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덕주실리콘밸리특파원 · 한국인
요약 보기
브로드컴은 KKR이 만든 사모펀드형 반도체 기업으로, 호크 탄 CEO 체제에서 비핵심 사업 매각과 레버리지 인수합병을 반복해 성장했다. 2014년 LSI 인수로 맞춤형 AI 반도체(XPU) 사업을 확보했고, 구글 TPU·메타·바이트댄스 등의 주문이 늘며 AI 데이터센터 수요의 수혜를 받고 있다. 2024년 12월 맞춤형 반도체 매출이 크게 늘 것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2017년 퀄컴 인수 시도는 무산됐지만 이후 VMware 인수 등 서버·클라우드 포트폴리오 확장이 주가 상승 요인이 됐다. 본사의 미국 이전 과정과 시가총액 1조 달러 달성도 짚었다.
다듬은 글
안녕하세요, 매일경제 월브 시청자 여러분. 저는 지금 실리콘밸리에 있는 브로드컴 사무실 앞에 나와 있습니다. 브로드컴은 여러 반도체 기업들이 인수합병을 통해 만들어진 거대한 공룡 반도체 기업입니다. 그리고 최근 AI 붐을 타고 엔비디아에 이어 AI를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브로드컴은 지금의 거대한 반도체 기업이 될 수 있었을까요? 지금의 브로드컴을 만든 다섯 가지 결정적 순간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최근 엔비디아의 대항마로 떠오르면서 시가총액이 1조 달러를 돌파한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은, 한국에서는 비교적 최근에야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브로드컴은 좀 특이한 출신 성분을 가진 회사입니다. 바로 사모펀드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회사라는 점이죠. 그래서 브로드컴은 "반도체 회사의 탈을 쓴 사모펀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레버리지와 합병을 통해 계속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브로드컴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도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 휴렛 패커드입니다. 1935년에 만들어진 이 회사는 지금도 HP, HPE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긴 역사를 가진 만큼 휴렛 패커드는 여러 사업을 해왔는데요.
1999년 휴렛 패커드는 컴퓨터와 프린터 등 핵심 비즈니스 이외의 사업을 에질런트 테크놀로지스라는 회사로 분사시켰습니다. 비핵심 사업 중에는 반도체 사업도 있었는데요. KKR이라는 사모펀드가 2005년 에질런트 테크놀로지스의 반도체 사업만 인수해 비상장 기업을 만들었고, 이 회사가 바로 아바고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모펀드라고 부르는 사모투자 전문 회사, 즉 프라이빗 에쿼티 회사는 상장 기업을 인수해 비상장 상태로 만들어 구조조정을 하거나, 비상장 기업을 인수해 구조조정을 거쳐 재무 상태가 우수한 기업으로 만들어내는 일을 합니다. KKR은 아바고를 만들고 전문 경영인으로 말레이시아 화교인 홍크(Hock) 탄을 CEO로 영입합니다.
그는 미국의 여러 기업에서 임원으로 일했고, 반도체 기업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었죠. 무엇보다 그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생각이 KKR의 방향과 들어맞았습니다. 홍크 CEO는 '반도체 프랜차이즈 전략'을 갖고 있었습니다.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하려면 2위, 3위와 큰 차이를 가진 압도적인 지배력의 1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바고는 막강한 1위 사업을 여러 가지 갖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1위 사업은 당연히 수익성이 좋겠죠. 이는 사모펀드가 회사를 인수해서 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비핵심 사업을 매각하고 수익성이 좋은 핵심 사업만 남겨 재무 건전성을 높인 후, 이를 다시 상장시키고 큰 회사에 파는 것입니다.
아바고의 CEO가 된 홍크 탄은 아날로그 반도체, LED 사업을 남기고 나머지 사업을 정리했습니다. 수질 사업은 PMC에, 프린터 반도체 사업은 마벨에, CMOS 이미지 센서 사업은 마이크론에 매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직원 수는 6,500명에서 3,600명으로 절반가량 줄었습니다. 이렇게 매각한 자산으로 인수에 끌어온 돈을 갚았고, 회사의 재무 건전성과 현금 흐름은 크게 좋아졌습니다. 불과 4년 만에 아바고는 나스닥에 다시 상장했고, KKR 등 사모펀드는 짧은 기간에 다섯 배의 수익을 거뒀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모펀드가 아바고를 설립하고 홍크 탄 CEO를 영입한 것이, 지금의 브로드컴을 만든 첫 번째 결정적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바고의 탄생과 상장으로 끝났다면 지금의 브로드컴은 없었을 것입니다. 아바고는 이때부터 적극적으로 M&A 전략을 취합니다. 특히 레버리지를 일으켜서 자신보다 몸집이 큰 회사를 인수하는 전략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합니다. 작은 물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 훨씬 몸집이 큰 고래를 삼키는 전략입니다. 첫 번째 타깃이 된 고래는 바로 LSI라는 반도체 회사입니다. 1980년에 설립된 긴 역사를 가진 이 팹리스 기업은 젠슨 황이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하기도 한 회사였죠. LSI는 AT&T 반도체 부문을 비롯해 여러 반도체 회사를 인수해 몸집을 키우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LSI의 핵심 사업은 맞춤형 반도체와 하드 드라이브 및 SSD 컨트롤러 반도체였습니다. 아바고는 2014년 LSI를 66억 달러, 약 10조 원에 인수하고, 미국에서 아홉 번째로 큰 반도체 회사로 부상합니다. 그런데 10년 전 LSI를 인수한 것이 지금의 브로드컴을 만든 두 번째 결정적 순간입니다. 왜냐하면 LSI가 갖고 있던 맞춤형 반도체 사업, 이른바 ASIC 사업이 지금의 브로드컴의 맞춤형 AI 반도체 사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브로드컴은 이 사업을 XPU 사업이라고 부릅니다. 2014년은 딥러닝 연구자들이 엔비디아의 게임용 그래픽 GPU를 사용한 AI 혁명이 막 시작되던 시기였습니다.
일찍이 딥러닝의 가능성을 알아본 구글은 그때부터 엔비디아 GPU를 대체할 자체 AI 가속기를 개발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이를 만드는 데 도와줄 최적의 파트너가 브로드컴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때부터 브로드컴은 구글의 TPU 설계 파트너로 함께 개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챗GPT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 비즈니스는 크지 않았습니다. 먼저, 지금처럼 대규모의 AI 데이터센터 인프라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AI 수요는 성장하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기하급수적이지 않았습니다. 또 구글 TPU는 대부분 구글이 내부 AI 연구를 위해 사용했기 때문에 필요한 수량이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챗GPT 등장 이후 GPU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TPU 수요까지 폭발시켰습니다. 구글이 자체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TPU도 많았고, 구글의 TPU를 사용하는 고객들도 많아졌습니다. 대표적으로 애플이 구글 클라우드에서 AI를 학습시켰다고 하죠. 엔비디아 GPU가 너무 비싸지자 자체 칩을 만들려는 수요도 많아졌습니다. 챗GPT 이전이지만 메타가 자체 AI 가속기 MTIA를 2020년부터 브로드컴과 만들고 있었는데요. 메타도 자체 AI 가속기를 많이 만들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틱톡을 서비스하는 바이트댄스가 이미 브로드컴과 AI 반도체를 만들고 있고, 애플과 오픈AI도 브로드컴과 함께 AI 반도체를 만들 것이라는 기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기업들이 자체 맞춤형 AI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브로드컴 앞에 줄을 서다 보니, 호크 탄 CEO가 지난 12월 13일 깜짝 발표를 했습니다. 2027년 맞춤형 반도체 관련 매출이 600억 달러에서 9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며, 기존 세 고객사에 추가로 두 곳의 고객사와 협력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2014년 인수한 LSI의 맞춤형 반도체가 이렇게 AI 시대의 핵심이 될 줄 호크 탄은 알았을까요? 브로드컴의 지금을 만든 두 번째 결정적 순간입니다.
LSI 인수에 성공한 아바고는 이번에는 좀 더 큰 인수에 도전합니다. 바로 브로드컴입니다. 1991년 설립된 브로드컴은 초기 인터넷과 무선통신 핵심 기술을 가진 회사로, 아바고보다 훨씬 인지도가 높은 회사였습니다. 아바고는 브로드컴에 370억 달러의 인수 제안을 합니다. 당시 아바고의 시가총액은 340억 달러였습니다. 자신보다 훨씬 큰 회사에 인수 제안을 던진 것입니다.
브로드컴의 주주들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을까요? 물론 받아들였습니다. 대신 통합된 회사의 이름은 브로드컴으로 하고, 주식거래 티커는 아바고의 것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CEO도 홍크 탄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면서, 향후 회사의 주도권은 계속 아바고가 잡았습니다. 브로드컴을 통해 아바고는 높은 브랜드 인지도와 함께 브로드컴의 알짜 사업들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아바고는 사모펀드가 만든 근본 없는 회사가 아니라, 미국 반도체 업계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브로드컴 인수가 지금의 브로드컴을 만든 세 번째 결정적 순간인 이유입니다.
브로드컴의 M&A 기반 성장은 마술과 같았습니다. 자신보다 규모가 큰 회사를 레버리지로 인수한 후, 사업과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빚을 갚자 회사 기업가치가 급등했습니다. 인수를 했으니 매출은 늘어났고, 돈을 잘 버는 사업만 남겼으니 수익성은 좋아졌습니다. 주가는 올라갔고, 부채가 줄어들자 다시 끌어올 수 있는 대출 규모도 늘어났습니다. 이제 브로드컴은 반도체 업계의 왕관에 가려져 있던 보석 같은 기업을 인수하는 데 나섭니다. 바로 퀄컴입니다. 퀄컴에 대해서는 실리콘밸리뷰 영상이 있으니 한번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브로드컴은 2017년 11월 퀄컴에 1,300억 달러의 인수 제안을 던지죠.
190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습니다. 만약 성사됐다면 테크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가 될 뻔했습니다. 당시 반도체 업계의 상황을 보면, 인텔이 여전히 굳건한 1위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엔비디아와 브로드컴의 주가가 빠르게 오르고 있었습니다. 퀄컴은 당시 애플과 소송전을 벌이면서 주가가 바닥을 기고 있었습니다. 브로드컴의 주가가 역전된 상황에서 인수 제안이 들어온 것입니다. 당시 브로드컴과 퀄컴의 인수전에는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NXP도 끼어 있었습니다. 퀄컴은 몸집을 키우기 위해 NXP 인수를 추진한 상태였죠.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몸을 키워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브로드컴의 인수 시도는 2018년 3월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행정명령으로 중단시키면서 결국 무산됩니다. 브로드컴은 이때를 끝으로 큰 반도체 기업 인수를 중단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인텔과 엔비디아 정도만 인수 대상으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업을 인수합니다. 2018년 CA 테크놀로지스, 2019년 시만텍 보안 사업을 차례로 인수했고, 2022년에는 서버 컴퓨터의 핵심 기술을 제공하는 VM웨어를 60억 달러, 약 9조 원에 인수합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VM웨어입니다. 이는 브로드컴이 영위하고 있는 서버 및 클라우드 사업과 시너지가 날 수 있는 좋은 사업이었습니다. 이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서버와 데이터센터 산업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한 것은, 최근 AI 데이터센터 인프라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상황에서 브로드컴의 주가를 올린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퀄컴 인수 실패는 지금의 브로드컴을 만든 네 번째 결정적 순간이라고 할 만합니다. 브로드컴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때 퀄컴을 인수하지 못한 것이 AI 데이터센터에 집중할 수 있었던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퀄컴 인수 발표가 이루어지기 직전, 홍크 탄 브로드컴 CEO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방송에 등장합니다. 2017년 취임한 트럼프 행정부는 대규모 법인세 감세 정책을 내놓았는데요. 마침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브로드컴이 법적인 본사 소재지를 미국 델라웨어주로 옮기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두 손 들고 반길 일이었죠. 그런데 브로드컴은 세금 때문만이 아니라 미국으로 본사를 옮겨야 하는 중요한 이슈가 있었습니다. 2016년에 인수한 반도체 회사 브로케이드와의 합병 과정에서 미국 CFIUS의 승인이 지연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CFIUS는 외국인이 미국 기업에 투자를 할 때 이를 심사하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미국 CFIUS는 싱가포르 기업인 브로드컴이 브로케이드를 인수하면 중요한 반도체 기술이 중국으로 흘러들어갈 것을 우려했습니다.
무엇보다 홍크 탄은 말레이시아 출신 중국계였고, 브로드컴은 많은 중국 기업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브로드컴은 본사를 미국으로 옮긴다고 발표했고,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퀄컴 인수 시도를 발표했습니다. 브로드컴은 왜 본사가 싱가포르에 있었을까요? 브로드컴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휴렛 패커드는 싱가포르에 반도체 공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KKR이 아바고를 설립할 때 싱가포르의 국부펀드인 테마섹이 주요 투자자로 참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막 만들어진 아바고는 싱가포르를 본사로 삼은 것입니다. 홍크 탄 CEO는 2017년 본능적으로, 싱가포르에 계속 본사를 두면 인수합병은 물론 미국 내 사업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퀄컴 인수는 무산됐지만 계획대로 본사는 미국으로 옮겨졌습니다. 브로드컴은 본사를 산호세에 뒀다가 VM웨어를 인수한 후에는 VM웨어 사옥이 있던 팔로알토로 본사를 옮깁니다. 만약 이때 브로드컴이 싱가포르에 본사를 계속 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미국 정부와 기업들로부터 계속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기업가치 1조 달러를 달성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브로드컴이 미국으로 본사를 이전했을 때 기업가치가 1,000억 달러였는데, 불과 7년 만에 주가가 바로 뛴 것은 결국 이때의 결정 덕분입니다. 지금의 브로드컴을 만든 다섯 번째 결정적 순간입니다.
브로드컴은 사모펀드가 만든 반도체 회사입니다. 하지만 홍크 탄이라는 유능한 CEO를 영입한 후, 비핵심 사업을 매각하고 핵심 사업을 계속 사들이는 방식으로 1조 달러 기업을 만들었습니다. 많은 대출을 일으키는 위험한 수였지만, 무자비할 정도의 구조조정으로 회사의 수익성을 개선했고, 인수합병의 플라이휠이 돌아가면서 미국 2위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무엇보다 데이터센터와 인공지능이라는 고성장 시장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것이 중요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브로드컴은 효율적인 주식시장을 바탕으로 한 주주 자본주의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막강한 사업 매각과 인수합병이 한국 대기업들에도 필요할까요? 만약 필요하다면 한국에서 실제로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댓글로 남겨 주세요. 이상, 이덕주 실리콘밸리 특파원이었습니다.







Comments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