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미상 · 한국인
요약 보기
2008년 리먼 사태로 80% 폭락했던 XLF(금융 섹터 ETF)가 12년 만에 회복됐다는 역사 중심 설명. 금융주는 금리 인상기에 유리하지만 경기 침체·규제 리스크가 있고, 장기 수익률은 S&P500에 못 미친다. 2009년 바닥 매수 시 큰 수익을 얻었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타이밍의 중요성을 말함. 명시적 향후 방향 예측은 없음.
다듬은 글
2008년 9월 15일 월요일 아침, 뉴욕 맨해튼 7번가와 745번지 앞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종이 박스를 들고 건물을 빠져나오는 직원들. 158년 역사의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날이었습니다. 그날 XLF라는 ETF는 하루 만에 10%가 빠졌습니다. 그리고 6개월 동안 계속 떨어졌습니다. 2007년 30달러였던 가격이 2009년 3월에는 6달러가 됐습니다. 80%가 증발한 겁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이 ETF를 사기 시작한 겁니다. 공포의 한복판에서 JP모건, 뱅크 오브 아메리카, 골드만삭스를 담은 이 바스켓에 돈을 넣은 사람들. 그들은 미친 걸까요, 천재였을까요?
XLF는 파이낸셜 셀렉트 섹터 SPDR 펀드의 약자입니다. 1998년 12월 16일에 상장됐습니다. S&P 500 지수에 포함된 금융 기업들만 골라서 담은 ETF입니다. 운용사는 SPY를 만든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스입니다. 수수료는 연 0.09%로, 섹터 ETF 중에서도 저렴한 편에 속합니다.
이 ETF가 담고 있는 기업들을 보면 월가의 지도가 그려집니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워런 버핏의 지주 회사입니다. 그다음이 JP모건 체이스, 미국 최대 은행입니다. 참고로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2023년 산업 분류가 바뀌면서 IT 섹터로 옮겨가 더 이상 이 ETF에 없습니다. 대신 뱅크 오브 아메리카, 웰스파고,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그리고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까지 미국 금융 시스템의 심장이 다 들어 있습니다.
총 보유 종목은 약 15개입니다. 대형은행, 투자은행, 보험사, 자산운용사가 섞여 있습니다. 시가총액 가중 방식이라 큰 회사일수록 비중이 높습니다. 상위 10개 종목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집중도가 높은 편입니다.
XLF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미국 금융 산업의 흐름을 알아야 합니다. 1990년대 후반 미국 금융주는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규제 완화로 은행들이 덩치를 키웠고, 월가는 새로운 금융 상품을 쏟아냈습니다. XLF는 이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상장 후 닷컴 버블 붕괴를 겪었지만 금융주는 상대적으로 선방했습니다. 기술주가 무너지는 동안 은행과 보험사는 버텼습니다. 문제는 2007년부터 시작됐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집값이 영원히 오를 거라 믿었던 시대의 종말이었습니다. 신용이 낮은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고, 그 대출을 묶어 증권으로 만들어 팔았습니다. CDO, CDS 같은 복잡한 파생 상품이 월가를 휩쓸었습니다.
모두가 돈을 벌었습니다. 잠깐 동안은요. 2008년 베어스턴스가 먼저 쓰러졌습니다. JP모건이 헐값에 인수했습니다. 그리고 9월, 리먼 브라더스. 이번에는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습니다. 158년 된 투자은행이 하루아침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공포가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AIG가 흔들렸고, 정부가 긴급 구제에 나섰습니다.
XLF의 추락은 처참했습니다. 2007년 5월 30달러를 넘어섰던 가격이 2009년 3월에는 6달러까지 떨어졌습니다. 고점 대비 80% 하락. 금융 시스템 전체가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씨티그룹 주가는 1달러까지, 뱅크 오브 아메리카도 3달러대까지 밀렸습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바닥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2009년 3월 연준이 양적 완화를 시작했습니다. 정부가 은행들에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TARP 프로그램으로 수천억 달러가 금융 시스템에 투입됐습니다. 은행들은 살아났습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회복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2009년 3월 6달러에서 반등을 시작했지만, 2007년 고점인 30달러를 회복하는 데 12년이 걸렸습니다. 2019년 말이 되어서야 겨우 30달러 선을 다시 밟았습니다. 테크주가 로켓처럼 솟구치는 동안 금융주는 묵묵히 걸어 올라왔습니다. 금융주가 이렇게 더딘 회복을 보인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위기 이후 규제가 강화됐습니다. 도드-프랭크법이 통과됐습니다. 은행들은 더 많은 자본을 쌓아야 했고, 위험한 투자를 제한받았습니다. 볼커 룰이 시행되면서 자기자본 거래가 금지됐습니다. 수익성이 예전만 못했습니다. 저금리 환경도 은행의 수익을 짓눌렀습니다. 예대마진이 줄어들었습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을 때 XLF는 또 한 번 급락했습니다. 30달러에서 18달러까지 한 달 만에 40%가 빠졌습니다. 2008년의 악몽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연준이 즉각 개입했습니다. 금리를 내리고 무제한 양적 완화를 선언했습니다. 정부는 PPP 대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은행들은 대출을 중계하며 수수료를 벌었습니다. 회복 속도도 빨랐습니다. 2020년 말에는 이미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했습니다.
2021년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면서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겁니다. 은행에게 금리 인상은 호재입니다. 예대마진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낮은 금리로 예금을 받아 높은 금리로 대출해 주면 그 차이가 수익이 됩니다.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연준은 기준금리를 5%포인트 넘게 올렸습니다. 역사상 가장 빠른 금리 인상이었습니다. 테크주는 폭락했지만 금융주는 선방했습니다.
XLF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물론 2023년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터지면서 한 차례 충격이 있었습니다. 지역 은행들이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대형 은행들은 오히려 수혜를 입었습니다. 예금이 대형 은행으로 몰렸기 때문입니다.
현재 XLF의 운용 자산은 약 500억 달러입니다. 금융 섹터 ETF 중에서 압도적 1위입니다. 평균 거래량도 수천만 주에 달합니다. 유동성이 풍부해서 기관 투자자들도 많이 사용합니다. 금융주에 베팅하고 싶을 때 개별 종목 대신 XLF를 사는 겁니다.
배당도 나옵니다. 분기마다 배당금을 지급하며, 배당 수익률은 약 1.4% 수준입니다. 고배당 ETF는 아니지만, 금융주 특성상 꾸준한 배당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다만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배당이 크게 삭감됐습니다. 은행들이 살아남기 위해 배당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XLF에 투자한다는 건 미국 금융 시스템에 투자하는 겁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장점부터 보면, 미국 경제가 성장하면 금융주도 성장합니다. 대출이 늘고, 투자가 늘고, 거래가 늘기 때문입니다. 금리가 오르는 환경에서는 특히 유리합니다. 은행 수익이 좋아집니다. 버크셔 해서웨이 같은 안정적인 기업이 포함되어 있어서 변동성이 극단적이지는 않습니다.
단점은 명확합니다. 경기 침체에 취약합니다. 경제가 나빠지면 대출 부실이 늘어납니다. 2008년처럼 금융 시스템 전체가 흔들리면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규제 리스크도 있습니다. 정치권에서 대형 은행을 쪼개자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주가가 흔들립니다. 그리고 기술 혁신의 수혜가 제한적입니다. 핀테크 기업들이 은행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습니다.
경쟁 ETF도 있습니다. VFH는 뱅가드에서 만든 금융 섹터 ETF입니다. IYF는 블랙록의 금융 ETF입니다. KBE는 은행주에 더 집중된 ETF이고, KRE는 지역 은행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XLF가 대형 금융주 전반을 담는다면, KRE는 중소형 지역 은행에 집중합니다.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 사태 때 KRE는 폭락했지만 XLF는 상대적으로 덜 빠졌습니다. 분산의 힘입니다.
그렇다면 XLF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요? 금리 사이클에 따라 전략이 달라집니다. 금리가 오르는 시기에는 금융주가 유리합니다. 금리가 내리는 시기에는 성장주가 더 좋을 수 있습니다. 경기 확장기에 금융주 비중을 늘리고,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 비중을 줄이는 전술적 접근이 가능합니다.
장기 투자자라면 포트폴리오의 일부로 보유할 수 있습니다. 미국 경제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금융 섹터도 함께 성장할 겁니다. 다만 2008년의 교훈을 잊으면 안 됩니다. 금융주는 순식간에 80%가 빠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회복에 12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1998년 상장 이후 XLF의 연평균 수익률은 약 6%입니다. S&P 500의 연평균 10%에는 못 미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시장 평균을 이기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숫자에는 2008년 금융 위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09년 바닥에서 샀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6달러였던 가격이 지금은 50달러가 넘습니다. 여덟 배 이상 오른 겁니다.
결국 XLF는 타이밍의 ETF입니다. 공포의 순간에 사서 오래 들고 있으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고점에서 사면 오랜 시간 고생할 수 있습니다. 금융주는 경기에 민감하고, 금리에 민감하고, 정책에 민감합니다. 꼼꼼히 살펴봐야 하는 섹터입니다.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가 무너지던 날 XLF를 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공포에 질려 팔았습니다. 하지만 일부는 샀습니다. 월가가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거라 믿었던 사람들, 미국 금융 시스템의 복원력을 믿었던 사람들. 그들의 선택이 옳았는지는 지금의 주가가 증명합니다.







Comments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