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박세익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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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0년대 고금리 시절 저축으로 부를 쌓던 방식이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글로벌 M2 통화량이 2008년 이후 급증하며(2000년 약 26조달러→2023년 약 129조달러, 미국 M2 2025년 말 22.4조달러), 돈이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어 인플레이션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인플레이션은 저소득층에게 특히 불리하다(하위20% 필수지출 비중 55.9%). 수요·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을 설명하며, 현금 보유는 불리하고 애플·LVMH 같은 대체불가 우량자산이 가격 전가력으로 오른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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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기사 최검 박보금 씨가 우승 상금으로 5천만 원을 받자, 그 거금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두고 한바탕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참고로 1988년 당시 소형 아파트 한 채는 천만 원대였습니다. 결론은 은행에 넣어두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얘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은행 이자가 얼마나 된다고, 이런 식이었죠. 금리가 조금 떨어져서 15% 정도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따박따박 나오고 은행만큼 안전한 것이 없다는 말이 이어졌습니다.
이 장면은 1988년 대한민국의 금리 수준과 경제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지금 보면 15%가 떨어진 금리라는 것이 놀랍게 들리죠. 잠시 1980년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당시 우리 아버지들은 매달 황토색 월급봉투를 받아 은행부터 찾았습니다. 저축은 곧 미덕이었습니다. 은행 입구에도, 회사 사무실 벽에도, 동네 골목에도 같은 문구가 걸려 있었습니다. "티끌 모아 태산." 저축으로 풍요로운 미래를 만든다는 단순하고 강력한 구호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투자를 하겠다고 하면, 정신 나간 위험한 도박을 하겠다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성실하게 꾸준히 저축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데, 무슨 투자가 필요하냐는 것이었죠.
그 믿음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1970년대 말 은행 금리는 10%를 넘었고, 1980년대 초에는 15%를 넘었으며, 1990년대 초에는 20%에서 30%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은행에 돈만 맡겨 둬도 자산이 불어나는, 지금 기준으로는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1980년대 직장인들은 월급의 30%를 꼬박꼬박 적금에 넣었습니다. 10%가 넘는 이자 덕분에 목돈은 빠르게 불어났고, 10년, 20년이 지나면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부모님 세대는 그렇게 월급을 모아 집을 마련했고, 성실하게 일해서 자식들을 대학까지 졸업시켰습니다. 저축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요? 우리 부모님 세대처럼 성실하게 살고 있는 40대, 50대 가운데 상당수가 자녀 뒷바라지에 대출 상환까지 겹쳐 빠듯하게 살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생활에서 열심히 절약하고, 돈을 함부로 쓰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 세대의 공식이 더는 통하지 않습니다. 금리는 1990년대 후반부터 6~9%로 떨어졌고, 2000년대에도 계속 낮아졌으며, 2015년 무렵에는 1%대 적금도 흔해졌습니다. 지금은 3%만 되어도 고금리라고 합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아버지 세대처럼 성실하게 살고 있는데도, 아버지는 집도 사고 살림도 키웠지만 지금은 1%대 금리로 30년을 꼬박 저축해도 서울에 집 한 채 사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핵심은 통화량입니다. 통화량은 시중에 실제로 유통되는 돈의 양을 말합니다. 통화는 좁은 의미의 M1과 넓은 의미의 M2로 나뉩니다. M1은 현금과 당장 쓸 수 있는 수시입출금 예금 같은 가장 좁은 개념입니다. M2는 M1보다 넓은 개념으로, 정기예금, 정기적금, MMF, CMA처럼 언제든 꺼낼 수 있는 자산까지 포함합니다. 쉽게 말해 M1은 지갑 속 돈이고, M2는 통장 속에 있으면서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돈입니다.
2000년 당시 글로벌 M2는 약 26조 달러였고, 그중 선진국이 22조 달러 가까이를 차지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과도하지 않았고, 금리와 물가도 안정적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대폭 낮췄습니다. 여기에 양적완화라는 이름으로 중앙은행이 시중에 직접 돈을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준금리를 낮추면 돈이 풀립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면 시중은행의 예금과 대출 금리도 따라 내려갑니다. 사람들은 예금 대신 대출을 받기 쉬워지고, 기업도 투자 자금을 더 쉽게 빌릴 수 있습니다. 시중의 유동성이 크게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그 결과 2008년 이후 미국과 유럽의 M2 증가율은 연간 10% 수준까지 올라갔습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두 배 가까운 속도로 시장에 돈이 풀린 것입니다. 이때부터 통화량 증가와 자산 가격 상승, 그리고 저금리가 한 세트처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쳤습니다. 각국은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유례없는 규모의 자금을 풀었습니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자산 규모를 3조 달러 이상 확대했습니다. 연초 15.4조 달러였던 미국 M2는 연말에 18.9조 달러로 늘었습니다. 단 1년 만에 통화량이 23%나 불어난 것입니다. 이 흐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26조 달러였던 글로벌 M2는 2023년 약 129조 달러에 이르렀고, 20년 만에 다섯 배 가까이 불어났습니다. 2025년 말 기준 미국 M2는 22.4조 달러로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물론 금리를 낮춘다고 해서 돈이 반드시 시장에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대출을 원하지 않거나 은행이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돈은 돌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고 돈을 직접 푼다는 것은 시장에 돈을 더 공급하겠다는 신호로 해석해도 무방합니다. 2008년 이후 돈은 전과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불어난 돈은 경제 성장에 따라 자연스럽게 늘어난 돈이 아니었습니다. 정책으로 인위적으로 늘어난 돈이었습니다. 특히 금리를 낮추면서 동시에 돈을 풀어, 통화량은 10% 이상씩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그 돈은 결국 자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돈이 풀리면 반드시 무언가는 오릅니다. 그리고 돈의 가치는 떨어집니다. 우리는 눈에 띄지 않게 가난해집니다. 누가 내 돈을 훔쳐 간 것도 아니고, 잔고와 월급도 조금씩은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마트에 가면 장바구니는 점점 가벼워지고, 계산대에서 찍히는 금액은 점점 커집니다.
40년 전 짜장면 한 그릇은 600원이었습니다. 누구나 부담 없이 사 먹을 수 있는 서민 음식이었죠. 지금 짜장면 한 그릇은 평균 6,900원 정도입니다. 40년 전과 비교하면 10배 가까이 오른 셈입니다. 김밥, 순대국, 커피 한 잔까지 대부분 10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그러면 우리 월급도 40년 전보다 10배 올랐을까요? 대부분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월급은 조금 올랐고, 자산도 그대로인데, 대출만 더 늘었습니다. 물건값이 10배가 되었다는 것은 결국 돈의 가치가 10분의 1로 줄었다는 뜻입니다.
돈의 구매력이 줄어들면 가족 외식도 줄고, 여행도 줄고, 오래 쓴 자동차와 가전제품을 바꾸지 않고 계속 씁니다. 어쩌면 요즘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지 모릅니다.
인플레이션은 보이지 않는 세금과 같습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하게 작용합니다. 인플레이션이 나쁜 것은 중산층도 피해를 보지만,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저소득층이기 때문입니다. 자산이 없고 현금이나 소액 예금만 가진 저소득층에게 인플레이션은 그들이 가진 얼마 안 되는 돈을 조금씩 갉아먹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지출 구조입니다. 저소득층의 소득 대부분은 식료품, 주거비, 수도광열비, 보건비처럼 생존과 직결된 필수품에 쓰입니다. 이런 품목은 가격이 올라도 소비를 줄이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하루에 한 끼만 먹거나 겨울에 난방을 아예 끌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오릅니다. 그래서 저소득층이 물가 상승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2025년 1분기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이 현실이 드러납니다. 소득 하위 20% 가구는 생활 필수품 소비 지출 비중이 55.9%에 이릅니다. 월평균 소비지출 135만 8천 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생존에 필요한 품목에 쓰이고 있습니다. 최근 5년간 저소득층의 필수품 지출 부담은 약 40% 늘었습니다.
반면 소득 상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520만 4천 원으로, 하위 20%보다 약 3,800만 원이나 많습니다. 그런데 필수품 지출 비중은 약 37.5% 수준에 그쳤습니다. 나머지는 교통, 교육, 여가 같은 비필수 소비에 쓰입니다. 부자들은 자산 포트폴리오를 통해 투자 수익으로 물가 상승분을 상쇄하고, 근로소득 외에 자산소득이라는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유지합니다. 이것이 인플레이션에 맞서는 방법입니다. 인플레이션은 소리 없이 모두를 갉아먹지만, 가장 약한 사람들을 가장 먼저, 가장 세게 때립니다.
인플레이션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먼저 수요견인 인플레이션입니다.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때 발생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일 때 전 세계 정부는 앞다퉈 돈을 찍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명분이었습니다. 경제 최강국인 미국은 기축통화국의 힘을 이용해 기업과 국민에게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모든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했습니다. 기준금리는 바닥까지 떨어졌고, 돈이 생기니 소비가 늘었습니다. 소비가 많아지자 가격도 올랐습니다.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면 가격은 튀어 오르게 마련입니다.
다음은 비용인상 인플레이션입니다. 원자재 가격, 임금, 세금 같은 생산 비용이 오르면 기업은 제품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생산 단가 상승이 물가 전반을 밀어 올리는 것입니다. 2020년 팬데믹으로 전 세계 공장이 멈추고, 물류 시스템이 마비되면서 컨테이너와 운송 수단을 구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글로벌 공급망이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습니다. 2021년 회복 기미가 보이던 시점에 결정적인 사건이 더해졌습니다. 바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입니다. 이미 불안했던 글로벌 물가가 전쟁이라는 악재를 만나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습니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에너지 수출국입니다. 유럽 천연가스 공급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던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와 보복으로 공급을 줄이자 기름값과 전기요금이 단숨에 폭등했습니다. 식량 사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밀과 옥수수의 주요 수출국이었는데, 수출이 막히자 전 세계 곡물 공급이 흔들렸습니다. 에너지와 식량 가격의 폭등은 도미노처럼 번졌습니다. 기업은 손해를 피하려고 가격을 올렸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갔습니다. 공급 측면의 충격이 물가를 밀어 올린 전형적인 비용인상 인플레이션, 즉 코스트푸시 인플레이션입니다.
결론적으로 인플레이션은 돈의 구매력을 갉아먹는 현상입니다. 이럴 때 현금을 손에 꼭 쥐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현금 가치가 떨어지니, 사람들은 현금을 자산으로 바꾸려 합니다. 돈을 그냥 들고 있을 수는 없으니 무언가 사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현금은 주머니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합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뭔가를 사기 시작하면 자산 가격은 당연히 오릅니다.
코로나 시기를 떠올려 보겠습니다. 정부는 경기를 부양하려고 기준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었습니다. 그 돈은 어디로 흘러갔을까요? 이자가 1%도 안 되는 은행 예금 대신 주식을 샀습니다. 금이나 비트코인도 사들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아파트를 샀습니다. 이처럼 시중에 넘치는 돈은 자산 시장으로 거침없이 빨려 들어갔습니다. 이럴 때 가장 빠르고 강하게 오르는 자산이 있습니다. 바로 희소성이 있고 대체 불가능한 자산, 이른바 핵심 우량 자산입니다. 우리가 평생 모아 가야 할 자산이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10년 전부터 우리가 가장 쉽게 살 수 있는 자산이 주식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세계 1등 기업의 주식은 시간이 갈수록 가치를 더해 왔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애플입니다. 아이폰은 해마다 새로운 기종이 출시되고, 가격도 점점 올랐습니다. 처음 출시 당시 56만 원 정도였던 제품이 지금은 200만 원에 가까운 가격에 팔립니다. 그런데도 매년 아이폰 출시 때면 사람들은 매장 앞에 길게 줄을 서고, 예약 사이트는 마비됩니다. 애플 제품을 쓰는 사람들은 애플 생태계를 쉽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가장 잘 아는 것도 애플입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가격을 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늘어난 이익은 결국 주주에게 돌아옵니다.
명품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LVMH가 생산하는 명품은 가격이 오를수록 더 잘 팔립니다. 루이비통, 에르메스 같은 최고급 브랜드의 가방 하나가 1천만 원을 넘기도 합니다. 그런데 LVMH는 우리나라 상장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주식을 살 수도 없죠. 명품 브랜드는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가치와 상징성을 파는 비즈니스입니다. 가격이 오를수록 브랜드 위상이 높아지고, 수요는 더 뜨거워집니다. 2023년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로 힘들어할 때도 LVMH는 매출과 이익 모두에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원가가 올라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업의 주가는 당연히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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