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오태민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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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이 국가 화폐 체제와 공존할 수 있다는 논지. 일본 에도시대의 다중 화폐 사례와 런던의 유로달러 시장(국가 규제 밖 달러 예금)을 예로 들며, 금융 규제가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비트코인이 대안 금융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 음지 금융의 역사적 역할도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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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대조적인 가치와 미래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들어요. 정말 주목해야 할 만한 화폐 능력이 있다면, 국가들이 가만히 있을까? 우리 정부는 원화로 돌아가고 있고, 정확히 말하면 미국 달러의 세계를 살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미국이 가만히 있을까요. 사람들은 흔히 "결국 때려잡을 것"이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또 "내가 샀는데 없어지면 어떡하냐"는 질문도 나올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죠. 실제로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 저는 주장하는 거예요. 비트코인이 분산되어 있고 고칠 수 없다는 점은 맞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열려 있는 질문이에요. 우리가 지켜봐야 하는 부분이고, 여기서부터는 추론이 들어가는 거죠.
한 가지 교정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보통 사람들은 한 시대에는 하나의 화폐 체제만 있다고 믿어요. 파운드의 시대, 달러의 시대처럼요. 그런데 인류 역사에서 화폐가 하나였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화폐가 자연스럽게 번창했던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의 에도 시대예요.
에도 시대의 화폐를 보면, 동쪽은 세금을 금화로 내야 했기 때문에 에도를 중심으로 금화를 썼어요. 반면 서쪽, 교토 쪽은 중국과 무역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은화를 썼습니다. 그래서 동쪽은 금화, 서쪽은 은화가 쓰였죠. 이게 다가 아닙니다. 각 번(藩)은 종이돈을 발행해 썼어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근대적 은행 제도의 씨앗이 나타났습니다. 서양에서 온 것이 아니라 일본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생긴 거예요. 서로 다른 돈을 쓰니까 환전이 필요했고, 환전을 해 주는 신용 있는 상인이 생겼습니다. 각 번의 종이돈이 믿을 만한지도 따져서 그에 맞는 금이나 은으로 바꿔 줘야 했죠. 그렇게 작은 일본에서도 수십 종의 돈이 동시에 쓰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달러의 시대를 산다고 하지만, 각 국가와 지역을 보면 달러 말고도 자기들 화폐가 있고, 지역 화폐도 있습니다. 옛날의 은화나 금화, 그리고 번들의 종이돈처럼 말이죠. 비트코인은 아직 그런 로컬 화폐 수준은 아니지만, 달러 시스템 안에서도 여러 화폐가 공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렇다면 비트코인도 금이나 달러와 비슷한 위치에서, 달러와 공존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미국이 비트코인을 완전히 때려잡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공존하는 모델로 가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볼 수도 있어요.
이 부분은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도 잘 모르는 내용인데, 미국 중심의 달러 기축 시스템에서도 오랫동안 미국 바깥에 화폐 제도가 있었습니다. 바로 유로달러예요.
유로달러는 이름 때문에 헷갈리기 쉬운데, 유럽이나 우리가 아는 유로와는 관계가 없어요. 달러도 아닙니다. 1950~60년대 런던의 시티 오브 런던, 즉 거의 자치 지구에 가까운 금융 지구의 은행들이 소련과 중국의 달러 예금을 받기 시작하면서 생긴 시장이에요. 소련과 중국도 무역을 하면 달러가 생기는데, 이를 미국 관할 은행에 넣으면 미국이 동결해 버릴 수 있었죠. 최근 푸틴 자산을 동결한 것처럼요. 그래서 가장 믿을 만한 곳을 찾았더니, 19세기 제국주의 시절부터 신뢰를 지켜 온 영국 은행들이었습니다.
이 달러 예금은 영국 은행에 있지만 영국 통화에 속하지 않고, 미국 입장에서는 미국 관할권 밖에 있는 달러예요. 그래서 미국 연준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연준이 금리를 발표해도, 그 금리가 적용되는 범위 밖에서 돈이 돌아가는 거죠. 여기에 중동의 오일머니까지 쏟아져 들어오면서 시장은 점점 커졌고, 나중에는 프랑이나 엔, 마르크까지 쓰이게 됩니다. 국가의 규제를 받지 않는 거대한 역외 금융 시장이 생긴 거예요.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은행 바깥에 있는 명동 사채 시장이 국제적으로 생긴 셈이죠.
우리가 흔히 쓰는 대출 금리나 전세 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금리가 바로 이 유로달러 시장에서 나옵니다. 런던의 은행들이 서로 빌려줄 때 적용하는 단기 금리인데, 이것이 리보(LIBOR)예요. 매일 발표되고, 그 위에 스프레드가 붙어 대출 이자가 결정됩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중앙은행 중심의 금리 체계와는 실제 돈의 흐름이 다르다는 거죠. 실제로 상인들이 굴리는 돈은 유로달러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교과서나 책으로 배운 정통적인 달러 유통 시스템 외에, 사실은 굉장히 거대한 역외 화폐 시장이 있고 어떻게 보면 이쪽이 더 지배적일 수도 있어요. 유로달러의 최대 예금주도, 대출을 받는 쪽도 국가들이었으니까요. 이렇게 큰 구멍을 두고 다른 것만 공부해 온 셈입니다. 욕조 안의 코끼리를 보지 못하고 있었던 거죠.
유로달러 같은 역외 시장이 태생적으로 가진 특징은 익명성, 그리고 누군가가 내 돈을 통제하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비트코인으로 자산을 빼돌리는 용도로 쓰이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죠. 실제로 이런 시장을 비트코인이 대체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어요.
하지만 정보통신이 발전하면서 국가들이 이 시장을 그냥 두고 볼 리 없습니다. 최근 여러 나라가 글로벌 법인세를 공동으로 도입하려고 하고, 대형 디지털 기업들에 대한 과세 논의가 이어지는 것도 같은 흐름이에요. 비트코인과 무관하게 전체 역외 금융이 점점 조여지고 있는 거죠. 런던의 시티 오브 런던도 몇십 년에 걸쳐 압박을 받아 왔고, 스위스도 고객 명단을 공개하기 시작하면서 버티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역외 금융으로 먹고살던 곳들은 다른 대안을 찾게 되겠죠. 익명성이 있어서 누군가 수사를 하더라도 빼앗길 수 없는 자산, 그리고 미국 연준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고객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 그 대안이 어디에 눈을 돌렸는지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됩니다.
저는 처음에 비트코인을 원화나 달러를 대체할 수 없으니 사기라고 봤어요. 그런데 이 역외 시장의 규모를 알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물론 음지의 금융이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류 역사에서 음지는 늘 양지와 함께 있었고, 음지가 양지에 영향을 미치고 양지도 음지에 영향을 받아요. 그래서 둘 다 함께 보고 관리하는 것이 건강한 인식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국가가 음지까지 모두 장악하려 하고 있어요. 이걸 빠르게 양지로 끌어내려는 이상주의적 시도가 강해지고 있죠. 그 결과 스위스는 강한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스위스는 러시아 자산을 동결했고, 그 자산을 우크라이나 재건에 쓰라는 요구까지 받았어요. 250년 된 금융 전통이 정치적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된 거죠. 이렇게 압력이 커질수록 그 바깥에 새로운 음지가 필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명동 사채 시장도 마찬가지예요. 많은 사람이 손해를 보고 극단적 선택까지 하기도 했지만, 기업이 급하게 자금이 필요할 때 쓰이기도 했고 실제로 국가 발전에 기여한 측면도 있습니다. 기준금리가 2%라 해도 그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의 특권층이고, 대부분은 스프레드를 얹은 높은 이자를 감당해야 하니까요. 당장 집값이 떨어져 어려운 사람이 1~2년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면, 법정 최고 이자를 감수하고라도 돈을 빌려야 할 때가 있는 법입니다. 인식이 좋지 않을 뿐 존재하는 시장이에요.
재미있는 사례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삼성도 런던 시티에 사무소를 두고 유로달러 시장에서 급전을 끌어다 쓴 적이 있어요. 신용이 있는 기업은 일주일 안에 갚는 조건으로 단기 자금을 빌리는데, 상환 기간이 짧기 때문에 위험이 낮습니다. 이런 식으로 돌려막기도 가능하죠.
만약 이런 자금 거래를 이더리움 같은 플랫폼에서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높은 연리를 받아 일부는 자기 몫으로 남기고 나머지는 투자자에게 돌려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투자자는 비트코인 가격 상승에만 기대지 않고, 비트코인으로 이자를 받을 수도 있게 되는 거죠. 실제로 지금도 신용장 팩토링 같은 영역에서는 연 20%에 가까운 수익이 나오는데, 은행은 짧은 기간에 자금을 돌려서 그 수익을 가져갑니다. 개인이 받는 예금 금리와는 차이가 크죠.
결국 비트코인은 전통적인 은행과 국가 시스템을 우회해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고, 자산을 굴릴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내재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고, 그 믿음이 시장을 움직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금융을 너무 모르는 나라예요. 금융 DNA가 약한 나라인데, 비트코인의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본 곳은 홍콩, 런던, 스위스, 저지 같은 전통적인 역외 금융 지역이었습니다. 우리가 기존에 해 왔던 방식보다 더 나은 대안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먼저 눈치챈 거죠. 다른 국가의 간섭을 덜 받으면서 자산을 지킬 수 있는 길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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