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재진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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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의 목적은 예배이며 기술이 연결해도 하나님을 연결하지 못한다고 강조. 2027 트렌드 키워드를 성경으로 해석하고 예배자 중심 선교와 계산되지 않는 헌신을 촉구. 12절 성경번역 운동, AI를 통한 성경번역 기간 단축 등을 언급하며 전체적으로 신앙적 권면 중심의 설교이며 투자 관련 발언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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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에클레시아 수요 기도 모임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이 아침에도 우리가 언약의 실제가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구주 예수님의 이름을 온전히 높여 드리길 원합니다. 함께 기도하며 예배하겠습니다.
주님의 신실하심을 예배합니다. 언약을 성취하시는 신실하신 주님의 이름을 바라봅니다. 진실하신 주님의 사랑을 노래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 주시고, 주님 예배 안에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예수님 믿음의 생명을 우리 가운데 세워 주시기를 원합니다. 더 깊이, 더 깊이 알기를 원하며 주님의 이름을 높여 드립니다.
경배합니다. 주의 이름을 높여드립니다. 찬양받으소서. 예수의 이름을 높여드립니다. 예수의 이름을 경배합니다. 거룩하신 예수, 기름 부음 받은 예수, 영원히 높임 받으신 예수, 주의 성령으로 영혼을 적시고 주의 말씀으로 내 길을 인도하시니,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주의 이름이 내 기쁨이요, 주의 이름이 내 생명이며, 예수님만이 내 모든 것입니다. 예수 주님을 사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 지극히 높으신 주, 만물의 주인이신 주, 영광 예수께서 나타나셨네. 그 이름 아름답도다. 나의 왕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아름답도다. 비교할 수 없는 예수의 이름. 우리 위에 오신 주, 하나님 나라 임했네. 내 죄보다 크신 그 사랑, 무엇도 끊지 못해. 우리를 위해 오신 주, 우리 위에 오신 주, 하나님 나라 임했네.
그 이름 경이롭도다. 나의 왕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경이롭도다. 비교할 수 없네. 예수의 이름. 죽음을 이기시고 휘장을 찢으셨네. 죄와 무덤을 잠잠케 하시고, 오늘 외쳐 영광 찬양해. 주 예수 다시 사셨네.
영원히 다스리시는 주, 모든 나라와 모든 영광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신 주. 그 이름 강력하도다. 나의 왕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강력하도다. 대적할 자 없네. 예수의 이름은 강력하도다.
이 시간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면서, 열방 가운데 주님 이름의 능력을 나타내 주십시오. 열방의 왕 되신 주님, 당신의 이름의 영광과 능력, 강함을 나타내 주시고,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기도로 나아가겠습니다.
겸손을 주님 보이소서. 성령이여 나를 이끄소서. 겸손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주소서. 상한 자의 하나님, 약한 자의 친구, 가난한 자를 돌보시며 낮은 자를 높이시는 주님. 주님, 나를 빚으시사 주께 드리게 하소서. 겸손한 자의 하나님, 주는 겸손한 자의 앞에 물을 붓듯 하시니, 주님의 겸손을 보이소서.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존귀하신 주님의 이름을 우리의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찬양하고 사랑합니다. 주님, 당신의 나라가 얼마나 실제이며 강력하며 아름답고 영광스러운지, 우리의 삶 가운데서 맛보게 하여 주십시오. 매일 우리의 시선이 주님의 나라를 향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이름이 우리 심령 가운데 거하기를 기뻐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우리를 빚어 주시고 성장하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이 우리의 목표가 되시고, 우리의 모든 것 되십니다. 다시 오실 왕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제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헌금하겠습니다.
(광고) 내 삶에 하나님의 꿈을 올려 드리는 '올림 미션 스쿨'이 내일 개강합니다. 신청은 내일까지이며, 내일 오전 10시 30분에 입학식을 오픈 강의로 진행합니다. 현장에 오셔서 들으실 수도 있고, 유튜브로도 송출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이재진 목사님이 나오셔서 헌금을 위해 기도하시고 말씀을 전해 주시겠습니다.
그 기쁨 가운데 저희가 서기 원합니다. 우리가 무엇이기에 주님 손에 드릴 수 있겠습니까? 주님 손에서 받은 것을 다시 돌려 드릴 뿐입니다. 우리의 삶도, 우리에게 주신 자원들도 주님께 올려 드릴 때, 오병이어의 기적과도 같은 놀라운 역사를 우리 삶과 선교 현장, 일터에서 이루어 주시옵소서. 모두가 해외 선교사로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자리에서 삶의 영향력을 올려 드릴 때 주께서 일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오늘 예물을 드린 손길들을 축복하시고, 30배 60배 100배로 갚아 주시며, 더 즐겁고 힘을 다해 드리는 의인의 삶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열방에서 외롭게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과 그 가정을 기억하시고, 드리는 기도와 예물이 잘 흘러가기를 소원합니다. 주님께서 직접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록 7장 9-10절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라."
이 말씀이 요즘 계속 떠오르고, 묵상하게 됩니다. 저 자리에 함께 서서 외치는 날을 기대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민족들의 손을 잡고 가서 함께 외치는 그날을 소원합니다. 2027년을 준비하며 기도하고 있는데, 선교회의 진로를 위해서도 기도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매년 나오는 트렌드 책을 읽어 보셨습니까? 『2027 한국 트렌드』의 키워드들이 결국 성경에 답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트렌드를 진단하는 데는 탁월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늘 부족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려고 합니다. 답을 제가 드리기보다는 말씀을 적용하고 사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그 책이 꼽은 키워드 중 하나는 AI입니다. 이제 AI는 트렌드가 아니라 공기처럼 삶의 기본값이 되었다고 합니다. 번역, 요약, 그림, 내비게이션, 가전제품까지 모두 AI입니다. 지구 반대편 선교사님과 실시간으로 화상 통화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실시간 통역 기능도 점점 정확해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키워드는 '권태 사회'입니다. 할 일이 없어서 지루한 것이 아니라 자극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 과잉의 권태입니다.
또 하나는 ROI(투자 수익률)입니다. 사람들이 인생을 경영하면서 무엇을 하든 "나한테 남는 게 있나?"를 먼저 따집니다. 훈련도, 교회도,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신학대학원도 경쟁률이 떨어지고, 사역자들도 ROI가 낮은 곳은 꺼립니다. 그러나 ROI를 따지기 시작하면 할 수 있는 사역이 없고, 이런 단체는 존속해서도 안 됩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헌금을 다리미로 펴서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려는 정성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되어 있지만,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지쳐 있고, 외롭고, 계산적입니다. 기술이 이미 세상을 연결해 주고 있는데, 우리가 굳이 열방을 연결하자고 외쳐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답은 사도 요한이 본 마지막 장면에 있습니다. 밧모섬에 유배된 요한이 본 것은 기술로 연결된 세상이 아니라, 어린 양 앞에서 예배로 하나 된 열방의 예배자들이었습니다. 선교의 목적은 예배자입니다. 선교의 마지막 장면은 사업의 완성이 아니라 예배의 완성입니다.
예배자를 음악인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예배자는 음악을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알고, 주님께 반응하며, 삶을 주님의 계명에 맞추어 가는 전 과정이 예배입니다. 로마서 12장의 말씀처럼 자기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의 말처럼, "선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예배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없는 땅에 예배를 드리게 하는 총체적 과정이 선교입니다. 사람을 보내고, 누군가 그 민족을 품고 기도하며, 교회가 개척되고, 토착화된 교회가 그 민족 가운데서 예배하며 살아가는 모든 과정이 예배이고 선교입니다. 선교는 언젠가 끝나지만, 예배는 영원합니다. 선교는 수단이고, 목적은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을 만나시기 위해 뜨거운 볕 아래 먼 길을 걸어오셨고, 우물가에 지쳐 앉으셨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의 상태는 인간의 눈으로 보면 별로였습니다. 우리도 지금 별로입니다. 주님이 그 별로를 별로 만드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우리가 무언가를 기획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먼저 예배자를 찾고 계시고, 우리는 그 걸음에 따라 걷는 것입니다. 이미 주님이 하고 계신 일에 동참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릅니다. 중국에서 사역할 때, 공산당의 핍박과 감시 속에서도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셨습니다. 중국 전역에서 하루 3만 명씩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통계를 보며 놀랐습니다.
말씀을 마치며,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걸음에 우리가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 원문 음성인식에 오류가 많아, 일부 가사·단어는 문맥상 추정해 정리했습니다. 특히 찬양 가사와 "1번째" 이후 내용은 원문 그대로 확인이 필요합니다.)
보좌 앞에 설 그 큰 무리를 위하여 (계 7:9-10)
이재진 선교사 | 에클레시아선교회 (긴 영상 3부분 중 2번째)
하루에 만 명 되는 교회가 세 개씩 있습니다. 그런데 다 지하에 있고 가정에 있어서 잘 안 보이는 것이겠지요. 지금 중국에는 아무도 정확한 숫자를 모를 만큼 거대한 교회가 있고, 1억 5천, 2억 명까지 얘기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 크리스천들이 정말 열심히 전도하고 있습니다. 이미 예배자를 찾고 계신 것입니다. 중국인들, 한국인들에게서도요.
그런데 방해가 많고 거짓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미워하는 세상의 영이 사람들에게 다른 것들을 심어 놓으니, 우리는 때로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교사님들, 그리고 사역하는 모든 분들이 붙들어야 할 사실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시고, 당신의 열심으로 그들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주님, 당신이 찾으신 예배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찾으실 예배자는 누구입니까? 그 예배자를 제가 어떻게 섬기고, 어떻게 잘 양육해서 예배하게 할까요?" 이렇게 질문하며 도시마다, 거리마다, 지역마다 나아가면 디바인 미팅(하나님이 준비하신 만남)이 일어납니다. 준비된 영혼들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아, 이런 적대적인 도시에 왜 나를 보내시는가?"가 아니라 "와, 이런 적대적인 도시에도 주님은 예배하는 자를 이미 찾아 놓으셨구나. 알려 주세요"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사랑스러워서라도, 혹은 길을 잘못 들어서라도 우리를 그 영혼들에게 인도하십니다. 선교지에서 이런 일을 많이 겪습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갔는데 엉뚱한 곳에 도착했고, 가보니 거기 준비된 영혼들이 있었다는 간증이 많습니다. 그것이 즐겁습니다. 잘못 들어가도 주님의 주권 아래 있고, 오늘 이 사람을 만나야 하나 싶었던 것도 주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한 사람도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다 찾고 계십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도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의 예배에서도 민족과 백성과 방언과 언어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면 우리는 서로의 말을 다 알아듣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10%도 못 쓰는 뇌세포가 100% 깨어나고, 천국에서 부활체의 업그레이드된 몸을 입을 때 우리의 지각과 감정과 의지가 얼마나 놀라울까요? IQ 200이 넘는 사람의 삶이 얼마나 다른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예배는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문화로 획일화된 예배가 아닙니다. 수천 개의 언어와 문화가 각자의 목소리로 한 분을 향해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를 위해 땀 흘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 여러 성경 번역 단체들이 연합한 몸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조사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위클리프 성경번역선교회 등 전통적으로 성경 번역을 많이 해온 단체들이 함께 모여 서로 협력하고 있고, 2033년까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AI가 결합하면서 성경이 필요한 모든 언어에 성경을 보급한다는 목표입니다. 2010년 코엑스에서 열린 로잔 선교 전략회의(COMIBAM 등) 때 위클리프의 국제 리더가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10만 명 이상이 쓰는 모든 언어는 성경이 다 번역되어 있습니다. 우리 단체가 목표로 삼는 것은 10만 명 미만의 소수 민족과 소수 언어에 대한 도전입니다." 아직 한 번도 타겟이 되어 보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이 연합체는 지금 '12절 챌린지'라는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구글에서 검색하시면 홈페이지가 나옵니다. 성경 12절을 번역하는 데 드는 연간 비용이 35달러라고 합니다. 그래서 35달러 기부 운동을 합니다. 큰 부담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금액입니다. 1년에 35달러를 드리면 아직 성경이 번역되지 않은 곳의 12절을 번역하는 데 쓰입니다. 이 운동에 2020년 이후 6만 명이 참여했고, 지금까지 122만 장이 번역되었습니다. 아직 56만 장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도 접속해서 35달러를 기부하실 수 있습니다. AI와 성경 번역 선교사들이 협업하고 있고, 10만 명 이상이 쓰는 언어는 이미 성경이 다 번역되었으니, 이제 10만 명 미만의 미전도 종족에게 여러분의 헌신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이들의 말에 따르면 AI가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영국성경공회(위클리프 영국 지부) 대표는 AI 덕분에 품질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성경 번역 기간을 최대 절반까지 줄일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번역 품질은 유지하면서 기간은 절반으로 단축된다니, AI를 이렇게 쓸 수 있다면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AI는 성경을 번역할 수 있지만, 말씀 앞에 무릎 꿇고 예배할 수는 없습니다. 기계는 예배자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이 권태의 시대에 예배자는 임재를 구합니다. 여러분, 아까 40분 동안 예배하실 때 재미있으셨습니까? 재미가 하나도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한 자매가 혼자 피아노를 치는데, 그 앞에서 여러분이 이렇게 반응하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한 것입니까? 예배한 것입니다. 각자의 영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반응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배자가 아니면 모르는 기쁨이고 비밀입니다. 이것은 콘서트가 아닙니다. 콘서트였다면 이렇게 수준 낮게 하면 안 됩니다. 미안하지만 음도 안 맞고, 가사 발음도 부정확했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콘서트였다면 음악인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콘서트를 한 것이 아니라 예배를 한 것입니다. 이 권태의 시대에 진짜 기쁨을 아는 길은 임재뿐입니다.
시편 46편 10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아멘. 여러분, 자극이 넘치는 시대의 권태는 더 큰 자극으로는 채워지지 않습니다. 영상 하나를 더 보고, 알림 하나를 더 받는다고 영혼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보면, 정말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 그리고 바로 뒤에 "내가 열방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가 이어집니다. 멈춤과 열방이 한 구절 안에 있는 비밀스러운 말씀입니다. 다윗은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가 쓴 구절 하나하나에는 그냥 고백이 아니라 비밀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만히 머물 줄 아는 사람이 열방 가운데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이 된다는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워야 할 예배자는 화려한 예배를 소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를 쇼핑하듯, 설교자를 쇼핑하고, 예배팀을 쇼핑하고, 선교 단체를 쇼핑하며 다니는 것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소비자가 아니라 예배자입니다. 골방에서 기타를 못 쳐도 괜찮습니다. 예배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제가 중국에서 보니 음악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음악을 하는 분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가정교회마다 임재와 은혜가 너무 강력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찬송 NPC를 틀어 놓고 무한 반복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100절짜리 찬송인데, 다 성경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내용이 다 들어 있어서, 몇 번 부르면 성경 통독을 한 셈입니다. 설교는 언제 하냐고요? 설마 99절에서 멈추겠지 했더니, 100절을 부르고 다시 1절부터 "태초에..."를 부르더군요. 그런데 묘하게도 설교가 없어도 그 안에 말씀이 다 있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예배팀을 구성해 가서 예배를 인도하면서, 고조가 되면 손을 높이 들고 "주님을 찬양합시다" 하며 함께 올린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결국 다시 예배의 자리로 내려왔습니다. 그래도 완벽했습니다. 음악은 예배를 돕는 아주 좋은 도구이고, 음악 자체가 영적이어서 우리의 영이 반응합니다. 음악이 풍성하면 좋지만, 음악이 없어도 예배는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구약의 많은 예배에도 악기가 없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가만히 있어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입니다. 예배든 집회든 컨퍼런스든 예배 소비자들을 양산하는 것은 반대입니다. 예배 인도 사역만 해 본 사람들은 골방에서 예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번 수백 명 앞에서 인도하던 분이 아무도 없는 새벽 2시, 4시에 한 사람의 청중 앞에서 예배해야 한다면 힘들어합니다. 예배 인도는 회중을 어떻게 움직이고 흥을 돋울지는 경험으로 잘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멈춰서 드리는 예배는 정말 어렵습니다.
사실 칭찬해 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어제가 레인플레스 3주년 예배였다고요? 예배 인도만 하시는 분들이 거기서 거의 우물이 터졌다고 들었습니다. 격려하고 싶습니다.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고, 어떤 때는 ROI(투자 대비 효과)가 확실히 떨어지는 사역입니다. 저도 이런 사역을 계속 보내야 하는지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잘하셨습니다. 다만 ROI가 높아질 것을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사역이 원래 그렇습니다. 섬김은 하나님이 꼭 기억하십니다. 다른 영역에서 아마 높이실 것입니다. 멈추고 하나님 앞에 머무는 시간, 그리고 가만히 있는데 이미 열방 중에서 높임을 받으시는 것을 보는 것, 그것이 예배자의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자는 그냥 멈추는 사람이 아니라 임재 앞에 머무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선교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머무는 사람을 세우는 일입니다. 2027년 우리 선교의 모든 사역, 즉 파송, 후원, 단기선교, 단기팀, 올림스쿨, 더무브(The Move), 장기선교사, 열방 선교사 등 모든 것에서 한 가지 질문에 서야 합니다. "얼마나 많이 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섰는가"입니다. 음악을 잘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정말 음악을 잘하는 사람이 부럽습니다. 그러나 음악이 꼭 예배를 돕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문 연주자들이 팀을 구성해서 연주했는데, 음악은 깔끔하고 스타일도 좋았지만 임재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반면 어떤 예배는 매우 투박했고, 가사도 틀리고 음도 맞지 않았지만 임재가 있었고 은혜가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배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 앞에 예배자가 세워지고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그가 "하나님이 정말 선하신 분이시구나" 하고 깨닫고 있는가? 이것이 예배자를 세우는 중요한 관건입니다.
이제 같이 읽겠습니다. "선교의 방식은 얼굴을 마주한 연결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기술은 연결을 빠르게 하지만, 사랑은 연결을 깊게 합니다.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누구를 끝까지 사랑하고, 처음부터 오래 참고, 끝까지 참아주고, 모든 것을 바라주는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은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큼 성화되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성화를 넘어 영화롭게 되면 빛이 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예배자를 찾으셨습니까? 요한복음 1장 14절이 그 비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은 하늘에서 메시지를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문자나 음성이나 줌(Zoom) 회의로 연결하지 않으셨습니다. 원격으로 일하지 않으시고 직접 오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몸을 입으셨고, 사람들이 살던 동네에서 함께 사셨습니다. 2000년 전 중동의 생활환경이 얼마나 후졌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MZ세대를 넘어 알파 세대 아이들이 옛날 시골의 재래식 화장실을 쓸 수 있을까요? 어렵습니다. 2000년 전 이스라엘의 환경은 깨끗하지도 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곳에 우리 주님이 오셨습니다. 성경은 그런 이야기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시고, 피곤하셔서 주무셨고, 우리의 눈물을 보시고 함께 울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제 마음에 들어온 이유가 있습니다. 트렌드를 보니 "휴먼 터치"가 있었습니다. AI가 완벽한 결과물을 내는 시대일수록 사람의 손길, 사람이 만지고 다듬은 과정, 함께 보낸 시간이 가장 귀한 가치가 된다는 것이 최근 트렌드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진리이기도 합니다. 선교도 그렇지 않습니까? 원격으로 하고, 온라인 콘텐츠만 잘 만들면 되지, 굳이 선교사를 불편한 곳에 보내야 하는가? 나오지 않는 비자를 짝사랑하듯 기다리며 매달리는 선교사님들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그것이 선교사의 삶입니다. 시간은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준비한 나라에도 가지 못합니다. 제가 그 피해자입니다. 러시아어 공부를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형용사 변화만 외우다가 세월이 갑니다. 한 단어가 36개로 바뀌는 법칙을 아십니까? 성(남성, 여성, 중성)에 2를 곱하고(단수, 복수), 거기에 격변화 여섯 개(주격, 생격, 여격, 대격, 조격, 전치격)를 곱하면 한 단어가 36개로 변하는 놀라운 언어입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수학을 잘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언어가 논리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사실 스푸트니크를 먼저 쏘아 올린 민족이 슬라브 민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는 우리의 첫 선교지가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저는 전공도 하고 준비도 했습니다. 몇 달을 기다리는 것도 괜찮습니다. 저는 몇십 년째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가 가야 하고, 사역자가 가야 합니다. 투박해도 만나야 합니다. 우리의 선교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것입니다.
요즘 AI로 찬양곡을 많이 만듭니다. 저는 AI가 가사를 입력하면 곡을 만들어 주는 것을 보고 "와, 신기하다" 하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곡을 만들어 본 전문가들은 AI가 만든 곡을 다듬습니다. 그래서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손을 대는 휴먼 터치가 트렌드입니다. 글을 써 본 사람이 쓴 글과, AI에게 대본을 맡겨 영상을 만든 것은 퀄리티가 다릅니다. 한국 드라마의 레전드급 작가들이 받는 연봉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AI에게 글을 맡겨 만든 작품은 한 번은 보아도 끝까지 보기 어렵습니다. 결국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사람의 손길입니다. 이것의 원형이 바로 주님입니다. 2000년 전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셔서 우리와 만나시고, 함께 거하시고, 가르치시고, 함께 웃으시고, 각 사람에게 맞는 가르침과 치유와 말씀과 선포를 주셨습니다. 휴먼 터치의 대가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기독교의 가치 안에 이미 다 들어 있습니다. 2027년에 우리가 이것을 잘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려면 겸손의 왕이신 그분의 본을 받아 낮아지고 더 낮아져야 하며,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서 섬겨야 합니다. 성육신이야말로 하나님이 보여주신 휴먼 터치라고 저는 믿습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9장 22-23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AI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을 '폼팩터 시프트(Form Factor Shift)'라고 합니다. 본질은 그대로 두고 형태를 바꾸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대로이지만 복음을 담는 그릇은 사람마다 다르게 할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은 우리가 늘 외쳐온 것이기도 합니다. 2027년 책에 이 개념이 나오는데,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런 책을 써 볼까요? (웃음) 우리 교회에서도 이미 이 개념을 읽고 나누고 있습니다. 연구는 박사님들이 팀을 이루어 1년 내내 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따라가겠습니까?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것은 사도 바울이 이미 다 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것을 해야 합니다. 복음은 바뀌지 않지만 형태는 바뀝니다. 지금 시대에 사도 바울이 있었다면 온라인으로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다닐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선교의 그릇이 바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열방이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국내 외국인 유학생이 31만 명이고, 한국에 있는 외국인이 300만 명이라고 합니다. 무슬림도 30만 명입니다. 인천 순복음교회 같은 교회들을 보면 유학생선교센터를 두고 유학생들과 관계 맺는 사역을 교회 차원에서 잘하고 계십니다. 북한 사역팀과 탈북민 사역도 계속하고 계십니다. 안산 같은 지역에 가면 네팔, 몽골, 미얀마, 중국, 아랍 등 12개국의 현지인 목회자가 인도하는 현지 예배가 드려지고 있습니다. 한국어 교실도 많이 있습니다. 교회 규모는 크지 않아도 양촌비전교회라는 곳은 40평 남짓한 지하 공간에서 17개국 이주민을 섬깁니다. 한국어 교실, 축구교실, 기타교실, 쉼터, 다문화 예배, 그리고 귀국하는 선교사들까지 섬깁니다. 40평 남짓한 작은 교회가 17개국의 이웃을 섬기고 있습니다. 열방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고, 교회는 이미 폼팩터 시프트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해야 합니다. 열방을 연결하는 일은 큰 교회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문을 열고 식탁을 내어놓는 교회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내용을 간단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제가 이런 설교를 하는 것 자체가 조금 어색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봐야 하고, 저도 안 해 본 것을 해 보는 것이니까요. 다음으로 2027년 트렌드 키워드 중 '리텐션(Retention, 유지)'이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모으는 것보다 기존의 관계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개념입니다. 이것도 사도 바울이 이미 했던 일입니다. 사도행전 15장 36절을 보면, 며칠 후 바울이 바나바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지 방문하자." 이것이 바로 리텐션입니다. 교회는 2천 년 동안 이것을 해 왔습니다. 목회에서 신방(新房)이라고도 부르던 가정 심방이 있었는데, 요즘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것을 하긴 했지만, 강단에서 만나는 성도와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성도의 모습이 다릅니다. 삶의 현장에서 만날 때 마음이 더 열립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확장할 때 기존의 관계를 지키지 않으면, 확장은 내실이 없는 그냥 연결일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지 방문하자", 양떼의 상황을 부지런히 살피는 일을 해야 합니다. 2027년 키워드는 더 넓히기보다 기존 사람들과 깊게 연결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이미 좋은 것이 있습니다. 셀과 목장이 그렇습니다. 애증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쯤이면 싸워 보기도 해야 합니다. 싸우고 다시 평화가 임해야 공동체가 단단해집니다. 싸운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살면서 한 번도 안 싸워 보셨습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싸우지 않는 것은 천국에서나 가능합니다.
바울의 기쁨도 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3-5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이것이 중요합니다. "첫날부터 이제까지." 이것이 연결이고 리텐션입니다. 보내고 "잘 가, 행복해" 하고 끝내는 선교가 아닙니다. 선교사와 후원자와 동역자와 교회는 끝까지 함께하는 선교입니다. 저희도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하면서 선교팀 안에서 자체 기도회를 하고, 여러 방법으로 기도를 이어갑니다. 기도가 아니면 이 연결은 이어지지 않습니다. 또 재정도 적지만 계속 흘려보내고, 생기면 또 보내고, 주님의 날까지 첫날부터 이제까지 함께합니다.
올해 5월 뉴욕에서 열린 한인 선교대회(KWMC)에서 "선교사의 탈진 예방과 회복의 몫은 개인이 아니라 파송 단체와 교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공동의 책임이다"라는 '멤버 케어' 결의문이 채택되었습니다. 저희 에클레시아에도 멤버 케어를 맡으신 간사님이 계십니다. 조용히 하시지만 잘하고 계십니다. 이제 보내기 시작했으니, 떠나기 전에도 전문가에게 연결해 상담을 받고, 돌아와서는 디브리핑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냥 보내지 않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계속합니다. 언젠가 하나님이 우리의 눈물을 씻어 주시겠지만, 오늘 우리가 서로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합니다.
저도 중국 선교사로 있을 때 항상 2,000원씩 후원하시는 한 분이 계셨습니다. 처음에는 숫자를 잘못 입력하셨나 생각했습니다. 선교사에게 2,000원은 무엇일까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분이 오래 후원해 주셨습니다. 본명을 쓰지 않으셔서 누구인지 몰랐다가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폐지를 주워 하루 일당을 벌어 그 수익을 저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그분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울컥합니다. 처음엔 2,000원을 보고 교만했습니다. "2천만 원도 아니고..." 하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2,000원이 사역을 그만두고 싶을 때 저를 일으켰습니다. 나중에 그분의 자녀를 만나게 되었는데, 자녀분이 말하기를 어머님이 제 이름으로 8년 동안 후원하셨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제게 후원하셨다는 것을 저는 몰랐습니다. 그냥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폐지 한 번 줍고 받으신 것을 이렇게 연결해 주시는군요." 금액의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선교사를 부담스럽게 여기지 마십시오. 누군가의 귀한 헌금이고, 감사헌금이고, 선교헌금이고, 아껴서 보내는 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리텐션을 하고 있으니, 주님 나라 갈 때까지 끝까지 해야 합니다. 2027년 키워드가 이렇게 나왔는데, 성경에 이미 다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을 잘 알고 잘 실천하며 사십시오.
세 번째입니다. 예배자는 계산하지 않는 헌신으로 세워집니다. 숫자가 모자란 곳에서 숫자보다 큰 헌신이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헌신을 얘기할 때 꼭 떠오르는 한 분이 있습니다. 베다니의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 나드(향유)는 매우 비쌌습니다. 여인이 가진 재산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싱글 선교사님들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 돈을 포기하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시간을 포기하는 것도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자매들에게 결혼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선교지에서 주님께 자신이 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 옥합을 깨뜨리고 있는 많은 싱글 여성 선교사님들이 계십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슨 의도로 네 삶을 허비하느냐. 좋은 직장 다 내려놓고 거기 가서 뭐 하는 거냐? 투자 대비 효과가 없다. 너 지금 몇 년 차인데, 몇 명과 교회를 개척했냐? 네 능력이면 더 효율적으로 쓰고, 선교헌금도 더 많이 할 수 있었을 텐데." ROI(투자 대비 효과)로 선교사를 평가하고 사역을 평가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전사팀(탈북민 사역팀) 중에도 탈북민을 환대하고 섬길 때 ROI를 따지지 않고 오히려 다 쏟아부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팀장님들을 보면 참 마음이 짠합니다. 주님이 다 갚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베다니에서 제자들은 "이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을 텐데 왜 허비하느냐?"며 분노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가만 두어라. 그가 나에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a beautiful thing)." 좋은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드리는 계산되지 않은 헌신, 아름다운 일, 이것이 선교이기를 소망합니다. 노란색 글씨로 읽어 볼까요?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투자 대비 효과가 없습니다. 요즘 세대는 모든 것을 따지고 ROI를 계산합니다. 그래서 ROI가 떨어지면 관심을 끊습니다. 어떤 선교사가 벌써 몇 년째 후원을 받고 있는데, 뭐가 없다고 하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어제 제가 밤 11시에 예디디족(?) 한 자매 사역자를 인터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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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후반부가 음성 인식 오류와 맥락이 끊긴 부분이 많아, 마지막 문장은 원문의 의미를 살려 옮긴 것이며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예디디족', 'CP 인터뷰' 등은 확인이 필요합니다.)*
IS가 일어났을 때 예지디족 사람들은 정말 많이 학살당했습니다. 터키말로 "PKK"처럼 더럽다, 더럽다 하면서 IS가 많이 죽이고, 여성들은 성노예로 삼았고, 남자들도 정말 많이 죽었습니다. 그 자매의 존재 자체가 예지디족인데, 그 자매가 주님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유치원에서였습니다.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유치원에서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 궁금해하면서 시작해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랍어, 예지디어, 영어 세 가지 언어로 통역 사역을 아주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예지디 안에서도, 아랍권 안에서도 자기가 예지디 사람이라고 밝히기를 꺼려합니다.
여러분, 거기서 IS 전사들에게 성노예로 어려운 삶을 살다가 탈출해서 예지디 여성 인권 운동을 하다가 2016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자매가 예지디족 출신 여성입니다. 그만큼 인권이 철저하게 망가져 있고,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그분이 지금도 예지디 여성들에게 비밀리에 성경 공부를 하면서 말씀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몇 년 동안 사역했는데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살아남은 여성이 한 명 잡히고, 그렇게 세례를 드리면서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숫자로 따질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가르치면 떠나 버리고, 눈에 보이는 교회 하나 남지 않습니다. 구호도 많이 했는데 감사 한번 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사역을 하지 말아야 합니까? 저희 에클레시아는 어쩌면 주님 오시기 전까지 건물을 갖는 것이 불가능한 단체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유산 중에 10분의 1만 이렇게 주고 가시죠. 많이 주시면 자녀들이 싸울 수 있으니까요. 아니면 건물 열 채 중에 한 채만 저희에게 주십시오. 저희는 잘 쓰겠습니다. 왜냐하면 들어오는 재정의 거의 대부분을 선교와 구제로 흘려보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찔합니다. 운영을 해 가야 하는데, 규모가 작을 때는 이 정도면 감당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유급 간사님들도 많고 사무실 비용도 많습니다. 그래도 저희는 "없으면 문 닫으면 되지 뭐"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말은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단체의 리더로, 공동체의 리더로 설 때가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재정이 떨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항상 "예산은 없는데 결산은 있다"고 말합니다. 항상 없는데 있습니다. 보낼 때가 되면 있고, 보내고 나면 또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쓰리잡을 뛸까?"
저희가 목표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주님의 평가입니다. 주님께서 "이 여인이 행한 일도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그를 기억하기 위해 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여인을 칭찬하셨습니다. 자기 재산을 이만큼 갖고 사는 사람들을 주님이 기억하신 것이 아니라, 주님께 좋은 일을 한 사람들을 기억하십니다. 선교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복음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이 다 타문화권 선교사로 부름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있는 자리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예를 들겠습니다. 풀턴 스트리트의 정오 기도회는 거의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운동이었는데, 그것도 한 비즈니스맨의 정오 기도회였습니다. 샌드위치를 준비해서 오는 사람들이 밥을 못 먹으니 환영하고 대접했습니다. 거기에 성령께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 대부분은 이렇게 계산되지 않은 예배를 열방으로 옮겨 간 사람들입니다. "내 땅 끝에서 주의 몸에 향유를 붓겠습니다. 땅끝에서 주님을 맞이하겠습니다.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가운데 살다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겠습니다."
그래서 선교 현장에도 이런 질문이 많이 들어옵니다. "그 지역은 수십 년째 열매가 없는데 계속 후원해야 합니까?" "선교사님, 성과가 보이지 않는데요." 물론 지혜로운 청지기의 분별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숫자로만 선교를 판단하면, 열매가 더딘 곳, 미전도 종족, 위험한 땅은 늘 뒤로 밀려납니다. 여기에도 답이 있습니다. 성과를 따지는 이 세대의 트렌드를 깨는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전도서 말씀입니다. "바람을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
2010년대 키워드에 "Done is better than perfect"가 있었습니다. 완벽한 것보다 일단 해보는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늦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습니다(better late than never). 완벽한 것을 찾느라 못 하는 것보다 해보는 것이 낫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해 봄입니다. AI도 막 써 봅니다. 질서와 판도가 바뀝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유튜브를 보다가 "엄마, SBS가 뭐야?"라고 묻습니다. KBS도 모릅니다. 유튜브 채널 중 하나인 줄 압니다. 저희 때는 KBS 9시 뉴스 앵커의 파워, 4대 일간지 글 쓰는 분들의 파워가 최고였습니다. 하나의 국민 여론이 거기서 움직였습니다. 지금은 유튜브 초창기에 그 사람들이 그것을 기획한 것이 아니라 그냥 해 봤던 것입니다. 그러다 생태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역도 그렇습니다. 선교사님들 중에 준비가 덜 되어 못 가신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해도 주님이 보시기에는 그저 귀여운 것입니다. 그래서 2027년 키워드인 "Done is better than perfect"가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될지 저것이 잘될지 모르기 때문에 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목으로 따지지 않습니다. 주님께 계산되지 않는 헌신과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도 앱을 깔아서 매일 하고 있는 "조슈아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제가 번역에도 참여해서 압니다. 거기에 "Unreached of the Day", 오늘의 미전도 종족이 매일 한 종족씩 아홉 개 언어로 기도 제목을 보내줍니다. 앱으로도 받고, 이메일로도 받고, 팟캐스트로도 받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매일 기도하지 못합니다. 그냥 쓱 넘깁니다. 숫자로 보면 수익률이 낮은 사람들을 위해 날마다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운동입니다. 복음화율 0.4% 민족, 1% 미만 민족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앱을 깔아 두고 있습니다. 양심에 찔려서 알람은 끄지 않습니다. 몇 개씩 쌓이다가도 "그래도 해야지" 하고 주님께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해 보면 "아, 이런 민족도 있구나" 하고 막막해집니다. 솔직히 기도하면서도 막막합니다. 화요일마다 이 세상의 기도회도 하지만, 가끔은 믿음이 필요한 민족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ROI를 따져서 안 하고, 완벽한 것만 따지다가 사역을 하지 않으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 해 봐야 합니다. 이미 키워드의 답은 성경에 다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갔네요. 여러분, 조슈아 프로젝트를 해 보십시오. 앱을 깔면 하루에 한 종족씩 기도할 내용을 친절하게 띄워 줍니다. 그냥 그것을 한 번씩 읽고 기도만 하는 것도 사실 굉장한 일입니다. 해 봅시다. 이것이 우리의 섬김입니다. 그래서 내 방식을 내려놓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제가 이것을 조사하다가 뉴욕에 "실버 선교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실버 선교학교를 올해 42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이번 트렌드 2027의 또 하나의 키워드가 "하프 시그널"입니다. 이것은 좀 있다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인생의 절반 지점에 갱년기도 오고 우울감도 오고, 자녀들이 떠나서 빈둥지 증후군도 옵니다. 그때를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 나머지 인생을 실버 미셔너리로 주님께 드리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매달 몇백만 원씩 나오도록 현금 흐름을 짜고, 배당주를 사고, 그렇게 편안한 노후만 꿈꿉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다. 내가 지었으니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건지리라." 이것은 이사야 46장 4절의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국내에도 시니어 선교 한국 같은 단체가 은퇴 세대 선교 동원과 훈련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하프 시그널의 답이 교회에 있습니다. 아멘입니까?
제가 저것을 말씀드린 이유는, 열방의 예배자는 계산되지 않은 헌신으로 세워진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또 하나의 모습이 있습니다. 내 방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바니아는 중동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이고, 그래서 알바니아 깡패들이 가장 죄질이 나쁘다고 합니다. 그런데 OM 산하 예술 사역 단체가 있습니다. 하트 사운드 인터내셔널이라는 팀이 코소보에 가서 알바니아 청년들을 모아 놓고 4일간 나이트 워십 캠프를 했습니다. 3일간 워십 세션을 열어서 청년들을 모았습니다. AI를 사용해서 한 번도 작곡이나 음악을 해 본 적이 없는 청년들을 데리고 알바니아어로 아홉 곡을 만들어 발매했습니다. 그들은 처음으로 경배곡을 만든 것이 혁명적인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AI를 사용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많습니다.
또 트렌드 코리아 2027에는 "안목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1퍼센트, 2퍼센트 리더들이 가지는 통찰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AI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경험입니다. 우리가 "꼰대"라는 말이 나오면서 이상하게도 어른들의 조언을 무시하는 교만한 세대가 탄생했습니다. "진지충"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사람들이 진지하게 무엇을 생각하고 천천히 생각하는 것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이것이 악하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만 말해도 "꼰대요" 하면서 "이것을 꺼 버릴까?" 하고 우리를 위협합니다. 그렇게 말이 많이 악해졌습니다. 진지하게 인생과 연륜이 쌓인 분들에게 배울 것이 많습니다. 물론 그분들도 언어의 절제가 필요하고, 말이 끊기지 않는 것 같은 한계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분들의 책을 읽어 보시면 안목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선교의 삶을 막 시작한 분들과, 선교지에서 여러 가지를 다 경험한 분들의 시선은 다를 수 있습니다. 열정이 많은 젊은 사역자의 눈으로 보면, 저 같은 사람은 힘 빠진 형님일 것입니다. 잘 듣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 저것은 위험하다" 하고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 있습니다. 어떤 분야의 톱 리더들, 원로들이 가진 것을 존중하는 것이 없어진 시대에서, 그래서 안목이 또 하나의 트렌드라고 그 책에 나옵니다. 그 안목이 얼마나 비싼 값에 팔리고 사용될 수 있는지 말입니다. 사실 통찰력은 우리가 알듯이 지혜와 계시로 주신 하나님의 영감의 수준입니다.
시간이 길어졌는데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것은 누가 알 수 있습니까? 로마서 12장 2절에서 말씀하신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의 것입니다. 그러려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고,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를 드리고,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트렌드의 답이 성경에 다 있더라고요. 할렐루야. 이 자부심을 가져도 괜찮습니다.
이제 결론입니다. 예배자를 세우려면 우리가 먼저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보내는 선교회인 저희가 먼저 계산되지 않는 예배를 드릴 때, 예배가 열방으로 흘러갈 줄 믿습니다. 저희는 워라밸을 많이 존중합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그것을 넘어설 필요도 있습니다. 제가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습니다.
자, 이제 기도하겠습니다. 이것도 AI의 도움을 받아 만든 PPT인데, 마무리는 사람의 손으로 해서 시간이 확실히 단축됩니다. 이것만 기억하시고 기도하러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선교의 목적은 예배입니다. 열방이 기술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예배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선교의 방식은 무엇입니까? 성육신입니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연결입니다. 와우! 그래서 폼팩터 시프트도, 트렌드 10가지를 제가 다 다루지는 못했지만 보시면서 아마 아쉬우셨을 겁니다. 이것은 다 성경에 답이 있습니다. 진단은 했지만 답을 주지 못하는 것이 트렌드 책의 한계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답이 있습니다. 그리고 선교의 동력은 무엇입니까? 올림 스쿨입니까? 더 부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한 분 한 분에게 주신 것입니다. 베다니의 여인처럼, 주님께 향유 합을 깨뜨린, 계산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드리는 헌신이라고 믿습니다.
2027년의 남은 80일도 그렇고, 저희 선교회가 달려갈 일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배자를 세우고, 예배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열방을 연결하고 예배자를 세우는 선교를 하고자 합니다. 기술은 사람을 이어 주지만 하나님을 이어 주지 못합니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해야 합니다. 같이 읽고 기도할까요? 시작하겠습니다. "AI가 세상을 잇는 시대, 우리는 얼굴과 사랑으로 열방을 품고, 계산하지 않는 예배로 하나님 앞에 선 예배자를 세웁니다. 그래서 저희의 표어는 '2027년, 열방을 연결하고 예배자를 세우는 선교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이제 같이 기도합시다. 하나님, 저희 자리에서 다 타문화권 선교사가 아닙니다. 외국 선교사도 아닙니다. 이곳에서 부름받은 분들, 다문화권 선교사로 부름받은 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 봅시다. 그래서 AI도 적극 활용하고, 열방을 연결하되 결국 열방은 예배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꿈입니다. 주님의 열심입니다. 테크놀로지는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를 연결하는 것은 예배이고, 주님에 대한 임재이며, 임재 안에서 드린 예배를 통해 우리가 열방을 예배할 때, 하나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사용하여 주시고, 우리 가족을 사용하여 주시고, 우리 공동체를 사용하여 주십시오. 2027년의 트렌드를 넘어선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달려가는 한 해가 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불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님,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온 열방이 기술로 연결되는 것을 넘어서, 주님의 보좌이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 연결된 그 거룩함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이름과 주님의 뜻이 열방으로 연결될 때, 하나님 아버지, 열방이 예배로 연결되고 예배자들이 연결되고, 예배자를 세우면 예배자를 섬기는 거룩한 은혜가 우리 가운데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열방을 주 앞에 연결하며 예배자를 세우는 선교를 할 때, 선교사가 나아가 AI를 사용하며 기술을 도구로 사용하면서도 주님 품에 나아가는 은혜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보좌 앞에 설 그 큰 무리를 위하여, 우리가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에클레시아선교회, 우리가 섬기는 한국 교회, 우리 각자의 공동체가 그렇게 주 앞에서 사용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그렇게 이끌어 주옵소서.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하오니, 열방이 예배로 연결되며, 열방이 보좌로 연결되며, 열방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연결된 은혜가 있게 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기도로, 손편지로, 선교로, 동역으로, 물질로, 나가는 모든 것으로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과 함께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그런 힘을 더해 주옵소서. 우리로 담대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아멘.
우리 또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저는 주님 앞에 늘 계산하고 달라고만 했지, 이것을 넘어서 저의 모든 것을 다 들여서 주님께 헌신하고 달려간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 2027년, 아니 5787년에는 나와 우리를 그렇게 사용해 주십시오. 가족만을 위해 사는 것도, 여러분, 가족 이기주의입니다. 우리 가족에게 도움이 될 만한 공동체만 쇼핑하고 다니는 것도 이기주의입니다. 오히려 거기서 가족들이 함께 헌신하고 도울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사랑입니다. 여러분, 기억합시다. 새로 시작된 한 해, 하나님, 제가 주님께 모든 것을 계산되지 않는 예배로 드리는 새로운 아내가 되게 해 주십시오. 베다니 그 여인의 예배를 나와 우리 가족, 우리 공동체가 드리게 해 주십시오. "가만 두어라. 저가 나에게 좋은 일을 했다." 그 칭찬이 복음이 전파되는 모든 곳에서 이 여인의 행적을 말하게 하시면서, 그 여인을 높이시는 주님의 칭찬이 저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계산되지 않은 예배와 헌신을 주님께 드리는 새로운 아내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님, 기도합니다.
계산되지 않은 헌신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주 앞에서 잃게 하지 마옵소서. 베다니의 여인처럼 향합을 깨뜨려 주님의 몸에 드리고 주님의 마음에 드리며, 안목으로 따지지 아니하고, 하나님 아버지, 오히려 주님 앞에 다 드리고, 더 드리고, 모든 것을 드리고도 더 드릴 것이 없나 찾는 기쁨으로 드리는 다윗의 고백과 다윗의 헌신, 그리고 다윗의 형통함이 있게 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기도합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 앞에서 겸손히 엎드립니다. 우리가 주의 은혜 안에서 달리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도와주옵소서. 베다니의 여인처럼 거룩한 낭비를 드리며, 거룩한 헌신을 드리며, 거룩한 시간을 드리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가겠습니다. 올림 스쿨과 더 부, 그리고 하나의 방기 선교사들, 우리 땅에서, 우리 삶의 영역에서, 성경 공부와 모임과 전도와 섬김과 나눔과 행함으로, 하나님 아버지, 이 민족과 열방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거룩한 선교의 헌신, 계산되지 않는 헌신이 우리 선교의 동력이 되기를 원하오니, 성령님, 우리를 그렇게 이끌어 주십시오. 하나님, 간절히 기도합니다. 5787년, 나의 삶을 주님께 드립니다. 2027년, 나의 삶을 주님께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 앞에 돌아갑니다. 주여, 주여, 주여, 도와주옵소서. 주여, 이끌어 주옵소서. 주님, 하나님 나라를 달려가게 하시기를 하늘의 손함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많은 교회를 이롭게 하시며 많은 이들을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먼저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찾고 계신 예배자를 주님의 발걸음을 따라 그냥 따라가면서 찾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전도이고 선교일 줄 믿습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권능을 받아, 주님의 마음도 받고,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눈물, 애타하는 주님의 심정이 더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5780년, 내 인생에서 가장 말씀으로 충만한 해, 가장 성령으로 충만한 해, 가장 크게 성장한 해, 가장 크게 확장한 해, 가장 순결한 해, 가장 거룩한 해가 되게 하시옵소서. 게으름을 버리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며 달려가는 그런 한 해가 되게 해 달라고, 말씀과 성령의 충만함을 이 시간 주님의 이름으로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님, 말씀과 성령이 가장 충만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주의 말씀이 흥하여 가시고, 주의 말씀이 날려갈 때, 하나님 아버지, 제가 그 말씀 앞에 손잡고 말씀으로 날아가고, 말씀으로 노래하며, 말씀으로 춤을 추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성령 충만한 하나 됨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에클레시아선교회, 그리고 한국 교회, 성 김민 교회, 하나님, 우리 열방의 교회들과 선교사님들 모두에게, 하나님 아버지, 열방에, 각 영역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 주님의 뜻 이루어 주시옵소서. 주님의 역사 이루어 주시옵소서. 주의 말씀, 주의 은혜, 주님의 생명, 주님의 거룩함, 주님의 영광 안에서 달려가게 하시옵소서. 신부의 영성으로, 자녀의 영성으로, 친구의 영성으로, 종의 영성으로, 하나님의 용사의 영성으로 사는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하나님, 가장 크게 성령 충만하고, 가장 크게 말씀 충만하고, 가장 크게 사랑 충만하고, 가장 크게 성장하고, 가장 크게 확장하고, 가장 크게 된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예배자를 먼저 찾으시는 하나님, 우리가 주님의 발걸음을 따라가겠습니다. 5787년, 그리고 2027년, 우리가 그렇게 예배자를 찾으시는 주님의 발걸음을 따라가,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을 알게 하고, 예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을 함께 예배하고, 예수님 앞에서 예배자로 세우는 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안목을 따지고 트렌드를 따지는 것을 넘어, 성경에 모든 답이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 계산되지 않는 주님의 몸에 향유를 붓던 베다니의 한 여인처럼, 주님의 몸에 향유를 붓는 그런 5787년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2027년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말씀 충만의 한 해,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성령 충만의 한 해, 우리 인생의 가장 큰 확장과 성장의 한 해,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순결함과 거룩함의 한 해가 우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사역의 확장을 넘어선 사랑의 확장과 사랑의 성장과 사랑의 크기와 사랑의 깊이와 사랑의 넓이와 사랑의 흘러감이, 5787년을 규정짓는 저희들의 인생과 사역의, 하나님, 향방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 땅에서, 각 영역에서, 열방에서, 하나님이 예배자를 찾으시는 그 발걸음을 따라, 예배자를 찾고, 세우고, 연결하고, 주님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를 또한 그렇게 세워 주시옵소서. 우리를 마음껏 사용하여 주시기를 원하며, 이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다함없고 무궁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 교통, 충만하신 은혜가, 주님의 발걸음을 따라 계산되지 않는 그 모든 것을 다 드리는 거룩한 삶을 살기로 결단한 사랑하는 모든 분들의 삶과 가정과 사역지와 우리가 속한 이 공동체와 세대와 민족과 열방 위에, 이제와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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