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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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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그플레이션] 경제 절대 어렵지 않아요~ 경린이 탈출 프로젝트 "또! 오건영" #32

신한은행 · 2021-11-02 · 유튜브 시청 30,945 · 게시판 조회 6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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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오건영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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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석유파동 스태그플레이션 사례 설명 영상. 결론: 1970년대는 성장 둔화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난 대표적 스태그플레이션 시기였으며, 이 교훈으로 대체자산(금·원자재) 투자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배경: 2차 세계대전 후 공급 부족이 해소되고 기술 발전으로 생산성이 높아져 1960년대 중반까지 물가가 안정되었다. 재정·통화 확대: 미국은 베트남 전쟁 이후 '위대한 사회' 슬로건 아래 강력한 재정 부양책을 썼고, 금 본위제 하에서 금 1온스당 35달러 제약이 있었으나 1971년 닉슨이 달러-금 태환을 폐지하며 달러 공급이 확대되었다. 가격 통제 실패: 1971년 생필품과 임금에 대한 가격 통제를 시행했으나, 기업 역마진으로 성장이 둔화되었고 약 1년 후 통제를 풀자 억눌렸던 물가가 한꺼번에 폭등했다. 석유파동: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중동 산유국이 미국에 대한 원유 수출 금지를 선언하며 유가가 급등했다. 1971년 배럴당 약 2달러 수준이던 국제유가는 1973년 약 12달러, 1979년 약 45달러 수준으로 상승했다. 자산시장 영향: 성장 둔화와 물가 상승으로 기업 실적이 악화되어 1970년대 주식시장은 전반적으로 부진했다. 채권은 물가 상승으로 구매력이 훼손되어 매력이 떨어졌다. 이에 따라 금·원자재 등 인플레이션 헤지 대체자산 투자가 주목받게 되었다. 현재 적용: 발표자는 현재 상황을 스태그플레이션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언급하며, 70년대의 교훈을 참고 사례로 제시했다. 출연자 전망: 현재 시점에서 스태그플레이션 확정 여부에 대해 명확한 전망은 제시되지 않았다.

다듬은 글

※ AI가 다듬은 글(오탈자·군말 정리)

01. 절대 어렵지 않습니다.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스태그플레이션의 개념을 말씀드리면서 70년대 석유파동을 간단히 언급했는데, 그 얘기를 좀 자세히 해 드리겠습니다. 대표적인 스태그플레이션 사례이니, 그때의 분위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02.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났습니다. 전쟁으로 공급이 크게 줄어든 시기였죠. 이후 전쟁을 거치며 제조업 기술이 발달했고,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건 낮은 비용으로 좋은 제품을 많이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물가가 전반적으로 안정됐고, 1945년 이후 1960년대 중반까지는 인플레이션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참 아름다운 시대였다고 할 만하죠.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03. 당시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소련은 공산주의를 택했고, 그 사이에서 유럽 국가들은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우며 복지국가를 강하게 추진했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나올 만큼 복지가 확대됐죠. 미국도 베트남 전쟁으로 분위기가 나빠지자, 경기 부양을 위해 '위대한 사회'라는 슬로건 아래 강력한 재정 부양책을 썼습니다. 그 결과 재정지출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04. 또 하나 중요한 요인이 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금 본위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달러는 미국이 보유한 금의 양만큼만 찍을 수 있었고, 금 1온스당 35달러로 묶여 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서는 돈을 더 찍어야 했는데, 금에 묶여 있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죠.

05. 결국 1971년, 당시 닉슨 대통령이 금 본위제를 폐지했습니다. 금에 묶여 있던 달러의 공급을 자유롭게 늘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달러 공급이 늘어나면서 유동성이 풀렸고, 전반적으로 물가가 오를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습니다.

06.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자 정부는 다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1971년 생필품과 임금에 대한 가격 통제를 도입한 것입니다. 가격이 오르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죠.

07.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품 가격이 올라야 정상인데 가격을 올리지 못하게 되자, 기업은 생산을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비싸게 팔아야 남는 장사인데 가격이 고정되니 원가보다 싸게 팔아야 하는 역마진 상황이 된 것이죠. 그러자 성장률이 떨어졌습니다. 1년 정도 지나 가격 통제를 풀자, 억눌려 있던 물가가 한꺼번에 튀어 올랐습니다. 성장은 둔화되는데 물가는 오르는, 최악의 조합이 된 것입니다. 이 정책 자체가 큰 리스크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08. 물가 상승 심리가 자리 잡은 상태에서 제4차 중동전쟁이 터졌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편을 든 중동 국가들이 화가 나, 미국에 대한 원유 수출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평소라면 원유가 남아돌 때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심리가 있던 상황에서 원유 공급이 끊기자 충격은 엄청났습니다.

09. 원유 공급이 제한되면서 물가가 폭등했습니다. 1971년 배럴당 2달러 수준이던 국제 유가는 2년 뒤인 1973년 배럴당 10달러 이상으로, 1979년에는 40달러 이상까지 치솟았습니다. 성장은 둔화된 상태에서 물가가 오르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의 대표적 사례가 된 것입니다.

10. 스태그플레이션 시기의 투자 관점에서 교훈을 짚어 보겠습니다. 지금이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70년대의 교훈은 분명합니다.

11. **주식**: 주식은 기업의 이익에 연동됩니다. 기업은 매출에서 비용을 뺀 순이익으로 평가받죠. 그런데 성장이 둔화되면 매출은 줄고, 물가 상승으로 비용은 늘어납니다. 이익이 줄어드니 기업 실적이 악화되고, 주가도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70년대 전 세계 주식시장이 대체로 부진했던 이유입니다.

12. **채권**: 주식이 안 좋으면 채권으로 분산투자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채권의 핵심은 구매력 보존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100원짜리 물건을 1년 뒤에 사려고 100원을 보관했는데, 1년 뒤 물가가 105원으로 올랐다면 채권 금리가 5%가 되어야 구매력이 유지됩니다. 그런데 물가가 13%씩 뛰는 상황이라면, 금리 3%짜리 채권은 매력이 없습니다. 아무도 채권을 사지 않게 되죠. 주식과 채권 모두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13. **대체자산**: 이때 등장한 것이 대체자산입니다. 전통적인 주식과 채권에서 벗어나, 인플레이션에 강한 자산을 고민하게 된 것이죠. 대표적으로 원자재 투자, 금 투자가 있습니다. 실물 가치를 가진 자산은 물가가 오르면 함께 오르는 경향이 있어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포트폴리오 이론에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14. 정리하면, 70년대는 성장 둔화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날 때 전통적 자산이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대안으로 대체자산이 왜 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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