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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미국 주요 기업에서 CEO는 못 되겠구나라고 느낀 무적 상태가 된 모리스 창에게 1985년경 뜻밖에 연락이 옵니다. 미국이 아니라 대만이었어요. 대만의 국책 연구소를 미국의 벨구수처럼 키워 주십시오라는 내용이었죠. 사실 처음에는 국적도 미국이고 그러니까 대만을 위해서 뭘 해 보겠다. 뭐 그런 거창은 생각을 가지고 간게 아니었대요. 주변에서도 말렸고 심지어 제한이 왔을 때 당시 별거 중이던 전은 미쳤냐고 했대. 그럼 왜 간 걸까요? 옛날 생각이 나서 그것도 아니죠. 대만에 간 것도 성인이 되고 나서 회사에서 대만에다가 반도체 조립 공장을 세우려고 출장을 보냈던 60년대 후반이 처음이었으니까.
근데 모리스창 과거의 꿈이 뭐였다고 했죠? 중산층이 되는 거예요. 그렇죠. 이미 그건 실현이 됐을 거 아니에요. 미국 회사에서 임원을 오래하면서 죽을 때까지 쓸 돈은 다 번 것 같고 이제 나이가 50대 중반인데 어차피 미국에선 CEO 같이 조직 내의 넘버원은 못 될 거 같은데 그래도 대만에서는 연구 기관장이 되는 거니까 또 뒤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아시아 출장을 다니면서 보고 느낀게 있었대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한테 부탁을 했던 그 인물이 60년대 후반에 대만 출장을 갔을 때부터 만난 인연이 있는 인물이었는데 대만에서는 위인 반열에 드는 인물이었거든요.
그동안 대만 경제 정책을 이끌면서 나라가 발전을 하니까 경제 기적의 아버지 대만 과학 기술의 대부라고 불리고 했던 인물. 그래서 가자라고 결정을 한 거죠. 하지만 모리스창 본인도 사실은요. 1편에서랑 풍기는 느낌이 좀 비슷한데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대요. 실제로 뉴욕 타임즈 인터뷰에서 그렇게 얘기를 했죠. 대만에 이렇게까지 오래 있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아마 몇 년 안에 미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을 했고 대만에다가 회사를 만들 계획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대만의 연구 기관장으로 부임을 했는데 불과 3주쯤 지나서 다시 같은 아저씨로부터 연락이 옵니다.
그래서 만났더니 하는 얘기가 우리가 반도체 산업을 일으키고 싶은데 아이디어를 주십시오. 근데 듣다 보니까 일으켜 반도체 산업을 그래 뭐 아이디어 정도인데 뭐 싶었을 텐데. 그리고 나서 이어지는 말이 그리고 그걸 당신이 좀 맡아 주세요. 직접 얼마가 필요하든 총통한테 직접 말씀해 주세요. 하면서 17수초를 딱 내미는 거지. 당시를 두고 오리시창은 훗날 그렇게 외상을 해요. 영화 대부에 나오는 거절할 수 없는 제한과 같은 상황이었다. 이게 무슨 뜻이냐? 이걸 거절하면 끝이라는 거지. 적어도 대만에서는 야망이 없는 놈으로 찍혀서 더는 기회가 없을 거다.
이미 대만에 왔고 저 제한이 겉으로 보기에는 제한 같지만 저걸 안 들어주면 잘릴게 뻔하고 그러면 나는 금방 미국에 돌아가야 되는 건데 미국 돌아가면 다들 그러겠지. 모리스창 다들 말리는데 막장 같은데 흘러가더니 저 꼴 좋다. 어떡해? 집에 안 갈 거면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막 뭘 해야 될까 고민을 하기 시작합니다. 자, 그러면 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그때까지 어떤 상황이었느냐 아주 간략하게 살펴보면 대략 이런 거였어요. 이미 60년대 후반에 모리스창이 미국 회사에서 대만에다가 반도체 조립 공장을 지으려고 출장을 했다고 했었잖아요. 당시가 왜 미국 반도체 회사들이 아시아에다가 단순 조립 가공 공장을 세우고 있는 상태였거든요.
자기들이 만들기에는 단가가 안 나오는데 여전히 팔 수가 있는 싼 것들 위주. 그래서 한국에서도요. 오토롤라가 한국에다가 트랜지스터 공장을 세우려고 막 서류를 내고 막 그랬었거든요. 그래서 당시 어떤 기록을 보면 대통령한테 한국 전자산업 발전에 뭐 초안 같은 걸 세웠다는 인물이 그게 찾아와서 계획을 내는데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이 그랬대. 그 모토롤라는 회사가 와 가지고 트랜지스터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막 옷 만들어 가지고 기차 가득 실어도 몇십만 불인데 저거는 서류 가방 하나 만들어도 몇 만 달러씩 한다면서 이거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막 그렇게 물어보고 막 그랬대. 그리고 한국도 그랬듯이 대만도 60년대가 지나고 70년대 들어서 경제가 고도 성장하고 정부가 산업 구조를 뭐 가발 만들고 신발 만들고 옷 만들고 하는 경공업에서 무거운 애들 그러니까 중화학 공업으로 바꾸려고 하는데 그러던 시기였던 1971년에 특히 무슨 일이 있었느냐?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국 본토의 공산당 정권과의 관계 정상어를 선언난 거죠. 실제 수교는 78년 말에 가서야 이루어졌지만 그러니까 대만 입장에서 난리가 난 거죠. 야 이거 미국이라 더 강하게 연결이 되지 않으면 독립은 물론이고 안정을 지키기가 어렵겠다.
그 전부터 그런 의식이 팽배해 있었는데 이런게 더 강해지는 거죠. 게다가 돈까지 중국 본토로 더가 버리면 우리는 더 힘들어지겠구나. 실제로 닉슨 대통령의 발표 직후에 대만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크게 줄었으니까요. 게다가 1976년 마오쩌의 사망 이후에는 중국이 경제 개발적으로 더 갈 거다. 이런 전망이 나오면서 저싼 중국의 노동력이 단순 조립 가공업에 뛰어들면 대만은 경쟁력이 없어지겠다 싶으니까 대만 입장에서는 진짜 급해지는 거죠. 아 안보를 위해서는 뭘 해야 될까? 심지어 환율도 나빠지고 수출 경쟁력도 떨어지는데 산업 구조는 어떻게 바꿔야 될까?
그런 와중에 대마는 정부가 주도로 전자 산업 그중에서도 반도체 산업에 집중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70년대 중반부터 미국 회사로부터 구식 반도체 기술을 사와서 업체를 세우고 반도체 기술 개발을 진행했어요. 단순 조립 수준을 벗어나고 싶어. 근데 이게 10년이 지나서 80년대 중반이 됐는데도 진전이 없는 거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진전은 있는데 기술 격차가 좁혀지질 않으니까 돈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저것 해보던 대만 정부가 안 되니까 모리스창한테 SOS를 친 거겠죠. 이런 과정들을 쭉 거치면서 아, 우리끼리 한다고 되는게 아니구나 싶었을 테니까.
그리고 모리시창을 연구 기관장으로 데려오고 또 3주 만에 금방 반도체 산업을 일으킬 방안을 달라면서 그걸 또 직접 맡아 달라고까지 했던 건 그만큼 대만 정부가 급했구나. 또 모리스창한테 연구 기관장이 아니라 아예 반도체 산업을 직접 일으키라고 시키고 싶어 했던 거구나 싶은 부분이기도 해요. 아무튼 그래서 모리스창이 곰곰히 살펴보던 세계 반도체 산업의 지형은 어땠느냐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그런 상황이었고요. 시스템 반도체는 인텔를 비롯한 미국이 꽉 잡고 있고 그런데 제일 똑똑한 인재들이 반도체 분야를 깊이하는 분위기가 슬금슬금 생겨나고 있고 그나마 추격이 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일본 업체들이 꽉 잡고 있었는데 이때가 왜 80년대 중반이라고 했잖아요.
근데 85년에 뭐가 있었죠? 플라자 합의 일본 화폐 가치가 쭉 수출 경쟁력이 뚝 반도체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미국이 어 일본 저것들 더는 더 못 봐주겠다 하면서 차를 뽑아들기 시작할 때였거든요. 그래서 한국과 대만 업체에게는 투격의 기회가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죠. 그런데 후발주자 한국은 어땠느냐? 한국의 선두 삼성이 1984년에 64k바 디램을 만들면서 열심히 막 하고 있었는데 당시에 반도체 수요가 팍 줄면서 생산 원가보다 판매 가격이 더 떨어지는 거예요. 그럼 어떻겠어요? 막 개발 비용에 라인 깔고 돈은 막 천문학적으로 엄청나게 들어가는데 팔면 팔수록 이게 손해가 더 커지는 거죠.
그런데 신기한 건 당시의 삼성이이 치킨 게임에서 포기하지 않고 돈을 막 공격적으로 더 태우면서 투자를 했다는 거죠. 그래서 물론 맨날 더 큰 이익을 얻기도 했지만 아무튼 종합적으로 이런 상황이니까 당시에 모리스창이 보기에는 어땠겠어요? 저런 식으로는 못 하겠다 싶었겠죠. 그래서 결과적으로 반도체 산업을 일으킬 아이디어를 달라는 대만 고익한테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고 하죠. 대화식으로 재구성하자면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대요. 반도체는 속도가 그 어느 곳보다 중요한 산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미국에서 사온 구식 기술을 기반으로 설계 개발 자체에 집착하다가는 선두 업체들을 절대 못 따라갑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 반도체 업체의 흐름은 개발과 생산이 분리된 추세 같습니다. 예전에는 세계적으로 큰 공룡 같은 회사들이 설계부터 생산까지를 직접했지만 반도체 설계가 점점 고도화되고 성능이 발달하면서 생산 라인에 투자되는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계속 큰 돈이 엄청나게 들어가니까 이건 아주 큰 업체들로서도 매번 감당하면서 빠르게 따라가기가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작은 업체들은 그거 당연히 못 합니다. 그러면 작은 업체들, 특히 신생 업체들이 설계한 반도체는 어떻게 누가 만드느냐? 큰 업체들이 여태까지는 자기네 반도체들 다 만들고 나서 라인에 여유가 있을 때 후순위로 생산해 주는 거기에 기댈 수밖에 없었는데 IT 기기가 많아지고 정보 통신 사회가 발전할수록 그런 물량들이 앞으로는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처럼 생산하는 방식으로는 택도 없다는 얘기죠.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보니까 대만은 설계, 디자인, 마케팅 다 못합니다. 기분이 나빴겠지. 되는 사람 입장에서. 근데 제가 과거에 텍사스 인스트먼트 다닐 때 보니까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공장에서는 미국 공장보다 수율이 훨씬 많게는 거의 두 배 이상 잘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뭔 일인가?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사람들의 차이였습니다. 대만은 미국보다 일본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대만은 생산에 집중을 해야 됩니다. 생산은 아시아입니다. 대만이 반도체 산업을 일으키려면 반도체 생산에만 집중하는 파운드리업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대만 정부 측에서 어떻게 나왔느냐? 야 그게 되냐? 이렇게 나온게 아니라 어떻게 하지? 그거 진행시켜 이렇게 나옵니다. 진행시켜 미리 일사 천리로 진행이 되죠. 그렇게 해서 모리스창은 과거 자신이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시절 회사에 제안을 했지만 거절당했다는 파운드리 사업 모델을 대만에서 시작하기죠. 1987년 대만 정부와 대만 정부가 투자를 제한했다는 제한 어 이게 제한이라는 말이 좀 그럴 수 있는게 정부가 투자를 하시겠습니까? 이렇게 물어보는게 그냥 단순한 제한으로 느껴지진 않았겠죠. 안 하면 안 되는 상황일 수 있지. 아무튼 그렇게 대만 정보로 투자를 받은 대만측 자본들, 그리고 또 필립스 같은 외국 자본 등이 투자하면서 TSMC가 설립되죠.
대만 반도체 생산 기업. 그래서 지금도 TSMC는 대만 정부 쪽 지분이 많잖아요. 그리고 모리스 창에 이끄는 TSMC는 처음부터 글로벌 젠출를 목표로 하고요. 고객들에게 공개적으로 약속을 합니다. 우리는 절대 칩을 설계하지 않고 만들기만 하겠다. 우리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 인텔 같은데 지금 삼성 같은 데는 설계하고 만드는 걸 동시에 다 했으니까 옛날 큰 공룡들이 다 그랬으니까. 근데 그냥 우리는 생산만 해 주겠다는 거지. 하지만 이렇게 야심차게 출발했는데 처음부터 당연히 막 물량이 쏟아져 들어오진 않았어요. 일단 여러 회사의 물량을 달라고 막 제안을 했는데 인맥들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모이스창이 미국에서 막 했었으니까 인텔, 텍사스 인스트로먼트, 도시바, 키타치, 소니 등등 제한을 했는데 그중에서 처음에는 딱 세 곳에서만 물량을 줬고요. 당연히 뭐 첨단 칩은 아니었고 구식 칩인데 여전히 팔리는 것들 자기네가 생산하기 좀 그런 것들 그래 받아가라 했던 거지. 그렇지만 그것들을 받아온 TSMC는 경험을 쌓고 그러다가 레퍼런스가 쌓이면서 모리창의 예상대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또는 생긴지 얼마 안 된 신생 기업들이 물량을 주기 시작합니다.이 작은 기업들 신생 기업들이 자기네들이 설계한 반도체를 생산해 달라고 TSMC를 찾기 시작한 거죠.
이때도 모리스창과 모리시창이 데려온 미국에서 네트워크를 쌓고 경험을 쌓은 인력들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던 거죠. 다 자기가 아는 사람들이니까 이게 끌어온 거지. 사람 몇 명이 굉장히 많은 걸 바꿀 수 있는 건데 하물며 선진국에서 직접 그 기업에 다니던 사람들, 업깨 사람들을 알던 사람들이 와서 영업을 하고 사람들한테 연락을 하고 한다. 엄청난 힘이 되는 거죠. 사람 한두 명이 굉장히 중요한 거죠. 다시 돌아와서 그렇게 찾아온 신생 기업들을 TSMC가 어떻게 대하느냐? TSMC는 이들을 알을 품듯이 소중하게 대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이렇게 품었던 알들 알에서 깨어나서 어떤 존재가 되느냐?
그 기업들이 바로 마벨, 헐컴, 브로드컴, 그리고 엔비디아 같은 것들이었어요. 막 이렇게 막 그냥 새가 나오고 막 이럴 줄 알았는데 아래에서 드래곤이 나오는 자, 이게 TSMC 그리고 신생 기업들한테 서로한테 왜 중요했냐면요. 자, 신생 기업들 입장에선 그랬겠죠. 반도체란게 설계 파일만 넘긴다고 그냥 뚝딱뚝딱 만들 수 있는게 아니니까. 생산 업체랑 긴밀하게 협력을 해야 하는데 기존에 칩계랑 생산을 함께 했던 대기업들한테 생산을 맡길 때는 어때요? 쟤네한테도 공유했는데 약간 우리 아이디어를 가져가는 거 아니야? 이런 걱정이 당연히 될 거 아니야.
생산 우선 순위에서도 밀리고. 근데 TSMC는 다르잖아요. 자기네 칩도 안 설계해서 자기네 거 안 만들잖아. 그리고 외부 고객들이 필요하니까 신생 기업이라고 해도 고객님들 대우해 주고. 그래서 대표적으로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는 엔비디아의 사례를 뽑는게 제일 좋겠죠. TSMC 없이는 자기네들의 성공도 없었을 거라는 젠슨의 엔비디아는 홈페이지에다가 아예 이렇게 써 놨어요. 1995년경에 그러니까 엔비디아가 창립한지 한 2년쯤 됐을 때 엔비디아의 첫 번째 칩을 TSMC가 만들어 줄 수 있냐 이런 내용으로 보냈는데 연락이 왔나 봐요. 근데 이걸 누가 연락을 했을까?
예순 네살의 CEO 모리스창이 32살의 젠슨한테 직접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는 모리스창이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젠슨왕이 전화 딱 받고 주변에 그때 야 모리스창이 전화했어. 그리고 젠슨왕은 당시의 모리스 창이 세 가지를 강조했다고 해요. 일단 첫 번째 TSMC는 절대 고객과 경쟁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생산만 합니다. 둘째 TSMC는 장기적인 협력 파트너를 찾는 겁니다. 신생 기업인 당신들의 성장을 도우면서 당신들이 잘되는 걸 보면서 우리도 함께 잘되고 싶습니다. 근데 이렇게까지 잘될 줄까지 알았을까?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TSMC는 당신들을 위해서 어떠한 어려움으로 뛰어넘을 겁니다.
여기서 불의 고리라는 표현을 쓰거든요. 불의 고리도 뛰어넘을 거예요. 근데 그 불의 고리라는게 약간 그 서커스에서 나온 그 불의 고리를 말하는 건가 싶기도 하더라고. 확 뛰어넘는 거잖아. 아무튼 그렇게 엔비디아와 협력을 시작한 TSMC는요. 2011년에 엔비디아의 10억 번째 칩을 생산했고요. 지금도 여전히 함께 가고 있죠. 그리고 TSMC는 번돈을 계속 연구 개발과 첨단해 되는 장기에 쭉 투자하니까 많이 벌리면 더 많이 투자하고 이거 없으면 안 된다 하는 첨단 장비도 TSMC가 제일 많이 보유하고 있잖아요. 그 전에 말씀드린 ASML 장비 같은 거 1년에 뭐 몇십 대밖에 못 만드는데 그거 제일 많이 사가는 것도 지금도 TSMC예요.
여전히 수요일도 여기가 제일 잘 나와. 안 될 수 있는 데가 여기밖에 없어. 맡길 수밖에 없는 거지. 근데 또 막 하면 장비 계속 그리고 과거의 신생 기업들 설계하는 기업들 입장 말고 TSMC 입장에서도이 관계가 되게 중요했던 게요. 반도체 삼국지라는 책에는 이런 표현이 나오더라고요. 다양한 성능 조건에 맞춰서 공정의 배치와 수유를 동시에 만족시키려면 파운드리 업체에서는 사실상 고객사들의 설계 과정부터 관여할 필요가 있다. 공정에서 동원 가능한 소재와 장비. 그리고 그 안에서 설계 업체가 최적화하려는 성능에 맞춘 조합의 선택, 목표 생산을 맞추기 위한 자원 배분과 후공정 비용 계산 등 거의 전 주기적인 공정 계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얘기냐? 반도체 설계하는 분들한테 물어보니까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아주 단순한 상품을 설계해서 맡길 때도 설계도대로 공장해서 안 나오는데 기계가 스펙이 뭐냐에 따라서 다르게 나오는데 생각이라이 반도체 이렇게 복잡한게 오죽하겠냐 이거야. 설계 시작 단계부터 해서 TSMC랑 옛날부터 긴밀하게 같이 일을 해 왔으면 여러 공정 앞뒤가 맞물리는 TSMC 방식이 표준같이 돼 버려서 떨어지는게 쉽지 않다는 거죠. 처음엔 신생 고객이어서 R을 품어서 얘를 키웠는데 고객을 얘네가 크고 나니까이 고객을 잃어버리는 거 자체가 쉽지가 않은 거지.
고객 입장에서도 다른 데를 찾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스스로 설계해서 생산하는 방식으로만은 할 수 없는 데까지 갈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왜 파운드리에 집중하겠다고 하고 나서 삼성전자도 신생업체들 중에 좀 싹수가 보이는 곳들한테는 코로나 때도 라인이 막 부족하다고 막 했었잖아요. 그때도 물량을 열어주고 그랬던 거겠죠. 그렇게 가야 얘들이 더 커지고 자기네들이 물량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 처음부터 딱 잡아야겠다 하는 거죠. 그리고 이렇게 한번 궤도에 오르고 나선 TSMC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엄청나게 공격적으로 인재 확보와 연구 개발 장비 투자에도 힘을 쏟았죠.
반도체 산업에서는 속도가 남들보다 앞서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왜 2000년대 중반 이후에 모바일 시대가 열릴 때가 대표적인데요. 2005년에 모리스창이 CEO 자리에서 물러나고 수임자를 안쳤는데 그때 모리스창이 이미 70대 후반이었으니까 자기는 임무를 다 했다고 생각했을 거고 근데 후임자가 그때 글로벌 금융위가 오고 그 이후에 투자에 막 조춤하는 거예요. 장비 한 대에 막 수천억씩 하고 인건비도 많이 드니까. 그러니까 이걸 지켜보던 모리스 창이 노구를 이끌고이 후임자를 몰리고 자기가 다시 복귀해서 연구 개발 비용 다시 두 배로 늘려라.
인력 복귀시켜라. 장비 투자 공격적으로 압도적으로 늘려라. 잉여 생산물 나와도 괜찮다. 압도적인 캐파로 TSMC가 간다. 마치 예전에 삼성전자가 막 돈이 막 불에 탄다고 하는데도 막 계속 막 추격하듯이. 그리고이 투자가 어떤 성과를 거뒀느냐? 아이폰이 등장하고 모바일 시대가 열리고 삼성이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하면서 원래 애플이 삼성한테 생산에 맡겼었는데 왜냐면 삼성이 경쟁니까 맡기가 좀 그렇잖아요. 가격을 확 낮추면서까지 애플을 고객으로 만들려고 애를 썼죠. 복귀한 모리시창이 막 공격적으로 투자 집행하고 나서이 애플 계약을 직접 따내려고 샌프란시스코까지 직접 날아갔대.
여이 넘은 나이. 자, 왜 그랬을까? 스마트폰이 급속히 확산되는 기회는 다시 안 올 텐데. 애플이 원하는 수준의 칩을 만들 수 있는 업체가 전 세계에 몇 개나 되겠어요? 삼성이 있을 텐데 고객사가 삼성을 경쟁자로 여기니까 삼성은 빠지고 그럼 미국 업체가 남을 텐데 걔들은 애플이 주는 돈이 막 약간 뿌려친다고 해도 되나? 하여튼 돈이 싸니까 주조한다는 막 소문이 들리고. 근데 왜 1편에서 그랬잖아요? 엄청 많이 팔릴 거라고 본다면 손해 보는 거 같아도 일단 생산에 배팅해야 된다. 이게 모리시창의 철학이었다. 생산량이 확 늘어나면 결국 이익으로 전환이 될 거고 그 이익은 점점 막대하게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애플과 손을 잡은 TSMC는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까지. 그렇게 TSMC와 애플은 서로 없으면 안 되는 관계가 돼 버렸죠. 자, 그래도 아시다시피 TSMC에게도 위기는 상존하고 있어요. 일단 미중 갈등 때문에 화웨이 등의 큰 중국 고객사들이 떨어지면서 입은 타격. 근데 이건 뭐 중국 말고 미국 등지 다른 곳의 회사들로 벌충이 될 테지만 뭐 이런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대만을 위협하는 중국 때문에 대만의 주요 시설이 몰려 있는 TSMC는 늘 긴장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니까 미국, 일본으로 뭐 생산 기지를 확대하는 것도 같은 이유겠고요.
같은 선상에서 고민도 계속 이어지겠죠. 대만을 벗어나서도 수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비용도 그렇고 TSMC와 함께 일하는 대만에 기반한 복잡한 반도체 생산 체인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문제가 될 거예요. 그리고 아직은 TSMC를 위협할 경쟁자가 없다지만 이렇게 복잡한 직경학적 문제가 얽히는 과정에서 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는 알 수 없는 미래이기도 하겠고요. 자, 두 편에 걸쳐서 간략하게 살펴봤는데요. TSMC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또 반도체 산업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까요? 미국에서 아시아로 넘어온 반도체 산업의 중심축이 계속 아시아에 머물 수 있을까요? 이건 우리한테도 아주 중요한 일일 테니까요. 함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시면 좋겠습니다.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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