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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삼성이 걷던 길을 그대로 따라 하는 한 중국 회사가 한국 증시를 뒤흔들었습니다. 10월 13일 단 하루 만에 코스피가 5퍼센트 넘게 빠졌고 외국인은 4조 원 넘는 주식을 내다 팔았죠. 이 엄청난 폭락은 월스트리트의 거물이나 미국 중앙은행의 말 한마디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름조차 낯선 중국의 반도체 회사 CXMT가 한 학술대회에서 던진 폭탄 발언이 가장 큰 이유였거든요. 지금 CXMT의 행보는 과거 온갖 조롱을 뚫고 일본을 맹추격하던 옛 삼성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삼성전자마저 바짝 긴장하고 있죠.
그렇다면 점유율 1퍼센트도 안 되던 이 회사는 어떻게 단숨에 10퍼센트까지 몸집을 불린 걸까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메모리 반도체 기술을 도대체 어디서 얻어낸 걸까요?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는 CXMT는 1990년대 일본을 뛰어넘었던 과거의 삼성이 될까요? 아니면 삼성에 밀려났던 일본과 같은 길을 걷게 될까요? 끝까지 들으시면 한국 반도체가 긴장하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되실 겁니다. 자 그럼 10월 10일 세상을 놀라게 한 그 학술대회 현장으로 가 보겠습니다. 지난 10월 10일 중국의 한 학술대회 단상에 CXMT의 차오칸위 총재가 올랐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회사의 최근 행보는 43년 전 이병철 회장이 일본을 추격할 때 썼던 방식과 꼭 대체 그가 마이크를 잡고 무슨 말을 꺼냈길래 우리 주식 시장이 그토록 크게 출렁였을까요? 그의 입에서 나온 건 올 연말에 새로운 서버용 메모리를 내놓겠다는 짧은 선언이었습니다. 핵심은 4F 스퀘어라는 기술이었죠. 쉽게 말해 똑같이 좁은 땅에 아파트를 훨씬 더 촘촘하게 지어 한 번에 더 많은 데이터를 담는 설계 방식입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2028년 이후에나 내놓을 것으로 보는 초고난도 기술입니다. 그런데 CXMT가 이걸 당장 올 연말에 내놓겠다고 발표한 겁니다.
구체적인 성능이나 제품이 제대로 나오는 비율인 수율은 전혀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짧은 강연 한 번으로 던진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만 이 발표 하나에 덜컥 겁을 먹은 걸까요? 10월 13일 화요일 아침 휴대폰으로 주식 계좌를 열어 보신 분들 충격받으셨을 겁니다. 화면을 가득 채운 파란 숫자들 앞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어야 했던 아침이었죠. 그날 주식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7퍼센트 넘게 SK하이닉스는 10퍼센트 넘게 폭락했습니다. 불과 닷새 전 삼성전자가 막대한 흑자를 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도 정작 시장은 이름조차 낯선 중국 회사의 강연 한 번에 무너져 내린 겁니다.
여기서 참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정작 발표 당사자인 CXMT의 주가도 그날 장중 한때 5퍼센트 넘게 떨어졌거든요. 아직 돈이 될 만한 수율이 나오는지 대형 고객들이 사줄지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았다는 회의론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시장이 더 크게 흔들렸던 걸까요? 시장이 두려워한 건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이 회사가 덩치를 키우는 무서운 속도였습니다. 2023년만 해도 세계 D램 시장 점유율 1퍼센트도 안 되던 변방의 기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점유율을 10퍼센트까지 단숨에 끌어올렸습니다. 우리보다 한 세대는 뒤처진 줄 알았는데 어느새 등 뒤까지 바짝 쫓아온 겁니다.
돈은 사상 최대로 벌면서도 낯선 추격자의 말 한마디에 휘청이는 것. 이것이 바로 지금 한국 반도체가 서 있는 아슬아슬한 현실입니다. 저들은 도대체 무엇을 믿고 이토록 무서운 속도전을 벌이는 걸까요? 이 회사의 행보를 가만히 뜯어보면 왠지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역설적이게도 메모리 세계 1위인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너무나도 익숙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장면은 43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다만 그때 바짝 쫓기던 쪽은 반도체 제국 일본이었습니다. 무섭게 추격하던 쪽이 바로 이름조차 낯설었던 한국 기업 삼성이었습니다. 1983년 2월 8일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하던 일본의 심장부 도쿄.
일흔이 넘은 이병철 회장은 굳은 표정으로 무거운 결단을 내립니다. 우리 손으로 직접 첨단 반도체를 만들겠다는 이른바 도쿄 선언이었습니다. 이병철 회장의 자서전 호암자전에는 당시의 고뇌가 남아 있습니다. 막대한 설비 투자가 필요하고 기술 혁신 주기도 짧아 위험이 크다는 걱정이었죠. 그리고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험을 뛰어넘어 성공을 쟁취해야만 삼성의 내일은 열린다고 나는 확신한다." 삼성이 첫 목표로 잡은 건 다름 아닌 D램이었습니다. D램은 컴퓨터가 생각할 때 쓰는 작업용 책상과 같습니다. 책상이 넓을수록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더 빨리 처리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1980년대 세계 D램 시장은 80퍼센트를 일본이 꽉 쥐고 있었습니다. 소니나 도시바 같은 일제 가전제품을 집집마다 귀하게 모시던 시절이었죠. 워크맨 텔레비전 코끼리 밥솥 등 일제 제품 하나쯤 있는 게 부의 상징으로 통했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몸소 겪은 세대라면 그 시절 이병철 정주영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을 잘 아실 겁니다. 반도체 진출 결심이 알려지자 안팎에서 비웃음이 쏟아졌습니다. 텔레비전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최첨단 반도체라니 3년 안에 망할 거라는 독설이 파다했죠. 일본 미쓰비시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까지 냈다고 전해집니다.
한국은 내수 시장이 좁고 관련 산업도 약하며 도로나 전기 같은 기반 시설도 부족하다는 지적이었죠. 게다가 삼성의 덩치와 기술력 역시 빈약하다는 아주 냉정한 평가였습니다. 삼성은 먼저 반도체를 해본 회사에 도움을 청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싸늘한 거절뿐이었습니다. 당시 반도체 책임자였던 김광호 전 부회장의 회고를 보면 그 막막함이 잘 드러납니다. 사업 초기 그 누구도 선진 기술을 가르쳐 주려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아무도 안 가르쳐 주니 별수 있나요? 결국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큰 결단은 이병철 회장이 내렸지만 실제로 현장을 뛰며 사업을 일군 건 이건희 회장이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거의 매주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어떻게든 일본 기술자들을 만나 어깨너머로라도 배우려고 처절하게 매달렸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로부터 33년 뒤 중국 허페이에서도 제대로 된 기술 없이 메모리 사업을 시작한 회사가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를 바짝 쫓아오고 있는 바로 그 CXMT입니다. 다시 1983년의 삼성으로 돌아가 보죠. 삼성은 쏟아지는 비웃음 속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끝내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다른 곳에서라도 기필코 기술을 찾아내야 했습니다. 아무도 안 가르쳐 주던 그 복잡한 기술을 삼성은 도대체 어디서 얻어낸 걸까요?
그 답은 태평양 건너 미국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삼성의 개발자들은 또 한 번 굳게 닫힌 문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기술을 배우러 찾아간 미국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의 공장. 하지만 삼성의 개발자들은 끝내 그 굳게 닫힌 문을 넘지 못했습니다. 지금이야 첨단 기술을 빼앗길까 봐 문을 걸어 잠그는 쪽이 우리 기업들입니다. 하지만 43년 전에는 의심을 받고 쫓겨나는 쪽이 삼성이었죠. 삼성이 무작정 쳐들어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정당하게 돈을 주고 64K D램이라는 메모리 칩 기술을 사 오는 계약을 맺었는데도 찬밥 신세였습니다. 마이크론 공장에서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쫓겨나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핵심 기술을 훔치려 한다는 의심 때문이었죠. 반도체의 심장인 클린룸을 지을 때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클린룸은 먼지 한 톨 허용되지 않는 무균 수술실 같은 곳입니다. 미세한 먼지 하나만 닿아도 칩 전체가 불량 처리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대한 무균실을 짓는 건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방을 어떻게 짓는지 제대로 알려주는 곳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삼성이 손에 쥔 건 일본 업체에서 귀동냥으로 얻은 기본 개념 하나뿐이었습니다. 공기를 위에서 아래로 흘려보내야 한다는 개념이었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의지해 말 그대로 맨땅에 거대한 건물을 올려야 했죠.
당시 이병철 회장 곁에는 하마다 시게타카라는 일본인 기술 고문이 있었습니다. 이 회장은 그가 공장을 오갈 때 타라며 전용 헬기까지 내줬을 정도였죠. 훗날 하마다는 "제가 기술을 물려준 건 아닙니다" "그저 직분을 다했을 뿐"이라며 몸을 낮췄습니다. 그런데 중국 CXMT에도 비슷한 역할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독일에서 24년 동안 D램을 만든 기술자 카를하인츠 퀴스터스가 기술 고문으로 합류한 겁니다. 4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외국 기술자의 지식에 기대어 공장을 올린 두 회사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 보입니다. 자 다시 1983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잠도 자지 않고 이틀 밤낮을 꼬박 걸었던 107명의 개발자들이 있습니다. 64K D램 개발 성공을 다짐하며 64K라는 이름에 맞춰 무려 64킬로미터를 행군한 삼성의 기술진들입니다. 아마 발바닥이 다 부르텄을 겁니다. 집에도 못 가고 열정을 바친 그 선배들에게 지금의 우리가 참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도전은 어떻게 끝났을까요? 누구도 성공을 믿지 않았지만 이들은 기적 같은 속도를 보여줍니다. 외국에서는 1년 반 넘게 걸린다던 기흥 1라인 공장을 단 6개월 18일 만에 완공해 냈거든요.
그리고 마침내 개발을 시작한 지 다섯 달 남짓 만인 그해 12월 1일. 삼성반도체통신의 강진구 사장은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불과 6개월 만에 생산 조립 검사까지 모든 공정을 완벽하게 개발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64K D램을 만든 나라가 된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해 겨울 우리도 반도체를 만들었다며 저녁 뉴스가 떠들썩했던 걸 기억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듬해 가을에는 한 단계 더 큰 다음 칩까지 연이어 성공했습니다. 그러자 이병철 회장은 기흥으로 직접 내려와 개발자들을 끌어안으며 격려했다고 합니다.
선발 업체들보다 4년이나 늦은 출발이었지만 추격하는 속도는 이토록 매서웠습니다. 일본은 삼성이 64K D램을 만드는 데 최소 1년 반은 걸릴 거라 봤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절반도 안 되는 시간에 우리 손으로 그 어려운 칩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런데 피땀 흘려 기술을 완성하고 축배를 채 들기도 전에 또다시 숨 막히는 현실이 닥쳐옵니다. 반도체 가격이 순식간에 7분의 1토막으로 곤두박질치고 만 겁니다. 삼성이 피땀 흘려 만든 이 반도체 칩 하나를 생산하는 데 2달러 가까운 돈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3달러 넘게 팔리던 칩 가격이 50센트로 곤두박질치고 맙니다.
선두를 달리던 일본 기업들이 가격을 크게 내렸기 때문이죠. 팔면 팔수록 오히려 손해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기막힌 치킨게임이었습니다. 삼성은 순식간에 수천억 원의 막대한 적자를 떠안게 됩니다. 하지만 사실 그 사이 바다 건너에서는 거대한 판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1986년 9월 미국이 일본과 이른바 미일 반도체 협정을 맺은 겁니다. 일본산 반도체의 가격을 묶어버리고 굳게 닫혀 있던 일본 시장을 억지로 열어젖힌 협정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미국 인텔 역시 덩치가 커질 대로 커진 일본을 견제할 쓸모 있는 상대로 삼성을 눈여겨보고 있었죠.
그리고 회사가 말 그대로 숨넘어가던 1987년 8월 6일. 일흔일곱의 이병철 회장은 오히려 이렇게 지시합니다. "빨리 시작해라. 우리에게 정말 좋은 기회가 오고 있다." 벼랑 끝에 선 임원들의 등을 오히려 강하게 떠민 겁니다. 바로 다음 날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삼성은 세 번째 공장 라인의 첫 삽을 떴습니다. 그리고 석 달 뒤 이병철 회장은 눈을 감았습니다. 그토록 염원하던 공장이 완성되는 것을 끝내 보지 못한 채 말입니다. 이병철 회장을 정주영 회장과 함께 한국 경제의 진정한 거인으로 오래 기억해야 한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중국 CXMT의 행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시절 삼성의 독한 역발상이 묘하게 이 회사 역시 오랜 적자를 묵묵히 견뎠습니다. 그러더니 최근 상장을 통해 12조 원이 넘는 자금을 끌어모아 공격적으로 공장을 늘리고 있거든요. 그렇다면 삼성은 그저 미국의 협정 덕분에 일본을 이길 수 있었던 걸까요? 그렇게만 본다면 반쪽짜리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일본이 무너진 건 미국의 견제 때문만이 아니라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 이후 시장을 주도할 더 나은 기술을 내놓지 못해서라는 거죠. 1980년대 후반 삼성의 진대제 팀은 거대한 승부수를 던집니다.
당시 세계 1위였던 일본 도시바는 반도체 회로를 아래로 파고 내려가는 트렌치 방식을 택했습니다. 반면 삼성은 회로를 위로 쌓아 올리는 스택 방식을 선택했죠. 앞서 말씀드린 촘촘한 아파트 짓기를 떠올려 보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땅속으로 깊게 굴을 파서 창고를 넓힐 것인가 아니면 위로 층을 쌓아 올려 넓힐 것인가의 차이였습니다. 이 두 방식의 결과는 너무나도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반도체는 웨이퍼라는 둥근 판 위에 찍어 냅니다. 훗날 진대제 전 장관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웨이퍼 100장을 투입했는데 트렌치 방식은 다 불량이었죠.
스택은 열다섯 열여섯 장 살아나왔습니다." 땅을 파는 기술은 갈수록 한계에 부딪혔고 쌓아 올리는 기술은 끝없이 발전했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약간의 불량이 섞일 수밖에 없는 게 대량 생산의 현실입니다. 그 현실을 완벽을 추구하던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이 오히려 견디지 못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런데 삼성은 기술 하나로만 이긴 걸까요? 때마침 불어온 시대의 바람도 삼성을 도왔습니다. 1980년대 후반은 아이들 교육을 핑계 삼아 집집마다 큼지막한 데스크톱 컴퓨터를 처음 들여놓던 시절이었습니다. 개인용 컴퓨터가 퍼지면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었고 이것이 삼성에겐 천재일우의 기회였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 스택 방식을 뚝심 있게 밀어붙인 삼성은 4년이나 벌어져 있던 일본과의 기술 격차를 단 2년으로 좁혔습니다. 그리고 1992년 마침내 세계 최초로 64메가 D램 개발에 성공하며 기어코 일본을 넘어서게 됩니다. 도쿄에서 무모해 보이던 도전을 선언한 지 딱 9년 만에 만들어낸 기적이었습니다. 이듬해 삼성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섰습니다. 저녁 뉴스마다 반도체가 수출 효자라는 찬사가 쏟아지기 시작했죠. 반면 자리를 내준 일본 회사들은 하나둘 메모리 시장에서 밀려났습니다. 그리고 2012년 2월 27일 일본의 마지막 D램 회사였던 엘피다마저 파산을 신청하고 맙니다.
삼성이 일본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으며 걸어갔던 이 험난한 길. 과연 지금은 누가 이 길을 똑같이 걷고 있을까요? 80퍼센트. 2016년 중국 허페이시에서 이른바 506이라는 메모리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사업비의 80퍼센트를 댄 건 시 정부 쪽 투자사였습니다. 삼성이 걸어온 험난한 추격의 길을 그대로 따라 걷기 시작한 곳 바로 창신메모리 즉 CXMT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돌아온 창업자 주이밍은 도시가 쏟아부은 이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D램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엔 그들에게도 제대로 된 기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망한 회사의 기술에서 출발선을 찾았습니다.
2009년에 파산한 독일 반도체 기업 키몬다의 특허 7천 건을 쓰는 계약을 맺었다고 회사는 밝혔습니다. 게다가 키몬다에서 기술 부사장을 지낸 카를하인츠 퀴스터스를 아예 기술 고문으로 영입하기까지 했죠. 40여 년 전 삼성이 아무것도 없던 시절 일본인 기술 자문을 곁에 두었던 모습과 꼭 닮았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진 천문학적인 적자를 이들은 도시와 국가의 막대한 돈으로 버텨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5년에 처음으로 흑자를 냈습니다. 올여름에는 상하이 증시에 상장하며 12조 원이 넘는 실탄을 끌어모았습니다. 시장조사기관들은 올해 말 이 회사의 생산 능력이 삼성전자의 절반 수준까지 치고 올라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중국산 반도체는 싸구려"라며 거들떠보지도 않던 시절이 불과 엊그제 같은데 말이죠. 남이 버린 기술로 시작해 막대한 자본으로 적자를 버티고 공격적으로 공장을 늘리며 핵심 인재를 모으는 방식. 과거 이병철 회장이 일본을 이겼던 바로 그 방법으로 지금 CXMT가 삼성전자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과거의 삼성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딱 하나 있습니다. 그 핵심 인재와 기술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넘어갔느냐는 겁니다. CXMT의 급성장 뒤에는 기술 유출 의혹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습니다. 현재 법원에서는 이와 관련된 뼈아픈 재판이 이어지고 있죠.
삼성이 5년 동안 무려 1조 6천억 원을 들여 개발한 핵심 공정 기술이 있습니다. 검찰은 이 기술이 CXMT 측으로 고스란히 넘어갔다고 봅니다. 검찰에 따르면 이 회사는 삼성 출신 엔지니어들에게 거액을 내밀었다고 합니다. 퇴직 당시 연봉의 2배에서 4배 많게는 30억 원이었습니다. 다른 회사 이름을 방패막이로 내세워 인력을 데려간 경우도 있었다고 검찰은 봅니다. 실제로 삼성에서 28년간 일했던 한 직원은 기술 유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 중입니다. 삼성 출신들이 기술을 넘겨줬을 거라는 의심도 나오지만 섣부른 짐작은 접어두고 재판에서 드러난 사실만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정확히 무엇이 넘어갔다는 걸까요? 검찰이 주목하는 대목이 하나 더 있습니다. 또 다른 직원이 반도체 제조 공정 수백 단계를 노트 12쪽에 고스란히 손으로 옮겨 적어 갔다는 겁니다. 반도체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결국 수율입니다. 수율이란 쉽게 말해 빵 100개를 구웠을 때 타지 않고 제대로 완성된 빵이 몇 개인지를 나타내는 비율입니다. 그 수율의 성패를 좌우하는 황금 레시피 즉 공정 순서가 바로 그 노트에 적혀 있었다는 겁니다. 1983년의 삼성은 기술을 훔치려 한다는 의심만 받고 남의 공장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2016년에는 피땀 어린 기술이 적힌 노트가 바다를 건너갔다고 검찰은 봅니다.
법정에서 1심 유죄를 받은 전직 삼성 직원은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CXMT는 설립 당시 연구소도 설비도 없었으며 자체 연구를 통해 기술을 개발할 생각도 없었다." 피땀 흘려 독자 개발한 우리의 기술을 이제는 기필코 지켜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입니다. 기술을 빼돌렸다는 혐의를 다루는 재판은 아직 끝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는 벌써 우리 주식 시장을 흔들고 업계를 위협할 만큼 거대하게 자라버렸습니다. 막대한 자본을 손에 쥔 CXMT는 과연 과거의 기적을 이뤘던 삼성과 똑같은 결승선을 통과하게 될까요? 1980년대 막대한 정부 지원과 저가 공세로 세계 시장을 휩쓸었던 건 삼성이 아니라 일본이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금 CXMT의 모습은 43년 전 맨주먹으로 시작했던 삼성보다 그때의 일본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든든한 국가 자본을 등에 업고 시장을 쥐락펴락하던 그 일본 말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삼성과 지금의 CXMT 사이엔 아주 큰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미국이 누구 편에 서 있느냐입니다. 삼성이 일본을 맹렬히 추격하던 무렵이었습니다. 미국은 미일 반도체 협정이라는 칼을 빼들어 선두 주자였던 일본의 손발을 묶었습니다. 우리 기업의 등을 강하게 밀어주는 압도적인 순풍이 불어준 셈이죠. 하지만 지금 CXMT 앞에는 숨을 쉬기 힘들 만큼 거친 맞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미국 스스로도 자국 내 반도체 생산 능력을 줄여 왔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세계적 제조 강국인 한국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때의 일본은 미국 패권에 정면으로 도전했지만 한국은 선을 지키며 손을 잡아 왔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반도체라는 도화지에 아주 미세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얇은 붓이 있습니다. 바로 극자외선 노광장비라고 부르는 최첨단 기계입니다. 가장 촘촘하고 앞선 회로를 그리려면 전 세계에서 단 한 회사만 만들 수 있는 이 장비가 반드시 필요하죠. 하지만 이 결정적인 얇은 붓은 미국의 강력한 수출 규제 탓에 중국에 단 한 대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미국 국방부는 2025년 1월에 이어 올해 6월에도 CXMT를 중국군 관련 기업 목록에 올렸습니다. 압박의 수위를 높인 겁니다. 이 대목에서 시장의 평가는 엇갈립니다. 먼저 냉정하게 한계를 지적하는 쪽입니다. 키움증권은 이 회사가 아직 확실히 검증받지 못한 게 많다고 봅니다. 새로운 메모리의 본격적인 대량 생산도 돈이 되는 수율도 대형 고객사의 까다로운 품질 인증도 아직이라는 겁니다. 미국의 투자 분석 회사 모닝스타 역시 시간의 벽을 짚었습니다. 신제품을 발표하는 것과 실제로 수익이 나는 수율로 대량 생산하는 것 사이에는 꽤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겁니다.
얇은 붓이 없으니 뭉툭한 붓으로 여러 번 덧칠해야 하고 그만큼 불량이 발생할 위험도 커진다는 뜻입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필수적인 고성능 메모리 분야에서는 여전히 한국보다 한 세대 뒤에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대만의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도 연말 출시 목표가 특히 야심 차 보인다며 의구심을 나타냈습니다. 수율이 나오지 않으면 안 만드니만 못하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정반대의 경계론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이 기술 하나로 당장 삼성을 앞섰다고 볼 순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다만 한국과의 기술 격차가 어느새 3년 안팎으로 좁혀졌다는 사실 자체가 무섭다고 경고했습니다.
송세경 카이스트 겸임교수 역시 중국의 무서운 추격 속도를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 배터리가 더 앞선다며 안심하던 2차전지 때와 겹쳐 보인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기술 유출 의혹이 있든 없든 어느새 우리 등 뒤까지 바짝 쫓아왔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한국 반도체 업계가 바짝 긴장하는 진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 삼성이 탔던 순풍과 달리 CXMT는 미국의 거센 제재라는 맞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기어이 기술 격차를 3년까지 좁혀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사이 우리의 귀중한 인재와 기술이 바다를 건너갔다는 의혹까지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얇은 붓 없이 뭉툭한 붓만 쥐고서도 기어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며 성과를 내고 있는 그들의 무서운 뚝심. 그렇다면 당장 이 무서운 추격자들에게 시장을 빼앗기고 한국 반도체는 무너지는 걸까요? 트렌드포스가 발표한 올해 2분기 전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을 보겠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합쳐 무려 64.3퍼센트에 달합니다. 세계 시장의 열 개 중 여섯 개 이상을 여전히 한국의 두 회사가 꽉 쥐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 더해 세계적인 메모리 기업 마이크론의 대표도 전망을 내놨습니다. 2027년과 2028년에는 메모리 반도체가 지금보다 더 모자랄 거라고요.
적어도 당분간은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호황기가 이어질 거란 뜻입니다. 한때 한국에도 메모리 반도체 회사가 세 곳이나 있었습니다. IMF 외환위기 시절 LG반도체가 현대전자로 넘어갔습니다. 둘이 합쳐진 회사가 지금의 든든한 SK하이닉스 뿌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그 열에 여섯은 40년이 넘는 험난한 세월 동안 숱한 위기를 극복하며 겹겹이 쌓아 올린 방벽입니다. 이 거대한 방벽이 지금 한국 반도체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이 지킬 것은 무엇일까요? 장비나 기초 기술은 돈을 주고 사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갈림길에서 미래를 좌우할 다음 기술을 정확히 골라내는 통찰력은 결코 돈으로 사 올 수 없습니다. 그 기술을 실제로 구현해 내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43년 전 남의 공장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며 쫓겨나던 추격자가 있었습니다. 그 추격자가 이제는 세계 최정상에서 사람과 기술을 지키는 쪽이 되었습니다.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사람을 끌어모으면 누군가를 바짝 뒤쫓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선두에서 1위 자리를 지켜내는 힘은 전혀 다른 곳에서 나옵니다. 중국이 40여 년 전 우리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한다고 해서 똑같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벼랑 끝에 선 절박한 심정으로 수많은 갈림길에서 다음 세대의 기술을 과감히 골라냈던 결단이 있었습니다. 그 치열한 결단까지 복사해서 따라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반도체 호황은 수십 년 전 선배들이 밤잠을 설치며 만든 피땀의 결과라는 밤을 새워 가며 64킬로미터를 걷던 지독한 끈기.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으며 공장의 첫 삽을 뜨던 그 막막했던 날들. 그 간절했던 하루하루가 모여 지금의 단단한 성벽을 쌓아 올렸습니다. 10월 13일 아침 주식 시장의 그 서늘했던 파란 화면. 그 뒤에도 선배들이 쌓아 올린 성벽은 여전히 굳건히 버티고 있습니다.
1983년 추운 겨울 텔레비전 뉴스로 64K D램 개발 소식을 듣고 환호했던 세대가 있습니다. 기흥과 화성 공장의 꺼지지 않는 불빛 속에서 청춘을 다 바친 세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반도체가 들어간 스마트폰으로 지금 이 영상을 보고 계실 손주 세대도 있습니다. 이 세 세대는 결국 반도체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우리 반도체가 세상을 놀라게 했던 그날의 뉴스 여러분은 어떤 장면으로 기억하고 계신가요? 그 소중한 기억을 댓글로 함께 나눠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세계와 겨루는 한국 기술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으시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실전에서 통하는 경제 이야기 실전경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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