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장 홈📈 Stock Masters주식 유튜브를 Articles로 읽고 Author의 예측을 실제 가격으로 확인합니다 people장 Board 홈요청하기

한국어 · English

오 calls영

Accuracy score+0.4
순 place110
Scored calls239 calls
Hit rate / Market-adjusted / Return-weighted51.3% / 51.5% / 53.5%
1-month return / Market / beta excess return / Peer excess+0.2% / +0.3% / -0.1
Bullish / Bearish / Neutral34.6% / 15.8% / 49.6%
Best horizon3m
Performance badgeMomentum badge
Main channel신한은행
국적한
Note
Updated2026-10-28 07:00:00

Main stocks: #미국채금리 (170)#환율 (153)#한국채금리 (87)#미국기술주 (69)#금 (47)

How scores are calculated

오건영의 위기에서 찾은 경제의 법칙 4

소오강호 · 2024-04-29 · 유튜브 시청 139 · Board Views 5 · Korean

Korean

유튜브 썸네일

#환율#금리#현금

← 목록

저자: 오건영 · 한국인

요약 보기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초강세(1달러 260엔→1995년 79엔)가 일본 소형 보험사의 해외투자 회수와 고베 대지진이 겹치며 엔화 역류 현상을 낳았고, 이후 G7 역플라자 합의와 아베노믹스로 엔화가 약세로 전환됐다는 역사를 설명한다. 강한 엔화 시기 한국 수출·설비투자 확대와 그로 인한 기업 부채 누적이 1997 외환위기의 배경이라는 맥락으로 이어진다. 영상은 과거 사례의 교훈(예측보다 반면교사 참고)을 강조하며, 특정 자산에 대한 1~3개월 가격 예측은 없다.

다듬은 글

※ AI가 다듬은 글(오탈자·군말 정리)

01. 네, 안녕하세요. 오건영입니다. 오늘은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외환위기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참 많습니다. 저도 기업을 하시는 연배가 있으신 사장님들과 식사를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자주 드립니다. "경영하시면서 가장 힘드셨을 때가 언제였습니까?" 그러면 거의 대부분이 외환위기, IMF 때 이야기를 하십니다.

02. 우리나라가 겪은 고통이 워낙 컸기 때문에, IMF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각보다 굉장히 큽니다. 그래서 환율이 올라갈 때마다 "또 외환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03. 제가 대학교 1학년이던 때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기말고사를 보러 강의실에 들어가는데, 과마다 한 명씩 있는 똑똑한 선배 한 분이 "우리나라 망했대"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1학년 학생이었던 저는 그 말을 듣고 어떤 이미지를 떠올렸는지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납니다.

04. 그런데 이상했던 점은, 2~3일 정도 긴장하며 지냈는데 집에 가는 길에도, 집에 들어가서도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부모님도 별말씀이 없으셨고, 일상이 그대로 돌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철없던 저는 몰랐지만, 부모님께서는 굉장히 힘들어 하셨을 겁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뿐 아니라 많은 국민이 외환위기로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특히 1997년 12월에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이후, IMF는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상환 계획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고금리와 강력한 구조조정을 주문했습니다. 고금리와 구조조정 때문에 수많은 실직자가 쏟아졌고, 1998년과 1999년을 거치며 우리나라는 혹독한 경제 환경을 맞이했습니다. 그 아픔은 굉장히 큰 상처로 남았고, 우리나라의 경제 체질도 크게 바뀌게 되었습니다.

05. 외환위기 이전에는 굉장히 강했던 청년이, 외환위기라는 강한 단절점을 만난 뒤 약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던 2003년에도 그렇게 약해진 우리나라의 모습을 마주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취업 대란, 실업 대란이었습니다.

06. 이제 외환위기 이야기를 자세히 해 보겠습니다. 외환위기는 1997년 12월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일본의 버블 붕괴 이야기와 엮어서, 왜 외환위기가 터졌는지, 그 이후 우리나라에 어떤 상처가 남았는지 이어서 보겠습니다.

07. 출발점은 1985년 9월로 돌아갑니다. 플라자 합의가 있었던 때입니다. 기억하시겠지만, 당시 1달러에 260엔이던 엔화 환율이 순식간에 120엔 가까이 추락했습니다. 그런데 엔화 강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995년 4월에는 1달러에 79엔까지 내려갑니다. 여기서 두 가지 놀라운 포인트가 있습니다.

08. 첫째, 260엔이던 환율이 80엔 가까이 빠졌다는 것입니다. 거의 한 토막 더 내려간 것입니다. 1달러를 사려면 260엔을 줘야 했는데, 1995년에는 80엔만 주면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를 어려운 말로 '엔고'라고 하는데, 그 정도가 너무 심했기에 '슈퍼 엔고'라고 부릅니다.

09. 슈퍼 엔고의 끝자락인 1995년 1월, 일본에 큰 사건이 터집니다. 바로 고베 대지진입니다. 일본은 90년대 버블이 붕괴된 뒤 금리를 계속 낮춰 이미 제로 금리에 가까운 상태였습니다. 금리가 0이면 금융기관은 어떻게 할까요? 일본의 손해보험사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보험료를 모아 두었다가 사고가 나면 보험금으로 지급합니다. 그렇다면 이 돈을 땅에 묻어 둘까요, 아니면 이자를 받으며 운용할까요? 당연히 운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본 안에서는 금리가 0이니, 해외에서 기회를 찾게 됩니다. 그래서 일본의 해외 투자가 시작됩니다.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서 해외 자산을 사들인 것입니다. 해외에는 이미 일본 자금이 많이 깔려 있었습니다.

10. 그런데 지진이 터집니다. 보험금 지급이 크게 늘어나니, 보험사는 해외 자산을 팔아 현금을 확보해야 했습니다. 해외 자산을 팔면 달러를 받게 되고, 그 달러를 다시 엔화로 바꾸어 국내로 가져와야 합니다. 그러면 전 세계에 풀려 있던 엔화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면서 엔화 공급이 줄어들고, 엔화 가치는 급등하게 됩니다. 실제로 1995년 초까지 내려왔던 환율이 고베 대지진을 계기로 한 번 더 깊이 빠집니다.

11. 이 장기 차트를 보시면,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가 10년 가까이 강세를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짧아 보이는 구간이지만, 실제로는 10년의 세월이었습니다.

12. 일본 입장에서는 엔화가 너무 강하니 수출이 어려워졌습니다. 수출이 힘들어지면 내수로 버텨야 하는데, 지진까지 겹치면서 심리적으로도 위축되었습니다. 경기가 침체되며 "일본 경제 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결국 1995년 4월, 일본은 G7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G7 국가들은 "일방적인 환율 흐름은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데 합의했고, 공조를 통해 엔화 강세를 엔화 약세로 돌리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이것을 플라자 합의를 되돌렸다는 뜻에서 '역플라자 합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공식 용어는 아니지만, 당시 G7의 공조가 환율 흐름을 바꾼 대표적인 요인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13. 이후 엔화는 1995년 79엔에서 1998년 150엔 부근까지 약세로 돌아섭니다. 최근에도 엔화 환율이 150엔 부근까지 올라온 적이 있는데, 이는 1998년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14. 더 중요한 포인트는 2011년입니다. 엔화 환율이 75엔까지 빠지며 엔화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그해 3월 동일본 대지진이 있었고, 후쿠시마, 센다이, 이와테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일본 경제가 어려워졌지만 엔화 강세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012년 하반기, 아베 신조 총리가 등장하며 '아베노믹스'를 추진합니다. 일본은 엔화를 무제한으로 공급하는 정책을 썼고, 엔화 공급이 늘어나자 엔화는 약세로 돌아섰습니다. 엔화 환율이 다시 뛰어오른 것입니다.

15. 일본 경제를 볼 때 지진 같은 자연재해처럼 예상하지 못한 변곡점이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정확히 예측하기보다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과거 사례를 참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본의 사례는 그런 점에서 훌륭한 반면교사가 됩니다.

16. 그렇다면 당시 시장 분위기는 어땠을까요? 10년 동안 엔화가 강세를 보였으니, 사람들은 "앞으로도 엔화는 더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달러 70엔을 예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엔화가 150엔까지 튀어 오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금융시장은 현재를 반영할까요, 미래를 반영할까요? 미래를 반영합니다. 앞으로 좋아질 것 같으니 주식을 사고, 강해질 것 같으니 엔화를 더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흐름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그 예측에 기반해 투자를 늘립니다. 그 투자는 주식 같은 금융투자뿐만 아니라 기업의 설비투자도 포함됩니다.

17. 이 흐름이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요? 엔화가 10년간 강세를 보이자 일본의 수출은 어려워졌고, 일본과 수출 경쟁을 하던 한국은 상대적으로 수혜를 받았습니다. 1994~1995년 우리나라 수출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굉장히 좋았습니다. 엔화 강세가 우리에게 힘을 실어 준 것입니다.

18. 장사가 잘되는 가게 주인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매출이 늘어나면 가게 용량이 부족해지고, 분점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분점을 내려면 돈이 필요하니 대출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당시 우리 기업들은 강한 성장에 대한 기대감을 바탕으로 설비투자를 크게 늘렸고, 해외 진출도 적극적으로 노렸습니다. 1994~1995년에는 실업 대란이라는 말도 없을 만큼 경기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19. 문제는 이 낙관론이 기업의 부채를 늘렸다는 것입니다. 장사가 계속 잘되면 괜찮겠지만, 만약 환율이 급격히 약세로 전환되거나 경기가 꺾이면 어떻게 될까요? 분점을 내기 위해 빚을 얻었는데 갑자기 장사가 안 되고, 옆 가게의 경쟁자가 유리해진다면 기업은 큰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이번 강의에서 살펴본, 환율과 기업 부채, 그리고 외환위기가 맞물리는 지점입니다.

원문 보기 · 글 내려 주세요 신청

#환율#금리#현금

← List으로
공유페이스북밴드

이 Articles에 대해 요청(숨김) 수정 요청

Comments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