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사민기자—미상소속해설형식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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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컴이 구글·메타·오픈AI·애플 등 빅테크의 맞춤형 AI칩(XPU) 설계를 맡으며 엔비디아 독점에 균열을 내고 있다는 내용. 추론 비중 확대로 맞춤형 칩 수요가 GPU보다 빠르게 늘고, 칩을 묶는 네트워킹(SerDes) 기술이 핵심 경쟁력이라고 설명.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브로드컴에도 메모리를 공급하는 구조로 양쪽 모두와 거래한다는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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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통령이 AI 정상들과 만난 자리였습니다. 대통령을 가운데에 두고 한쪽에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반대편에는 조금 낯선 인물이 서 있었는데요. 브로드컴의 혹 탄 CEO입니다. 오늘은 이 브로드컴이라는 회사가 어떻게 엔비디아 왕국에 균열을 내고 있는지, 그리고 그 균열이 왜 한국에 중요한지 살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사민 기자입니다.
2026년 7월 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AI 서밋이 열렸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 글로벌 빅테크 CEO들과 찍은 사진 한 장이 지금 AI 반도체 판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드는 질문이 있죠.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자주 봐서 알겠는데, 브로드컴의 CEO는 왜 대통령 옆자리에 있었을까요?
브로드컴이 지금 위치에 오른 건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시가총액 1조 달러를 처음 넘긴 것은 2024년 12월입니다. 그런데 8월 초 기준 시총이 2조 달러에 이르면서 1년 8개월 만에 두 배 가까이 불어났습니다. 이렇게 커진 이유는 고객 명단에 있습니다. 엔비디아 GPU 대신 맞춤형 칩을 택한 빅테크들은 대부분 브로드컴을 찾았거든요.
브로드컴은 이 맞춤형 AI 가속기를 XPU라고 부릅니다. 흔 CEO가 지난 6월 컨퍼런스 콜에서 XPU 고객사로 구글, 메타, 오픈AI, 그리고 브로드컴을 통해 TPU를 대량 확보한 앤트로픽까지 네 곳을 언급했습니다. 왜 이들은 하나같이 브로드컴에 손을 내밀까요? 바로 AI의 무게중심이 학습에서 추론으로 옮겨 갔기 때문입니다. 모델을 학습시키는 건 한 번 크게 투자하면 끝나는 일이지만, 추론은 사용자가 쓰면 쓸수록 비용이 계속 쌓입니다. 여기서 맞춤형 반도체의 판이 열립니다.
구글, 메타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오픈AI까지 자체 칩 설계 전담 조직을 만들며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맞춤형 칩, 즉 ASIC 출하량은 2026년 전년 대비 44.6% 늘어날 전망입니다. GPU 성장률 16.1%의 거의 세 배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그렇다면 맞춤형 칩은 실제로 얼마나 저렴할까요? 구글 TPU 사례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엔비디아 GPU는 한 장에 최대 4만 달러, 한화로 5,6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도체 분석업체 세미애널리시스의 통계를 보면, 대규모로 구매하는 고객사 기준으로 구글 TPU가 엔비디아 최신 GPU보다 유효 연산량당 총소유비용(TCO)이 약 20%에서 50%까지 저렴했다고 합니다.
다만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이 경제성은 칩을 대규모로 굴리는 하이퍼스케일러에게만 성립합니다. 맞춤형 칩을 새로 설계하는 데는 수억 달러의 초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은 회사들은 여전히 GPU를 쓰는 편이 경제적입니다.
그렇다면 브로드컴의 칩 설계 노하우는 어디서 올까요? 똑똑한 칩 하나는 구글이든 오픈AI든 직접 설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칩 수만 개를 하나처럼 움직이게 묶는 일이죠. 이때 필요한 것이 칩과 칩 사이, 그리고 서버 바깥으로 데이터를 빠르게 실어 나르는 SerDes 같은 네트워킹 기술입니다. 비유하자면, 뇌는 각자 만들 수 있지만 신경망과 혈관은 못 만든다는 거죠. 그리고 이건 돈을 붓는다고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브로드컴이 파는 건 완성된 칩이 아니라, 고객이 자기 힘으로 못 만드는 부분입니다.
그럼 브로드컴은 어쩌다 이런 기술을 갖게 됐을까요? 답은 이 회사의 족보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브로드컴이라고 부르는 회사는 원래 브로드컴이 아니었습니다. 역사를 알려면 두 기업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는 아바고입니다. 아바고는 1961년 휴렛패커드의 반도체 부문 HP 어소시에이츠에서 시작됐습니다. 1999년 애질런트 테크놀로지스로 분사했고, 2005년 사모펀드에 매각되며 아바고 테크놀로지스가 됐습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브로드컴입니다. 1991년 UCLA 교수와 학생이 함께 세운 미국의 팹리스 업체로, 1998년 나스닥에 상장했습니다. 그러다 2016년 아바고가 370억 달러에 이 브로드컴을 인수합니다.
재미있는 건 그다음입니다. 인수한 쪽인 아바고가 자기 이름을 버리고, 인수당한 브로드컴의 이름을 가져다 썼습니다. 현재 주식 티커가 아바고 시절 그대로 AVGO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2006년부터 아바고를 이끌던 인물이 지금까지 브로드컴을 이끄는 혹 탄 CEO입니다. 시만텍, CA 테크놀로지스, VM웨어까지 사업성이 있는 회사를 사서 붙이는 것이 혹 탄의 방식이었습니다.
그중 지금의 맞춤형 칩을 뒷받침하는 곳이 2014년 아바고가 66억 달러에 인수한 반도체 업체 LSI입니다. LSI 안에는 고객사 요구에 맞춰 주문형 칩을 설계해주던 부서가 있었습니다. 인수 당시에는 규모가 크지 않은 사업이었지만, 이 조직이 지금은 구글 TPU, 메타 MTIA 설계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브로드컴이 하루아침에 맞춤형 칩 전문 기업이 된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HP에서 아바고로 이어진 조직, 원래 브로드컴, 주문형 칩을 만들던 LSI, 이 세 줄기가 한 지붕 아래 모인 셈입니다.
최근 브로드컴이 주목받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앞서 말한 SerDes 같은 연결 기술입니다. AI 이전에는 이런 네트워킹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AI가 오면서 판이 뒤집혔죠. 칩 한 장의 성능도 중요하지만, 칩 수만 장을 얼마나 촘촘히 묶느냐가 데이터센터 전체 성능을 가르게 됐습니다. 덕분에 브로드컴의 네트워킹 기술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습니다.
실제로 2분기 브로드컴의 AI 반도체 매출은 1년 만에 143% 늘어난 108억 달러였고, 이 중 상당수가 칩이 아니라 칩을 잇는 네트워킹 부문에서 나왔습니다.
이런 기술을 바탕으로 브로드컴이 AI 기업들과 협업한 사례도 보겠습니다. 오픈AI는 브로드컴과 손잡고 첫 자체 AI 칩을 지난 6월 공개했습니다.
주목할 건 개발 기간입니다. 보통 AI 칩 하나를 만드는 데 2~3년은 걸린다고 봅니다. 그런데 설계 착수부터 제조 직전 단계인 테이프아웃까지 9개월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오픈AI는 이를 고성능 반도체 분야에서 역대 가장 빠른 개발 사이클이라고 밝혔습니다. 오픈AI가 모델을 바탕으로 칩을 설계하고, 브로드컴은 칩 구조와 네트워킹을 맡는 역할 분담이 명확해지면서 기간이 줄었다고 합니다.
성능은 어떨까요? 혹 탄 CEO는 이 칩이 엔비디아 블랙웰이나 구글 TPU와 대등한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초기 시험에서는 단위 전력당 성능이 더 우수했다는 설명입니다. 올해 말부터 실제 데이터센터에 배치될 예정이고, 차기 버전은 내년에 나오며 그 뒤로는 매년 새 칩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참고로 이 칩의 메모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공급하고 있습니다.
애플도 브로드컴을 불렀습니다. 애플은 반도체 회사라 해도 될 만큼 다양한 칩을 직접 디자인하는 회사인데, AI 서버용 칩 '바르트라'를 만들면서 브로드컴과 손을 잡았습니다. 이 칩은 애플 인텔리전스 요청을 처리하는 클라우드 서버에 들어갈 칩입니다. 지난 7월 6일 브로드컴은 애플을 위한 맞춤형 칩 협력을 2031년까지 연장한다고 밝혔고, 300억 달러가 넘는 규모로 전해집니다. 여기에는 맞춤형 AI 칩 외에 네트워킹 칩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애플은 브로드컴을 구글처럼 쓰지 않았습니다. 구글과의 협력에서는 브로드컴이 설계도를 TSMC 같은 기업이 제조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고, 생산을 직접 감독하며, 완성된 칩에 마진을 붙여 구글에 공급합니다. 반면 애플과의 협력은 다른 방식입니다. 인포메이션 보도에 따르면 브로드컴은 더 제한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네트워킹 기술 등 설계 서비스 범위를 더 좁게 잡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같은 브로드컴이라도 고객마다 계약의 깊이가 다른 겁니다. 브로드컴은 정해진 상품을 파는 게 아니라, 고객이 못 하는 부분만 잘라서 파는 회사라는 얘기입니다.
다만 바르트라가 순항 중인 것은 아닙니다. 올해 출시 예정이던 바르트라는 일정이 밀렸고, 애플이 반도체 스타트업 인수까지 알아본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브로드컴과 손잡고도 회사를 사러 다닌다는 게 이상하게 들리실 텐데요, 오히려 이것이 브로드컴이 무엇을 팔지 않는지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브로드컴은 칩을 만들어내는 뒷단을 대신해 주지만, 어떤 칩을 만들지는 고객이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컨설팅 회사라기보다는 대행사에 가까운 셈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한 가지가 분명해집니다. 브로드컴은 엔비디아를 직접 대체하는 회사가 아닙니다. 엔비디아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기업들의 뒤에 서 있는 회사죠. 자기 이름을 건 AI 가속기를 팔지 않고, 남의 이름을 단 칩을 대신 설계해 줍니다.
맞춤형 칩 시장을 지배하는 브로드컴의 경쟁력은 숫자로도 확인됩니다. 혹 탄 CEO는 실적 발표에서 2027 회계연도 기준 AI 칩 매출이 1,000억 달러를 넘길 것이라는 전망을 유지했습니다.
브로드컴의 성장은 한국에 기회이자 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HBM 경쟁은 사실상 엔비디아 한 곳을 바라보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브로드컴이라는 또 하나의 큰 고객이 생긴 셈입니다.
다만 이를 진영 선택으로 보면 조금 곤란합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브로드컴에도 메모리를 공급하고 있고, 양자택일이 아니라 양쪽 모두에 공급하는 고객사 다변화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관건은 고객이 늘어난 만큼 요구 사항도 갈라진다는 점입니다. 엔비디아가 원하는 HBM과 브로드컴 계열 맞춤형 칩이 원하는 HBM은 조건이 다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하느냐가 다음 판을 가를 것으로 보입니다.
AI 칩 전쟁의 다음 라운드는 엔비디아 대 브로드컴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쪼개진 진영 속에서 누가 어느 편에 서느냐, 그리고 여러 편에 동시에 설 수 있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릴 겁니다.
오늘은 대통령 옆자리에 섰던 혹 탄 CEO가 이끄는 브로드컴이 어떻게 AI 반도체 판의 한 축이 됐는지 살펴봤습니다. 수십 년 전 HP의 반도체 부서에서 시작해 이름도 바뀌고 인수합병을 거치며 자라난 작은 설계 조직이, 지금은 세계 최대 AI 기업들의 칩을 대신 설계하고 있습니다. 오늘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재밌게 보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미래를 먼저 보는, 티타임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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