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박세익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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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결론: 박세익 전무는 미국 유학과 IMF 경험을 통해 긍정적 마인드와 사명감을 강조하며, 명시적인 종목·지수 가격 예측은 거의 없는 인생담 중심 방송이다. 유학 배경: 1991년 미국 어학연수를 시작으로 1997년 콜로라도 덴버에서 파이낸스 석사 과정을 밟았다. 미국 생활에서 긍정적 에너지와 문화적 충격을 받아 인생관이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뀌었다고 회고했다. IMF 경험: 1997년 환율이 800원대에서 1800원대로 급등하며 가족 자산이 헐값에 팔리는 것을 목격했고, 이후 금융 공부에 매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외국인의 삼성전자 지분 확대(98년 20%→40%, 2008년 50% 이상)를 짚으며 외국인 자본의 힘을 언급했다. 코로나 이후 시장: 코로나 위기 때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우량주를 바겐세일처럼 사들인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과거 IMF·금융위기 때와 달리 개인이 주도한 저점 매수를 높이 샀다. 허드슨강의 기적 교훈: 회사명 '체슬리'가 영화 '허드슨강의 기적'에서 유래했다고 밝혔다. 기장이 고객 자산을 지키는 펀드매니저의 자세와 닮았다고 비유하며,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강조했다. 투자자 자세: 김형석 교수의 '인격 없는 행운은 재앙'을 인용해 사명감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자식 세대에게 남길 가치와 삶의 방향을 고민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리스크·조건: 구체적 리스크 언급은 없고, 최근 방송 이후 일부 종목이 하락했다는 취지의 자기 고백만 있었다. 출연자 전망: 구체적 가격·지수 전망은 제시하지 않았다.
다듬은 글
첫 번째 이야기는 미국 선배에 관한 주제로 준비해 봤습니다. 먼저 여의도에 계신 형님께서 월가까지 오게 된 과정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미국에는 먼저 가셨죠, 맞습니까. 1991년에 샌프란시스코 영어학원을 다녔고, 그때 1년 정도 있었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떠났는데, 자신감이 없었고 대학을 졸업하면 꼭 유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졸업하고 대우투자자문에서 2년 반 정도 일하다가, 1996년에서 97년으로 넘어갈 때 느낌이 좀 싸했습니다.
경제 상황이 IMF가 오기 1년 전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벌써 종금사 문제가 처음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유학을 더 늦출 이유가 없겠다고 생각해서 1997년 2월에 바로 퇴사하고 급하게 지원해서 콜로라도 덴버에 있는 이슈 오브 덴버라는 학교에 갔습니다. 덴버에서 파이낸스를 공부했는데, 파이낸스에도 임대, 기업 금융, 투자 금융 등 여러 분야가 있었습니다. 저는 워낙 부동산 쪽을 좋아해서 부동산 파이낸스 쪽으로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미국에서 파이낸스로 배운 것도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미국의 긍정적인 에너지였습니다.
추 기자님도 아마 그런 걸 조금씩 늦게 느끼고 계실 겁니다. 한국에서는 표정이 대체로 딱딱한 편인데, 미국에서는 2주 정도 지나니 다들 밝아졌습니다. 제가 1991년 어학연수 때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어요. 길 가는 사람들이 눈만 마주치면 "하이!" 하고 인사를 하더라고요. 그때 제 인생관이 바뀌었습니다. 그게 제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지금도 유학에 대해 물어보는 분들께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공부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 대학원이 훨씬 더 많이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컬처를 배우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돈이 없어도 무조건 가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저도 유학 기간 동안 5천만 원 정도 썼는데,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고 할 건 다 했습니다. 컴퓨터실에서 살다시피 했고요. 그때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뀌었고, 그 긍정 에너지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는 미국이라고들 하는데, 그때 유학 생활을 하실 때 미국의 금융 상황과 경제가 어땠는지 기억이 나시나요.
사실 기억이 잘 안 나요. 제가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유학을 했는데, 그때 우리나라는 IMF로 국가 부도 사태를 맞아 굉장히 힘들었어요. 1997년에 미국으로 올 때 환율이 800원 초반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800원은 너무 비싸다, 700원, 600원 정도는 돼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3개월 만에 1,800원까지 올랐어요. 그 혹독한 자본주의의 쓰라린 경험을 우리가 했습니다. 3개월 만에 한국에 갔을 때 아버지가 "이 나라가 부도가 났는데 어떻게 해야 되냐"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형님과 가족들이 다 같이 우리나라의 우량 부동산부터 시작해서 주식까지 헐값에 팔았습니다. 특히 외국 자본에 탈탈 털렸죠.
그 이후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가서 주식 쪽에서 일하다 보니, 그때 우리가 몰라서 양털 깎이듯 당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제대로 당한 거였어요. 처음 겪는 일이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절대 두 번 틀리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IMF 과정을 굉장히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가 탈탈 털리는 걸 보면서, 영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가 금융을 통해 다른 나라의 부를 그렇게 쉽게 빼앗아 갈 수 있다는 걸 많이 깨달았습니다.
이후 코로나 사태가 터졌는데,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 유튜브는 전 세계에서 최강인 것 같아요. 골드만삭스나 오펜하이머 같은 곳의 CIO 등 유명한 사람들을 한국에 데려와서 인터뷰도 하고, 노하우를 허심탄회하게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2년 사이에 우리나라의 금융 문맹이 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바뀐 것 같아요.
과거에는 바닥에서 개인들이 주식을 털고, 기관이나 외국인이 사 모았습니다. 98년 IMF 때 외국인이 삼성전자 지분을 20%에서 40%로 높였고, 2008년 금융위기 때도 50% 이상으로 늘렸습니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 위기 때는 동학개미 운동처럼 우리 개인 투자자들이 우량주와 미국 우량주를 헐값에 바겐세일로 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걸 보고 정말 대단하다고 박수를 쳐 드렸습니다. 지금도 여기서 팔면 안 됩니다. 3,000 가니까 계속 가자, 그런 역할을 조금 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책을 가져왔는데, 책 중에 '허드슨강의 기적'이라는 챕터가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허드슨강은 용인 집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가까운 곳인데, 제목에 눈길이 가네요. 어떤 내용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 회사 이름이 체슬리 자산운용인데, 그 이름을 따온 이유가 영화 「허드슨강의 기적」에서 왔습니다.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예요. 2009년 1월 15일, 155명의 승객을 태운 비행기가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서 이륙했는데, 추운 겨울에 새 떼와 충돌해서 엔진이 파손됐습니다. 그래서 허드슨강에 비상 착륙을 했는데, 그 과정에 걸린 시간이 약 208초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관제탑에서는 공항으로 돌아오라고 했지만, 기장 체슬리 설런버거는 42년 동안 비행을 해 온 경험으로 돌아가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거죠.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하는 일과 너무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고객의 자금을 안전하게 운용해서 수익을 얻어야 하는 펀드매니저의 입장이 기장과 같은 마음이거든요. 고객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펀드매니저가 되겠다는 마음을 그 영화에서 다졌습니다. 기장이 그런 얘기를 해요. 42년 동안 비행하면서 쌓은 경험이 그 208초에 평가받았다고요. 언제 어떤 일로 평가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있습니다. 투자 기법이 아니라 삶의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허드슨강 바로 옆에서 직접 이야기하니 기분이 이상하기도 하네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미국 주식과 월가 소식을 전하는 저희 방송의 시청자들을 위해 조언을 해 주신다면 어떤 말씀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책에는 포트폴리오 얘기도 있지만, '투자자의 마음가짐'이라는 장에서 김형석 교수님의 100세 일기 얘기를 했습니다. 김형석 교수님은 "인격을 갖추지 못한 자에게 행운은 재앙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죠. 그 사명감이 뭐겠습니까. 나 잘 먹고 잘사는 것은 동물적 본능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죽을 때 나만 잘 먹고 잘살았다고 남기는 건 의미가 없잖아요. 사회적 공헌과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그려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후배들과 자식들에게 늘 얘기합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포항제철부터 경부고속도로까지, 인권 문제가 있을지라도 열심히 일해서 산업화를 이뤄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나중에 자식들이 "아빠는 뭐 했는데?"라고 물을 때 우리가 할 말이 있어야 하죠.
제가 유튜브에서 오랫동안 많은 투자 얘기를 해 왔지만, 아직도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오늘 추 의장님과 함께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사명감을 갖고 대한민국 금융 생태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방송을 이어 가겠습니다. 미국 현지의 생생한 소식들을 앞으로도 전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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