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미상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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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은 돈의 역사 2편으로, 북방 유목민족의 중국 지배와 송나라 산업화 좌절, 기후변화와 인구·경제 흐름을 다룬다. 결론: 북방 민족의 중국 지배와 기후 변화가 중국 경제 발전 흐름을 바꾸었고, 시장 경제와 산업혁명의 싹이 꺾였다는 역사적 설명이다. 북송은 1127년 금나라에 멸망하기 직전까지 산업혁명에 가장 근접한 나라였고, 시장경제와 신용화폐 시스템이 도입되어 경기 변동 조절도 이루어졌다. 북송이 금나라에 패한 원인은 기마 전력 부족이라는 비대칭 전력 문제로 제시되며, 송기의 기록과 여진족의 송나라 보병 격파 사례가 근거로 인용된다. 기후 측면에서 황하 가뭄과 하천 바닥 상승, 잦은 범람이 북방 유목민의 남하를 촉발했다는 설명이 나오며, 한나라 시기 흉노 이주 정책도 언급된다. 삼국시대와 300~700년 사이 북반구 한발 등 세계적 기후 변화도 북방 민족 이동의 배경으로 소개된다. 청나라 시기 감자·옥수수 등 신대륙 작물 도입으로 인구가 폭증해 1인당 소득이 감소했고, 중국 1인당 소득이 영국에 추월당한 시기는 명나라 중엽으로 분석된다. 송나라 농업생산성 향상(점성 벼 도입, 왕안석 신법 하 양쯔강 하류 습지 개간)이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후반부는 ESG 투자 확산, 국민연금 및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석유 투자 중단 흐름, 그리고 ESG 펀드 성과 전망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당시 미국 증시 폭락과 달러 기축통화 지위(결제 통화 점유율 88.3%)를 설명하며, 달러 가치 급등이 해외 달러 차입자에게 타격을 준다고 경고한다. 종목별 가격 목표나 방향성 매매 권고는 없고, 주로 역사·거시 경제 해설이다.
다듬은 글
흉노부터 5호16국, 금나라까지 북방 유목민족이 세운 나라들은 중국의 역사 흐름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12세기 이후 거의 천 년 동안 현재 중국 영토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습니다. 북방 유목민의 지배가 중국에 정확히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판단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싹트고 있던 산업혁명의 싹을 꺾었다는 사실입니다.
북송은 1127년 금나라에 의해 멸망하기 직전, 1700년대 영국을 제외하면 산업혁명에 가장 근접한 나라였습니다. 상업과 도시의 발달 수준이 매우 높았고, 기술 수준도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수도 개봉을 방문한 일본 승려 조진의 기록은 당시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거래하고, 자신의 노동 가치를 시장에서 평가받는 전형적인 시장경제의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신용화폐 시스템도 이미 도입되어 경기 변동이 어느 정도 조절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송은 왜 금나라에 그토록 허무하게 무너졌을까요? 경제력이 발달한 나라라면 전쟁 수행 능력도 높았을 것 같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북송이 패한 원인은 유목민이 가진 비대칭 전력에 있었습니다. 『신당서』 편찬으로 유명한 역사가 송기는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그들은 말이 많고 병사들이 기마에 능숙합니다." 중국은 말이 거의 없었고, 병사들은 기마술을 익히지 못했습니다. 중국 지식인들은 이런 약점을 극복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전투 기록을 보면 중원의 보병은 북방민족의 기병을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특히 북송 시대에는 소규모 전투에서 이긴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12세기 초반 한족과 북방민족의 전력 차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여진족 전사 17명과 송나라 보병 2,000명이 맞붙은 전투였습니다. 여진족 전사들은 전투가 시작되자 중앙에 7기, 좌우에 각각 기병 부대를 배치해 송나라 보병을 포위했고, 결국 2,000명의 송나라 보병은 완전히 농락당한 끝에 괴멸되었습니다. 여진족은 단 한 명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북방민족이 이렇게 강력했는데도 왜 12세기 이전에는 중국 전역을 지배한 적이 별로 없었을까요? 오히려 기원전 2세기 한 무제가 흉노를 격파하고 서역의 교통로를 확보하면서 중국 역사상 최대 영토를 장악할 만큼 한족이 강세를 보인 적도 있었습니다. 당나라 역시 한족이 아니라 선비족 계열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전세가 언제 어떻게 바뀌었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 이유는 중국 북부 초원 지대의 강수량 변화를 보면 풀립니다. 중국을 대표하는 황허는 칭하이성 쿤룬산맥에서 발원해 북쪽의 황토고원을 향해 흐릅니다. 이 과정에서 황허는 연간 15억 톤 이상의 흙을 흡수해 누런 흙탕물로 변합니다. 이름 그대로 '황하(黃河)'입니다. 황토고원을 지나 동쪽으로 흐르던 황허는 태행산맥에 부딪혀 남쪽으로 방향을 틀고, 한족의 모태가 되는 비옥한 평야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비옥한 토양을 만드는 과정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상류에 비가 많이 오면 누런 흙탕물이 하류로 쏟아져 내려가고, 반대로 비가 오지 않으면 강물 수위가 낮아집니다. 가뭄이 길어지면 강바닥에 흙이 쌓여 주변 평야보다 강바닥이 더 높아지는 '천정천(天井川)'이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조금만 비가 많이 와도 둑이 무너져 물이 범람합니다. 실제로 황허는 자주 범람했습니다.
그렇다면 강수량과 국경 침범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황허의 홍수 위험이 낮아졌다는 것은 황토고원, 즉 북방민족이 살던 지역에 가뭄이 들었다는 뜻입니다. 초원이 말라 가축이 굶어 죽는 상황에서 북방민족이 풍요로운 남쪽 땅을 약탈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어차피 굶어 죽을 바에야 부유한 평야 지역을 약탈하자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이 현실이 된 대표적인 시기가 삼국시대입니다. 조조, 유비, 손권이 세 나라를 세워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기, 북방에서는 전쟁의 먹구름이 점점 두터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기 북방 초원은 왜 가물게 되었을까요?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첫째는 세계적인 기후 변화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300년에서 700년 사이 북반구에서는 한랭기와 가뭄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이때 서로마 제국이 멸망했고, 북아프리카의 곡창지대가 무너졌으며,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 도시들이 쇠퇴했습니다. 중국에서도 309년 극심한 가뭄이 들어 양쯔강과 황허를 걸어서 건널 수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칭하이성 숲의 나이테를 연구한 학자들은 수십 년에 걸친 극심한 가뭄이 반복적으로 나타났음을 밝혀냈습니다.
둘째 가설은 인간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한 무제는 오랜 정벌 끝에 흉노 세력을 꺾는 데 성공한 뒤, 대규모 이주 정책을 펼쳤습니다. 기원전 119년 황허 하류의 백성 70만 명을 황하 북쪽의 오르도스(지금의 네이멍구 일대)로 이주시켰습니다. 문제는 오르도스 일대가 메소포타미아처럼 반건조 지대라는 점입니다. 비옥해 보이지만 비가 자주 내리지 않는 곳에 계단식 밭을 만들면 토양이 쉽게 황폐해집니다. 게다가 상류 지역의 삼림과 초원이 사라지면서 황허 유역 전체의 홍수 빈도가 높아졌습니다.
두 가설 모두 설득력이 있지만, 최근에는 두 번째 가설이 더 주목받고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이 청나라 때의 홍수 기록을 세세하게 분석했더니, 무려 1만 6,384건의 홍수가 발생했는데, 그중 대부분이 도시 빈민이 농지를 개간하고 환경을 훼손한 이후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청나라는 감자, 땅콩 등 신대륙에서 건너온 작물을 도입해 인구가 4억 명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청나라 정부 입장에서는 늘어난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1780년에서 1850년대 사이 황허 제방이 무너지는 재해가 반복되었습니다.
12세기 이후 현재 중국 영토의 상당 부분이 유목민에게 점령당한 이유를 두고는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잉바이와 제임스 캐싱(James Kung)의 기념비적인 연구 덕분에 논쟁이 상당 부분 가라앉았습니다. 이들은 황허 유역에 가뭄이 들었던 시기에 북방민족의 침입이 늘었고, 반대로 비가 많이 내려 강물이 범람한 시기에는 침입이 줄어들거나 북방민족의 영토가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12세기 이후 황허 유역에 가뭄이 점점 더 자주 찾아왔다는 점입니다. 소빙하기로 접어들면서 기후 여건이 악화된 것, 그리고 인구 증가에 따른 황허 상류 지역의 환경 파괴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필자가 "12세기 송나라가 중국 역사상 가장 부유했다"고 말하면 의문을 느끼는 독자가 많을 것입니다. 물론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이 부유해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송나라 시절만큼 부유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스티븐 브로드베리를 비롯한 학자들은 인구, 경제 규모, 농업 생산성, 산업 발달에 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이 어려운 문제에 도전했습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송나라와 명나라 초기에 1인당 소득이 가장 높았고, 청나라 때는 지속적으로 감소했습니다.
청나라 때 경제의 절대적 규모가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감자 등 신대륙 작물이 들어오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그 결과 1인당 소득이 줄었다는 뜻입니다. 즉 중국의 1인당 소득이 영국에 확실히 추월당한 시기는 명나라 중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연구는 흥미로운 시사점도 제공합니다. 첫째, 송나라 시기인 1100년대 전후에 농업 생산성이 크게 개선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점성 벼(참파벼)를 비롯한 다양한 신품종 도입과 왕안석의 신법 추진 과정에서 이루어진 대규모 개간 사업 덕분입니다. 양쯔강 하류의 습지가 옥토로 바뀌었던 것이 대표적입니다. 둘째, 청나라 때 경작 면적이 급격히 늘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청나라는 몽골, 신장 등 주변의 유목 지역을 정복하고 이 지역에 대규모 이주 정책을 펼쳤습니다. 신장 지역의 경작 면적이 확대되면서 인구 증가 속도도 매우 빨랐습니다.
한나라와 송나라의 흥망에서는 경제력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날 지구온난화가 세계에 미칠 영향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ppm에 도달해, 지난 230만 년 중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위기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런 영향으로 최근 금융시장에서 ESG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로, 환경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에 투자한다는 원칙입니다. ESG 투자 전략은 환경을 해치거나 사회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는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 소극적인 전략부터, 친환경·친사회적 기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강화하는 적극적인 전략까지 다양합니다. 물론 이 전략에 반대하는 투자자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2017년 말에는 ESG와 정반대 전략을 취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출시되어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 ETF는 술, 담배, 대마, 도박 관련 기업에 집중 투자하는데, 성과는 매우 부진했습니다.
반면 ESG 투자를 옹호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700조 원 넘는 자산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장은 "ESG 종목은 하방 압력에 대한 회복력이 높다"고 밝히며,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은 리스크와 수익률 측면에서 반드시 ESG 투자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1조 달러 넘게 운용하는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석유기금도 최근 석유·가스 탐사 및 개발 업체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기로 하는 등, ESG 기준에 맞지 않는 종목이나 업종을 대상에서 제외하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석유 탐사는 안 하면서 가스는 계속 생산하는 것이 말이 되냐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가 훨씬 강한데, 소에서 나오는 메탄가스가 가장 많은데도 규제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ESG 투자자의 성과는 어떨까요? 아직은 뚜렷한 성과를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글로벌 ESG 기업에 투자하는 지수는 2020년 초 급락장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한국의 ESG 기업 성과는 아직 뚜렷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ESG를 평가하는 기준도 평가 기관마다 다르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ESG 상장지수펀드 설정 규모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파리기후협약 같은 국제 협약에 따라 기업들이 일정 비율로 탄소를 감축해야 하는 흐름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ESG 투자가 점차 유리한 전략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하버드 경영대학원 연구에 따르면 ESG 원칙을 따르는 기업들은 자금 조달 능력이 좋고, 경영 성과도 상대적으로 뛰어납니다. 그래서 투자 성과가 점차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만합니다.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처음 퍼지기 시작했을 때, 세계 금융시장은 별로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감염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미국의 대표 주가지수인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미국을 대표하는 30개 종목으로 구성)는 상승세를 이어가 2월 12일에는 사상 최고치를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3월부터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도 코로나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났고,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하자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식시장이 일제히 하락했습니다. 3월 23일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18,591포인트나 떨어져, 불과 한 달 만에 57% 이상 폭락했습니다.
미국 경제 규모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중국에서 대규모 감염이 벌어졌을 때는 글로벌 증시가 크게 흔들리지 않았는데, 왜 미국에까지 전염병이 확산되자 시장이 돌아섰을까요? 이 의문을 풀려면 기축통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기축통화(key currency)는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할 때 결제에 사용되는 통화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자동차 부품 회사가 중국의 자동차 회사에 부품을 수출할 때, 일반적으로 대금을 달러로 받는데, 이때 달러가 결제 통화 역할을 합니다. 2019년 전 세계 외환거래에서 달러가 차지한 비중은 무려 88.3%였습니다. 미국의 GDP가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20%인 것을 감안하면, 달러의 영향력은 자국 경제 규모의 4배가 넘는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기축통화 국가인 미국의 움직임을 다른 모든 나라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합친 것보다 훨씬 중요하게 받아들입니다. 예를 들어 달러 가치가 어떤 이유로 갑자기 상승하면, 달러로 물건을 수입하는 상인이나 해외에서 달러를 빌려온 사람들, 즉 달러 수요가 있는 사람들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의 금융 상황이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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