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오태민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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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을 발견·공부한 계기와 블록체인 기반 금융(탈중앙 신원인증, 은행 접근성 부족 해결)의 의미를 설명. 이더리움 ETF 승인을 기업들의 블록체인 도입 신호로 해석하며, 기업들이 중앙화된 기업형 블록체인을 만들 것이라 주장. 가격 전망 발언은 없음.
다듬은 글
비트코인 하나를 들고 눈보라와 비바람, 태풍까지 이겨내고 오늘 이곳에 와 주셨습니다. 오태민 작가님을 모시겠습니다. 선생님, 나와 주세요.
몇 년 전에는 코인 얘기를 하고 싶어도 들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시 다섯 살쯤이던 막내딸에게 과자를 사 주면서 "사도 씨, 아까 보또랑 아저씨가 있는데" 하며 얘기를 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 집에는 딸과 아들이 있는데, 아들이 엉뚱하고 재미있습니다. 그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 비트코인을 알려 주고 싶어서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 아빠가 이 비트코인을 갖고 있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아빠를 잡으러 올지도 몰라. 아빠가 도망을 가야 하니까, 사라지면 비트코인을 넣은 종이 지갑을 이 책에 넣어 둘 테니 너는 이걸 들고 외국으로 나가. 엄마랑 누나랑 동생을 꼭 불러야 돼." 아들은 듣더니 "꼭 불러야 돼"라고 하더군요. 혼자만 살겠다는 뜻이었으니 그때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아들이 지금은 군대에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나오라고 하니 목이 안 좋고 감기도 낫지 않는 등 부작용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유명하지 않아서 저를 괴롭히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요즘은 저에게 꽂혀서 어디를 가나 제 글이나 영상을 보며 욕하는 이들이 생겼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아내의 표정과 눈빛입니다. 제 아내 이야기 말고는 별로 할 얘기가 없는데, 아내에게 비트코인을 설명하면 아내가 헛기침으로 입 다물라는 신호를 보내곤 했습니다. 지금 와서 그 얘기를 하면 아내는 그냥 청소하려고 그랬던 건데 제가 오버해서 생각한 거라고 합니다. 그때는 비트코인 이야기만 꺼내면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10년 전 비트코인을 알게 된 계기는 마운트곡스 해킹입니다. 유명한 사건이죠. 당시 거래소가 파산 신청을 했습니다. 마운트곡스 사건이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비트코인을 무시하고 말았을 겁니다. 전 세계 투자자들, 일본 사람들이 모여 시위하는 장면은 사진으로 보셨을 겁니다. 그런 사건을 전하는 외신의 태도는 최근 우리 언론이 비트코인을 다루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람들이 황당한 사기에 말려들었다는 관점이었고, 민간인이 만든 코드 쪼가리에 돈을 주고 사느냐며 굉장히 비웃었습니다.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논문을 읽고 놀랐고,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하다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제가 비트코인을 발견한 것은 2월 말이었습니다. 3월 중에 깨닫고, 한 달 동안 쓴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한 달 만에 책을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속된 말로 뿅 갔던 것 같습니다. 잠도 못 자고 책을 썼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 사는 민수가 미국에 사는 친구 로즈에게 50만 원을 보내려 한다고 해 봅시다. 민수는 어떻게 돈을 전할까요?
첫째, 직접 전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려면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가서 로즈를 만나야 하는데, 비행기값이 50만 원보다 더 듭니다.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둘째, 은행 앱을 이용합니다. 민수는 계좌에 100만 원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로즈에게 50만 원을 보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한국의 은행 A는 민수가 돈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장부에서 민수의 계좌에서 50만 원을 뺀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은행 B에 "나중에 돈을 보내 줄 테니 먼저 로즈 계좌에 50만 원을 넣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B은행은 A은행을 믿고 로즈 계좌에 50만 원을 넣어 줍니다. 설령 A은행이 B은행에 돈을 갚지 못하더라도 로즈는 이미 돈을 받았습니다. 두 은행 간의 신뢰 관계가 민수와 로즈에게 지급의 최종성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인터넷 덕분에 과정은 매우 빨라졌지만, 이 거래에는 한국과 미국의 은행, 그리고 국가가 직접 개입합니다.
그래서 은행은 수수료를 청구할 수 있고, 국가도 은행에 수수료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친구끼리의 송금조차 사실은 복잡하고 거대한 이해관계가 얽혀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사실상 개인 간의 거래가 아닌 셈입니다.
이 과정을 비트코인으로 대신하면 어떨까요? 비트코인은 거래가 이루어지는 순간, 은행이나 국가 간 신뢰 시스템의 도움 없이 그 가치 그대로 상대방에게 전달됩니다. 민수가 로즈에게 직접 돈을 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요.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비트코인이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치가 없는 물건이라면 애초에 전달할 필요가 없겠죠. 이렇게 주고받음으로써 거래가 완료되는 가치물을 우리는 '지급의 최종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막 한가운데나 밀림 한가운데, 서울만 한 면적에 사람이 10만 명 정도밖에 살지 않는 곳에는 은행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곳 사람들은 금융에서 소외됩니다. 평생 은행 통장 하나 없이 사는 사람이 전 세계 인구의 약 1분의 1 정도라고 합니다. 이슬람권에서는 이슬람법에 따라 여성이나 아이들이 금융에 접근하기 어렵고, 신원 등록이 아예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국의 흑자녀 문제도 있습니다. 한 자녀 정책 때문에 시골 사람들이 대도시 호적을 사서 둘째를 낳았는데, 그 아이들은 호적이 없습니다. 제가 공부하던 10년 전에도 그 흑자녀의 수가 1억 명이라고 했고, 그들은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라 어른입니다. 신원 인증이 없으니 은행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있다면 블록체인이라는 탈중앙화된 인증 시스템 아래에서 하나의 독립적인 은행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신원 인증은 주민등록이나 여권으로 하는 국가 차원의 신원 확인과는 개념이 다릅니다. 민간의 교류에서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나와 게임을 했던 그 사람이 맞는가", "내 강의를 듣고 학점을 땄던 그 학생이 맞는가" 같은 행적에 대한 인증입니다. 블록체인은 바로 이런 행적을 인증하는 기술입니다. 물론 중앙화된 시스템에서도 신원 인증은 쉽습니다. 중앙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바로 그 중앙이 문제가 됩니다. 여기서 중앙은 정부의 공인 기관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은행이나 사기업이 고객의 정보를 독점하면, 그들도 국가를 넘어설 만큼의 개인 정보를 쥐게 됩니다. 초국적 IT 기업들이 이것으로 빅데이터를 만들고, 중앙이 정보를 중립적으로 쓰지 않고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편취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구글이나 애플 같은 미국 기업에 여러 법적 근거를 들어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합니다. 블록체인은 이렇게 개인 정보를 중앙이 독점하는 것을 억제할 수 있는 대안이 됩니다. 게다가 블록체인은 신원 인증뿐 아니라 가치를 직접 이동시킬 수도 있습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이 그런 형태입니다. 스마트폰은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한국처럼 금융이 매우 발달한 곳에서도 이미 은행이 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준비는 되어 있는데 왜 안 하느냐고요? 사회적 압력, 규제, 편견 때문입니다. 결국 누가 먼저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스마트폰을 전 세계에 가장 많이 퍼뜨린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그저 기계를 뿌려 놓은 것이 아니라 잠재적인 금융 단말기를 뿌려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부 차원에서 길을 열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닙니다. 코인이나 블록체인이라면 무조건 투기라며 억제하려고만 합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기업 입장에서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기회가 왔습니다.
올해 4월 미국 금융 규제기관 SEC가 비트코인뿐 아니라 이더리움 ETF를 승인했습니다. 이더리움의 의미는 큽니다. 비트코인은 창시자 사토시가 사라졌기에 미국 정부가 공격할 타깃이 없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더리움에는 비탈릭 부테린이라는 존재와 재단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탄압하는 대신 승인을 했습니다. 이것은 구글이나 애플, 삼성전자에 메시지를 주는 것입니다. "19살 청년이 만든 것도 10년이 지나 인정을 받는데, 구글이나 아마존, 애플만 왜 못 하느냐"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들도 무언가를 만들 것입니다. 이더리움처럼 화폐를 만든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블록체인 기반의 신원 인증 시스템을 만들 겁니다. 애플이나 삼성전자는 단말기를, 페이스북이나 구글은 앱을 갖고 있고, 모두 각자의 커뮤니티와 생태계가 있습니다. 그 생태계에서 사용되는 화폐를 블록체인으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 파란 신호등이 켜진 순간이 바로 올해 4월 SEC의 이더리움 ETF 승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업들은 고객들의 금융 자산을 블록체인화하고 싶을 겁니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의 포인트나 대한항공의 마일리지가 블록체인을 통해 금융 시장에서 이동할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다만 기업은 고객의 자산을 어떤 장부에 기록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새 코인을 발행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탈중앙화 블록체인을 만들 수도 있고,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중앙화된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탈중앙화 시스템을 택하면 기업은 리스크를 떠안게 됩니다. 코인이 필요하고, 그 가격이 오르내릴 때마다 투자자와 대중의 비난을 받게 됩니다. 이른바 코인 부추기기라는 비난이 무섭기 때문에 기업은 탈중앙화 시스템을 꺼립니다. 그래서 더 안전한 선택을 합니다. 허가받은 사람만 구동하는 중앙화된 블록체인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블록체인 기술만 채택하고 가격이 안정된 코인을 쓰면, 투기를 부추겼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습니다. 형태가 탈중앙이든 중앙화든, 결국 기존 대기업들은 자신들만의 기업형 블록체인을 만들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은행은 블록체인으로 금융을 효율화하고, 무역 기업은 성장 처리를 투명하고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정부도 이를 막지는 못할 것입니다. 탄압은 있었죠. 비난하거나 어용 학자를 내보내 국민들이 비트코인을 멀리하게 하고, 빨리 팔라고 종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비트코인은 살아남았고, 빅테크 기업들도 결국 비트코인의 시대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페이스북의 리브라 사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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