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미상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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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의 생애와 엔비디아 창업 스토리를 소개. 어린 시절 미국 기숙학교 경험, 로리 밀스와의 결혼, 데니스 식당에서의 창업 회의, MV1 칩 실패와 세가와의 계약 파기 및 투자 유치, RIVA 128 성공, 지포스 시리즈로 GPU 표준 확립, 2020년대 AI 수요로 엔비디아 위상 상승을 다룸. 주가 전망 언급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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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죽 잠바 환갑 어르신이 게임과 무슨 상관일까요. 젠슨 황은 그래픽카드의 대표 기업 엔비디아를 이끄는 CEO입니다. 그 이름이 게임의 룰에 들어가 있다니 흥미롭지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젠슨 황은 대만 타이난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황싱타이는 대만 명지대 화공과 출신의 인재였는데, 에어컨의 아버지로 불리는 캐리어 사의 미국 뉴욕 지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 환경에 매료된 아버지는 자식만큼은 반드시 미국에서 자라기를 바랐고, 어린 젠슨 황에게 스파르타식으로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젠슨 황 가족은 아홉 살 무렵 태국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 나라 베트남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태국 정세마저 불안해지자, 아버지는 교육도 시킬 겸 젠슨 황을 미국으로 보내기로 합니다. 1972년 그가 보내진 곳은 켄터키 주의 깡시골 기숙학교, 침례교 학교였습니다. 평범한 기숙학교라고 여겨 보낸 것이었는데, 알고 보니 미국 내 문제아들을 교화하기 위해 보내는 곳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술과 담배는 기본이고 최소 주머니칼 하나쯤은 품고 다닐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였습니다. 아홉 살 범생이 아시아계 소년에게는 지옥 같은 환경이었고, 지독한 인종차별과 따돌림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민 오실 때까지 그 학교에서 도망치지 않고 묵묵히 버텨냈습니다.
부모님이 이민을 오면서 젠슨 황은 평범한 고등학교로 옮겨 그 시절을 벗어납니다. 이후 삶이 안정되자 그는 날아올랐습니다. 여러 번 월반해 16살에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했고, 이듬해 17살의 나이로 오리건 주립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합니다. 이 학교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명문 공대입니다.
그곳에서 그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납니다. 두 살 연상인 로리 밀스입니다. 젠슨 황과 같은 학년 250명 가운데 여학생은 단 세 명뿐이었는데, 로리 밀스는 그에게 너무 예뻐 보였습니다. 전기공학 너드 감성으로 접근하기보다 젠슨 황은 자신의 장점인 성실함으로 다가갔습니다. "로리, 내가 너의 과제를 도와줄게." 로리 밀스는 그의 성실함과 전기공학 실력에 반해버렸고, 두 사람은 졸업과 동시에 결혼합니다.
젠슨 황은 실리콘밸리에서 마이크로칩 설계자로 일하면서 두 명의 공학도 친구,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스 말라초스키를 만납니다. 둘은 창업을 꿈꾸고 있었고 실력자인 젠슨 황을 영입하고 싶어 했습니다. CEO 자리까지 약속했지만 황은 처음에 거절합니다. 살인적인 물가의 실리콘밸리에서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했기 때문에,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직장을 포기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두 친구는 집요하게 설득했고, 결국 젠슨 황은 1993년 세 사람이 함께 창업을 준비하기로 합니다. 이들은 매일같이 창업 회의를 했는데, 회의 장소는 늘 데니스라는 프랜차이즈 식당이었습니다. 젠슨 황이 15살 때부터 대학 시절 방학까지 집 근처 데니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종종 들러 최애 메뉴인 슈퍼버드를 먹는다고 합니다. 시가총액 1조 달러가 넘는 회사를 탄생시킨 테이블이라는 명패를 달아도 될 법한 곳이지요.
세 사람이 만든 회사의 이름은 엔비디아입니다. 젠슨 황은 게임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닌텐도의 동키콩과 슈퍼 마리오에 푹 빠져 있었지요. "더 멋진 그래픽으로 게임하고 싶지 않냐? 모두가 부러워할 그래픽 카드를 만들어 보자." 그렇게 그리스 신화의 질투의 여신 '인비디아'에서 이름을 따 엔비디아가 탄생했습니다.
젠슨 황은 게임을 통해 경영을 배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게임에서 "우리는 진다. 하지만 지고 지고 또 지다 보면 결국 이긴다"는 말처럼, 게임은 실패를 배우는 최고의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실패를 결과물이 아닌 도전과 혁신의 과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엔비디아는 시작부터 실패합니다. 창업 4년 차인 1996년, 사운을 건 NV1 칩이 폭망했습니다. 이 칩은 하나의 칩에서 그래픽 연산은 물론 사운드 처리와 게임패드 연결까지 지원하는 전천후 만능칩이었습니다. 세상에 없던 혁명적인 제품이었기에 젠슨 황은 실패를 상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 '세상에 없던' 제품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비교할 대상이 없으니 게이머들은 고가의 NV1 칩을 선뜻 사지 않았습니다. 1998년에 나온 3D 가속 그래픽 카드 시장에서도 3dfx 같은 브랜드가 이미 인지도를 굳힌 상태였습니다. 무명 회사의 신개념 칩셋을 누가 비싼 돈을 주고 사겠습니까. 젠슨 황이 모든 것을 걸고 25만 개를 출하했지만, 대다수가 반품되는 대참사를 맞이합니다. 반품 수량은 24만 9천 개였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신생 기업 엔비디아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당시 게임계는 격동기였습니다. 닌텐도와 세가가 양분하던 구도를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박살 냈지요. 세가는 새턴이 부진하면서 후속기 드림캐스트를 준비하던 중이었고, 플스에 맞설 더 좋은 그래픽과 사운드 칩이 필요했습니다. 세가의 눈에 미친 듯이 돌파구를 찾던 젠슨 황이 들어왔고, 엔비디아는 세가의 의뢰로 NV2 칩 개발에 착수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DirectX가 게임 업계의 표준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는데, 개발 중인 NV2 칩은 DirectX와 호환되지 않았습니다. 엔비디아만의 독자 기술을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호환되도록 처음부터 다시 만들면 세가와 약속한 납품 기일을 맞출 수 없고, 계약이 파기되면 엔비디아는 파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젠슨 황은 비장의 한 수를 들고 세가 미국 지사장을 찾아갑니다. "이대로 NV2를 끝까지 만들었다간 당신이나 나나 같이 죽소. NV2 납품은 없던 일로 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위약금을 내는 게 아니라 세가가 우리에게 투자금을 주시오." 세가 측은 당연히 황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젠슨 황은 "우리 칩이 반드시 더 강한 칩셋으로 돌아가겠다"는 확신을 보였고, 그 확신을 바탕으로 세가 일본 본사를 설득해 엔비디아는 500만 달러, 당시 환율로 약 60억 원 이상의 투자금을 받아냅니다. 덕분에 엔비디아는 파산까지 6개월의 시간을 더 벌었습니다.
이후 젠슨 황은 1997년 4월, DirectX와 호환되는 고사양 칩셋 RIVA 128의 개발을 마칩니다. 이 칩셋은 4개월 만에 100만 개 이상이 팔리며 엔비디아의 첫 히트 상품이 되었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세가의 드림캐스트는 결국 실패했고, 세가의 콘솔 도전기는 막을 내립니다. 물론 실패의 가장 큰 이유는 타이틀 부족이었습니다. 젠슨 황이 세가에 큰 마음의 빚을 졌다고 할 수 있겠지요. 목숨 줄을 잡아준 세가였기에 그 빚은 더 컸을 것입니다.
세가를 떠났던 쇼이치로 사장은 2017년 AI 세미나를 준비하다가, 우연히 메일함에서 20년 전 젠슨 황의 메일 주소를 발견합니다. "이제는 거물이 된 황 선생, 나 세가의 쇼이치로를 기억하시오. 당신과 함께 일했던 20세기가 참 그립소. 만약 나를 기억하고 그때가 행복했다면, 세미나에 당신 직원이라도 한 명 연사로 보내 주시구려." 씹혀도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보낸 메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엔비디아는 직원을 보낸 것이 아니라 젠슨 황 본인을 도쿄로 보냈습니다. 세미나 강연자로 등장한 젠슨 황을 보고 쇼이치로 사장은 얼마나 놀랐을까요. 젠슨 황은 그렇게 큰 마음의 빚을 갚았습니다.
이 세가와의 미담에는 후일담도 있습니다. 얼마 전 버추어 파이터 신작 소식이 떴을 때, 젠슨 황은 자신이 오락실 버파 죽돌이였다고 인증하며 1분이 넘는 버파 30주년 축하 영상을 보냈습니다. 엔비디아의 시작 자체가 버추어 파이터와 함께했다고 샤라웃까지 해줬지요. 세가가 엔비디아에 투자했던 500만 달러 지분은 훗날 세 배에 팔렸다고 합니다. 세가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갖고 있었다면 수십, 수백 배의 수익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엔비디아는 RIVA 시리즈를 히트시키며 3dfx를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3dfx는 마지막까지 버텼지만 결국 엔비디아에 흡수 합병되었습니다. 그 결정타가 바로 GeForce 시리즈였습니다. SUV 계의 지프, 티슈 계의 크리넥스처럼 GeForce는 그래픽 카드의 대명사이자 업계 표준이 되었습니다.
그래픽 카드는 늘 고사양 게임과 함께 발전해 왔습니다. 이른바 '크라이시스 효과'입니다. 엔비디아가 게임 회사와 밀접하게 협력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2003년 당시 리니지2가 최신 그래픽으로 주목받았는데, 엔씨소프트와 엔비디아는 기술 제휴로 긴밀하게 협업했습니다. 지금은 두 회사의 처지가 많이 엇갈리긴 하지만요.
GeForce의 역사는 엔비디아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를 전부 다루면 대하드라마가 되니, 현재의 GeForce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2025년 현재 GeForce의 위상은 어떨까요. 미국 웨드부시 증권의 애널리스트는 경쟁 제품들이 엔비디아에 밀리는 모습을 두고, 유치원생이 프로 농구 선수와 1대1을 하는 격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젠슨 황은 한술 더 떠서, 경쟁사 제품은 공짜로 줘도 아깝지 않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평소 겸손한 인품과 달리 오만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실제로 그 말이 건조한 사실임을 시장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2024년 5월, 젠슨 황은 모국 대만을 방문해 중요한 발언을 합니다. "전자 산업의 중심에 대만이 있다. 그래서 대만은 아주 중요한 국가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말입니다. 만약 한국 기업 총수가 대만에 가서 같은 말을 했다면, 중국은 삼성이든 LG든 SK든 가리지 않고 중국 수출을 막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엔비디아의 젠슨 황에게는 달랐습니다. 중국 공산당조차 속만 끓일 뿐 쉽게 제재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중국 측도 가만히 넘어갈 수는 없었기에, 2주가 지나 "하나의 중국은 이제 상식"이라는 식의 완곡한 반박을 내놓았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GPU가 무기나 식량은 아니지만, AI 시대에는 GPU가 CPU보다 훨씬 중요한 자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CPU는 한 명의 뛰어난 전문가처럼 순차적으로 연산하는 반면, GPU는 수많은 실무진이 동시에 병렬로 연산합니다. AI 연산에는 후자가 훨씬 적합하고, 전력 효율도 좋습니다. 엔비디아가 GPU 시장을 장악한 것은 결국 AI 시대를 일찍 내다보고 준비한 결과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물론 이것이 전부 계획된 것이었는지, 운이 따랐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역사는 늘 승자의 입장에서 쓰이니까요.
엔비디아가 AI에 본격적으로 투자한 것은 2010년대부터이고, AI가 대세가 된 것은 2020년대에 들어서입니다. 그 사이 긴 공백기를 버티게 해준 1등 공신이 바로 비트코인 채굴이었습니다. 중국 내몽골 고비 사막 같은 곳에 대규모 채굴장이 돌아가면서 그래픽 카드가 엄청나게 팔렸습니다. 코인 가격이 오르면 그래픽 카드 매물이 싹 사라졌다가, 코인 겨울이 오면 중고 매물이 쏟아졌지요.
게임 얘기를 하다 보니 다소 엉뚱한 사례가 떠오릅니다. 게임물관리위원회 직원이 업무용 PC로 가상자산을 채굴하다 적발된 일이 2022년에 있었습니다. 그것도 부장급 직원이 몇 달간 이더리움을 캐다가 걸렸다고 하니, 게임 산업을 관리하는 기관의 자정 능력이 의심받을 만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또한 그래픽 카드와 코인이 얽힌 씁쓸한 뒷이야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젠슨 황은 아홉 살에 낯선 미국의 기숙학교에서 살아남았고, 실리콘밸리에서 세 친구와 함께 데니스 테이블에서 창업을 꿈꿨습니다. 첫 제품의 대실패와 파산 직전의 위기를 세가라는 뜻밖의 인연으로 넘겼고, 그 빚을 잊지 않고 갚았습니다. 그리고 GPU가 AI 시대의 핵심 자원이 되면서 엔비디아는 세계 최고의 기업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게임에서 "지고 지고 또 져도 결국 이긴다"는 말이 있듯이, 젠슨 황의 인생과 엔비디아의 역사는 실패를 배움으로 바꾼 과정이었습니다. 다음에는 더 많은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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