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미상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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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CXMT가 10월 10일 학술대회에서 4F 스퀘어 기술 기반 서버용 메모리를 연말 출시하겠다고 발표해 10월 13일 코스피가 5% 넘게 하락하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급락했다. 영상은 삼성의 1980년대 D램 추격 역사와 대비해 CXMT의 급성장(점유율 1%→10%, 상장 12조 원 조달)과 기술 유출 의혹 재판을 소개한다. 키움증권·모닝스타·트렌드포스는 수율·양산 검증 부족을 지적하고, 전병서 소장은 기술 격차가 3년 안팎으로 좁혀졌다고 경고한다. 한국 D램 점유율 64.3%와 2027~2028년 메모리 공급 부족 전망도 함께 언급된다.
다듬은 글
40년 전 삼성이 걷던 길을 그대로 따라 하는 한 중국 회사가 한국 증시를 뒤흔들었습니다. 10월 13일 단 하루 만에 코스피가 5퍼센트 넘게 빠졌고 외국인은 4조 원 넘는 주식을 내다 팔았습니다. 이 엄청난 폭락은 월스트리트의 거물이나 미국 중앙은행의 말 한마디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름조차 낯선 중국의 반도체 회사 CXMT가 한 학술대회에서 던진 발언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지금 CXMT의 행보는 과거 온갖 조롱을 뚫고 일본을 맹추격하던 옛 삼성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삼성전자마저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점유율 1퍼센트도 안 되던 이 회사는 어떻게 단숨에 10퍼센트까지 몸집을 불렸을까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메모리 반도체 기술을 어디서 얻어냈을까요?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는 CXMT는 1990년대 일본을 뛰어넘었던 과거의 삼성이 될까요, 아니면 삼성에 밀려났던 일본과 같은 길을 걷게 될까요? 끝까지 들으시면 한국 반도체가 긴장하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되실 겁니다. 그럼 10월 10일 세상을 놀라게 한 그 학술대회 현장으로 가 보겠습니다. 이날 중국의 한 학술대회 단상에 CXMT의 차오칸위 총재가 올랐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올 연말에 새로운 서버용 메모리를 내놓겠다는 짧은 선언이었습니다. 핵심은 4F 스퀘어라는 기술입니다. 쉽게 말해 같은 면적의 땅에 아파트를 훨씬 더 촘촘하게 지어 한 번에 더 많은 데이터를 담는 설계 방식입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2028년 이후에나 내놓을 것으로 보는 초고난도 기술인데, CXMT가 이것을 당장 올 연말에 내놓겠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구체적인 성능이나 수율은 전혀 밝히지 않았습니다. 짧은 강연 한 번으로 던진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만 이 발표 하나에 덜컥 겁을 먹었을까요? 10월 13일 화요일 아침 주식 계좌를 열어 본 분들은 충격을 받으셨을 겁니다. 그날 주식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7퍼센트 넘게, SK하이닉스는 10퍼센트 넘게 폭락했습니다. 불과 닷새 전 삼성전자가 막대한 흑자를 냈다고 발표했는데도, 시장은 이름도 낯선 중국 회사의 강연 한 번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상한 점도 있습니다. 발표 당사자인 CXMT의 주가도 그날 장중 한때 5퍼센트 넘게 떨어졌습니다. 수율이 돈이 될 만큼 나올지, 대형 고객이 사 줄지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았다는 회의론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 시장이 더 크게 흔들렸을까요? 시장이 두려워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이 회사가 덩치를 키우는 속도였습니다. 2023년만 해도 세계 D램 시장 점유율 1퍼센트도 안 되던 변방의 기업이 올해 점유율을 10퍼센트까지 단숨에 끌어올렸습니다. 한 세대쯤 뒤처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등 뒤까지 바짝 쫓아온 것입니다.
돈은 사상 최대로 벌면서도 낯선 추격자의 말 한마디에 휘청이는 것, 이것이 지금 한국 반도체가 서 있는 아슬아슬한 현실입니다. 저들은 무엇을 믿고 이토록 무서운 속도전을 벌이는 걸까요? 이 회사의 행보를 뜯어보면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메모리 세계 1위인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방식과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장면은 43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다만 그때 바짝 쫓기던 쪽은 반도체 강국 일본이었고, 무섭게 추격하던 쪽이 이름조차 낯설었던 한국 기업 삼성이었습니다. 1983년 2월 8일,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하던 일본의 심장부 도쿄에서 일흔이 넘은 이병철 회장은 굳은 표정으로 무거운 결단을 내렸습니다. 우리 손으로 직접 첨단 반도체를 만들겠다는 이른바 도쿄 선언이었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자서전 『호암자전』에 당시의 고뇌를 남겼습니다. 막대한 설비 투자가 필요하고 기술 혁신 주기도 짧아 위험이 크다는 걱정이었죠. 그리고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험을 뛰어넘어 성공을 쟁취해야만 삼성의 내일은 열린다고 나는 확신한다." 삼성이 첫 목표로 잡은 것은 D램이었습니다. D램은 컴퓨터가 생각할 때 쓰는 작업용 책상과 같습니다. 책상이 넓을수록 여러 일을 한 번에 더 빨리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세계 D램 시장의 80퍼센트를 일본이 쥐고 있었습니다. 소니, 도시바 같은 일제 가전이 집집마다 귀하게 모셔지던 시절이었습니다. 반도체 진출 결심이 알려지자 안팎에서 비웃음이 쏟아졌습니다. 텔레비전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최첨단 반도체라니, 3년 안에 망할 거라는 독설이 파다했습니다. 일본 미쓰비시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를 담은 보고서까지 냈다고 전해집니다. 내수 시장이 좁고, 관련 산업이 약하고, 기반 시설도 부족하며, 삼성의 기술력도 빈약하다는 냉정한 평가였습니다.
삼성은 먼저 반도체를 해 본 회사에 도움을 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싸늘한 거절뿐이었습니다. 당시 반도체 책임자였던 김광호 전 부회장은 사업 초기 그 누구도 선진 기술을 가르쳐 주려 하지 않았다고 회고했습니다. 결국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큰 결단은 이병철 회장이 내렸지만, 현장을 뛰며 사업을 일군 것은 이건희 회장이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거의 매주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기술자들을 만나 어깨너머로라도 배우려고 매달렸습니다.
기술을 얻는 길은 미국에서도 막혔습니다. 삼성은 정당하게 돈을 주고 64K D램 기술을 사 오는 계약을 맺었지만, 기술을 배우러 찾아간 미국 마이크론의 공장에서 개발자들은 끝내 굳게 닫힌 문을 넘지 못했습니다.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쫓겨나는 수모까지 겪었습니다. 핵심 기술을 훔치려 한다는 의심 때문이었습니다.
클린룸을 짓는 일도 막막했습니다. 클린룸은 먼지 한 톨도 허용되지 않는 무균 수술실과 같아서, 미세한 먼지 하나에도 칩 전체가 불량이 됩니다. 그런데 그 방을 어떻게 짓는지 알려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삼성이 손에 쥔 것은 일본 업체에서 귀동냥으로 얻은 기본 개념 하나, 공기를 위에서 아래로 흘려보내야 한다는 원리뿐이었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의지해 맨땅에 거대한 건물을 올려야 했습니다. 당시 이병철 회장 곁에는 일본인 기술 고문 하마다 시게타카가 있었는데, 이 회장은 그가 공장을 오갈 때 타라며 전용 헬기까지 내줬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CXMT도 비슷한 길을 걸었습니다. 독일에서 24년 동안 D램을 만든 기술자 카를하인츠 퀴스터스가 기술 고문으로 합류했습니다. 4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외국 기술자의 지식에 기대어 공장을 올린 두 회사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 보입니다.
1983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이틀 밤낮을 걸었던 107명의 개발자들이 있었습니다. 64K D램 개발 성공을 다짐하며 64K라는 이름에 맞춰 무려 64킬로미터를 행군한 기술진입니다. 외국에서는 1년 반 넘게 걸린다던 기흥 1라인 공장을 그들은 단 6개월 18일 만에 완공했습니다. 그리고 개발을 시작한 지 다섯 달 남짓 만인 그해 12월 1일, 삼성반도체통신의 강진구 사장은 기자들 앞에서 "불과 6개월 만에 생산 조립 검사까지 모든 공정을 완벽하게 개발했습니다"라고 발표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64K D램을 만든 나라가 된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듬해 가을에는 한 단계 더 큰 칩까지 성공했고, 이병철 회장은 기흥으로 직접 내려와 개발자들을 끌어안으며 격려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공의 축배도 잠시였습니다. 반도체 가격이 순식간에 7분의 1 토막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한 개를 만드는 데 2달러 가까이 들었는데, 3달러 넘게 팔리던 칩 가격이 50센트로 떨어졌습니다. 선두를 달리던 일본 기업들이 가격을 크게 내렸기 때문입니다. 팔면 팔수록 손해가 불어나는 치킨게임이었고, 삼성은 수천억 원의 적자를 떠안게 됩니다.
그런데 바다 건너에서는 거대한 판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1986년 9월 미국은 일본과 미일 반도체 협정을 맺어, 일본산 반도체의 가격을 묶고 굳게 닫혀 있던 일본 시장을 열어젖혔습니다. 미국 인텔 역시 덩치가 커진 일본을 견제할 상대로 삼성을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사가 숨넘어가던 1987년 8월, 일흔일곱의 이병철 회장은 오히려 "빨리 시작해라. 우리에게 정말 좋은 기회가 오고 있다"라고 지시했습니다. 벼랑 끝에 선 임원들의 등을 강하게 떠민 것입니다. 다음 날 장대비 속에서 삼성은 세 번째 공장 라인의 첫 삽을 떴습니다. 그리고 석 달 뒤 이병철 회장은 눈을 감았습니다. 자신이 염원하던 공장이 완성되는 것을 끝내 보지 못한 채였습니다.
일본을 이긴 것이 미국의 협정 덕분만은 아니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 삼성의 진대제 팀은 거대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당시 세계 1위였던 일본 도시바는 회로를 아래로 파고 내려가는 트렌치 방식을 택했습니다. 반면 삼성은 회로를 위로 쌓아 올리는 스택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땅속으로 굴을 파서 창고를 넓히느냐, 위로 층을 쌓아 넓히느냐의 차이입니다. 진대제 전 장관은 훗날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웨이퍼 100장을 투입했는데 트렌치 방식은 다 불량이었죠. 스택은 열다섯 열여섯 장 살아나왔습니다." 땅을 파는 기술은 한계에 부딪혔고, 쌓아 올리는 기술은 발전할 여지가 컸습니다.
여기에 시대의 바람도 불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은 집집마다 데스크톱 컴퓨터를 처음 들여놓던 시절이었고, 개인용 컴퓨터의 확산으로 메모리 수요가 크게 늘었습니다. 뚝심 있게 스택 방식을 밀어붙인 삼성은 4년이나 벌어져 있던 기술 격차를 2년으로 좁혔고, 1992년 마침내 세계 최초로 64메가 D램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도쿄에서 선언한 지 딱 9년 만이었습니다. 이듬해 삼성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 1위에 올랐고, 일본 회사들은 하나둘 메모리 시장에서 밀려났습니다. 2012년 2월 일본의 마지막 D램 회사 엘피다마저 파산을 신청했습니다.
2016년 중국 허페이에서 이른바 506 메모리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사업비의 80퍼센트를 댄 것은 시 정부 쪽 투자사였습니다. 삼성이 걸었던 추격의 길을 그대로 따라 걷기 시작한 곳이 바로 창신메모리, 즉 CXMT입니다. 처음에는 제대로 된 기술이 없었기에, 2009년 파산한 독일 반도체 기업 키몬다의 특허 7천 건을 쓰는 계약을 맺었다고 회사는 밝혔습니다. 키몬다의 기술 부사장 출신 퀴스터스를 기술 고문으로 영입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진 천문학적 적자는 도시와 국가의 막대한 자금으로 버텨냈고, 마침내 2025년 처음으로 흑자를 냈습니다. 올여름에는 상하이 증시에 상장해 12조 원이 넘는 자금을 끌어모았습니다. 시장조사기관들은 올해 말 이 회사의 생산 능력이 삼성전자의 절반 수준까지 올라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남이 버린 기술로 시작해 막대한 자본으로 적자를 버티고, 공격적으로 공장을 늘리며 핵심 인재를 모으는 방식. 과거 이병철 회장이 일본을 이겼던 방법과 같습니다. 다만 과거 삼성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핵심 인재와 기술이 어디서 어떻게 넘어갔느냐는 것입니다.
CXMT의 급성장 뒤에는 기술 유출 의혹이라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현재 법원에서 관련 재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검찰은 삼성이 5년 동안 1조 6천억 원을 들여 개발한 핵심 공정 기술이 CXMT 측으로 넘어갔다고 봅니다. 검찰에 따르면 이 회사는 삼성 출신 엔지니어들에게 퇴직 당시 연봉의 2배에서 4배, 많게는 30억 원을 제안했고, 다른 회사 이름을 방패막이로 내세워 인력을 데려간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삼성에서 28년간 일했던 한 직원은 기술 유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 중입니다.
검찰이 주목하는 대목은 또 있습니다. 다른 직원이 반도체 제조 공정 수백 단계를 노트 12쪽에 손으로 옮겨 적어 갔다는 것입니다. 반도체 생산의 핵심은 수율입니다. 빵 100개를 구웠을 때 제대로 완성된 빵이 몇 개인지를 나타내는 비율과 같습니다. 그 수율을 좌우하는 공정 순서가 그 노트에 적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1983년의 삼성이 기술을 훔치려 한다는 의심을 받고 공장에서 쫓겨났다면, 2016년에는 피땀 어린 기술이 적힌 노트가 바다를 건너갔다고 검찰은 봅니다. 1심에서 유죄를 받은 전직 삼성 직원은 "CXMT는 설립 당시 연구소도 설비도 없었으며 자체 연구를 통해 기술을 개발할 생각도 없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기술을 빼돌렸다는 혐의를 다루는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보면 지금 CXMT의 모습은 맨주먹으로 시작했던 43년 전 삼성보다, 든든한 국가 자본을 등에 업고 시장을 쥐락펴락하던 그때의 일본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두 시절 사이에는 큰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미국이 누구 편에 서 있느냐입니다.
삼성이 일본을 추격하던 무렵 미국은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선두 주자 일본의 손발을 묶었습니다. 우리 기업에 압도적인 순풍이 불어준 셈입니다. 지금 CXMT 앞에는 거친 맞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미국은 2025년 1월에 이어 올해 6월에도 CXMT를 중국군 관련 기업 목록에 올렸습니다. 최첨단 회로를 그리는 극자외선 노광장비는 미국의 강력한 수출 규제 탓에 중국에 단 한 대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반도체를 그리는 가장 얇은 붓이 없으니 뭉툭한 붓으로 여러 번 덧칠해야 하고, 그만큼 불량 위험도 커집니다.
그래서 시장의 평가는 엇갈립니다. 키움증권은 이 회사가 아직 대량 생산, 수익이 나는 수율, 대형 고객사의 품질 인증을 검증받지 못했다고 봅니다. 미국의 모닝스타 역시 신제품 발표와 실제 대량 생산 사이에는 긴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했습니다. 대만의 트렌드포스도 연말 출시 목표가 야심 차 보인다며 의구심을 나타냈습니다. 반면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이 기술 하나로 당장 삼성을 앞섰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한국과의 기술 격차가 3년 안팎으로 좁혀졌다는 사실 자체가 무섭다고 경고했습니다. 송세경 카이스트 겸임교수 역시 중국의 추격 속도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 배터리가 앞선다며 안심하던 2차전지 때와 겹쳐 보인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한국 반도체 업계가 긴장하는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CXMT는 미국의 제재라는 맞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면서도 기술 격차를 3년까지 좁혀 왔고, 그 사이 우리의 인재와 기술이 바다를 건너갔다는 의혹까지 있습니다. 가장 얇은 붓 없이 뭉툭한 붓만 쥐고서도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그들의 뚝심이 무섭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반도체는 무너지는 것일까요? 트렌드포스가 발표한 올해 2분기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을 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합쳐 64.3퍼센트에 달합니다. 세계 시장의 열 개 중 여섯 개 이상을 여전히 한국의 두 회사가 쥐고 있습니다. 세계적 메모리 기업 마이크론의 대표도 2027년과 2028년에는 메모리 반도체가 지금보다 더 모자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적어도 당분간은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호황기가 이어질 거라는 뜻입니다. 이 여섯 할의 점유율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숱한 위기를 극복하며 쌓아 올린 방벽입니다. 이 방벽이 지금 한국 반도체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장비나 기초 기술은 돈을 주고 사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갈림길에서 미래를 좌우할 다음 기술을 골라내는 통찰력과, 그 기술을 실제로 구현하는 사람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사람을 끌어모으면 누군가를 바짝 뒤쫓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선두에서 1위 자리를 지켜내는 힘은 전혀 다른 곳에서 나옵니다. 벼랑 끝에서 다음 세대 기술을 과감히 골라냈던 결단까지 복사해서 따라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반도체 호황은 수십 년 전 선배들이 밤잠을 설치며 만든 결과입니다. 밤을 새워 64킬로미터를 걷던 지독한 끈기, 장대비 속에서 공장의 첫 삽을 뜨던 막막했던 날들이 모여 지금의 단단한 성벽이 되었습니다. 10월 13일 아침 주식 시장의 서늘한 파란 화면 앞에서도, 그 성벽은 여전히 굳건히 버티고 있습니다.
1983년 텔레비전 뉴스로 64K D램 개발 소식을 듣고 환호했던 세대가 있습니다. 기흥과 화성 공장의 불빛 속에서 청춘을 바친 세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반도체가 들어간 스마트폰으로 지금 이 영상을 보고 계실 다음 세대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반도체가 세상을 놀라게 했던 날의 뉴스를 어떤 장면으로 기억하고 계신가요? 댓글로 그 기억을 나눠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세계와 겨루는 한국 기술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으시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실전에서 통하는 경제 이야기, 실전경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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