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미상 · 한국인
요약 보기
SK하이닉스는 HBM 선도로 AI 수혜를 입은 대표 기업이다. 2분기 영업이익 9조 2천억원(사상 최대), 상반기 16조원 이상으로 전년 대비 8조원 증가. 2024년 6월 시가총액 200조원 돌파. HBM 개발 역사(2013년 세계 최초 개발, 2015년 양산, 2021년 HBM3 개발)와 2011년 하이닉스 인수 과정을 설명. 향후 삼성전자·마이크론의 추격과 미중 갈등이 리스크로 언급되며, 시장 성장으로 2030년까지 연평균 30% 성장 가능하다는 회사 설명을 전달.
다듬은 글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를 보면 이름 없는 흑수저 요리사가 글로벌 네임드 셰프와 실력으로 승부해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이 나옵니다. 나도 모르게 흑수저 요리사를 응원하게 되는데, 바로 그런 흑수저 같은 회사가 있습니다. 문을 닫기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경쟁을 거쳐 세계 최고가 된 회사, AI 시대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고대역폭 메모리 HBM의 SK하이닉스입니다. 오늘은 SK하이닉스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SK하이닉스는 요즘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AI 기업으로 꼽힙니다. 이를 설명하려면 HBM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AI 시대의 황제로 불리는 엔비디아는 H100, H200 같은 GPU 모듈 제품을 내놓는데, SK하이닉스는 그 GPU에 들어가는 메모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ChatGPT나 구글 제미나이 같은 생성형 AI가 엄청난 답변을 빠르게 내놓으려면 방대한 연산과 빠른 처리 속도가 필요합니다. 그 연산을 맡는 장치가 바로 엔비디아의 GPU입니다. 미로 찾기에 비유하면, CPU는 길을 하나씩 따라가며 출구를 찾는 방식이고, GPU는 모든 길을 동시에 계산해 순식간에 출구를 찾아냅니다. GPU는 원래 그래픽 처리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게임에서 그림자, 빛, 물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표현하려면 여러 연산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데, 이 기술이 AI 학습과 추론에 그대로 쓰이게 된 것입니다.
GPU 성능은 연산 속도만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데이터를 얼마나 빨리 처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팔방미인이어도 속도가 느리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GPU 모듈에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가 중요해지고, 그 핵심이 SK하이닉스의 HBM입니다.
비유하자면 GPU는 데이터 택배를 어디로 보낼지 계산하는 물류센터이고, 기존 D램은 차선이 수십 개인 도로, HBM은 차선이 수천 개인 도로와 같습니다. 한꺼번에 더 많은 데이터를 실어 나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현재 HBM은 차선이 1024개인데, 차세대 HBM4는 2048개로 두 배가 됩니다. 손톱만 한 크기에 수천 개의 차선을 만들어야 하므로 매우 정밀한 공정과 기술력이 필요합니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HBM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 2015년 세계 최초로 양산에 들어갔습니다. 초기에는 가격이 비싸고 발열이 심해서 자주 타지 못하는 스포츠카 같은 존재였습니다. 공정이 너무 미세해 수율을 잡기 어려워 경쟁사들은 기존 D램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SK하이닉스는 투자를 멈추지 않았고, 2021년 4세대 HBM3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발열과 처리 속도 면에서 타사가 따라오기 어려운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이 제품을 본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의 마음이 완전히 사로잡혔고, 두 회사는 HBM 납품 계약을 맺었습니다. 썸을 타다가 사귀기로 한 셈입니다.
현재 주력은 HBM3와 확장 버전인 HBM3E입니다. HBM3는 풀HD급 영화 230편 분량의 데이터를 단 1초 만에 처리합니다. 엔비디아는 AI 데이터센터용 GPU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고, 각국이 AI 산업 육성을 위해 GPU 확보 경쟁에 나서면서 SK하이닉스의 실적도 크게 늘었습니다.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9조 2천억 원을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상반기 영업이익은 16조 원을 넘어 전년 동기보다 8조 원이 늘었습니다. 이 증가액은 국내 500대 기업 전체 이익 증가액을 합친 것보다 큽니다. 최태원 회장이 3년 안에 시가총액 200조 원을 목표로 한다고 했는데, SK하이닉스는 1년 반 만인 지난 6월 이미 200조 원을 넘겼습니다.
지금은 반도체 시장의 1인자가 된 SK하이닉스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만년 2위에 적자에 시달리는 미운 오리 새끼였습니다. 출생의 비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SK하이닉스의 뿌리는 1983년 현대전자산업이 설립한 반도체 사업입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정부가 주도한 빅딜로 현대전자가 LG반도체를 인수하며 두 회사가 합쳐졌습니다. 그러나 2001년 IT 버블이 꺼지면서 반도체 가격이 바닥 모르고 추락했습니다. 주력 제품인 64메가 D램 가격은 9달러에서 2달러까지 폭락했고, 원가가 3달러를 넘던 현대전자는 유동성 위기에 빠졌습니다. 결국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와 채권단 손에 넘어갔고, 하이닉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발했습니다.
이후 약 10년은 이른바 반도체 치킨게임의 시대였습니다. 이익보다 생존이 목표였고, 독일의 키몬다와 일본의 엘피다는 이 전쟁에서 밀려 문을 닫았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7분기 연속 적자를 냈고, 2010년 겨우 흑자를 냈지만 2011년 다시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이때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이 과감한 베팅을 합니다. 2011년 7월 하이닉스반도체 인수를 공식 발표한 것입니다. 당시 SK는 정유와 통신이 주력인 내수 기업으로 통했고, 수출 중심의 하이닉스를 인수하는 것은 큰 모험이었습니다. 승자의 저주를 우려해 임원들은 말렸지만, 최 회장은 "공포에 사고 뉴스에 팔라"는 격언처럼 과감하게 인수를 감행했고, 인수 금액만 3조 4천억 원이었습니다.
사실 SK에는 반도체에 얽힌 오랜 역사가 있습니다. 1970년대 최종현 선대회장은 반도체가 미래라고 보고 선경반도체를 설립했지만, 2차 오일쇼크로 사업이 무산된 적이 있었습니다. 최태원 회장은 2010년부터 반도체 전문가들과 공부 모임을 열어 1년간 준비한 끝에 인수를 결정했습니다.
인수 초기에는 반도체 시장도 나빴고, LG·현대·SK라는 큰 회사들이 합쳐져 내부 통합도 쉽지 않았습니다. 최 회장은 임원들을 한 명씩 일대일로 만났습니다. 임원들은 총수와 독대한다는 긴장감에 자료를 준비하고 숫자를 외워 갔는데, 최 회장은 들어오자마자 "하이닉스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잘해야 할까요?" 하나만 물었다고 합니다. 준비한 내용이 무색해졌지만, 오히려 자유롭게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었고, 한두 시간씩 대화가 이어졌다고 합니다. SK가 선대 회장 때부터 이어 온 수평적 소통 문화입니다.
2012년 인수 첫해 SK하이닉스는 3,600억 원의 적자를 냈고, 언론은 최 회장의 실수가 아니냐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최 회장은 오히려 투자를 늘렸습니다. 3조 8,500억 원을 설비에 투자한 것입니다. 그 결과 2013년 PC용 D램 가격이 오르면서 흑자로 돌아섰고, 1년 만에 3조 3,8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습니다. 같은 해 HBM도 세계 최초로 개발했지만, 초기 가격이 비싸 흥행은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최 회장은 투자와 연구를 멈추지 않았고, HBM2에서 경쟁사에 밀렸다가 역전했으며, HBM3, HBM3E, HBM4로 독주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2018년에는 반도체 슈퍼 호황으로 영업이익이 20조 원을 넘었는데, 이는 SK텔레콤 영업이익의 17배에 달했습니다. 망할 뻔한 기업을 사서 세계 2위로 키우고, 1위까지 만든 것입니다. 2020년에는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을 10조 원에 인수했습니다. 이 결정도 신의 한 수였습니다. AI 성장으로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증하면서 기업용 SSD 시장이 크게 커졌기 때문입니다.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낸드플래시 시장은 지난해 89조 원에서 2029년 200조 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되며, SK하이닉스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물론 인수 실력만으로 된 것은 아닙니다. SK하이닉스와 함께해 온 곽노정 사장은 최태원 회장이 2016년에 이미 "근본적인 변화가 없으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공개했습니다. 흑자를 내던 시기에도 이런 위기감을 강조하며 경쟁사들이 단기 성과에 매달릴 때 미래 성장에 대비하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이런 오너의 선구안에 따른 투자와 연구진의 치열한 기술 개발이 HBM이라는 혁신을 만들어 냈습니다. SK의 기업 문화와 하이닉스의 근성이 맞물리며 독보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앞으로 AI가 세상의 변화를 주도할 것으로 보이는데, SK하이닉스의 미래는 어떨까요? AI 수요가 늘면서 HBM 시장에 뛰어드는 기업도 많아졌습니다. 당장 삼성전자와 미국 마이크론이 맹렬하게 추격하고 있습니다. 다만 시장 자체가 계속 커지고 있어서 SK하이닉스는 2030년까지 연평균 30% 성장이 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반도체 패키징 등 첨단 기술의 개발 경쟁도 심화되고 있고,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의 빠른 개발 요구도 늘 넘어서야 할 과제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도 위험 요인이지만, AI를 새 성장 동력으로 삼은 중국 역시 HBM 수요가 강해서 갈등이 해소되면 큰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HBM이 필요한 고객사를 지속적으로 늘리는 한편, GPU 의존도가 낮은 경량 AI의 등장으로 생길 수 있는 시장 변화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전 세계를 주도하는 우리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 산업에서 치열한 경쟁과 기술 개발을 거쳐 왕좌를 차지한 SK하이닉스. 앞으로 어떤 혁신적인 제품과 기술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낼지 기대해 보겠습니다. 소비더머니였습니다.







Comments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