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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istake That Made Warren Buffett the Richest Man in the World

Casey Capital · 2026-10-23 · 유튜브 시청 4 · Board Views 8 · 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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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골드만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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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미상 ·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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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의 생애와 투자 철학을 소개하는 영상. 1964년 버크셔 해서웨이 인수를 '2000억 달러 실수'로 규정하면서도 이를 보험 플로트 활용의 발판으로 삼은 과정을 설명. 장기 복리와 인내, 공포 시 탐욕 원칙을 강조하며, 2025년 CEO 사임과 2026년 회장직 아들 승계까지 다룸.

다듬은 글

※ AI가 다듬은 글(오탈자·군말 정리)

01. 1964년, 쇠퇴해가던 섬유공장의 사장이 워런 버핏을 속이려 했습니다. 주당 1/8달러, 아주 적은 금액이었습니다. 버핏은 화가 나서 회사를 통째로 사들이고 그 사장을 해고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이것을 자신이 산 주식 중 가장 멍청한 투자였다고, 2000억 달러짜리 실수였다고 불렀습니다. 그 실수의 이름이 바로 버크셔 해서웨이입니다.

02. 지금 이 회사는 1조 달러가 넘는 가치를 지니고 있고, 오마하의 한 소년을 역사상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버핏이 실제로 부자가 된 과정은 이렇습니다.

03. 워런 버핏은 1930년 대공황 한가운데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났습니다. 거의 어릴 때부터 돈에 빠져 있었습니다. 여섯 살 때는 할아버지 식료품점에서 코카콜라 여섯 팩을 25센트에 사서, 병 하나하나를 5센트에 팔았습니다. 20퍼센트의 이익이었습니다.

04. 열한 살에는 처음으로 주식을 샀습니다. 시티 서비스라는 회사의 주식 석 주를 한 주에 38달러에 샀습니다. 곧바로 주가가 27달러로 떨어졌고, 버핏은 겁이 났습니다. 주가가 40달러까지 회복되자 팔아서 주당 2달러를 벌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그 주가가 200달러 근처까지 오르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는 이 일을 잊지 않았습니다. 패닉에 빠지지 말고, 서둘러 팔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05. 아버지가 연방 의회 의원에 당선되어 가족이 워싱턴으로 이사했습니다. 버핏은 학교 가기 전 매일 아침 신문을 배달했습니다. 열네 살에는 첫 소득세 신고서를 냈고, 자전거를 사업 경비로 공제받았습니다. 열다섯 살에는 저축한 돈으로 작은 농장을 사서 세를 주었습니다. 친구와 함께 중고 핀볼 기계를 25달러에 사서 이발소에 두었는데, 곧 여러 대로 늘어났습니다. 대학을 마칠 무렵에는 거의 1만 달러를 모았습니다.

06. 그런 다음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지원했지만 떨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가장 운 좋은 탈락이었습니다.

07. 열아홉 살 때 버핏은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를 읽었습니다. 그레이엄은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버핏은 그곳으로 진학했습니다.

08. 그레이엄의 생각은 단순했습니다. 주식은 복권이 아니라 실제 사업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그 사업이 얼마의 가치가 있는지 계산하고, 가격이 그보다 훨씬 낮을 때만 사라는 것입니다. 이 차이가 안전마진입니다. 그리고 시장은 매일 새 가격을 외쳐대는 변덕스러운 동업자와 같아서, 어떤 날에는 공황에 빠져 물건을 터무니없이 싸게 넘긴다고 했습니다.

09. 버핏은 그레이엄의 가장 뛰어난 제자가 되었습니다. 무급으로라도 일하겠다고 제안했지만 그레이엄은 거절했습니다. 버핏은 농담처럼 그레이엄이 자신을 과대평가했다고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요청했습니다. 1954년, 마침내 그레이엄이 그를 고용했습니다. 2년 뒤 그레이엄이 은퇴하자, 스물다섯 살의 버핏은 오마하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친구 일곱 명과 함께 투자 조합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10만 5천 달러를 냈고, 버핏은 그중 100달러를 냈습니다. 그는 집의 작은 방에서 운용했습니다.

10. 1958년에는 3만 1500달러에 집을 샀는데, 지금도 그 집에 살고 있습니다. 13년 동안 이 조합은 손실을 낸 해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수수료를 떼기 전 연평균 약 29퍼센트씩 성장했는데, 같은 기간 다우지수는 약 7퍼센트 성장했습니다. 버핏은 그레이엄이 가르친 대로 싸고 외면받는 저평가 기업을 찾았습니다. 길거리에서 주운 담배꽁초처럼, 마지막으로 한 번 빨 연기가 남아 있는 기업들이었습니다.

11. 그런 담배꽁초 중 하나가 매사추세츠의 섬유공장 버크셔 해서웨이였습니다. 회사는 쇠퇴하고 있었습니다. 더 싼 공장들이 가격을 깎아 경쟁했고, 회사는 몇 년마다 공장을 하나씩 닫고 자사주를 조금씩 되사들였습니다. 버핏은 1962년 주당 약 75달러에 매수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가 자사주를 되살 때 이익을 남기고 팔 생각이었습니다.

12. 1964년, 사장 시벌리 스탠턴이 버핏에게 얼마에 팔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버핏은 주당 11달러 50센트라고 답했고, 스탠턴은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곧 11달러 37센트, 즉 8분의 1달러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버핏은 격분했습니다. 팔지 않고 오히려 지분을 더 사들여 회사의 경영권을 손에 넣었습니다. 1965년 5월, 그는 스탠턴을 해고했습니다.

13. 이제 버핏은 쇠퇴해 가는 것을 알고 있는 사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동업자 자금의 4분의 1이 그 안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는 훗날 이것을 엄청나게 어리석은 결정이었다고 말했습니다. 2010년에 그는 그 공장을 사는 바람에 버크셔가 약 2000억 달러를 잃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14. 그렇다면 쇠퇴하던 공장이 어떻게 1조 달러짜리 거인이 되었을까요? 버핏은 그 공장을 껍데기로 활용했습니다. 공장이 벌어들인 현금을 더 좋은 사업에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1967년,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수를 했습니다. 오마하의 보험사 내셔널 인데머니티를 860만 달러에 사들였습니다.

15. 핵심은 이것입니다. 보험에서는 고객이 지금 보험료를 내고, 회사는 보험금을 나중에, 때로는 몇 년 뒤에 지급합니다. 그 사이에 회사는 고객의 돈을 보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플로트라고 합니다. 보험 사업 자체가 손익분기점만 맞춘다면, 이 돈은 공짜로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이 됩니다. 버크셔는 게이코 같은 보험사들을 계속 사들였고, 플로트는 약 1900만 달러에서 1600억 달러 이상으로 불어났습니다.

16. 그 무렵 찰리 멍거가 투자 방식을 바꿔 놓았습니다. 멍거는 역시 오마하에서 자란 날카로운 변호사였습니다. 그는 버핏에게 담배꽁초를 줍는 일을 그만두고, 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사업을 사라고 권했습니다. 1972년, 두 사람은 캘리포니아의 초콜릿 회사 씨즈 캔디스를 2500만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장부상 가치의 세 배였지만, 사람들은 씨즈 초콜릿을 좋아했고 해마다 조금씩 더 기꺼이 지불했습니다. 2014년까지 씨즈는 세전 약 19억 달러를 벌었고, 그 현금의 대부분은 다른 사업을 사는 데 쓰였습니다.

17. 1987년 10월, 주식시장이 폭락했습니다. 하루 만에 22퍼센트가 떨어졌습니다. 그 몇 달 뒤 버핏은 여섯 살 때부터 좋아해온 기업, 코카콜라를 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몇 년에 걸쳐 버크셔는 약 13억 달러를 들여 코카콜라 지분 약 7퍼센트를 사들였고, 한 번도 팔지 않았습니다. 지금 코카콜라는 매년 버크셔에 8억 달러 이상의 배당금을 지급합니다. 버핏은 하루에 콜라를 약 다섯 캔 마신다고 말했습니다.

18. 그의 가장 유명한 원칙은 간단합니다. 남들이 탐욕스러울 때 두려워하고, 남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스러워지라는 것입니다. 2008년 9월, 월가는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리먼 브라더스가 막 파산했고, 투자자들은 모든 것을 팔아치우고 있었습니다. 버핏은 골드만삭스에 50억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대신 연 10퍼센트의 배당을 주는 특별 주식을 받았고, 이는 매년 5억 달러였습니다. 몇 주 뒤 시장이 계속 떨어지자, 그는 "미국인이여, 나는 당신을 믿는다(America, I am)"라는 네 단어 제목의 신문 기고문을 썼습니다.

19. 수십 년 동안 버핏은 기술 기업을 피했습니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다 2016년 버크셔는 애플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버핏은 애플을 단순한 기기 제조사가 아니라, 사람들이 결코 포기하지 않을 제품으로 보았습니다. 3년 동안 버크셔는 약 350억 달러를 썼고, 2023년 말 그 지분의 가치는 약 1730억 달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2020년부터 2024년 사이에 버크셔는 그 지분의 약 3분의 2를 팔았습니다. 나중에 버핏은 너무 일찍 팔았다고 인정했습니다.

20. 2026년 초 버크셔의 현금 보유액은 약 400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에 이르렀습니다. 다음 공황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21. 그렇다면 버핏의 진짜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는 인생을 눈덩이에 비유합니다. 중요한 것은 아주 긴 언덕에서 젖은 눈을 찾는 것입니다. 젖은 눈은 이익이 다시 이익을 낳는 복리입니다. 긴 언덕은 시간입니다. 버핏은 열한 살에 시작했고, 한 번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재산의 약 90퍼센트는 65세 생일 이후에 쌓였고, 그는 그중 거의 아무것도 쓰지 않았습니다. 출근길에 맥도날드에 들러 약 3달러짜리 아침을 먹던 것이 수년간 그의 일상이었습니다.

22. 2006년 이후 그는 600억 달러 이상을 기부했고, 소유한 재산의 99퍼센트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2025년 5월, 94세의 버핏은 주주총회에서 그해 말 CEO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렉 아벨이 2026년 1월에 그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찰리 멍거는 그보다 2년 앞서, 100세 생일을 몇 주 앞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2026년 9월, 버핏은 마지막 직함인 회장직을 내려놓고 아들 하워드에게 넘겼습니다. 그는 "세월은 언제나 이긴다"고 썼지만, "그래도 그는 나에게 관대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23. 5센트에 코카콜라를 팔던 소년은, 화가 나서 산 죽어가는 공장으로 1조 달러 규모의 회사를 세웠습니다. 2000억 달러짜리 실수가 그의 걸작이 된 것입니다. 버핏의 진짜 강점은 비밀 공식이 아니었습니다. 인내였습니다. 좋은 사업을 사고, 오래 붙들고, 눈덩이가 굴러가도록 두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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