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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r Bearish · Title·요약 키워드 기준 · 주성엔지니어링

세계 1·2·3위보다 먼저 내놨다…한국이 출하한 200억 원짜리 ALG 장비|주성엔지니어링

경제의 설계도 · 2026-10-04 · 유튜브 시청 122,049 · Board Views 4 ·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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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만든 나사 하나도 쓸 수 없다. 1990년대 반도체 어계에서 한국 장비를 두고 공공연이 돌던 말입니다. 그런데 2026년 5월 바로 그 한국에서 만든 기계 한 대가 바다 건너 해외 반도체 기업으로 실려 나갔습니다. 세계 1, 2, 3위 장비 회사 가운데 어느 곳도 같은 기계를 내보냈다는 소식이 아직 없는 장비였습니다. 2026년 5월 16일 출하식이 열렸습니다. 직원들이 장비 앞에 나란히 서서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틀 뒤 회사가이 소식을 알리자 그날 주가는 상한가로 취소 샀습니다. 장비를 사간 곳은 삼성전자도 SK 하이닉스도 아니었습니다.

해외의 한 반도체 제조사였습니다. 그 이름은 지금까지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이 장비를 만든 회사는 주성 엔지니어링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기계 한 대값이 약 200억 원입니다.이 회사가 법인으로 첫해에 올린 매출과 비교하면 몇 배쯤 될지 그 답은 조금에 확인해 보시겠습니다.이 이 기계의 이름은 ALG 트랜지스터 장비입니다. 트랜지스터라는 말이 어렵게 들리실 텐데 전기를 켰다 껐다 하는 아주 작은 스위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톤만한 반도체 칩 하나에이 스위치가 셀 수 없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럼이 스위치는 어떻게 만들까요? 둥근 실리콘판 위에 아주 얇은 막을 한 겹씩 혀서 만듭니다.이 판을 웨이퍼라고 부릅니다.

벽에 페인트를 한 번 칠하고 마르면 또 한 번 칠하는 모습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다만 여기서 입히는 막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만큼 얇습니다. 얼마나 얇은가 하면 아주 작은 알갱이 한 줄 두께입니다. 세상 모든 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알갱이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데 그 알갱이를 원자라고 부릅니다. 그 원자를 딱 한 주씩 쌓아 올리는 겁니다. 이렇게 한 주씩 쌓는 기술을 ALD라고 하고 지금 세계 최첨당 공장들이 쓰는 방식입니다. 조성 엔지니어링 황철주의 방식과 새 방식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ALG가 눈처럼 쌓이는 방식이라면 ALG는 얼음처럼 단단하게 응집되는 구조입니다.

한 개월에 마당에 쌓인 눈을 한 눈큼 쥐어 보면 손가락 사이로 부서집니다. 눈송이와 눈송이 사이에 틈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같은 물이라도 꽁꽁원 얼음은 망치로 두드려야 겨우 깨집니다. 빈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다들 눈을 쌓듯 막을 쌓아 봤습니다. 그런데이 장비는 쌓지 않습니다. 얼음이 얼어붙듯 알갱이를 단단하게 키워냅니다. 이상한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렇게 알갱이를 단단하게 키우는 일에는 원래 1천도가 넘는 뜨거운 열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이 장비는 그 일을 400도 아래냅니다. 이제 순위를 보시겠습니다. 24년 기준으로 이막을 입히는 장비의 세계 1위는 네덜란드의 ASM, 2위는 일본의 텔, 3위는 미국의 LAAM입니다.

주성 엔지니어링은 4위입니다. 그렇다면 왜 1, 2, 3위가 아니라 4위 회사가이 문을 먼저 열었을까요? 질문이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세계 1위의 ASM은 황철주 회장이 젊은 시절 몸 담았던 바로 그 회사입니다. 그곳에서 그는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해고합니다. 한국이 무슨 반도체 장비를?이 이 회사가 곧 문을 닫는다는 소문이 돌던에 겨울도 있었습니다. 그때 황해장은 본사 건물에 가로 13m짜리 태극기를 내걸었습니다. 쓰러져 가던 회사가 왜 국기부터 걸었을까요? 많은 분들이이 회사를 태양광 회사로 기억하실 겁니다. 주가가 뛸 때마다 태양광 이야기가 따라붙었으니 그렇게 기억하실 만도 합니다.

그런데 그 기억이 실제 장부와 얼마나 다른지도 이야기 후반에 직접 보시게 됩니다. 황회장이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가 아니면 생각도 하지 말고 세계 최고가 안 될 것이면 하지도 말라. 한자촌에서 자한 소년이 어떻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됐을까요?이 이 기계의 출발점은 반도체 공장이 아니라 경상국도 고령의 가난한 농가입니다. 그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구독과 좋아요는 이런 영상을 계속 만들어 가는데 큰 힘이 됩니다. 황철조는 경상북도 고령의 가난한 농사꾼 집안에서 육남매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열살에 서울로 올라왔고 가족이 자리 잡은 곳은 동빈구동의 판자촌이었습니다.

판자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그런 동네를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는 공업고등학교 전자가를 졸업하고 울산의 섬묘 공장에 들어갔습니다. 그 시절을 두고 그는 고졸 사원이라는 서음을 겪었다고 말합니다. 그 시절 공고로 나와 공장에서 첫 월급 봉투를 받으셨던 분들은 그 서음이 어떤 것인지 아실 겁니다. 같은 일을 해도 대우가 달랐고 학력은 늘 따라다녔습니다. 지금이 영상을 보고 계신 여러분 가운데 그 줄에서 계셨던 분이 있다면 세계 최초 장비를 만든이 회장도 바로 그 줄에 함께서 있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이하 공업 전문대학에 들어갔고이어서 인하대학교에 편입했습니다.

졸업후에는 현대 전자에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그곳 생활은 8개월 남짓으로 끝났습니다. 그때 심정을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의 말 듣고 신부름하는 사람이 아니라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신부름꾼 대우였습니다. 1986년 그는 외국 회사의 부름을 받습니다. 바로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회사 ASM입니다. ASM은 지금도 ALD 장비 분야 세계 1위이고 점유율이 55%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에도 지금도 실력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회사입니다. 그무렵의 사정은 이랬습니다. 반도체 칩을 만드는 핵심 장비, 그러니까 웨이퍼 위에 회로를 새기고 막을 입히는 전공정 장비를 만드는 한국 회사는 사실상 없었습니다.

당시 한국 반도체 장비 업계를 두고 장비 업체는 없고 해외 장비 업체에 대리점만 질비한 아암흑기라는 표현이 나왔을 정도입니다. 대기업들조차 전공정 장비는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남라 가게에서 물건을 받아다 진열만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가 ACM에서 맡은 일은 뜻밖에도 영업이었습니다. 삼선전자의 반도체 장비를 파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술을 못 마셨습니다. 노래나 춤섬치도 없었다고 합니다. 접대 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영업가는 영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고른 방법은 하나뿐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6시 서울 서초동 정류장에서 기흥으로 가는 삼성전자 출근 버스에 올랐습니다.

기응에 닿으면 삼성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이 될 일이 없는지 물었습니다. 밤 10시에는 기흥을 떠나는 마지막 퇴근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6시 그는 다시 같은 정류장에서 있었습니다. 주말도 없이 이어진 하루였다고 합니다. 삼상 간부들은이 남자를 보고 두 번 놀랐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성실한 직원이 있다는데 놀랐고 다음에는 그가 삼성 직원이 아니라는 놀랐습니다. 그는 그 시절을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학연 지연 혈연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말고는 기댈 곳이 없지요. 성실하게 일하면 사람들이 저는 믿을 만하다고 말해 줍니다.

그는 외국인 기술자를 보조하는 일도 했습니다. 곁에서 어깨 넘무로 틈틈히 장비를 지켜보며 어떻게 돌아가는지 익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반도체 장비가 고장났습니다. 그가 나서서 그 문제를 간단히 해결했습니다. 공장 연구원들은 고마워하며 그에게 값비싼 장비를 직접 만질 수 있는 특권을 허락했습니다. 그 시절이 남긴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회고합니다. 각국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일하는 방법을 배웠고 비효율적인 부분을 눈여겨 받았던게 창업부 도움이 됐습니다. 그는 이후 ASM의 한국인 가운데 처음으로 대만과 일본, 홍콩, 미국, 네덜란드를 담당하는 자리까지 맡은 것으로 전해집니다.이를 알게 될수록 그에게는 하고 싶은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 아이디어를 꺼냈을 때 회사의 반응은 차가웠다고 합니다. 맨 처음 돌려드렸던 그 말이 이때 ASM 경영진에게서 나왔다고 그는 회고합니다. 한국이 무슨 반도체 장비를 만듭니까? 그리고 1993년 예고도 없이 일이 터집니다. ASM이 한국에서 갑자기 철수한 곳입니다. 하루 아침에 그가 갈 곳이 사라졌습니다. 그에게 남은 곳은 퇴직금 3천만 원이었습니다. 여기에 형제들이 모아준 2천만 원이 더해졌습니다. 모두 5천만 원이었습니다. 점장도 없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한국인 엔지니어가이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한국 나사 하나도 못 쓴다던 업계는 그의 첫 기계를 받아주었을까요?

1993년 헌철주는 회사를 차했습니다. 가진는 퇴직금과 형제들의 돈을 합친 5천만 원이 전부였고 기계를 만들 공장도 없었습니다. 새 장비를 만들 돈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남의 장비를 고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처음 찾아간 곳은 LG 반도체였습니다. LG 반도체에는 지름 6인치 웨이퍼에 맞춰 만든 장비가 있었습니다. 그는이 장비를 8in 웨이퍼도 받을 수 있게 고쳐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작은 쟁반에 맞췄기를 뜯어 고쳐서 더 큰 쟁반이 들어가게 만드는 일과 비슷합니다. 장비를 새로 사는 것보다 비용을 60에서 70%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계산이었습니다.

말로만 설득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그때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며칠 밤을 세워 결과를 보여줬죠. 그렇게 장비 2대를 고쳤고 거기서 본 돈으로 비로서 자기 장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방향도 처음부터 정해 두었습니다. 첫 제품부터 한국이 없는 것을 찾아서 시작했다. 그런데 기계를 만들어도 팔 곳이 없었습니다. 국내 반도체 회사들은 공장도 없는 작은 회사에 일감을 주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국산 장비라고 하면 손사례부터 칠 것이 뻔했습니다. 한국에서 만든 나사 하나도 쓸 수 없다는 말이 돌던 시절이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요?대 대부분은 국내 회사문을 한 번 더 두드려 볼 겁니다.

황철조는 거꾸로 미국으로 갔습니다. 미국 장비 회사 지너스를 찾아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기술 판매권은 미국 회사가 같고 그 기술을 현장에 맞게 응용하는 일은 주성이 맞는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장비 세대를 수주했습니다. 한국 회사가 만든 기계가 미국 회사 이름을 달고 반도체 공장에 들어간 것입니다. 국산이라는 딱지를 떼어내자 비로소 기계의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생겼습니다. 1995년 주성은 법인이 된 첫에 매출 13억 원을 올렸습니다.이 숫자를 기억해 두십시오. 이야기 끝 무렵에 다시 꺼내게 됩니다. 그의 11월 주성은 첫 자체 장비를 내놓습니다.

HSG라는 공정에 쓰는 장비였습니다.이 장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쉽게 풀어 보겠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안에는 커페시터라는 아주 작은 부품이 셀 수 없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전기를 잠시 담아두는 물 탱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탱크에 전기가 차 있는지 비어 있는지로 칩은 1과 0을 기억합니다. 칩이 작아질수록이 탱크도 작아지니 같은 크기의 전기를 더 많이 담는 방법이 필요해집니다. HSG는이 탱크의 표면을 일부러 울퉁불퉁하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비닐 한 장과 수건 한 장을 같은 크기로 잘라 물에 담갔다 꺼내 보시면 차이를 아실 겁니다.

비닐은 물이 금방 흘러내리지만 수건은 물을 흠뻑 먹습니다. 수건 표면에 촘촘히 솟은순 올이 물이 닿는 면적을 크게 늘려 주기 때문입니다. 겉보기 크기는 그대로 두고 표면을 울퉁불퉁하게 만들어 저장 면적을 넓히는 것. 이것이 HSG 원리입니다.이 장비가 국내 최대 반도체 회사인 삼성의 품질 검증을 통과했습니다. 그 뒤 황철주는 창업할 때 형제들에게 빌린 돈을 갚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외 시장을 여는 일도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의 한 고객은 장비를 도로 가져가라고까지 했습니다. 주성은 장비를 그냥 빼오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기술을 찾아 장비를 업그레이드한 다음 다시 보여줬다고 전해집니다.

1997년 11월 주성은 반도체 전공정 장비를 국내 최초로 해외에 수출합니다. 그의 국내 반도체 3사가 드린이 공정 장비는 모두 주성 제품이었습니다. 200mm 웨이퍼용 HSG 장비만 놓고 보면 세계 시장의 51%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7년 매출은 241억 원, 영업 이익은 75억 원이었습니다. 100원 어치를 팔 때마다 31원이 남은샘입니다. 법인 첫 매출 13억 원과 비교하면 2년 만에 매출이 약 18배로 늘었습니다. 그리고 1997년 겨울 나라 전체가 외한 위기에 빠집니다. IMF 시절을 지나오신 분들은 그때를 기억하실 겁니다.

집집마다 장롱속 금반지를 꺼내들고 줄을 섰고 멀쩡하던 회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반도체 업계에서도 공매 업체가 하나 둘 사라졌습니다. 그 와중에 주상은 다음 기술로 나아갔습니다. 1999년 7월 원자 한 층씩 막을 입히는 ALD 장비를 개발했습니다. 맨 처음 들려드린 눈과 얼음 이야기에서 눈에 해당하는 바로 그 기술입니다.이 회사의 ALD 장비 사이클론 개발에서 1등 공신으로 꼽히는 사람이 김원도 상무입니다. 갓전에 주성은 코스닥에 상장했습니다. 공무가는 34만 원으로 당시로서는 사상 최대였습니다. 벤처붐이 한창이던 그 시절 주상은 황제주로 불렸습니다.

황철주는 공모로 모은 돈을 거의 모두 연구 개발에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도체가 아니라 LCD 화면을 만드는 장비 개발에도 이때 손을 댔습니다.이 결정은 뒤에서 회사의 운명을 바꾸게 됩니다. 2000년 주성의 시가 총액은 2조원을 넘어십니다. 창업자금 5천만 원에 4만 배입니다. 판자촌 소년이 세운 회사가 7년 만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듬에이 회사의 거래 장부에서 가장 큰 고객의 이름이 사라집니다. 2001년 12월 초 경기도 광주 오프에 있는 주성 분사에 소문 하나가 돌았습니다. 그 회사 곧깡통 잔다. 망에서 빈깡통을 들고 거리로 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1년 전만 해도 황제주로 불리던 회사였습니다. 직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그외였습니다. 주성의 최대 고객이던 삼성과의 거래가 끊겼습니다. 원인을 두고는 지금도 양쪽 말이 다릅니다. 훗날 한 언론은 당시 삼성 감사를 맡았던 전 직원의 말을 빌려 거래 담당자 사이의 비리가 원인이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주성은 당시 비례 의욕은 모두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숫자입니다. 2000년 540억 원이던 매출은 2001년 499억 원으로 줄었습니다. 그리고 이해에 처음으로 적자를 냈습니다. 깡통 소문이 돌던 그 12월 황사장은 임직원을 한 자리에 불러모았습니다.

며칠 뒤 오포 본사 건물에 가로 13m짜리 태극기가 올라갔습니다. 회사가 무너질지도 모르는 판에 왜 국기부터 걸었는지 그날 그가 직원들 앞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이 이야기 마지막에 다시 꺼내 드리겠습니다. 깃발을 걸었다고 사정이 나아지진 않았습니다. 2002년은 더 나빴습니다. 회의실에서 황사장이 신제품 이야기를 꺼내면 돌아오는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당시 분위기는 기존 제품을 개선하는 것도 벅처인데 적자 회사가 무슨 신제품 개발이냐 는투였다고 합니다. 황사장의 대답은 한 줄이었습니다. 신제품 없이는 미래가 없다. 그는 공장을 넓히려고 사둔 땅을 팔았습니다.

그 돈은 공장이 아니라 LCD 장비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그의 장부는 이랬습니다. 매출은 227억 원으로 2년 전에 절반에도 못 미쳤습니다. 영업 적자는 520억 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년 동안 본 돈에 두 배가 넘는 돈을 잃은 셈입니다. 그런데도 연구 개발에는 매출의 126.4%를 %를 썼습니다. 100원을 벌어서 126원을 연구해 넣은 것입니다. 은행에서는 빌려준 돈을 회수하겠다는 통보가 날아왔습니다. 황사장은 은행을 찾아가고 또 찾아갔습니다. 당시 기사는 그 모습을 은행 문턱이 달도록 찾아다녔다고 적었습니다. 이런 위기라면 다음에쯤엔 털고 일어났을 거라고 생각하기 싶습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2003년 매출은 271억 원에 그쳤고 적자는 3년 연속으로 이어졌습니다. 3년 동안 쌓인 영업적자는 모두 1,200억 원이었습니다. 2002년 한해 매출에 500원 넘는 돈입니다. 2003년 3월 주성의 시가 총액은 470억 원까지 떨어졌습니다. 2조원을 넘던 3년 전 몸값에도 되지 않았습니다. 경영권을 외부에 넘기는 문제까지 고민할만큼 사정이 어려웠습니다. 한 해외 업체는 회사를 사겠다는 뜻을 비쳐 오기도 했습니다. 항사장의 귀회는 이런 말까지 들어왔습니다. 저만 물러나면 조성은 살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대국 그는 회사를 정리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동안 거래에 온 해외 바이어들을 만나러 길을 나섰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듣게 됩니다. 그 이야기도 조금 더 뒤에 꺼내겠습니다. 계십니다. 한 가지만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산의 반대를 무릎 쓰고 공장 부지까지 팔아 만들던 그 LCD 장비는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다만 그 기계가 들어가려던 시장은 미국의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회사가 거느린 자회사 한 곳이 80% 넘게 쥐고 있었습니다. 공장 부지를 판 돈으로 만들던 기계는 LD 화면을 만드는 장비였습니다.

이름은 PCBD이고 우리말로는 플라즈마 화학 중착 장비라고 부릅니다. 이름은 어렵지만 하는 일은 단순합니다. 거실 TV나 컴퓨터 모니터의 LCD 화면은 커다란 유리판 한 장에서 시작합니다.이 이 유리판 위에 머리카락보다 훨씬 얇은 막을 여러 청 입해야 화면에 점 하나하나를 켜고 끄는 작은 스위치가 생깁니다. 그 막을 입히는 기계가 PCBD입니다. 원리는 이렇습니다. 장비 안에 가스를 놓고 전기를 걸면 가스가 번쩍이면서 아주 활발한 상태로 바뀝니다. 형광등 유리관 안에서 빛나는 기체가 바로 이런 상태이고 이것을 플라지마라고 부릅니다.

플라지마가 된 가스가 유리판 위에 내려앉지면서 얇은 막이 됩니다. 이때 가스를 위에서 고르게 뿌려 주는 부품이 있습니다. 욕실 샤워기처럼 작은 구멍이 촘촘히 뚫린 판이라서 샤워헤드라고 부릅니다.이 부품의 이름은 조금 뒤 법정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2002년 말 주성의 첫 LCD 장비가 시장에 나왔습니다. 그래도 적자는 계속됐습니다. 그러다 2003년 기다리던 소식이 들어옵니다. LG 필립스 LCD가 주성 장비의 성능을 인정하고 대규모로 발주한 것입니다. 빌려준 돈을 회수하겠다던 은행도 다시 돈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은행 문턱이 달토로 드나들던 황사장의 설득이 통해서 실제로 채권을 회주당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같은 해 8월 주성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6세대 LCD형 PCBD인 유레카 6천을 개발한 것입니다. 국내 업체가 6세대 PCBD를 개발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습니다. 6세대라는 말이 낯설게 들으실 수 있습니다. LCD 공장은 한 번에 처리하는 유리판 크기에 따라 세대를 나누고 세대가 올라갈수록 판이 커집니다. 6세대 유리판은 가로 1500m 세로 1850mm입니다. 어른 한 사람이 누워도 자리가 남는 크기입니다. 큰 판 한 장에서 TV 화면을 여러 장 잘라내기 때문에 판이 클수록 화면 한 장의 값이 내려갑니다. 이제이 시장의 주인을 소개하겠습니다.

미국의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줄여서 AMAT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장비 회사입니다.이 AMAT의 자회사인 AKT가 대형 LCD용 PVD 시장을 쥐고 있었습니다. 5세대 이상 대형 유리판에서는 PCBD 시장에서 AKT의 점유율은 80%가 넘었습니다. 세계 LCD 공장에 들어가는이 장비 10대 가운데 8대 이상이 AKT 제품이었다는 뜻입니다. 5세대 장비 한 대값은 100억 원에 이르렀습니다. H는 깎아내릴 상대가 아닙니다. LCD 화면이 점점 커지는 흐름을 앞에서 이끈 것이 바로 AKT의 대형 장비였습니다. 세계 LCD 업계가 표준으로 삼은 기계였고 그만큼 실력이 검증된 회사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다른 회사들은이 시장에 쉽게 들어오지 못했을까요? 유리판이 커질수록 함께 커지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에서 겪어 보신 일일 겁니다. 작은 냄비로 국을 끓이면 금방 고르게 끓습니다. 그런데 잔친 날 수는 커다란 소재에 국을 끓이면 불이 닿는 가운데는 펄팔 끌어도 가장 자리는 미지근합니다. 소이 커질수록 고르게 데우기가 어려워집니다. P1D도 똑같습니다. 유리판이 커지면 플라지마가 판 전체에 고르게 퍼지지 않습니다. 가운데와 가장자리에 막 두께가 달라지면 그 판에서 잘라는 화면에는 군데군데 얼룩이 생깁니다. 12도 문제였습니다.

조성축의 설명에 따르면 장비가 커지면 가스를 일으킬 때 내부 온도가 300 400도까지 올라갑니다. 그 열에 샤워 헤드가 달아오르면 구멍이 넓어집니다. 샤워기 구멍이 제멋대로 늘어나면 물줄기가 어디는 굵고 어디는 가늘어집니다. 가스도 마찬가지로 고르게 뿌려지지 않고 그만큼 품질이 떨어집니다. 속도도 문제였습니다. 판이 클수록 장비에 놓고 빼는데 시간이 더 걸립니다. 커질수록 고르게 만들기 어렵고 커질수록 느려집니다. 대형 PCBD에 도전하는 회사라면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풀어야 했습니다. 조성은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을까요? 6세대 장비를 발표하면서 주성 관계자는 이렇게 밝혔습니다.

기판이 커졌음에도 우수한 체인버 설계로 5세대와 거의 똑같은 플라즈마 균일도를 유지하는 것을 확인했다. 체인버는 막을 입히는 장비 속에 방을 말합니다. 탄은 더 커졌는데 막이 고르게 입혀지는 정도는 5세대와 거의 같았다는 말입니다. 속도에서도 결과가 나왔습니다. 유리판을 옮기고 바치는 구조에 자체 특허 기술을 넣었더니 5세대 장비보다 생산성이 오히려 25% 늘었다고 회사는 밝혔습니다. 다시 손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솥을 키우면 국이 고르게 끓지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것이 그때까지의 상식이었습니다. 주성은 서둘 키우고도 가장자리까지 고르게 그리고 더 빨리 끓렸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주은 6세대 장비가 5세대보다 25에서 50% 비싸게 팔릴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5세대 장비가 한대 100억 원이었으니 6세대는 대당 125억 150억 원짜리 기계입니다. 상업한지 10년 된 한국 회사가 이런 기계를 들고 AKT가 10대 중 8대를 쥐고 있던 시장으로 나섰습니다. 가장 큰 시장은 대만이었습니다. 당시 대만에는 CMO라고 불리던 치매일을 비롯해 AUO, CPT 같은 LCD 회사들이 줄지해 있었습니다. 2003년 말 주성은 대만의 5세대용 LCD 장비를 처음으로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10대 중 8대를지고 있던 회사가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을까요?

2003년 10월부터 두 회사 사이에 공방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그의 12월 대만 법원에 신청사장이 접수됩니다.이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주성의 장비는 배에 실려 대만 한구에 도착하더라도 세관을 통과할 수 없게 됩니다. AMAT 쪽이 낸 것은 가처분 신청이었습니다. 가처분은 정식 재판에서 결론이 나기 전에 상대의 장사부터 멈춰 달라고 법원에 요청하는 절차입니다. 요구 내용은 주성 LCD 장비의 판매와 수입 통관을 금지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근거로 내세운 특허의 정식 이름은 플라지마 체인보의 현가식 가스 분배 매니폴드입니다. 이름은 길지만 당시 보도는이 특허를 샤워헤드 기술 대만 특허번호 152996번으로 소개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가스를 고르게 뿌려주는 바로 그 부품이죠. 조정이이 기술을 침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싸움은 법정 밖에서도 벌어졌습니다. 그무렵 대만의 CMO, CPT, AO와 중국의 BOE 하이디스가 5세대와 6세대 장비 도입을 한꺼번에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조성의 주장에 따르면 바로 그때 AKT 쪽이이 고객들 사이에 이런 말을 퍼트렸습니다. 주성 장비를 도입하면 나중에 생산에 차지를 빚을 수도 있다. 조성은 이일을 두고 HAT가 자사 장비를 복재했다는 소문을 유포시켜 영업에 큰 지장을 줬다고 주장했습니다. 자,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큰 돈을 들여 공장을 짓는 회사가 소송에 걸린 장비를 들였다가 판결이 분리하게 나서 그 기계를 쓰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생산 라인이 멈춥니다.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고객은 서명을 망설릴 수밖에 없겠죠. 기계의 실력이 아니라 소송과 소문으로 고객의 손을 묶어 두는 싸움이었습니다. 이쯤에서 이런 의문을 품으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세계 최대 회사가 괜히 소송을 걸었겠어? 정말 뺏긴 거 아니야? 당시 한국 장비업계의 형편을 보면 그런 의심이 나올 만도 했습니다. 판결 직후 어깨의 한 관계자도 이렇게 인정했거든요. 아직 국내 장비 업체들은 역사가 긴 외국 주요 장비 업체에 비해 기술 및 특허 경쟁력이 밀리는 것은 사실.

그런데 그 의심에 답을 내놓은 것은 주성이 아니었습니다. 주성은 가처분에이 신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거꾸로 AKT를 대만 공정거래 위원회에 재소했습니다. 고객들 사이에 악성 소문을 고유로 퍼뜨렸다는 이유였습니다. AMAT도 2004년 정식 특허침매 소송을 내며 맞었습니다. 대만 고등법원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6개월 넘길 자료를 조사하고 관계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양쪽 당사자를 심리했습니다. 그리고 2004년 8월 18일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판결이 나온 바로 그날 대만에서는 서류 한 장이 더욱 갔습니다. 누가 어떤 서류에 서명했을까요?

먼저 판결입니다. 대만 고등보원은 AKT의 가처분 신청이 원천 부여라고 판결했습니다. 최종 판결이었습니다. 같은 날 조성은 공시를 하나 냈습니다. 대만 치매해 5세대용 LCD 장비를 추가로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치매는 앞에서 말씀드린 CMO입니다. 조성 장비를 도입하면 생산에 차지를 빚을 수도 있다는 말이 돌던 바로 그 대망 고객이죠. 그날 주상이 받아든 성조는 이랬습니다. AKT의 가처분 신청은 원천 무효가 됐습니다. 같은 날 그 소문이 돌던 고객 치매와 추가 계약을 맺었습니다. 수주 장고는 치매 6대를 포함해 LCD 장비 9대였습니다.

심이로부터 따낸 차세대 5.5세대 장비 주문은 3,850만 달러로 지금 환율로 약 522억 원입니다. 대만 시장에 들어간지 1년이 채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주상의 이연권 전문은 판결 직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판결로 경쟁사와 소모적 경쟁이 아닌 기술 서비스 경쟁을 버릴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가장 기쁘다. 특히 경쟁사의 허위 사실 유포로 반신반위하던 고객들에게 주성 장비를 구입해도 문제가 없다는 확신을 줄 수 있게 됐다. 당시 언론은 외국 거대 장비 업체들의 특허 공세에 준눅들어 있던 국내 장비업계가이 판결로 자신감을 되찾게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세계 시장이 더 이상 넘볼 수 없는 곳이 아니라는 메시지였다는 것입니다. 맨 처음 들려드린 말을 다시 떠올려 보십시오. 한국에서 만든 나사 하나도 쓸 수 없다. 창업 초기의 주성은 이마를 피하려고 미국 회사의 이름을 빌려 장비를 팔았습니다. 그런데 2004년 8월 18일 대만에서 맺은 계약서에는 처음부터 주성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숫자도 찌다하십니다. 2003년 271억 원이던 매출은 2004년 1669억 원이 됐습니다. 1년 만에 약 6배로 늘러난 겁니다. 순이익은 340억 원이었고 3년 동안 이어진 적자가 이때 끝났습니다.

그의 주상은 미국 IBM, 대만의 치메이와 프로모스와 CPT, 중국 BOEOT, 그리고 유럽과 일본 업체들을 새 고객으로 맞았습니다. 해외 매출 비중은 56%로 사상 최대였습니다. 3년 전 깡통이라는 소리를 듣던 회사가 받아든 장부였습니다. 그러나 싸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처분은 막아냈지만 AMAT 낸 정식 특허 소송이 남아 있었거든요. 그 사이 주성도 공격을 받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2007년 4월 주성은 서울 중앙지법원에 AKT와 AKT의 국내 조립 회사를 상대로 특허권 치매 금지 소송을 냈습니다. 문제 삼은 기술은 PCBD가 300400도의 열에 모양이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장비의 추가 구조물을다는 기술이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열의 샤워헤드 구멍이 넓어지는 바로 그 문제를 막는 기술이죠. 샤워헤드 기술을 베겼다는 공격을 받던 회사가 이번에는 자기 특허를 들고 상대를 법정에 세운 겁니다. 소송이 길어지는 동안 치른 대가도 컸습니다. 주성의 PCBD는 국내 LG 디스플레이의 7세대와 8세대 라인에 꾸준히 들어가 성능과 안정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해외 수출은 부진했습니다. 대망과 중국 고객들이 AMAT와의 소송을 우려한 것이 주요 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세계 최대 장비 회사는 왜 작은 한국 회사를 이렇게 오래 법정에 붙잡아 두었을까요?

주성측은 이렇게 봤습니다.이 소송은 주성 엔지니어링의 시장 진입 저지를 위한 상대방의 영업 전략이었다고 여겨진다. 2011년 1월 10일 대만 지방본이 일신 판결을 내렸습니다. 조성 엔지니어링의 장비와 기술은 AMAT가 특허 치매라고 주장하는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 2013년 7월 31일 대만 특허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내렸습니다. 주성은 AMAT의 특허침매이 없다. 가처분 신청이 처음 들어간 2003년 12월부터 따지면 10년 가까운 시간이었습니다. 일심 판결이 나오기까지만 7년이 걸렸습니다. 일심 직후 주성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7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소유되었지만 주성의 독자적 기술력이 제대로 입증받은 것. 정말 백인 거 아니냐는 의심에 대만법원은 갖춰분 판결 1심 2심에서 세 차례 같은 답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법원보다 먼저 판결이 나온 바로 그날 서명으로 답한 곳이 있었습니다. 소문을 들었던 곡 치매이었습니다. LCD 시장에서 주성은 표준을 쥐고 있던 거인을 넘어섰습니다. 그러나 회사에 뿌리인 반도체 시장에서는 황해장이 젊은 시절 몸담았던 그 회사 ASM이 여전히 1위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시장에서 주성이 꺼낸 첫 번째 카드는 반도체 업계가 당연하게 지켜온 순서를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대만 법장에서 특허 싸움이 7년 동안 이어지던 그 시기에 주성은 반도체 쪽에서 업계 상식 하나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웨이퍼에 막을 입히는 순서에 관한 상식입니다. 장시 원자층 증차 즉 ALD는 이렇게 작동해십니다. 먼저 가스 A를 넣었습니다. 그다음 A를 완전히 빼냅니다. 이때 쓰는 것이 퍼지스라는 청소용 가스입니다. 청소가 끝나야 가스 B를 넣고 B를 다시 빼낸 뒤에야 A로 돌아갑니다. 넣고 빼고 넣고 빼고 원자 한 층을 올릴 때마다이 과정을 대풀이합니다. 그래서 정밀할수록 느렸습니다. 속도와 정밀도는 맞바꿔야 한다는 것이 그때까지 어깨의 상식이었죠.

부엌에 빚되면 이렇습니다. 냄비 하나가 가스레지 위에 가만히 있습니다. 위에 달린 노즐 하나 고춧가루가 나오고 다 나온 뒤에야 소금이 소금이 끝나야 설탕이 나옵니다. 다음 양념이 끝날 때까지 다음 양념은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시간을 나눠 가스를 뿌리는 시분할 방식입니다. 그런데 주성은 시간 대신 공간을 나눴습니다. 고춧가루 자리, 소금 자리, 설탕 자리를 따로 만들고 냄비가 그 자리를 옮겨다니게 한 겁니다. 기다릴 필요가 없겠죠. 램비가 한 바퀴 돌면 양념이 모두 들어갑니다.이 양념 비율은 반도체 전문 매체, 디일레기이 방식을 설명하며 쓴 것입니다.

장비 안에서는 이렇게 구현되십니다. 10차 모양의 가스 주입비가 회전하면서 원료 가스, 반응 가스, 청소용 가스를 동시에 뿌립니다. 밸브를 열고 닫을 필요가 없고 웨이퍼 10장을 한 번에 처리합니다. 2006년 5월 공개된 공간 분할 SD 12D입니다. 개발에 3년이 걸렸고 개발비는 300억 원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 여기서 숫자 하나를 떠올려 보십시오. 회사가 3년 연속 적자를 벗어나기 직전인 2003년 한해 매출이 271억 원이었습니다. 그보다 많은 돈을 장비 하나에 쏟은 셈입니다. 그의 12월이 장비는 대한민국 기술 대상 대통령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같은 황철주 사장은 지난 몇 년을 이렇게 돌아봤습니다. 벌체명의 위기가 경쟁력에 원천이 됐습니다. 그런데 연구비 앞에서 주춤하지 않는이 수권은 다시 시험대에 오릅니다. 이후 태양광 경기가 꺾였습니다. 2011년 영업 손실은 37억 원이었습니다. 2012년에는 매출 800억 원에 영업 손실이 838억 원이었습니다. 100원어치를 팔 때마다 105원을 잃은 셈입니다. 그런데도 그의 주성이 연구 개발에 쓴 돈는 564억 원, 매출의 73.3%였던 %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투자 전문 매체 더은이를 역발상 투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주성은 2013년 영업 이익 10억원으로 흑자로 돌아섰고 2014년에는 영업 이익 96억 원을 냈습니다.

그리고 2014년 다음 장비가 나옵니다. 공간 분할로 속도를 얻었다면 이번에는 시분할 정밀란까지 되찾겠다는 장비였습니다. 정비란 시분할과 빠른 공간 분할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대신 둘을 하나로 합친 겁니다. 부엌으로 말하면 노즐이 순서를 지키는 꼼꼼함과 냄비가 옮겨다니는 빠르기를 한 장비에 담은셈이죠. 시공간 분할 TSD라고 부릅니다. 언론은이를 세계 최초로 보도했습니다.이 장비의 첫 공급처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미국의 반도체 연구 기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무렵 황철주 사장은 회사가 싸우는 방식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우리보다 40배 큰 기업과 싸우려면 직원 한 명이 40명을 이길만큼 효율을 내야 한다.

400명인 상대가 예측하지 못할 때 10명이 살아남을 수 있다. 자 한번 생각해 보세요. 다시 뺏큰 상대가 생각하지 못한 곳은 어디였을까요? 그 답은 다시 한번 내리막을 지난 뒤에 나옵니다. 2020년 주성의 매출은 전년 2,591억 원에서 1185억 원으로 54.2% 2% 줄었고 적자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드메인 2021년 SK 하이닉스가 공정의 새 재료를 드립니다. 하프 계열의 하이케 무질입니다. 하이케는 전기를 잘 붙잡아 두는 물질입니다. 10 안에서 전기를 잠시 담아두는 물탱크의 벽면을 더 단단한 재료로 바꾸는 일과 비슷하죠.

재료가 바뀌면 그 재료를 다룰 장비도 다시 골라야 합니다. SK 하이닉스는 장비를 내부에서 시험했습니다. 그 결과 국내 경쟁사 원익이수 장비에 하프닝 공정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이 나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업계 관계자의 말은 이렇게 보도되습니다. 원익 IPS 장비 성능이 문제 시대에 탈락한 것으로 한다. 30여대 물량은 모두 주성에 돌아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6년 공간 분할, 2014년 시공간 분할, 2021년 하이K 단독 수주. 주성은 10여년 동안 막을 입히는 방식을 차례로 바꿔 왔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모두 막을 쌓는 방식이었습니다.

다음 장비는 쌓는 방식을 버린 장비였습니다. 경기 용인에 주성의 아렌드 센터가 있습니다. 연구원 약 400명이 이곳에서 일합니다. 건물 4층과 5층 사이에는 계단 옆에 미끄럼틀이 놓여 있습니다.이 회사에는 창업 때부터 이어진 일과가 하나 있습니다. 매일 아침 1시 30분에 열리는 기술 회의입니다. 황철주는 30년 동안 아침 7시 전에 출근했고 회사에는 회장실이 따로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30년 동안 반도체업계에 막입히는 기술은 한 방향으로만 발전했습니다. 기체를 반시켜 막을 입히는 CBD에서 원자를 한 층씩 올리는 ALD로 방법은 달라도 원리는 쌓는 것이죠.

그런데 회로가 1n노m급으로 작아지자 쌓는 방식에 한계가 드러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AL드로도 막 두께가 구르지 않게 되고 입체 구조의 좁은 틈을 다 메우지 못하는 겁니다. 쌓지 않고 결정을 키우는 방법은 1960년대 초부터 있었습니다. 다만 1천도가 넘는 열이 필요했죠. 주성은이 조건을 뒤집었습니다. 원자를 위에서 내려는 대신 표면 에너지를 조절해 원자가 스스로 자리를 찾아 자하게 하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필요한 온도는 1000도 이상에서 400도 이하로 내려갔습니다.이 기술이 바로 원자층 성장 ALG입니다.이 차이는 앞에서 말씀드린 눈과 얼음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황철주의 표현을 다시 옮기면 이렇습니다. ALD가 눈처럼 쌓이는 방식이라면 ALG는 얼음처럼 단단하게 응집되는 구조. 쌓인 눈에는 틈이 많지만 얼어붙은 얼음에는 빈틈이 없죠. 그는 비율를 한 걸음 더 밀고 갔습니다. 얼음을 살음이나 통음처럼 여러 형태로 만들 수 있듯 기술을 활용하면 반도체도 3D 형태로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반도체를 짓는 방식은 집 짓기에 비될 수도 있습니다. 반도체 업계는 실리콘 웨이퍼라는 정해진 땅 위에 집을 더 많이 짓기 위해 한채의 평소를 계속 줄여왔습니다.이 단독 주택 방식을 끝까지 밀어붙이는데 쓰이는 장비가 극자외선 노강 장비입니다.

배당 수천억 원짜리 장비죠. 그런데 주성은 평수를 줄이는 대신 위로 올리는 고층 아파트 쪽을 택했다는 취지로 설명합니다. 회사와 언론은이 방식으로 노감과 시각 공정을 줄이면 이유 없이도 초미세 회로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항철주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가피싼 단결정 실리콘 웨이퍼 없이도 어떠한 기판에서든 트랜지스터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자 이제 판정의 날입니다. 2014년 세계 ALD 장비 시장 순위는 1위 네덜란드 ASM, 2위 일본 텔, 3위 미국 LAAM, 4위 주성입니다. ASM은이 시장의 55%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새 회사 모두 수십년 동안 기술을 쌓아온 실력자들이죠.이 가운데 결정을 키우는 방식의 트랜지스터 장비를 실제 고객에게 먼저 넘긴 곳은 어디였을까요? 2026년 5월 16일 주성은 ALG 트랜지스터 장비를 출화했습니다. 출화식 단체 사진은 신문에 실렸습니다. 고객은 삼성전자도 SK 하이닉스도 아닌 해외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입니다. 회사는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증권사 리포트를 인용한 보도에서는 북미의 디름 고객사가 거론됐습니다. 장비 가격은 한대 약 200억 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앞에서 기억해 두시라던 숫자를 꺼내 보겠습니다.

1995년 법인 첫회 주성의 매출은 13억 원이었습니다. 장비 한 대값이 그해 매출에 약 15배입니다. 결과를 나란히 놓으면 이렇습니다. 결정을 키우는데 필요했던 온도는 1000도 내려갔습니다. 2024년 개발에서 고객 공급까지 걸린 시간은 2년이었습니다. 세계 1, 2, 3위2가 같은 장비를 추화했다는 보도는 아직 없습니다. 1993년 퇴직금 3천만 원과 형제들의 돈 2천만 원으로 시작한 세계 4위 회사가이 장비를 먼저 내놓은 겁니다. 시장의 반응도 숫자로 남았습니다. 주성의 수주 장군는 3개월 만에 747억 원에서 2,336억 원으로 세배 넘게 늘었습니다.

그중 반도체가 2,144억 원입니다. 한 경제는이 장비 수요가 수십대에서 100대 이상으로 늘 수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100대의 대당 200억 원이면 2조원입니다. 주성이 최근 5년 동안 올린 매출을 모두 더한 1조 8,200억 원보다 큰 금액이죠. 황철조는이 장비가 지닌 의미를 2026년 7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지금까지 기존 기술을 싸게 만드는 식의 방식으로 성장해 왔고 그 결과 기준을 만들지 못했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혁신 기술을 가진 기업은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경쟁사가 없는만큼 가격을 직접 결정할 수 있다.

그가 오래 지켜온 말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가 아니면 생각도 하지 말고 세계 최고가 안 될 것이면 하지도 말라. 그런데 추라식 사진에 담기지 않은 숫자들도 있습니다. 같은 애 상반기 장부를 열면 추하 소식과는 다른 숫자가 보입니다. 그리고 2001년 겨울 13m 태극기 아래에서 내려진 결정 하나는 아직 다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2026년 10월 1일 주성 엔지니어링의 시가 총액이 장중 11조원을 넘어 코스닥 2위에 올랐습니다. 2003년 3월에는 470억 원이던 회사입니다. 23년 만에 약 234배가 된 겁니다. 이런 숫자를 들으면 이렇게 묻는 분이 계실 겁니다.

주가만 올랐지 실제로는 적자 아니냐? 장고만 보면 맞는 말입니다. 2025년 매출은 3,207억 원으로 24% 줄었습니다. 영업 이익은 313억 원으로 68% 줄었고 4분기에는 126억 원 영업 손실을 냈습니다. 2026년 1분기 영업 손실은 70억 원이었습니다. 2분기에 14억 원 흑자를 냈지만 상반기 전체로는 56억 원 손실입니다. 같은 기간 연구 개발비는 452.7억 원으로 매출의 39.45%였습니다. 5%였습니다. 더 불편한 숫자도 있습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이 부분을 거꾸로 알고 계십니다. 최근 주성 주가를 끌어올린 것은 태양광 기대감이었습니다.

그런데 2026년 상반기 태양전지 장비 매출은 영원이었습니다. 상반기 매출의 98.1%가 1%가 반도체에서 나왔습니다. 태양강 매출은 2023년 503억 원에서 2024년 100만 원, 2025년 2,300만 원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4년부터 태양광에 쏟은 연구비는 3,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성이 발표한 텐덤 태양전지 효율 33.09%도 세계 기록이 아닙니다. 중국 롱이가 2025년 4월 미국 국립 재생 에너지 연구소 인증을 받아 34.85%를 85%를 기록했고 2026년 7월에는 35.5%를 5%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은 질문도 있습니다. ALG 장비를 사간 고객 이름, 계약 규모, 매출이 언제 장부에 잡히는지는 모두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주성의 핵심 고객은 SK 하이닉스와 중국 CXMT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적어도 2021년까지 공시상 거래가 없었습니다. ALD 장비 시장에서도 주성은 1위가 아니라 4위입니다. 1위 ASM의 점유율은 55%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 숫자만 보면 의문이 생길 만합니다. 그런데이 의문들을 하나씩 짚어 보면 다른 그림이 나옵니다. 먼저 결국 4위 아니냐 하는 질문입니다. ASM은 원자층 증착 분야를 오래 이끌어온 회사이고 텔과 램도이 분야에서 수십년을 쌓은 실력자입니다.

4위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결정을 키우는 방식의 트랜지스터 장비를 고객에게 처음 넘긴 곳은 1, 2, 3위 중 어디도 아니었습니다. 새 회사가 같은 장비를 출화했다는 보도는 아직 없습니다. 순위표에서 넷째 칸에 있던 회사가 세 기술에서는 첫 번째로 출화한 겁니다. 다음은 적자인데 무슨 미래냐 하는 질문입니다. 앞에서 본 수주 장고를 다시 보시죠. 3개월 만에 747억 원에서 2,336억 원으로 늘었고 그중 2,44억 원이 반도체입니다. 장부에 적자가 찍힌 같은 시기에 고객들은 주문을 3배 넘게 늘린 겁니다. 그리고이 회사에서 이런 장부는 처음이 아닙니다.

2002년에는 100원을 벌면 126원을 연구했었고 2년 뒤인 2004년에 사상 최대 실적을 냈습니다. 2012년에는 매출의 73.3%를 3%를 연구했었고 이듬의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세 번째는 삼성도 안 쓰는 회사 아니냐는 질문입니다. 삼성과 다시 거래하느냐는 물음에 황철주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사서 쓰는 사람이 결정할 문제지 파는 사람이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실제로 장비를 산 회사들을 보면 이렇습니다. 2021년 SK 하이닉스는 내부 시험을 거쳐 하이케 장비 30여대를 주성에 맡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4년 주성 매출의 56%는 해외에서 나왔고 그의 새 고객 명단에는 미국 IBM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은 중국에 팔아서 먹고 사는 회사 아니냐는 질문입니다. CXMT가 핵신 고객인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주성 장비를 사간 해외 고객의 이력은 2004년 미국 IBM, 2014년 미국 반도체 연구 기관, 2026년 북미 고객으로 이어집니다. 중국의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2021년 8%에서 2025년 23.2%로 %로 올라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황철주의 말은 이렇습니다. 우리만 반도체 산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5만을 버려야 한다. 물론 부풀려서도 안 됩니다. 텐덤 태양 전지는 유니스트와 함께 낸 성과입니다. 창업 초기 첫 장비는 미국 진노스의 이름을 달고 납품됐습니다.

그래도 지울 수 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대만 법원 판결문에는 주성은 AMAT의 특허 치매 사실이 없다는 문장이 남아 있습니다. 결정을 키우는 트랜지스터 장비를 처음으로 고객에게 넘긴 회사의 이름도 기록에 남았습니다. 1993년 퇴직금 3천만 원과 형제들이 보 2천만 원으로 시작한 회사입니다. 그런데이 회사는 적자가 나도 연구비를 줄이지 않고 사람이 줄어드는 것을 가장 먼저 걱정합니다. 그 출발점을 보려면 2001년 겨울로 가야 합니다. 그 전에 2013년 봄에 있었던 일부터 보겠습니다. 2013년 3월 황철주는 박근혜 정부의 첫 중소기업 청장으로 내정됩니다.

그는 그 자리를 받아들인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중소기업 총장이 됐다는 것을 청년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중책을 맡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공직에 오르려면 주식을 백지 신탁해야 했고 그러면 2개월 안에 주성 지분을 팔아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2013년 3월 18일 그는 그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백지 신탁이 진행되면 우리 회사는 공중분해된다. 회사를 분해시키면서까지 직을 수락한다면 고객이나 주주 직원에게 너무 무책임한 것이다. 지분을 모두 팔았다면 700억 원대를 손해 질 수 있었다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주성은 믿고 투자해 주신 소액 주주들을 결코 외면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18년간 공드려 키운 회사가 자칫 하루 아침에 공중분해 될 수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700억원과 장관급 자리를 함께 내려놓은 셈입니다. 그가 이렇게까지 회사를 지키려 한다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12년 전 겨울 그는 회사를 넘길 뻔했거든요. 자, 2001년 12월 초로가 보겠습니다. IMF를 지나온지 몇 해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명예 퇴직과 구조 조종이라는 말이 매일 저녁 뉴스에 나오던 시절입니다. 그 시절을 겪으신 분들은 회사 복도에 돌던 소문이 어떤 무게였는지 기억하실 겁니다.

경기 광주 오포의 주성 분사에도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 회사 곧 깡통 찬다. 매출은 한해전 540억 원에서 499억 원으로 줄었고 첫 적자가 장부에 찍혔습니다. 직원들은 순렁했습니다. 선철주 사장이 임직원을 불러모았습니다.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말자. 돌이켜 보면 회사를 만들 때가 더 힘들었다.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 며칠 뒤 본사 건물에 가로 13m, 세로 9m짜리 태극기가 걸렸습니다. 그가 직원들에게 한 말은 이랬습니다. 태극기를 보며 한국 기술의 대표 선수라는 점을 느껴라. 대표인 우리가 이갓 어려움을 못 이기겠나? 직원들 앞에서는 이렇게 말했지만 사정은 더 어려웠습니다.

해외 업체가 회사를 사겠다는 뜻을 비춰왔습니다. 경영권을 넘기는 것까지 고민할만큼 상황이 나빴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이런 말까지 들었다고 회고합니다. 저만 물러나면 주성은 살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결국 그는 정리를 결심하고 해외 바이어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정리하겠다는 뜻을 직접 전하러 간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전혀 뜻밖의 일이 벌어집니다. 일본과 유럽 바이어들이 오히려 그을 말린 곳으로 전해집니다. 이번만 넘기면 계속 거래하겠다. 국산 딱지를 숨기고 미국 회사 이름으로 첫 장비를 팔아야 했던 회사였습니다.

그 회사를 해외 바이어들이 붙잡은 겁니다. 그는 돌아와 직원들에게 회사 사정을 숨김없이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2001년 겨울에 그 결정으로 단 한 명도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3년 동안 쌓인 영업 적자가 1,200억 원이었습니다. 2002년 매출 227억 원에 다섯 배가 넘는 금액입니다. 은행은 채권의수를 통보했고 그는 은행 문턱이 달도록 찾아다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을 줄이지 않기로 한 겁니다. 직원들은 스스로 남아 밤늦게까지 일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업계에는 주성은 사람을 안 자른다는는 말이 퍼졌습니다. 은행이 통구한 채권 회수는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2003년 LG필립스 LCD가 주성 장비의 성능을 인정해 대규모로 발주했고 은행도 다시 돈을 댔습니다. 2004년 매출은 1669억 원으로 전년 271억 원에 약 6배였습니다. 순익 340억 원을 내며 3년 적자를 끝냈습니다. 훗날 그는 그 겨울을 이렇게 돌아봤습니다. 함께 다시 일어서 보자고 한데 뭉쳐준 직원들이 무엇보다 큰 힘이었습니다. 2011년 주성의 직원 800명 가운데 600명이 연구직이었습니다. 건물 8계동 가운데 6계동이 연구 공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5년 뒤 황철조는 세 기술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눈처럼 사이는 것이 아니라 얼음처럼 단단하게 운집되는 구조라고 그 얼음을 만든 자리에는 2001년 겨울 태극기 아래에서 그가 한대 뭉쳐 준 사람들이라고 부른 직원들이 있었습니다.

다시 2026년 5월 16일입니다. 해외 반도체 기업으로 떠나는 ALG 장비 앞에서 추라식 단체 사진이 찍혔습니다. 장비 한 대값은 약 200억 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사진을 찍은 회사의 창업자는 젊은 시절 네덜란드 장비 회사에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한국이 무슨 반도체 장비를? 그는 한국 사람이 뭘한다고 나서라는 시선 속에서 삼성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이 될 일이 없는지 묻고 다녔습니다. 새벽 6시 서초동 정류장에서 삼성 기흥행 출근 버스를 탔고 밤 10시 막차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2001년 겨울 직원들에게 태극기를 보며 한국 기술의 대표 선수라는 점을 느끼라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긴 시간이 지난 2026년 그 회사의 장비가 해외 반도체 기업으로 출화됐습니다. 지금이 순간에도 경기 용인 R&D 센터에서는 연구원 약 400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기술회인는 창업 때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의 숙제도 남아 있습니다. 한 경제는 LG 장비 수요가 100대 이상으로 늘 수 있다고 내답았습니다. 또 중국이 태양광 장비 수출 제한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주성은 테슬라가 찾는 대한 공국처로도 거론됩니다. 다만이 둘은 아직 확정된 일은 아닙니다. 오늘 이야기가 의미 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함께 해 주세요.

그리고 여러분께 하나 묻고 싶습니다. 2001년 겨울 여러분이 황철주였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하나, 저만 물러나며 산다는 말대로 회사를 넘긴다. 둘, 바이어들의 2번만 넘기면을 믿고 사람을 지키며 버틴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도 댓글로 들려 주세요. 14m 태극기 판결 당일의 계약 세계 최초추라이 가운데 어떤 장면이 남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곧 깡통 찬다는 소문이 돌던 2001년 겨울 13m 태극기와 걸린 그 회사에서 일자리를 잃은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주성엔지니어링#환율#램리서치#CXMT#테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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