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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r Bearish · Title·요약 키워드 기준 · 주성엔지니어링

세계 1·2·3위보다 먼저 내놨다…한국이 출하한 200억 원짜리 ALG 장비|주성엔지니어링

경제의 설계도 · 2026-10-04 · 유튜브 시청 122,049 · Board Views 4 ·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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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SK하이닉스#주성엔지니어링#환율#램리서치#CXMT#테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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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미상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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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엔지니어링이 원자층 결정 성장(ALG) 트랜지스터 장비를 세계 1·2·3위 업체보다 먼저 해외 반도체 제조사에 출하했으며, 대당 약 200억 원으로 알려졌다. 회사의 창업 역사, 2000년대 LCD 장비 특허 분쟁과 대만 판결, 2001년 위기 극복 과정을 다룬다. 다만 영상은 2025~2026년 실적 악화(영업손실 지속), 태양광 매출 급감, 연구비 집중, 고객 미공개 등 불리한 지표도 함께 언급한다.

다듬은 글

※ AI가 다듬은 글(오탈자·군말 정리)

01. 한국에서 만든 나사 하나도 쓸 수 없다. 1990년대 반도체 업계에서 한국 장비를 두고 공공연히 돌던 말입니다. 그런데 2026년 5월, 바로 그 한국에서 만든 기계 한 대가 바다 건너 해외 반도체 기업으로 실려 나갔습니다. 세계 1·2·3위 장비 회사 가운데 어느 곳도 같은 기계를 내보냈다는 소식이 아직 없는 장비였습니다.

02. 2026년 5월 16일 출하식이 열렸습니다. 직원들이 장비 앞에 나란히 서서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틀 뒤 회사가 이 소식을 알리자 그날 주가는 상한가로 치솟았습니다. 장비를 사 간 곳은 삼성전자도 SK하이닉스도 아니었습니다. 해외의 한 반도체 제조사였습니다. 그 이름은 지금까지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03. 이 장비를 만든 회사는 주성엔지니어링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기계 한 대값은 약 200억 원입니다.

04. 이 기계의 이름은 ALD 트랜지스터 장비입니다. 트랜지스터는 전기를 켰다 껐다 하는 아주 작은 스위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손톱만 한 반도체 칩 하나에 이 스위치가 셀 수 없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이 스위치는 둥근 실리콘판, 즉 웨이퍼 위에 아주 얇은 막을 한 겹씩 입혀서 만듭니다.

05. 벽에 페인트를 한 번 칠하고 마르면 또 칠하는 모습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다만 여기서 입히는 막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얇습니다. 세상 모든 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알갱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원자를 한 층씩 쌓아 올리는 겁니다. 이 방식을 ALD라고 하며, 지금 세계 최첨단 공장들이 쓰는 기술입니다.

06. 주성의 방식을 이렇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기존 방식이 눈처럼 쌓이는 막이라면, 이 장비가 만드는 막은 얼음처럼 단단하게 엉겨 붙는 구조입니다. 마당에 쌓인 눈을 손에 쥐면 손가락 사이로 부서지는 것은 알갱이 사이에 틈이 많기 때문입니다. 반면 꽁꽁 언 얼음은 망치로 두드려야 깨질 만큼 빈틈이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막을 눈 쌓듯 쌓아 왔는데, 이 장비는 얼음이 얼어붙듯 알갱이를 단단하게 키워냅니다.

07. 더 놀라운 점도 있습니다. 이렇게 알갱이를 단단하게 만드는 데는 원래 1,000도가 넘는 고열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이 장비는 400도 아래에서 같은 일을 해냅니다.

08. 2024년 기준으로 이 막을 입히는 장비의 세계 1위는 네덜란드의 ASM, 2위는 일본의 도쿄일렉트론(TEL), 3위는 미국의 라움리서치(LAM)입니다. 주성엔지니어링은 4위입니다. 그렇다면 왜 4위 회사가 1·2·3위보다 먼저 이 문을 열었을까요?

09. 재미있는 사실은 세계 1위 ASM이 황철주 회장이 젊은 시절 몸담았던 회사라는 점입니다. 그곳에서 그는 "한국이 무슨 반도체 장비를?"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회고합니다. 그리고 훗날 ASM이 곧 문을 닫는다는 소문이 돌던 겨울, 그는 본사 건물에 가로 13m짜리 태극기를 내걸었습니다.

10. 황철주 회장은 경상북도 고령의 가난한 농가에서 육 남매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열 살에 서울로 올라왔고, 가족이 자리 잡은 곳은 동빙고동의 판자촌이었습니다. 그는 공업고등학교 전자과를 졸업하고 울산의 한 공장에 들어갔습니다. 그 시절 그는 "고졸 사원"이라는 설움을 겪었다고 말합니다. 같은 일을 해도 대우가 달랐고, 학력은 늘 따라다녔습니다.

11. 그는 그 자리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공업전문대학을 거쳐 인하대학교에 편입했고, 졸업 후 현대전자에 입사했습니다. 하지만 그곳 생활은 8개월 남짓으로 끝났습니다. 그는 "남의 말 듣고 심부름하는 사람이 아니라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12. 1986년 그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회사 ASM의 부름을 받습니다. ASM은 지금도 ALD 장비 분야 세계 1위이며, 점유율이 55%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3. 당시 한국의 사정은 이랬습니다. 웨이퍼 위에 회로를 새기고 막을 입히는 핵심 전공정 장비를 만드는 한국 회사는 사실상 없었습니다. 업계에서는 "장비 업체는 없고 해외 장비 업체의 대리점만 즐비한 암흑기"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입니다.

14. 그가 맡은 일은 뜻밖에도 영업이었습니다. 그는 술을 못 마셨고, 접대 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영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고른 방법은 단 하나였습니다. 매일 아침 6시 서울 서초동 정류장에서 기흥행 삼성전자 출근 버스에 올랐습니다. 기흥에 닿으면 삼성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도울 일이 없는지 물었고, 밤 10시 마지막 퇴근 버스로 서울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6시에 다시 같은 정류장에 서 있었습니다. 주말도 없이 이어진 하루였습니다.

15. 삼성 간부들은 이 남자를 보고 두 번 놀랐다고 합니다. 한 번은 이렇게 성실한 직원이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은 그가 삼성 직원이 아니라는 사실에.

16.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학연, 지연, 혈연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말고는 기댈 곳이 없지요. 성실하게 일하면 사람들이 믿을 만하다고 말해 줍니다."

17. 또 그는 외국인 기술자를 보조하며 곁에서 장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익혔습니다. 어느 날 장비가 고장 났을 때 그가 간단히 문제를 해결하자, 연구원들은 값비싼 장비를 직접 만질 수 있는 특권을 허락했습니다. 그는 이 시절이 창업의 밑거름이 됐다고 회고합니다. 각국 반도체 기업들의 일하는 방식을 배웠고, 비효율적인 부분을 눈여겨본 경험이 그대로 도움이 됐다는 것입니다.

18. 그가 독립을 꿈꾸며 아이디어를 꺼냈을 때 회사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바로 그 말, "한국이 무슨 반도체 장비를 만듭니까?"가 ASM 경영진에게서 나왔다고 그는 회고합니다.

19. 1993년, ASM이 한국에서 갑작스럽게 철수했습니다. 하루아침에 그가 갈 곳이 사라졌습니다. 손에 남은 것은 퇴직금 3,000만 원, 여기에 형제들이 모아 준 2,000만 원을 합친 5,000만 원이었습니다. 1993년 그는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러나 새 장비를 만들 돈도, 공장도 없었습니다.

20. 그래서 그는 남의 장비를 고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처음 찾아간 곳은 LG반도체였습니다. 그곳에는 지름 6인치 웨이퍼용 장비가 있었는데, 그는 이를 8인치 웨이퍼도 받을 수 있게 고쳐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장비를 새로 사는 것보다 비용을 60~70%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었습니다. 그는 며칠 밤을 새워 결과를 보여 줬고, 그렇게 고친 장비 두 대로 번 돈이 자기 장비를 만드는 밑천이 됐습니다.

21. 기계를 만들어도 팔 곳이 없었습니다. 국내 반도체 회사들은 공장도 없는 작은 회사에 일을 주지 않았고, 국산이라면 손사래부터 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때 황철주 회장이 택한 길은 의외였습니다. 그는 국내가 아니라 미국으로 갔습니다. 미국 장비 회사 지너스를 찾아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기술 판매권은 미국 회사가 갖고, 그 기술을 현장에 맞게 응용하는 일은 주성이 맡는다는 것이었습니다.

22. 이렇게 해서 주성은 장비 제조를 수주했습니다. 한국 회사가 만든 기계가 미국 회사의 이름을 달고 반도체 공장에 들어간 것입니다. 국산이라는 딱지를 떼자 비로소 기계의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생겼습니다. 1995년 주성은 법인 첫해에 매출 13억 원을 올렸습니다. 이 숫자는 이야기 끝 무렵 다시 나옵니다.

23. 그해 11월 주성은 첫 자체 장비를 내놓았습니다. HSG라는 공정에 쓰는 장비였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안에는 축전기, 즉 커패시터라는 아주 작은 부품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전기를 잠시 담아 두는 물탱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칩이 작아질수록 이 탱크도 작아지니, 같은 크기에서 더 많은 전기를 담을 방법이 필요합니다. HSG는 이 탱크 표면을 일부러 울퉁불퉁하게 만들어 저장 면적을 넓히는 기술입니다. 비닐과 수건을 물에 담가 보면 차이를 아실 겁니다. 수건 표면의 촘촘한 올이 물이 닿는 면적을 크게 늘려 주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24. 이 장비는 국내 최대 반도체 회사 삼성의 품질 검증을 통과했습니다. 해외 시장을 여는 일도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한 고객은 장비를 도로 가져가라고까지 했습니다. 주성은 장비를 그냥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기술을 찾아 업그레이드한 뒤 다시 보여 줬다고 전해집니다.

25. 1997년 11월, 주성은 반도체 전공정 장비를 국내 최초로 해외에 수출했습니다. 국내 반도체 3사가 들인 이 공정 장비는 모두 주성 제품이었습니다. 200mm 웨이퍼용 HSG 장비만 놓고 보면 세계 시장의 51%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7년 매출은 241억 원, 영업이익은 75억 원이었습니다. 100원어치를 팔 때마다 31원이 남은 셈입니다. 법인 첫해 매출 13억 원과 비교하면 2년 만에 매출이 약 18배로 뛰었습니다.

26. 그러나 그해 겨울 나라 전체가 외환위기에 빠졌습니다. 집집마다 금반지를 꺼내 줄을 섰고, 멀쩡하던 회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반도체 업계에서도 작은 업체들이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그 와중에 주성은 다음 기술로 나아갔습니다. 1999년 7월, 원자를 한 층씩 입히는 ALD 장비를 개발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눈과 얼음 이야기에서 '눈'에 해당하는 바로 그 기술입니다.

27. 그 무렵 주성은 코스닥에 상장했습니다. 공모가는 34만 원으로 당시로서는 사상 최대였습니다. 벤처 붐이 한창이던 시절, 주성은 '황제주'라 불렸습니다. 황철주 회장은 공모로 모은 돈을 거의 모두 연구개발에 쏟아부었습니다. 이때 반도체뿐 아니라 LCD 화면을 만드는 장비 개발에도 손을 댔는데, 이 결정이 훗날 회사의 운명을 바꾸게 됩니다.

28. 2000년 주성의 시가총액은 2조 원을 넘었습니다. 창업자금 5,000만 원의 4만 배입니다. 판자촌 소년이 세운 회사가 7년 만에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29. 그런데 바로 다음 해, 이 회사의 장부에서 가장 큰 고객의 이름이 사라졌습니다. 2001년 12월, 경기도 광주 공장에 "회사가 곧 깡통 찬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1년 전만 해도 황제주로 불리던 회사였습니다.

30. 발단은 주성의 최대 고객이던 삼성과의 거래 중단이었습니다. 원인을 두고는 지금도 양쪽 주장이 다릅니다. 훗날 한 언론은 거래 담당자 사이의 비리가 원인이었다고 보도했지만, 주성은 이런 의혹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숫자입니다. 2000년 540억 원이던 매출은 2001년 499억 원으로 줄었고, 이해에 처음으로 적자를 냈습니다.

31. 그 12월, 황 회장은 임직원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습니다. 며칠 뒤 오포 본사 건물에 가로 13m짜리 태극기가 올라갔습니다. 회사가 무너질지도 모르는 판에 국기부터 건 이유를 두고 그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장면은 아래 이어지는 흐름에서 더 자세히 짚어 볼 만합니다.)

32. 깃발을 걸었다고 사정이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2002년은 더 나빴습니다. 회의에서 신제품 이야기를 꺼내면 돌아오는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기존 제품을 개선하는 것도 벅찬데 적자 회사가 무슨 신제품 개발이냐"는 분위기였습니다. 황 회장의 대답은 한 줄이었습니다. "신제품 없이는 미래가 없다." 그는 공장을 넓히려고 사 둔 땅을 팔았고, 그 돈은 공장이 아니라 LCD 장비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33. 장부는 이랬습니다. 2002년 매출은 227억 원으로, 2년 전의 절반에도 못 미쳤습니다. 영업적자는 520억 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구개발비는 매출의 126.4%에 달했습니다. 100원을 벌어 126원을 연구에 넣은 셈입니다. 은행은 빌려준 돈을 회수하겠다는 통보를 보냈고, 황 회장은 은행을 찾아가고 또 찾아갔습니다.

34. 2003년 매출은 271억 원에 그쳤고, 적자는 3년 연속으로 이어졌습니다. 3년 동안 쌓인 영업적자는 1,200억 원이었습니다. 2003년 3월 주성의 시가총액은 470억 원까지 떨어졌습니다. 3년 전 몸값의 4분의 1에도 못 미쳤습니다. 경영권을 외부에 넘기는 문제까지 고민할 만큼 사정이 어려웠고, 한 해외 업체가 회사를 사겠다는 뜻을 비치기도 했습니다.

35. 그럼에도 황 회장이 밀어붙인 LCD 장비는 살아 있었습니다. 그가 만든 것은 PECVD, 우리말로 플라즈마 화학 증착 장비입니다. 거실 TV나 모니터의 LCD 화면은 커다란 유리판 한 장에서 시작하는데, 그 위에 머리카락보다 얇은 막을 여러 겹 입혀야 점 하나하나를 켜고 끄는 스위치가 생깁니다. 그 막을 입히는 기계가 바로 PECVD입니다. 장비 안에 가스를 넣고 전기를 걸면 가스가 활발한 플라즈마 상태가 되는데, 이 가스가 유리판 위에 내려앉아 얇은 막이 됩니다. 가스를 고르게 뿌려 주는 샤워기처럼 생긴 부품이 샤워헤드입니다.

36. 2002년 말 주성의 첫 LCD 장비가 시장에 나왔지만, 시장의 벽은 높았습니다. 미국 응용재료 회사(AMAT)의 자회사 AKT가 대형 LCD용 PECVD 시장을 쥐고 있었습니다. 5세대 이상 대형 유리판 장비에서 AKT의 점유율은 80%가 넘었습니다. 세계 LCD 공장에 들어가는 이 장비 열 대 가운데 여덟 대 이상이 AKT 제품이었다는 뜻입니다. 5세대 장비 한 대 값은 100억 원에 이르렀습니다.

37. 왜 다른 회사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했을까요? 유리판이 커질수록 어려움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작은 냄비에 국을 끓이면 금방 고르게 끓지만, 큰 솥에서는 가운데만 펄펄 끓고 가장자리는 미지근하기 쉽습니다. 유리판이 커지면 플라즈마가 판 전체에 고르게 퍼지기 어렵고, 막 두께가 달라지면 그 판에서 잘라 낸 화면에 얼룩이 생깁니다. 장비가 커질수록 내부 온도는 300~400도까지 올라가고, 샤워헤드 구멍이 열에 늘어나 가스가 고르게 나오지 않습니다. 게다가 판이 클수록 장비에 넣고 빼는 시간도 길어집니다. 대형 장비에 도전하는 회사는 이 두 가지, 균일성과 속도를 한꺼번에 풀어야 했습니다.

38. 2003년 8월, 주성은 6세대 LCD용 PECVD인 '유레카 6000'을 개발했습니다. 국내 업체가 6세대 장비를 개발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6세대 유리판은 가로 1,500mm, 세로 1,850mm로, 어른 한 사람이 누워도 자리가 남는 크기입니다. 큰 판 한 장에서 TV 화면을 여러 장 잘라 내기 때문에, 판이 클수록 화면 한 장의 값이 내려갑니다.

39. 주성 측은 기판이 커졌음에도 우수한 챔버 설계로 5세대와 거의 같은 플라즈마 균일도를 유지했다고 밝혔습니다. 속도에서도 성과가 있었습니다. 유리판을 옮기고 밀어 넣는 구조에 자체 특허 기술을 넣어, 5세대 장비보다 생산성이 오히려 25% 늘었다고 회사는 밝혔습니다. 솥을 키우면 국이 고르게 끓지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상식을, 더 큰 솥에서도 가장자리까지 고르고 빠르게 끓인 것으로 바꿔 놓은 셈입니다.

40. 6세대 장비는 5세대보다 25~50% 비싸게 팔릴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5세대가 대당 100억 원이었다면, 6세대는 대당 125억~150억 원짜리 기계입니다. 창업 10년 된 한국 회사가 이런 기계를 들고, 열 대 가운데 여덟 대를 AKT가 쥐고 있던 시장에 나섰습니다. 가장 큰 시장은 대만이었습니다.

41. 2003년 말, 주성은 대만에 5세대용 LCD 장비를 처음으로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80% 점유율의 거인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습니다. 2003년 10월부터 두 회사 사이에 공방이 시작됐고, 12월에 AKT 측은 대만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습니다. 가처분은 정식 재판 결론이 나기 전에 상대의 영업부터 멈춰 달라고 요청하는 절차입니다. 이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주성의 장비는 배에 실려 대만 항구에 도착해도 세관을 통과할 수 없게 됩니다.

42. 근거는 샤워헤드 기술의 특허였습니다. 주성이 이 기술을 침해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싸움은 법정 밖에서도 벌어졌습니다. 주성에 따르면, 당시 대만의 주요 LCD 회사와 중국 고객들이 장비 도입을 검토하던 바로 그때, AKT 쪽이 고객들에게 "주성 장비를 도입하면 나중에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말을 퍼뜨렸다고 합니다. 주성은 이를 영업을 방해하는 허위 사실 유포라고 주장했습니다.

43. 큰돈을 들여 공장을 짓는 회사가 소송에 걸린 장비를 들였다가, 판결이 불리하게 나와 그 기계를 쓰지 못하면 생산 라인이 멈춥니다.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고객은 서명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계의 실력이 아니라 소송과 소문으로 고객의 손을 묶어 두는 싸움이었던 셈입니다.

44. 주성은 가처분에 맞서 AKT를 대만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습니다. AMAT도 2004년 정식 특허 침해 소송으로 맞섰습니다. 대만 고등법원은 6개월 넘게 자료를 조사하고 관계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들은 뒤, 2004년 8월 18일 판결을 내렸습니다.

45. 판결은 AKT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날 주성은 공시를 냈습니다. 대만의 CMO(치메이)와 5세대용 LCD 장비를 추가로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소문 속에서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말이 돌던 바로 그 고객입니다. 수주 규모는 치메이 6대를 포함해 LCD 장비 9대, 차세대 5.5세대 장비 주문은 3,850만 달러로, 당시 환율로 약 522억 원이었습니다. 대만 시장에 들어간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46. 황철주 회장은 판결 직후 "이번 판결로 경쟁사와 소모적 경쟁이 아닌 기술 서비스 경쟁을 펼칠 수 있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또 "허위 사실 유포로 망설이던 고객들에게 주성 장비를 사도 문제가 없다는 확신을 줄 수 있게 됐다"고도 했습니다. 당시 언론은 외국 거대 장비 업체들의 특허 공세에 눌려 있던 국내 장비 업계가 이 판결로 자신감을 되찾았다고 평가했습니다.

47. 창업 초기의 주성은 이름을 빌려 장비를 팔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2004년 8월 대만에서 맺은 계약서에는 처음부터 주성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숫자도 달라졌습니다. 2003년 271억 원이던 매출은 2004년 1,669억 원이 되었습니다. 1년 만에 약 6배로 늘어난 것입니다. 순이익은 340억 원이었고, 3년 동안 이어진 적자가 이때 끝났습니다. 해외 매출 비중은 56%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48. 그러나 싸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처분은 막아냈지만, AMAT가 낸 정식 특허 소송이 남아 있었습니다. 2007년 4월, 주성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AKT와 국내 조립 회사를 상대로 특허권 침해금지 소송을 냈습니다. 문제 삼은 기술은 300~400도의 열에 샤워헤드 모양이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장비에 추가 구조물을 다는 기술이었습니다. 샤워헤드 기술을 베꼈다는 공격을 받던 회사가 이번에는 자기 특허를 들고 상대를 법정에 세운 것입니다.

49. 소송이 길어지는 동안 치른 대가도 컸습니다. 주성의 PECVD는 국내 LG디스플레이의 7세대와 8세대 라인에 꾸준히 들어가 성능과 안정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해외 수출은 부진했습니다. 대만과 중국 고객들이 AMAT와의 소송을 우려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알려졌습니다. 세계 최대 장비 회사는 왜 작은 한국 회사를 이토록 오래 법정에 붙잡아 두었을까요?

50. 한국에서 만든 나사 하나도 쓸 수 없다던 시절, 판자촌 출신의 한 엔지니어가 맨몸으로 시작한 회사는 세계 1위 장비 회사의 80% 점유율에 맞서는 자리까지 올라왔습니다. 1997년의 수출, 2003년의 적자, 2004년의 반전, 그리고 소송이라는 긴 싸움을 지나 2026년, 그 회사의 기계는 세계 1·2·3위보다 먼저 해외 공장으로 실려 나갔습니다.

51.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 반도체 공장이 아니라 경상북도 고령의 가난한 농가였다는 사실이 새삼 다가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이런 이야기를 계속 전하는 데 큰 힘이 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회사가 위기를 넘기며 쌓아 온 기술 경쟁과 그 뒤의 이야기를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52. 주성 측은 이 소송이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한 상대방의 영업 전략이었다고 봤습니다. 2011년 1월 10일 대만 지방법원은 일심 판결에서 주성의 장비와 기술이 AMAT가 특허 침해라고 주장하는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2013년 7월 31일 대만 특허법원도 항소심에서 주성이 AMAT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결했습니다. 가처분 신청이 처음 들어간 2003년 12월부터 따지면 10년 가까운 시간이었고, 일심 판결까지만 7년이 걸렸습니다. 일심 직후 주성 관계자는 "7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주성의 독자적 기술력이 제대로 입증받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기업의 기술을 두고 베꼈다는 의심이 있었지만, 대만 법원은 1심과 2심에서 세 차례 같은 답을 내놓았습니다. 법원보다 먼저 판결이 나온 바로 그날 서명으로 답한 곳도 있었습니다. 소송을 제기했던 곳이었습니다.

53. LCD 시장에서 주성은 표준을 쥐고 있던 거인을 넘어섰습니다. 그러나 반도체 시장에서는 황철주 사장이 젊은 시절 몸담았던 ASM이 여전히 1위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주성은 이 시장에서 반도체 업계가 당연하게 지켜온 순서를 버리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54. 대만 법정에서 특허 싸움이 7년 동안 이어지던 시기, 주성은 반도체 공정의 상식 하나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원자층 증착(ALD)은 먼저 가스 A를 넣고, 이를 완전히 빼낸 뒤, 퍼지(청소용) 가스로 청소를 마쳐야 가스 B를 넣을 수 있는 방식입니다. 원자 한 층을 올릴 때마다 이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에 정밀할수록 느렸습니다. 속도와 정밀도는 맞바꿔야 한다는 것이 그때까지의 상식이었습니다.

55. 부엌에 비유하면, 냄비 하나가 가스레인지 위에 가만히 있고 노즐 하나에서 고춧가루가 나온 뒤 끝나야 소금이, 그다음 설탕이 나오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시간을 나눠 가스를 뿌리는 시분할 방식입니다. 주성은 시간 대신 공간을 나눴습니다. 고춧가루 자리, 소금 자리, 설탕 자리를 따로 만들고 냄비가 그 자리를 옮겨 다니게 한 것입니다. 기다릴 필요가 없어집니다. 이 비유는 반도체 전문 매체 디일렉이 방식을 설명하며 쓴 것입니다.

56. 장비 안에서는 원형 모양의 가스 주입부가 회전하면서 원료 가스, 반응 가스, 청소용 가스를 동시에 뿌립니다. 밸브를 열고 닫을 필요가 없고, 웨이퍼 10장을 한 번에 처리합니다. 2006년 5월 공개된 공간 분할 장비 SD 12D입니다. 개발에 3년이 걸렸고 개발비는 300억 원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같은 시기 회사의 2003년 한 해 매출은 271억 원이었습니다. 그보다 많은 돈을 장비 하나에 쏟은 셈입니다. 이 장비는 대한민국 기술 대상 대통령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57. 황철주 사장은 이후 시련을 이렇게 돌아봤습니다. 태양광 경기가 꺾이면서 2011년 영업 손실은 37억 원, 2012년에는 매출 800억 원에 영업 손실이 838억 원이었습니다. 100원어치를 팔 때마다 105원을 잃은 셈입니다. 그럼에도 주성은 같은 해 연구 개발에 564억 원, 매출의 73.3%를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투자 전문 매체 더벨은 이를 역발상 투자라고 불렀습니다. 주성은 2013년 영업 이익 10억 원으로 흑자 전환했고, 2014년에는 영업 이익 96억 원을 냈습니다.

58. 2014년에는 다음 장비가 나왔습니다. 공간 분할로 속도를 얻었다면, 이번에는 시분할의 정밀함까지 되찾겠다는 장비였습니다. 시분할과 공간 분할 중 하나를 고르는 대신 둘을 하나로 합친 것입니다. 이를 시공간 분할(TSD)이라 부릅니다. 언론은 이를 세계 최초로 보도했습니다. 첫 공급처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미국의 반도체 연구 기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황철주 사장은 "우리보다 40배 큰 기업과 싸우려면 직원 한 명이 40명을 이길 만큼 효율을 내야 한다. 400명인 상대가 예측하지 못하는 곳에서 10명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59. 그러나 2020년 주성의 매출은 전년 2,591억 원에서 1,185억 원으로 54.2% 줄었고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2021년에는 SK하이닉스가 공정의 새 재료로 하프늄 계열의 하이케(HfO₂)를 도입했습니다. 하이케는 전기를 잘 붙잡아 두는 물질입니다. 재료가 바뀌면 이를 다룰 장비도 다시 골라야 합니다. SK하이닉스는 장비를 내부에서 시험했고, 국내 경쟁사 원익IPS 장비가 하프늄 공정 신뢰성에서 떨어진다는 결론이 나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장비 30여 대 물량은 모두 주성에 돌아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60. 2006년 공간 분할, 2014년 시공간 분할, 2021년 하이케 단독 수주. 주성은 10여 년 동안 막을 입히는 방식을 차례로 바꿔 왔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모두 막을 쌓는 방식이었습니다.

61. 경기 용인의 주성 R&D 센터에는 연구원 약 400명이 일합니다. 이 회사에는 창업 때부터 이어진 일과가 하나 있는데, 매일 아침 기술 회의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반도체업계의 막 입히기 기술은 30년 동안 한 방향으로만 발전해 왔습니다. 기체를 반응시켜 막을 입히는 CVD에서 원자를 한 층씩 올리는 ALD로 방법은 달라졌어도 원리는 쌓는 것이었습니다.

62. 그런데 회로가 1나노미터급으로 작아지자 쌓는 방식의 한계가 드러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ALD로도 막 두께가 고르지 않게 되고, 입체 구조의 좁은 틈을 다 메우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쌓지 않고 결정을 키우는 방법은 1960년대 초부터 있었지만 1천 도가 넘는 열이 필요했습니다. 주성은 이 조건을 뒤집었습니다. 원자를 위에서 내려놓는 대신 표면 에너지를 조절해 원자가 스스로 자리를 찾아 자라게 하는 방식입니다. 필요한 온도는 1,000도 이상에서 400도 이하로 내려갔습니다. 이것이 원자층 성장(ALG) 기술입니다.

63. 황철주 사장의 표현을 빌리면, ALD가 눈처럼 쌓이는 방식이라면 ALG는 얼음처럼 단단하게 응집되는 구조입니다. 쌓인 눈에는 틈이 많지만 얼어붙은 얼음에는 빈틈이 없습니다. 그는 얼음을 살얼음이나 통얼음처럼 여러 형태로 만들 수 있듯, 이 기술로 반도체도 3차원 형태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64. 반도체 업계는 실리콘 웨이퍼라는 정해진 땅 위에 집을 더 많이 짓기 위해 한 채의 평수를 계속 줄여 왔습니다. 이 단독주택 방식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데 쓰이는 장비가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입니다. 한 대에 수천억 원짜리 장비죠. 주성은 평수를 줄이는 대신 위로 올라가는 고층 아파트 쪽을 택했다고 설명합니다. 회사와 언론은 이 방식으로 노광과 식각 공정을 줄이면 초미세 회로를 더 쉽게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황철주 사장은 더 나아가, 값비싼 단결정 실리콘 웨이퍼 없이도 어떤 기판에서든 트랜지스터를 구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65. 2014년 세계 ALD 장비 시장 순위는 1위 네덜란드 ASM, 2위 일본 도쿄일렉트론(TEL), 3위 미국 램리서치, 4위 주성입니다. ASM은 이 시장의 55%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정을 키우는 방식의 트랜지스터 장비를 실제 고객에게 먼저 넘긴 곳은 어디일까요?

66. 2026년 5월 16일 주성은 ALG 트랜지스터 장비를 출하했습니다. 출하식 단체 사진은 신문에 실렸습니다. 고객은 삼성전자도 SK하이닉스도 아닌 해외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입니다. 회사는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고, 증권사 리포트를 인용한 보도에서는 북미 고객사가 거론됐습니다. 장비 가격은 한 대당 약 200억 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5년 법인 설립 첫해 주성의 매출은 13억 원이었으니, 장비 한 대 값이 그해 매출의 약 15배입니다.

67. 결과를 나란히 놓으면 이렇습니다. 결정을 키우는 데 필요했던 온도는 1,000도 낮아졌고, 2024년 개발에서 고객 공급까지 걸린 시간은 2년이었습니다. 세계 1, 2, 3위 업체가 같은 장비를 출하했다는 보도는 아직 없습니다. 1993년 퇴직금 3,000만 원과 형제들의 돈 2,000만 원으로 시작한 회사가 이 장비를 먼저 내놓은 것입니다. 시장 반응도 숫자로 남았습니다. 주성의 수주 잔고는 3개월 만에 747억 원에서 2,336억 원으로 세 배 넘게 늘었고, 그중 반도체가 2,144억 원입니다. 한 증권사는 이 장비 수요가 수십 대에서 100대 이상으로 늘 수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100대면 대당 200억 원으로 2조 원입니다. 주성이 최근 5년 동안 올린 매출을 모두 합친 1조 8,200억 원보다 큰 금액입니다.

68. 황철주 사장은 2026년 7월 이 장비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지금까지 기존 기술을 싸게 만드는 방식으로 성장해 왔고, 그 결과 기준을 만들지 못했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혁신 기술을 가진 기업은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경쟁사가 없는 만큼 가격을 직접 결정할 수 있다." 그가 오래 지켜온 말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가 아니면 생각도 하지 말고, 세계 최고가 안 될 것이면 하지도 말라."

69. 2026년 10월 1일 주성엔지니어링의 시가총액은 장중 11조 원을 넘어 코스닥 2위에 올랐습니다. 2003년 3월에는 470억 원이던 회사입니다. 23년 만에 약 234배가 된 셈입니다. 그러나 실적 장부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2025년 매출은 3,207억 원으로 24% 줄었고, 영업이익은 313억 원으로 68% 줄었습니다. 4분기에는 126억 원의 영업 손실을 냈습니다. 2026년 1분기 영업 손실은 70억 원이었고, 2분기에 14억 원 흑자를 냈지만 상반기 전체로는 56억 원 손실입니다. 같은 기간 연구 개발비는 452.7억 원으로 매출의 39.45%에 해당합니다.

70. 더 불편한 숫자도 있습니다. 최근 주가를 끌어올린 것은 태양광 기대감이었지만, 2026년 상반기 매출의 98.1%는 반도체에서 나왔습니다. 태양광 매출은 2023년 503억 원에서 2024년 100만 원, 2025년 2,300만 원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성이 발표한 탠덤 태양전지 효율 33.09%도 세계 기록은 아닙니다. 중국 롱기는 2025년 4월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 인증을 받아 34.85%를 기록했고, 2026년 7월에는 35.5%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71. ALG 장비를 사 간 고객의 이름, 계약 규모, 매출이 언제 장부에 잡히는지는 모두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주성의 핵심 고객은 SK하이닉스와 중국 CXMT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삼성전자와는 적어도 2021년까지 공시상 거래가 없었습니다. ALD 장비 시장에서도 주성은 1위가 아니라 4위이며, 1위 ASM의 점유율은 55%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72. 이 의문들을 하나씩 짚어 보면 그림이 조금 달라집니다. 먼저 "결국 4위 아니냐"는 질문입니다. 4위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정을 키우는 방식의 트랜지스터 장비를 고객에게 처음 넘긴 곳은 1, 2, 3위 중 어느 곳도 아니었습니다. 순위표에서 넷째 칸에 있던 회사가 이 기술에서는 첫 번째로 출하한 것입니다.

73. "적자인데 무슨 미래냐"는 질문에는 수주 잔고를 보면 됩니다. 장부에 적자가 찍힌 같은 시기에 고객들은 주문을 세 배 넘게 늘렸습니다. 이 회사에서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닙니다. 2002년에는 100원을 벌 때 126원을 연구에 썼고, 2년 뒤인 2004년에는 사상 최대 실적을 냈습니다. 2012년에는 매출의 73.3%를 연구에 쓰고도 이듬해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74. "삼성도 안 쓰는 회사 아니냐"는 질문에 황철주 사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사서 쓰는 사람이 결정할 문제지 파는 사람이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실제로 장비를 산 회사들을 보면, 2021년 SK하이닉스는 내부 시험을 거쳐 하이케 장비 30여 대를 주성에 맡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4년 주성 매출의 56%는 해외에서 나왔고, 그 무렵 고객 명단에는 미국 IBM도 있었습니다.

75. "중국에 팔아서 먹고 사는 회사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CXMT가 핵심 고객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주성 장비를 사 간 해외 고객의 이력은 2004년 미국 IBM, 2014년 미국 반도체 연구 기관, 2026년 북미 고객으로 이어집니다. 중국의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2021년 8%에서 2025년 23.2%로 올라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황철주 사장의 말은 이렇습니다. "우리만 반도체 산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 한편 탠덤 태양전지는 유니스트와 함께 낸 성과이고, 창업 초기 첫 장비는 미국 진노스의 이름을 달고 납품됐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 둘 만합니다.

76. 그래도 지울 수 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대만 법원 판결문에는 주성이 AMAT의 특허를 침해한 사실이 없다는 문장이 남아 있습니다. 결정을 키우는 트랜지스터 장비를 처음으로 고객에게 넘긴 회사의 이름도 기록에 남았습니다.

77. 이 회사는 적자가 나도 연구비를 줄이지 않고, 사람이 줄어드는 것을 가장 먼저 걱정했습니다. 그 출발점을 보려면 2001년 겨울로 가야 합니다.

78. 2013년 3월 황철주 사장은 박근혜 정부의 첫 중소기업청장으로 내정됐습니다. 그는 그 자리를 받아들인 이유를 "나 같은 사람도 중소기업 청장이 됐다는 것을 청년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중책을 맡기로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공직에 오르려면 주식을 백지 신탁해야 했고, 그러면 2개월 안에 주성 지분을 팔아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2013년 3월 18일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백지 신탁이 진행되면 우리 회사는 공중분해된다. 회사를 분해시키면서까지 직을 수락한다면 고객이나 주주, 직원에게 너무 무책임한 것이다." 지분을 모두 팔았다면 700억 원대를 손해 볼 수 있었다는 질문에 그는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믿고 투자해 주신 소액주주들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답했습니다.

79. 이렇게까지 회사를 지키려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12년 전 겨울, 그는 회사를 넘길 뻔했기 때문입니다.

80. 2001년 12월 초로 가 보겠습니다. IMF를 지나온 지 몇 해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경기 광주 오포의 주성 분사에도 "그 회사 곧 깡통 찬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매출은 한 해 전 540억 원에서 499억 원으로 줄었고, 첫 적자가 장부에 찍혔습니다. 황철주 사장은 임직원을 불러 모았습니다.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말자. 돌이켜 보면 회사를 만들 때가 더 힘들었다.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 며칠 뒤 본사 건물에는 가로 13m, 세로 9m짜리 태극기가 걸렸습니다. 그는 직원들에게 "태극기를 보며 한국 기술의 대표 선수라는 점을 느껴라. 대표인 우리가 이 같은 어려움을 못 이기겠나?"라고 말했습니다.

81. 직원들 앞에서는 이렇게 말했지만 사정은 더 어려웠습니다. 해외 업체가 회사를 사겠다는 뜻을 비쳐 왔고, 경영권을 넘기는 것까지 고민할 만큼 상황이 나빴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저만 물러나면 주성은 살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회고합니다. 결국 그는 정리를 결심하고 해외 바이어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일본과 유럽 바이어들이 오히려 그를 말렸다고 전해집니다. "이번만 넘기면 계속 거래하겠다." 국산 딱지를 숨기고 미국 회사 이름으로 첫 장비를 팔아야 했던 회사를 해외 바이어들이 붙잡은 것입니다.

82. 그는 돌아와 직원들에게 회사 사정을 숨김없이 설명했고, 2001년 겨울 그 결정으로 단 한 명도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3년 동안 쌓인 영업 적자는 1,200억 원이었습니다. 2002년 매출 227억 원의 다섯 배가 넘는 금액입니다. 은행은 채권 회수를 통보했고, 그는 은행 문턱이 닳도록 찾아다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을 줄이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직원들은 스스로 남아 밤늦게까지 일했다고 전해집니다. 업계에는 "주성은 사람을 안 자른다"는 말이 퍼졌습니다.

83. 2003년 LG필립스LCD가 주성 장비의 성능을 인정해 대규모로 발주했고, 은행도 다시 돈을 댔습니다. 2004년 매출은 1,669억 원으로 전년의 약 6배였고, 순이익 340억 원을 내며 3년 적자를 끝냈습니다. 훗날 그는 그 겨울을 이렇게 돌아봤습니다. "함께 다시 일어서 보자고 한데 뭉쳐 준 직원들이 무엇보다 큰 힘이었다." 2011년 주성 직원 800명 가운데 600명이 연구직이었고, 건물 여덟 동 가운데 여섯 동이 연구 공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5년 뒤 황철주 사장은 이 기술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눈처럼 쌓이는 것이 아니라 얼음처럼 단단하게 응집되는 구조다." 그 얼음을 만든 자리에는 2001년 겨울 태극기 아래에서 그가 "한데 뭉쳐 준 사람들"이라고 부른 직원들이 있었습니다.

84. 다시 2026년 5월 16일입니다. 해외 반도체 기업으로 떠나는 ALG 장비 앞에서 단체 사진이 찍혔습니다. 장비 한 대 값은 약 200억 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사진을 찍은 회사의 창업자는 젊은 시절 네덜란드 장비 회사에서 "한국이 무슨 반도체 장비를?"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삼성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이 될 일이 없는지 물었고, 새벽 6시 서초동 정류장에서 삼성 기흥행 출근 버스를 타고 밤 10시 막차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2001년 겨울에는 직원들에게 태극기를 보며 한국 기술의 대표 선수임을 느끼라고 했습니다.

85. 긴 시간이 지난 지금, 그 회사의 장비가 해외 반도체 기업으로 출하됐습니다. 물론 앞으로의 숙제도 남아 있습니다. 한 증권사는 ALG 장비 수요가 100대 이상으로 늘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또 중국이 태양광 장비 수출 제한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주성이 테슬라가 찾는 대체 공급처로도 거론됩니다. 다만 이 둘은 아직 확정된 일이 아닙니다.

86. 오늘 이야기가 의미 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께 하나 묻고 싶습니다. 2001년 겨울 여러분이 황철주였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첫째, "저만 물러나면 산다"는 말대로 회사를 넘긴다. 둘째, 바이어들의 "이번만 넘기면 계속 거래하겠다"는 말을 믿고 사람을 지키며 버틴다. 댓글로 의견을 남겨 주세요. 또 오늘 이야기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도 알려 주세요. 판결 당일의 계약 소식, 세계 최초의 출하, 아니면 13m 태극기 아래의 겨울 이야기 가운데 어느 장면이 남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곧 깡통 찬다는 소문이 돌던 2001년 겨울, 그 회사에서 일자리를 잃은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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