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경제탐사대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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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증시가 휴전·호르무즈 통행료 합의 기대로 사상최고치를 경신했으나, 실적 발표 기업 스페이스X(-10%)와 AMD(-7%)는 설비투자 부담으로 하락. 발표자는 AI 인프라 병목이 메모리(반도체)·전력으로 넘어갔다며 메모리 호황을 강조하고 SK하이닉스·삼성전자를 긍정적으로 봄. 다만 AI 투자 중단, 중국 CXMT 추격, 메모리 가격 상승에 따른 세트 업체 타격, 협상 결렬 시 유가 재상승 리스크를 함께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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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휴전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전 세계가 이란에 통행료를 내는 겁니다. 미국 시간 8월 4일,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릴 수 있다는 소식 하나에 국제 유가가 5.76% 무너졌습니다. 다우는 이틀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완벽한 축제의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축제의 밤에 실적을 공개한 두 회사만 시간 외에서 얻어맞았습니다. 스페이스X는 10% 빠졌고, AMD도 7% 미끄러졌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시장 전체가 사상 최고치를 향해 달리는 날, 하필 실적을 공개한 기업만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이야기는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닙니다. 이 두 회사가 쓰는 돈은 여러분 계좌에 있는 국내 반도체 실적과 한 몸으로 묶여 있습니다.
먼저 숫자 하나를 짚겠습니다. AMD가 2분기에 공장 건설에 쏟아부은 돈은 월가가 예상한 금액의 정확히 세 배였습니다. 그럼 아까 말한 통행료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뉴욕타임스가 전한 합의안의 내용을 뜯어보면, 그날 밤 월가는 통행세를 걷는 쪽이 누구인지 이미 정해 버린 듯합니다. 소름 돋는 점은 그 명단 맨 위에 여러분 계좌에서 가장 속을 썩였던 한국 주식이 올라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이 요금소 게임의 규칙, 누가 통행세를 내는 호구이고 누가 요금소 주인인지 하나하나 풀어 드리겠습니다.
다우는 1.72% 올라 이틀 연속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습니다. 나스닥과 S&P 500도 나란히 역사적 고점을 경신했고, S&P 500은 6월 이후 처음으로 그 자리에 올랐습니다. WTI는 배럴당 70달러대로 주저앉았고, 유가가 꺾이자 국채 금리도 장단기를 가리지 않고 따라 내렸습니다. 반도체는 잔치판이었습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하루에 6.5% 뛰었고, SK하이닉스 ADR은 8% 넘게 올랐습니다. 마이크론은 시가총액 1조 달러 클럽에 다시 입성했습니다. 환율은 달러당 1,420원대였는데, 이때 베선트 재무장관이 원화에 대해 과도한 변동성을 목격해 왔다고 콕 집어 언급했습니다. 미국 재무장관의 입에서 원화가 직접 거론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장이 마감된 뒤 스페이스X는 상장 후 첫 분기 실적을, AMD도 성적표를 발표했고, 결과는 둘 다 시간 외 하락이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신문 1면에 나오는 표면입니다.
휴전 기대감의 실체부터 보겠습니다. 시작은 6월 15일입니다. 이란과 오만이 호르무즈 통행에 관한 양해각서를 조용히 체결했습니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나흘 만에 발끈했습니다. 포장을 해도 이건 통행료 아니냐는 것이었죠. 트럼프 대통령도 처음에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그런데 8월 들어 기류가 확 바뀌었습니다. 베선트 장관이 CNBC에서 이르면 하루 이틀 안에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고, 중재국 카타르도 합의 초안이 마련됐다고 확인했습니다. 이 한마디에 WTI는 5.76% 무너졌고, 하루 만에 배럴당 70달러대로 내려앉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은 뉴스가 맞습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 보도를 보면, 두 나라는 이미 항로 지도까지 교환한 상태입니다. 이란은 기존 국제 항로를 폐지하고 자신들이 설계한 새 항로를 깔겠다는 입장이고,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기뢰 제거 작업에 유럽 국가들의 참여를 허용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입니다.
이란이 갑자기 관대해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제 이 바다가 자기 사업장이 됐기 때문입니다. 수수료 명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환경 보호, 안전 관리, 인력 배치 비용입니다. 통행료라는 단어를 트럼프 대통령이 하도 싫어하니 이름표만 바꿔 단 것입니다. 더 웃긴 건 트럼프 대통령 본인의 반응입니다. 그는 이 수수료 사업을 이란과의 합작 벤처로 가져갈 수 있다면서 직접 "아름다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통행료의 20%를 받겠다는 얘기까지 나왔고, 절대 불가를 외치던 사람이 지분 협상을 하고 있는 겁니다. 말이 되냐는 말입니다. 몇 달째 아파트 단지 정문을 트럭으로 막고 있던 조폭이 어느 날 경비복으로 갈아입고 주차비를 걷기 시작한 셈이고, 그 주차비의 20%를 관리사무소가 나눠 갖기로 한 것입니다.
국제위기그룹의 이란 전문가 알리 바이즈는 이 상황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이길 수 없는 전쟁과, 받아들이기 불쾌한 평화 중에서 골라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미국은 왜 이렇게까지 급하게 손을 내밀었을까요? 골드만삭스 집계를 보면, 전 세계 석유 재고가 2주 동안 하루 630만 배럴씩 증발했습니다. 한국이 하루에 쓰는 원유가 250만 배럴쯤이니, 우리나라 이틀 반 치 소비량이 매일 장부에서 사라지는 속도입니다.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름값 상승은 정치 생명이 걸린 문제이고, 이란은 이를 정확히 알고 버티며 시간을 벌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일까요? 국제사회가 이란의 해협 통제권을 사실상 인정해 주는 평화입니다. 뉴욕타임스가 정확히 그렇게 썼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정말 주목해야 할 부분은 유가가 아닙니다. 병목을 쥔 놈이 통행료를 걷는다는 이 공식이 지금 바다 밖에서 훨씬 더 큰 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판은 여러분의 계좌와 직결돼 있습니다.
사상 최고치 랠리가 그저 휴전 기대감에 취한 거품일까요? 실적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팔란티어는 미국 상업 부문 매출이 149% 폭증하면서 하루 만에 주가가 29.45% 뛰었습니다. 소프트웨어가 AI에 잡아먹힐 거라는 공포를 실적으로 뭉개 버린 것입니다. 현재 S&P 500 기업의 55%가 예상치를 웃돌고 있습니다.
제가 흥미롭게 본 기업은 캐터필러입니다. 굴삭기와 발전기를 만드는 회사죠. 분기 매출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200억 달러를 넘겼습니다. 그중 발전 부문 매출은 1년 만에 72% 폭증했고, 수주 잔고는 우리 돈으로 약 100조 원어치, 역대 최고입니다. 조 크리드 최고경영자는 실적 발표에서 고객들이 벌써 2029년, 2030년 물량까지 주문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지금 발전기를 주문하면 2028년은 돼야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일감이 몇 년 치나 밀린 것입니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요? AI 판의 진짜 병목이 반도체에서 전기로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미국 전력망 접속을 기다리는 프로젝트가 8,200건이고, 중간값으로 5년 넘게 기다려야 합니다. 텍사스는 접속 요청이 1년 만에 네 배로 불어났고, 그래서 데이터센터 공사가 무더기로 멈췄습니다. 전기를 구하지 못해 멈춘 프로젝트만 75곳, 금액으로는 약 180조 원입니다. 돈은 있어도 짓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유가 급락이 국채 금리를 끌어내렸고, 필라델피아 연준 총재는 지금 금리 수준만으로도 물가를 목표치까지 낮추기에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실적은 좋고, 유가는 내리고, 금리도 내려갑니다. 사상 최고치는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상합니다. 이렇게 완벽한 판에서 예상치를 웃도는 실적을 낸 두 회사만 골라서 얻어맞았기 때문입니다. 못해서 맞은 것이 아니라 잘했는데도 맞았습니다.
스페이스X의 성적표를 해부해 보겠습니다. 분기 매출은 우리 돈 약 11조 원으로 1년 만에 거의 두 배가 됐습니다. 스타링크 가입자는 1,200만 명을 찍었고, 미국 정부로부터 스타링크의 군사 버전인 스타실드 계약을 따냈는데 규모가 8조 원이 넘습니다. 매출 구성을 보면 절반 이상이 스타링크에서 나옵니다. 정작 본업인 우주 사업의 매출은 10억 달러가 안 됩니다. 로켓 회사의 간판을 달았지만 장부상으로는 이미 통신사에 AI를 얹은 구조입니다. 여기까지는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재무제표 안쪽에 월가를 얼어붙게 만든 숫자가 하나 박혀 있습니다. AI 부문, 즉 xAI가 석 달 동안 설비에 쏟아부은 돈이 158억 달러입니다. 우리 돈으로 약 22조 원을 딱 석 달 만에 태운 것입니다. 1년 전만 해도 거의 없던 지출이 2,013% 폭증했습니다. 같은 회사의 로켓 서비스 설비 투자는 12억 달러 수준입니다. 그러니 시장이 두 회사를 때린 이유는 한 줄로 요약됩니다. 돈을 너무 많이 쓴다는 것입니다.
"성장하려고 투자하는 건데 그게 왜 혼날 일인가요?"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그 투자가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보장이 있다면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돈은 성격이 다릅니다. 안 쓰면 AI 경쟁에서 즉사하기 때문에 무조건 써야 하는 돈입니다. 일종의 생존비입니다. 톨게이트를 지나지 않고는 목적지에 갈 수 없으니 통행료가 올라도 그냥 내는 것과 같습니다. 블룸버그는 스페이스X가 앞으로 얼마를 더 쓸지 방향조차 안내하지 않은 점이 낙폭을 키웠다고 진단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것입니다. 주변의 미국 주식 투자자들은 팔란티어가 폭등한 것만 신나게 공유했지, 이 설비 투자 숫자에 주목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시선을 뒤집어 보겠습니다. 어떤 회사들이 석 달 동안 수십조 원을 강제로 써야 한다면, 그 돈은 증발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누군가의 매출로 꽂힙니다. 문제는 그 돈이 지나가는 문이 몇 개 없다는 것입니다. 월가는 그날 밤 이미 그 문 앞으로 달려가 있었습니다.
그 답이 바로 같은 날 밤의 반도체 폭등입니다. 하루 만에 월가 증권사 여섯 곳이 동시에 SK하이닉스 커버리지를 개시했습니다. 흔한 일이 아닙니다. 켄터 피츠제럴드는 목표가를 300달러로 제시했습니다. 이유는 메모리 부족이 최소 2029년까지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50달러를 불렀는데, 이는 한국 본주 가격보다 20% 비싼 값입니다. 스티펠이 240달러, RBC가 200달러로 뒤를 이었습니다.
근거는 카운터포인트가 공개한 2분기 D램 점유율입니다. 삼성전자 39%, SK하이닉스 26%, 마이크론 25%로, 세 회사가 시장의 90%를 쥐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하이닉스입니다. 매출은 1년 만에 214% 늘었는데 점유율은 오히려 내려왔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HBM을 선제적으로 장기 계약에 묶어 놔서, 지금 받고 있는 고정 가격이 시세보다 낮게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카운터포인트는 에이전틱 AI와 AI 서버용 CPU 수요 때문에 범용 D램 가격이 3분기에도 계속 오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모건스탠리는 AI 서버가 물량을 빨아들여 PC와 스마트폰용 공급 부족이 풀릴 신호가 아직 없다고 했습니다. 앞서 말한 이야기와 정확히 겹칩니다. AI 기업들이 생존하려고 강제로 써야 하는 수십조 원이 지나가는 문은 사실상 세 개뿐이고, 그중 두 개가 한국에 있습니다.
호르무즈에서 이란이 하고 있는 일을 메모리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하고 있는 셈입니다. 코스피가 하루에 5% 넘게 무너지던 패닉셀 때 개인들이 손절로 던진 물량을, 월가는 지금 프리미엄을 얹어 담겠다고 손을 들고 있습니다.
그럼 왜 하필 300달러일까요? 그 근거가 된 뱅크오브아메리카 리포트에 박힌 숫자 하나가 이 요금소 게임의 판돈 자체를 보여 줍니다. 클라우드 기업들이 AI 인프라에 쓰는 예산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금 35~40%입니다. 이 숫자가 소름 돋는 이유는, 원래 이 비중이 12~15%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서버 예산의 80%가 CPU와 GPU 몫이었고, 메모리는 끼워 주는 부품에 가까웠습니다. 그 몫이 세 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AI가 판을 뒤집은 것입니다. GPU가 아무리 빨라도 데이터를 실어 나르지 못하면 비싼 장식품일 뿐입니다. 그래서 지금 데이터센터를 짓는 사람들은 GPU보다 메모리 물량을 잡지 못하는 것을 더 두려워합니다. 이것이 병목입니다. 병목을 쥔 쪽이 요금을 정합니다.
스페이스X 얘기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xAI가 석 달에 158억 달러를 태웠다고 했는데, 그 돈의 정체를 보여 주는 계약이 실적 자료에 함께 나왔습니다. 앤트로픽이라는 AI 기업이 xAI의 콜로서스원 데이터센터를 쓰는 대가로 2029년 5월까지 매달 약 1조 7,000억 원을 내기로 한 것입니다. 매달 아파트 단지 하나 값을 계산 능력을 빌리는 데 쓰는 셈입니다. AMD도 같은 앤트로픽과 자사 MI450 GPU를 2GW 규모로 깔기로 했습니다. 2GW는 원자력발전소 두 기가 통째로 뿜어내는 전력입니다. 이 계약들 안에 메모리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계산해 보십시오. 그게 전부 통행세입니다.
그런데 뱅크오브아메리카 분석을 보면 메모리 회사 주가는 아직도 내년 예상 실적의 10배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시장이 아직도 메모리를 몇 년에 한 번 좋았다 나빴다 하는 사이클 산업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요금소 주인에게 구멍가게 가격표가 붙어 있는 셈입니다. 시장이 놓치고 있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회사들의 장사 방식 자체가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마이크론은 생산 물량의 50~70% 이상을 장기 공급 계약으로 묶어 놨습니다. 그날그날 시세로 파는 것이 아니라 몇 년 치를 계약서로 잠가 버린 것입니다.
이 판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SK하이닉스입니다. 앞서 매출이 214% 늘었는데도 점유율이 밀린 이유가 장기 계약의 고정 가격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하이닉스는 상권이 뜨기 전에 10년짜리 장기 임대차 계약을 맺어 둔 건물주와 비슷합니다. 당장은 주변 시세보다 싸게 받고 있어서 손해처럼 보이지만, 계약 갱신 시점이 오면 임대료가 시세를 따라잡으며 점프합니다. 켄터 피츠제럴드가 메모리 부족이 2029년까지 간다고 한 것은, 그 갱신 시점이 여러 번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삼성전자입니다. 여기는 각도가 조금 다릅니다. HBM 경쟁에서 하이닉스에 밀렸다는 비판을 받는 동안, 정작 서버와 PC에 들어가는 범용 D램 점유율 39%로 오히려 지배력이 더 단단해졌습니다. 앞서 말한 범용 D램 가격 상승이 그대로 삼성 장부에 꽂힌다는 뜻입니다. 화려한 HBM 경쟁 뒤에서 물량으로 조용히 통행료를 걷는 구조입니다.
이 게임이 반도체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는 증거도 있습니다. 구리입니다. 데이터센터와 전력망을 깔려면 구리가 엄청나게 필요한데, 지난달 미국 항구에 도착한 구리는 20만 톤으로 2014년 이후 최대였습니다. 그 여파로 상하이 거래소 구리 가격은 3월 고점 대비 80% 증발했고, 중국 구매자들은 웃돈을 얹어 가며 물량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각국 중앙은행은 2분기에만 금 289톤을 쓸어 담았습니다. 전기가 지나가는 병목에는 구리가, 돈이 도망칠 병목에는 금이 요금소를 차린 셈입니다. 파생 수혜주도 많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광트랜시버 수입 금지를 검토한다는 소식에 미국 부품사들이 나란히 올랐습니다. 관련 종목 리스트와 체크리스트는 고정 댓글에 정리해 두겠습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좋은 얘기만 가득해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좋은 것만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무서운 리스크가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 이 모든 그림은 AI 기업들이 계속 돈을 태운다는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2027년까지 신규 AI 데이터센터의 40%가 전력 부족으로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 것으로 보는데, 전기를 구하지 못하면 그 안에 들어갈 메모리 주문도 함께 밀립니다. 만약 어느 순간 이 회사들이 설비 투자에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요금소는 그대로인데 지나가는 차가 사라지는 셈입니다. 참고할 전례는 있습니다. 구글도 설비 투자 폭증으로 실적 직후 얻어맞았다가, 그 돈을 쓴다는 것이 오히려 좋은 신호라는 해석이 붙으면서 며칠 만에 회복했습니다. 이번에 스페이스X와 AMD가 맞은 매도도 같은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월가의 시각입니다. 다만 이것은 가능성이지 확정은 아닙니다. 앤트로픽 같은 기업이 매달 조 단위를 내는 계약이 제대로 굴러가는지 분기마다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둘째, 중국입니다. 창신메모리(CXMT)는 2분기 D램 매출을 1년 만에 716% 늘리며 점유율 7%를 찍었습니다. 아직은 작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상장으로 실탄을 채우고 있고, 30% 싼 D램으로 물량을 뺏겠다고 증권 신고서에 대놓고 썼습니다. 업계 분석으로는 기술 격차가 D램에서 3년, HBM에서 5년입니다. 격차는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무서운 것은 격차 자체가 아니라 그 격차가 좁혀지는 속도입니다.
셋째, 가장 현실적인 리스크입니다. 메모리 가격이 오르면 그 부품을 사서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이 힘들어집니다. 카운터포인트 집계로 2분기 스마트폰용 메모리 가격은 전 분기 대비 80% 넘게 뛰었고, 프리미엄 스마트폰에서는 D램이 드디어 두뇌인 AP칩을 제치고 가장 비싼 부품이 됐습니다. 1테라바이트 최신 아이폰은 부품 원가만 1년 전보다 300달러 가까이 올랐고, 그래서 필립캐피탈이 애플에 대한 투자의견을 아예 매도로 내렸습니다. 메모리 회사가 웃으면 세트 회사가 우는 구조가 시작된 것입니다.
여기에 호르무즈까지 얹어 보겠습니다. 합의는 아직 서명 전입니다. 그리고 앞서 베선트 장관이 원화 변동성을 콕 집어 언급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유가가 다시 오르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이 원화이고, 원화가 흔들리면 외국인 수급이 국내 반도체부터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골드만삭스도 확실한 타결이 나오거나 전면전으로 번지지 않는 한, 유가가 배럴당 80~90달러 사이에서 불안하게 오르내릴 것으로 봤습니다. 협상이 깨지면 이번 랠리는 통째로 되돌려질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세 가지입니다.
하나, 실적 발표 직후 설비 투자 숫자에 놀라 빠지는 날은 오히려 요금소 회사를 담는 날로 보십시오. 돈을 많이 쓴다는 것은 그 돈이 메모리로 흘러온다는 뜻입니다. 고속도로에 차가 밀린다고 요금소 주인이 망하지는 않습니다.
둘, 중국 리스크는 HBM보다 범용 D램에서 먼저 터집니다. 중국 증설 뉴스에 그때그때 흔들리기보다는, HBM 비중이 높은 쪽에 무게를 두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셋, 호르무즈 뉴스에 유가와 같이 춤추지 마십시오. 이 합의는 며칠 단위로 뒤집힐 수 있습니다. 유가에 배팅하는 대신, 유가가 어느 쪽으로 가든 살아남는 병목 자산에 자리를 잡는 것이 낫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기억하십시오. 지난 몇 달 동안 여러분이 코스피에서 손절하고 나올 때마다 들었던 말이 있을 것입니다. 반도체는 사이클이라 곧 꺾인다, 중국이 곧 따라온다, 다 끝난 얘기다. 그런데 미국 시간 8월 4일 밤에 월가가 한 행동은 정확히 그 반대였습니다. 증권사 여섯 곳이 하루 만에 달려들어 한국 반도체 회사의 본주보다 20% 비싼 값을 불렀습니다. 이 사이클에서 누가 살아남고 누가 박살 나는지를 가르는 것은, 여러분이 통행료를 내는 쪽에 서 있느냐, 걷는 쪽에 서 있느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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