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홍춘욱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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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성장 배경을 교육열과 기업가정신으로 설명. 1960년대 대학 확대와 실업 불만이 정권 교체를 이끈 민주화 배경이 되었고, 반도체 산업은 미일 반도체 협정과 미국 지원, 삼성의 과감한 투자 등으로 성장. 외환위기 이후 부채주도 성장의 한계와 대만과의 비교를 제시. 현재는 내수 서비스 시장 개방 부진, 저출산, 청년 갈등 등이 과제이며, 특정 기업 집중 대신 경쟁자 분산 투자도 방법이라고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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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된 이유를 생각해 보시면, 1958년부터 미군이 철수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전쟁이 나고 8년 동안 미국이 지원을 해 왔는데, 미국 입장에서는 계속 돈 달라, 물건 달라 하니 "우리가 너희한테만 우선순위를 둘 수는 없다, 이제 알아서 해라"가 된 거죠. 수출을 풀어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당장 수출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가 한국에서 나온 물건을 사겠어요. 극심한 불황이 왔습니다.
그 와중에 교육 규모가 급격히 늘었습니다. 1945년 4년제 대학이 20개 정도였는데 1960년이 되면 80개로 4배가 늘었습니다. 그런데 졸업장을 딴 젊은이들 대부분이 실업자였습니다. 갈 데가 없었죠. 여러분 같으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 불을 당긴 게 바로 1960년 3·15 부정선거입니다. 이승만 정권이 부통령을 만들고 싶어서 부정선거를 했잖아요. 그때 시위를 주도한 게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이었고, 가장 많이 희생된 계층은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교육을 잘 받은 훈련된 인재들이 불만에 찬 거죠.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 못 살겠다는 목소리가 나온 겁니다.
1979년 부마사태, 1980년 광주로 이어진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1980년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불황이 닥친 때였습니다. 잘 교육받은 사람들 입장에서 불만에 일자리를 달라는 욕구까지 결합된 거죠. 지금 한국은 인구 5,000만 명이 넘는 거대한 나라이고, 많은 교육 투자를 받은 젊은 세대가 계속 배출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의 불만이 누적되면 정권이 바뀌고, 정부가 바뀌고, 심지어 혁명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각 정부는 일자리를 만들고 뭔가 풀어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아시아에서 일본, 한국, 대만 정도만 선진국이면서 민주주의 국가가 됐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교육입니다. 정치 체제는 군사독재가 이어지고 자유롭지 않았지만, 이만큼 성장한 배경에는 교육이 있었습니다. 교육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교육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앞으로 계속 배워 나갈 출발점이 됩니다. 말 잘 듣는 노동력은 꽤 있겠지만, 진정한 의미의 양질의 노동력은 깨어 있고,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해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한국은 이런 양질의 노동력을 확보해 제조업, 특히 산업 발전의 가장 큰 관건을 뚫었습니다. 둘째, 교육을 받은 국민이 민주주의를 요구했고, 그것이 정부가 국민의 재산을 함부로 빼앗지 못하는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이 교육의 힘이 한국을 민주적이고 부유한 나라로 발전시킨 거죠.
반도체 메모리 국가별 점유율 그래프를 보면, 유례없는 기업가 정신도 경제성장에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포항제철을 건설한 것도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었고, 무엇보다 삼성이 그 시절 반도체에 진출한 것은 당시 우리나라 기술 수준으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습니다. 한국 경제발전의 열 손가락 안에 들 중요한 장면입니다.
1963년 이병철 회장이 신문 기고에서 "우리는 좁은 나라에서 가난한 국민을 대상으로 장사해서는 미래가 없다, 해외로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가 도와달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사업가들은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이었고, 지주로 고만고만하게 살아도 되는 사람들이 마음속에 같은 목표를 품었습니다. 그리고 운도 따랐습니다. 일본이 너무 거대한 세력으로 부상하면서 미국의 견제를 이끌어냈습니다. 1989년 이시하라 신타로가 쓴 베스트셀러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에서는 미군의 미사일과 군수물자에 들어가는 일본산 반도체 공급을 끊으면 미국이 망한다는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그만큼 일본 반도체가 잘나갔던 거죠.
일본과의 경쟁에서 밀린 인텔의 전설적인 경영자 앤디 그로브 등은 이병철 회장을 찾아가 설비를 팔 생각이 없냐고 물었습니다. 삼성은 1983년부터 이미 투자를 시작한 상태였고, 이병철 회장은 그 자리에서 설비를 샀습니다. 여기에 정부의 어마어마한 투자가 더해졌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이 일본을 견제하는 친구였던 겁니다. 게다가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일본산 반도체의 미국 시장 점유율에 쿼터가 정해졌고, 그 부족분을 채울 공급자는 마이크론 말고는 없었습니다. 한국에 기회가 온 거죠.
이것도 천운이었지만, 한국이 준비된 것도 중요합니다. 전자공학과와 전기공학과를 계속 키웠고, 사회 분위기도 "전기전자, 트랜지스터를 안 만들면 나라가 망한다"는 위기의식이 강했습니다. 1970년대 말에는 서울대 물리학과가 이공계에서 가장 커트라인이 높았고, 1980년대에는 전자공학과가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다만 인구가 줄어드는 지금, 인재 풀을 잘 관리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 문턱에는 외환위기가 있었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부채가 동력이 됐는데, 부채는 잘 쓰면 자산이지만 과도하면 국가부도 직전까지 몰고 갑니다. 여기에 중국이 등장하면서 우리 기업들은 반덤핑 관세 등 견제를 받았고, 중국이 위안화를 평가절하하면서 경쟁력이 약해졌습니다. 부채주도 성장 자체가 나쁜 전략은 아니었지만, 성장 탄력이 둔화되는 시점에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한보철강 같은 사례처럼 정부 주도의 과잉 투자도 문제였습니다.
또 1인당 소득 1만 달러 전후까지 고속성장을 계속하다 보니 매년 5~10% 성장하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고, 조금 손해를 봐도 얼마든지 갚을 수 있다는 과신이 있었습니다. 정부는 민간보다 압도적인 정보 우위를 가지고 산업정책을 펴 왔지만, 세계화 시대에는 그 정보 우위가 사라지고 기업이 더 힘을 얻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정치는 후진, 기업은 선진, 정치는 사료"라고 말한 것처럼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며 성장이 둔화될 것에 대한 대비가 없었습니다. 태국 외환위기,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 등 세 가지 사건이 동시에 터지면서 한국 경제가 몰락 직전까지 간 겁니다.
그래도 한국은 굉장히 잘 극복한 편입니다. 대만은 위기를 버텨낸 대신 금융권에 부실 여신을 쥐고 긴 침체에 빠졌고, 이후 대만 반도체 회사 대부분이 쇠퇴했습니다. 한국은 구조조정과 유리한 환율을 활용해 성장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당시 IMF 조건을 너무 쉽게 받아들였다고 지적하지만, 한국은 IMF 구제금융을 2년 만인 2001~2002년에 갚았습니다. 세계적으로 구제금융을 이렇게 빨리 갚은 나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당시 IMF 신청 때 임창열 부총리는 몽블랑 만년필로 서명했는데, IMF 졸업장에 서명한 전철한 한국은행 총재는 국산 만년필을 썼다고 합니다. IMF 전과 후를 상징하는 일화입니다.
2000년 IMF 극복 이후 한국 반도체 산업이 독일과 일본의 거대 기업들을 차례로 역전한 것도, 현대차가 철수 위기 이후 다시 일어나 미국 시장을 개척한 것도, 외환위기 때 만들어진 유리한 환율과 활성화된 주식시장 덕분이었습니다. 해외에서는 이를 "위장된 축복"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다만 지금 와서 보면, 글로벌 경쟁을 하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의 격차가 많이 벌어졌습니다. 2003년 카드 사태 이후 이 구조가 고착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 경제의 장점은 혁신 성장, 높은 수출 의존도, 많은 외환 보유고, 우수한 인재입니다. 반면 가장 큰 약점은 내수시장입니다. 수출을 육성하기 위해 국내 소비자와 농민 등이 큰 희생을 치르면서 정부가 부채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내수가 보조금 경제가 된 측면이 있습니다. 경쟁을 촉진하고 생산성을 높이려면 시장을 개방해야 하는데, 우루과이 라운드 때부터 개방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제조업과 달리 서비스 시장은 규모의 경제가 잘 안 되고 다양한 제도적, 비관세 장벽이 존재합니다. 국내 서비스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외국계 기업은 코스트코 정도가 떠오를 뿐입니다. 이것이 만성적인 내수 불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수 부진을 해결하려면 패자에게는 재정·복지 지원을 하되, 시장 전체의 경쟁력을 세우기 위해 칸막이를 허물고 제도를 개혁해야 합니다. 그런데 DJ 정부 이후 이런 개혁이 걸림돌이 됐습니다. 그래서 이 구조는 바꾸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인구가 줄면서 자연스럽게 바뀔 수도 있지만, 제도적으로 바꾸는 일은 지금도 매우 어렵습니다. 민주주의는 점점 발전하고 있지만, 사회경제 전체의 큰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부족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저출산 문제입니다. 최근 20대 남녀 간 갈등,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보복성 범죄 같은 문제도 중요한 이슈인데, 선거 때는 이슈가 되었다가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만약 제2의 외환위기가 다시 온다면, 1997~98년처럼 이겨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때는 사회 전체가 순진하게 "끝나면 금방 좋아질 것"이라고 믿었고, 성장의 혜택이 모두에게 올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은 금 모으기 운동 때부터 솔직히 배신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직 희망이 있는 지금, 장기 과제를 해결할 정책과 정치 세력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삼성전자보다 시가총액이 커질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다만 이것 하나만 사지 말고, 경쟁자들을 고루 사는 것도 투자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싸다고, 우리가 이길 거라고 믿더라도 한 종목에 몰빵하기보다는 분산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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