버블은 훨씬 더 심각해졌습니다.

19. 차트를 보겠습니다. 빨간 선은 미국의 기준금리, 파란 선은 나스닥입니다. 나스닥은 95년부터 700 정도에서 시작해 확 올라갔고, 2000년 3월 10일에는 5,132까지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상승 중간에 LTCM 파산과 러시아 사태의 충격으로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한 모습이 보입니다. 금리가 내려가자 주가는 날아갔습니다. 난리가 났죠.

뒤늦은 금리 인상과 버블의 붕괴

20. 한동안 물가가 안정되자 주가가 많이 올랐음에도 금리를 올리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금리 인상은 99년 6월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걸림돌이 하나 있었습니다. 99년 말에 Y2K 문제가 있었습니다. 2000년이 되면 컴퓨터 날짜 체계가 바뀌면서 대혼란이 올 수 있다는 우려였습니다. 금융 시스템에 불안이 커지면 유동성이 순식간에 말라버릴 수 있습니다.

21. 그래서 연준은 금리를 빠르게 올려야 했지만 인상 속도를 천천히 가져갔습니다. 그러자 주가는 수직으로 솟구쳤습니다. 2,000포인트였던 나스닥이 5,132까지 한 번에 치솟았습니다. Y2K도 큰 문제없이 지나갔습니다. 그제야 미국은 금리 인상의 속도를 높였습니다. 6%였던 기준금리를 0.5%씩 올리며 6.5%까지 끌어올렸고, 이때 닷컴 버블이 터졌습니다.

22. 이후 나스닥은 계속 하락했습니다. 2000년 3월부터 2002년 11월까지 떨어졌고, 2002년 10월 무렵 1,000포인트 초반까지 빠졌습니다. 고점 대비 하락폭은 78%였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5,132이라는 숫자를 다시 보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2015년 4월에야 다시 돌아왔습니다. 15년이 걸린 것입니다. 그만큼 버블이 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리

23. 내용을 정리하겠습니다. 동아시아 외환위기로 신흥국 성장이 둔화되었고, 그때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미국의 강한 성장이었습니다. 미국은 닷컴 기업이라는 신경제를 내세웠습니다. 여기에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유가가 안정되면서, 성장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오르지 않았고 금리도 낮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미국 자산 가격이 크게 뛰었고, 특히 나스닥은 90년대 들어 거의 열 배가 뛰었습니다.

24. 중간에 이를 견제할 수 있었던 수단은 금리 인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첫째, 물가가 안정되어 금리를 올릴 이유가 약했습니다. 둘째, 러시아 모라토리엄과 LTCM 파산으로 미국 금융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지면서 오히려 금리를 인하했습니다. 셋째, 본격적으로 금리를 올려야 할 때 Y2K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자 주가는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뒤늦게 금리 인상의 속도를 높이자 버블은 터지고 주가는 흘러내렸습니다.

25. 정리하면,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미국으로의 자본 쏠림을 만들었고, 그 쏠림이 닷컴 버블을 형성했으며, 그 버블이 붕괴했다는 흐름입니다.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일본과도 연관이 있다는 말씀을 기억하실 겁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일본 이야기, 외환위기 이야기, 그리고 닷컴 버블까지 세 가지는 서로 물려 있습니다.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서로 일정 수준의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26. 그렇다면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닷컴 버블의 붕괴는 또 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요? 그 이후의 역사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 이야기는 금융 이야기와 다시 만나게 됩니다. 다음 시간부터 그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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