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미상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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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의 탄생과 성장 역사를 다룬 영상. 1985년 모리스 창의 대만 초청과 파운드리 모델 도입, 1987년 TSMC 설립(필립스 투자 등), 인텔·엔비디아 등 고객 확보, 2008년 금융위기 때 모리스 창의 복귀와 과감한 투자, 애플 파트너십, EUV 집중 투자로 기술 우위 확보를 설명. 최근에는 지정학 리스크와 미국·일본·유럽 공장 다변화, 설비투자 규모(연 300~400억 달러)와 CoWoS 패키징 우위가 삼성 등 후발주자의 추격을 어렵게 한다고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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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렇게 기업 시가총액 랭킹을 국가별로 나열해 보면, 1위와 2위는 사실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에 띄는 한 나라와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대만과 TSMC죠. 1위와 2위의 시가총액 차이가 무려 10배가 넘거든요. 그만큼 대만에게 TSMC는 단순한 1위 기업을 넘어, 국가안보의 핵심이자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생존의 필수 조건 같은 기업입니다. 실제로 대만 전체 수출에서 30%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의 핵심이기도 하고, 미국과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바라보는 전략 자산이기도 하죠.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 회사는 처음부터 잘 나갔던 게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도 투자하지 않으려 했고, 시장 자체가 없던 사업으로 시작했죠.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이 이 회사 없이는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오늘은 대만 국민들에게 생존 그 자체가 되어 버린 기업 TSMC의 놀라운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의 지배자 TSMC의 탄생은 1985년의 사건에서 비롯됩니다. 바로 모리스 창의 대만행이었죠. 대만의 재정부 장관이었던 리관잉은 1973년 대만 공업기술연구원을 설립한 뒤부터 모리스 창을 영입하려고 꾸준히 시도해 왔습니다. 그동안은 계속 거절당하다가, 모리스 창이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에서 좌천되고 사실상 은퇴당한 1985년이 되어서야 겨우 초청에 성공했죠.
1985년 가을, 리관잉은 공업기술연구원 원장으로 취임한 모리스 창을 집무실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죠. "우리는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만들고 싶어. 말해 보시오. 얼마의 돈이 필요하고,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 이 말은 전설이 되었습니다.
3일의 시간을 받은 모리스 창은 대만의 강점과 약점을 냉정하게 분석한 뒤, 강점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순수 파운드리'였죠. 대만은 반도체 R&D 역량도 없었고, 회로 설계 능력도 없었으며, 마케팅 능력도 약했습니다. 지적재산권도 없었죠. 유일한 잠재적 강점은 반도체 제조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강점에 집중하면서 다른 약점은 피할 수 있는 회사가 파운드리라고 결론을 내린 거죠.
사실 모리스 창은 10년 전 TI에 있을 때 임원 회의에서 고객이 설계한 칩을 전문으로 제조하는 파운드리 모델을 설명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거절당했던 아이디어를 대만에서 실현할 기회를 얻게 된 셈이죠.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파운드리는 시장이 없었습니다. 반도체 기업들은 공정이 핵심 기밀이기 때문에 외부에 맡길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TI가 모리스 창의 아이디어를 거절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리스 창이 인텔, TI, 모토로라, AMD, 파나소닉, 소니 등 주요 반도체 기업에 투자를 요청했을 때도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유일하게 필립스만이 응했는데, 이것도 대만과의 관계 개선과 저비용 생산 기반을 활용하려는 목적이었지, 파운드리 아이디어를 높이 평가한 것은 아니었죠.
어쨌든 필립스는 약 5천만 달러를 투자하고 27.5%의 지분을 확보했습니다. 여기에 대만 정부가 48%, 대만 민간 투자자가 24.5%를 나눠 가졌는데, 민간 투자 역시 사실상 정부의 압력으로 참여한 것이나 다름없었죠. 그렇게 1987년, TSMC가 출범했습니다.
TSMC는 필립스가 라이선스해 준 1.5마이크론 공정으로 출발했습니다. 당시 인텔은 이미 1.5마이크론 공정으로 칩을 양산 중이었고, IBM은 0.8마이크론 공정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TSMC는 사실상 1.5세대 정도 뒤처진 상태에서 출발한 셈이었죠.
TSMC의 첫 번째 고객은 바로 인텔이었습니다. 80년대 후반,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저렴한 가격의 반도체로 전 세계 시장을 공략하던 상황이었고, 인텔은 수익성 높은 최신 CPU로 전환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자사 생산 용량을 확보하기 위해 구형 칩을 아웃소싱할 필요가 있었죠.
인텔의 품질 심사는 가혹하기로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TSMC는 이를 통과했을 뿐만 아니라, 수율은 인텔과 같거나 더 높았고, 비용은 더 저렴했습니다. 파운드리라는 사업 모델을 제대로 증명해 낸 것이죠. 덕분에 이후 모토로라, TI, 필립스 등 다른 기업들도 제조를 TSMC에 맡기면서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78년 카버 미드와 린 콘웨이가 반도체 설계 규칙의 표준화를 제시한 이후, 80년대 중반부터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스타트업들이 조금씩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체 공장이 없어 성장에 한계가 있었죠.
인텔이나 TI 같은 기업들은 여유 용량이 있어도, 설계를 위탁받는 것이 경쟁사를 도와주는 일이라 생각해 꺼렸습니다. 스타트업들은 설계를 맡겼다가 기술이 유출될 위험을 감수해야 했고요. 이런 상황에서 TSMC는 아주 훌륭한 선택지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모리스 창이 세운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신뢰를 만들었죠. 이 원칙은 그가 TI 시절 위탁 생산을 했다가 설계 유출 소송에 휘말리는 사례를 목격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팹리스 기업들이 TSMC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엔비디아입니다. 초기 제품 NV1은 실패했고, NV2의 개발에도 실패하면서 사실상 파산을 앞두고 있었죠. 엔비디아는 마지막으로 다음 GPU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1997년에 출시한 것이 RIVA 128이었죠. 엔비디아의 운명을 건 이 제품의 생산을 맡은 곳이 바로 TSMC였습니다.
RIVA 128로 반전에 성공한 엔비디아는 GeForce 시리즈로 GPU 절대 강자의 자리를 잡았습니다. TSMC는 지금도 엔비디아의 핵심 파트너로서 AI 반도체 블랙웰을 생산하고 있죠. 엔비디아 외에도 퀄컴, 브로드컴, 그리고 FPGA 양강인 자일링스와 알테라 등이 파트너가 되면서, TSMC는 단순한 대만의 하청 업체가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한 축을 담당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00년대 들어 반도체 공정 미세화가 가속화되었습니다. 2001년만 해도 130나노 공정이었던 것이 10년 뒤인 2011년에는 28나노 공정이 되었고, 공장 건설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막대한 투자 비용을 감당하려면 그만큼 수익을 내야 했고, 그러려면 경쟁자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더 많이 팔아야 했습니다. 그야말로 규모가 경쟁력을 만드는 시대였고, 따라갈 수 없는 기업들은 도태되었죠.
이런 상황에서 2007년 아이폰, 2008년 안드로이드가 출시되며 열린 스마트폰 시대는 TSMC를 최대 수혜 기업으로 만들었습니다. 모바일 AP와 통신 칩 수요가 말 그대로 폭발했는데, 이 기업들은 설계를 맡고 제조는 TSMC에 맡겼거든요. 스마트폰의 성장과 함께 주문이 쇄도하면서 TSMC는 더 큰 규모와 점유율을 갖출 수 있었고, 규모를 통한 생산 비용 절감으로 더 강한 경쟁력을 얻었습니다. 그 결과 미세 공정에서도 삼성, 인텔과 함께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이 되었죠.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당시 TSMC는 떨어질 뻔했습니다. 2005년 모리스 창이 물러나고 후임 CEO로 릭 차이가 취임했는데,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릭 차이는 직원을 해고하고, 신규 투자를 미루고, 고정비를 줄이는 교과서적인 대응을 했습니다.
그러자 모리스 창은 이사회에 직접 문제를 제기했고, 2009년 CEO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해고된 직원을 모두 재고용하고, 자본 지출을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확대했으며, 28나노 공정 투자를 가속화했죠. 당시 회의에서 그가 한 발언은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현 상태 유지가 가장 위험하다. 수요가 돌아왔을 때 가장 많이 투자한 자가 지배할 것이다. 수요는 반드시 돌아온다. 유일한 질문은 우리가 준비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18개월 뒤 스마트폰 수요가 폭발했고, 당시 충분한 생산 능력을 갖춘 곳은 TSMC뿐이었습니다. 이 덕분에 경쟁사와의 차이는 엄청나게 벌어졌고, TSMC는 지배자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2014년부터는 애플이 삼성전자와의 파트너십을 종료하고 생산을 TSMC에 맡기게 됩니다. 삼성이 갤럭시 시리즈로 아이폰의 가장 큰 경쟁자로 떠오른 데다, 2011년부터 양사 간 특허 소송이 격화되면서, 경쟁자에게 생산을 맡길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왔기 때문이죠.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TSMC의 철학이 여기서 빛을 발한 것입니다.
또한 TSMC 설립 초기 투자자였던 필립스와의 인연으로, 당시 필립스의 자회사였던 ASML의 노광 장비를 공급받으며 상생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이것이 또 하나의 강력한 파트너십이 되었죠. 특히 201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EUV 노광 장비에 선제적으로 올인한 것이 TSMC의 압도적인 공정 기술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2019년 미국의 화웨이 제재를 시작으로, TSMC는 지정학적 위기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미국 정부의 규제에 따라 TSMC가 화웨이에 대한 공급을 전면 중단하자, 중국 내부에서는 TSMC를 장악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왔습니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은 곧 TSMC에 집중된 반도체 산업 전체의 리스크였죠. 그래서 TSMC는 일본 구마모토, 미국 애리조나, 독일 드레스덴에 공장을 건설하며 생산을 다변화하고 있습니다.
AMD 리사 수에 따르면 애리조나 공장의 제조 원가는 대만 대비 20%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영적으로만 보면 비합리적인 투자지만, 이런 투자와 생산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TSMC가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이 공유하는 전략 자산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삼성전자가 TSMC를 추월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혹은 다른 나라가 TSMC를 흉내 내는 것이 가능할까요? 이건 꽤 어려운 일입니다. TSMC는 매년 매출의 35% 이상을 설비 투자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 금액이 연간 300억에서 400억 달러에 이르죠. 삼성 파운드리 부문의 거의 10배에 가까운 규모입니다.
이 투자 규모 자체가 기술, 수율, 고객의 격차를 만듭니다. 후발 주자가 따라잡으려면 매년 그 이상의 막대한 금액을 투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발목이 잡히는 거죠. 게다가 EUV 노광 장비의 50% 이상이 TSMC에 설치되어 있고, 첨단 패키징 부문에서도 강력한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CoWoS라고 해서 로직 칩과 HBM을 하나의 패키지에 결합하는 기술인데, 더 많은 HBM을 더 가까이 배치하는 패키징 기술에서 TSMC가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TSMC의 CoWoS 패키징 때문에 AI 반도체의 공급 병목이 생겼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입니다.
하지만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TSMC가 지금의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요? 만약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중국 역시 TSMC가 파괴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공장이 금방 복구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TSMC가 중국의 손에 넘어간다면, 그동안 내세워 온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지켜질 수 있을까요?
이것은 전 세계가 TSMC에 너무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TSMC는 이제 반도체 기업을 넘어 전략 자산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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