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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Accuracy score+1.0
순 place86
Scored calls720 calls
Hit rate / Market-adjusted / Return-weighted53.2% / 53.3% / 57.0%
1-month return / Market / beta excess return / Peer excess+1.1% / +0.7% / +0.1
Bullish / Bearish / Neutral32.6% / 23.5% / 43.9%
Best horizon1m
Performance badgeLate call badge,Inverse badge
Main channel홍춘욱의 경제강의노트
국적한
Note
Updated2026-10-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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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글 | 금융 경제 교양서 [ 돈의 역사 / 홍춘욱 ] 오디오북 책추천 낭독

반페이지리뷰 · 2022-01-28 · 유튜브 시청 177 · Board Views 0 ·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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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홍춘욱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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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이 영상은 홍춘욱의 『돈의 역사』를 소개하며, 특정 인물의 성향이나 재선 동기만으로 경제·주식시장을 예측하는 것은 한계가 크다고 주장하고, 2019년 주식시장 몰락 가능성은 낮게 본다. 책의 문제의식: 2018년 말 한 금융 전망 자리에서 '트럼프 임기 3년 차라 재선을 위해 주식을 부양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왔는데, 이런 인물 중심 설명은 한계가 많다고 비판한다. 나폴레옹 사례: 워털루 패배의 원인으로 프로이센군 도착 시점을 드는 견해에 반대한다. 이미 살라망카·보로디노·라이프치히 등에서 연패 중이었고, 대혁명 이후 20년 넘는 전쟁으로 병력이 고갈됐으며, 영국의 압도적 경제력과 값싼 상품·식량 공급이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주식시장에 주는 교훈: 카터(1980)와 부시(1992)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것도 집권 3년 차 시장 부양 노력이 1980년 석유 파동, 1991년 걸프전 이후 경기 침체 등 외부 충격에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2019년 전망: 시장 몰락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1929년 이후 중앙은행이 불황 대응법을 익혀 경기 침체가 짧아졌고, 미국 경제는 2009년 3월 저점 이후 10년째 호황이라 2010년대 말 극심한 불황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1929년 대공황과 주가 폭락: 미국 GNP는 1929~1933년 사이 26.5% 줄었다. 1929년 주가 폭락의 직접 원인은 주가가 너무 많이 오른 데 있다고 설명한다. 1920년 S&P500 PER은 6.8배 수준이었고 배당수익률은 7.3%로 국채금리 5.4%보다 높았다. 라디오·자동차 등 할부판매 붐으로 기업 실적이 개선되며 주가가 올랐다. 과열 신호: 1929년 여름 라스코 등 낙관 발언이 나왔고, 1928년 PER은 16.3배, 배당수익률은 3.48%까지 떨어졌다. 1871~1920년 S&P500 평균 PER 14.9배를 감안하면 1928년 이미 고평가 국면이었다고 본다. 레버리지 위험: 레버리지 투자 규모는 1924년 말 2.23억 달러에서 1929년 10월 약 8.15억 달러로 불어났다. 주가가 30% 하락하면 자기자본이 사실상 소멸하고 마진콜과 연쇄 매도가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금리 상승: 연준 재할인율은 1928년 2월 3.5%에서 1929년 8월 6.0%로 올랐고, 단기 금리(콜금리)는 1928년 1월 4.3%에서 1929년 7월 9.23%로 급등했다. 이것이 레버리지 주식 투자자의 부담과 매도를 키웠다. 출연자 전망 요지: 주식시장 몰락을 주장하지 않으며, 과거 대공황 사례의 교훈은 주가 과열과 레버리지, 금리 상승이 결합될 때 위험이 커진다는 점이라고 정리한다.

다듬은 글

※ AI가 다듬은 글(오탈자·군말 정리)

01. 이 책을 구상한 건 20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았는데, 2018년 말 한 세미나에서의 경험을 계기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참석자 가운데 한 사람이 금융시장을 전망하면서 이렇게 단언했다. "2019년 글로벌 주식시장은 좋을 겁니다. 왜냐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3년 차라 재선을 위해 주식 가격을 부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사실 방송이나 대중을 상대로 한 강의에서 수없이 듣는다. 그런데 경제 상황이나 전망을 특정 인물의 의도나 개성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해도 될까? 안타깝게도 이런 식의 설명은 굉장히 많은 한계를 지닌다.

02. 가장 대표적인 예가 19세기 초반 유럽을 제패했던 나폴레옹의 몰락 과정이다. 그는 아우스터리츠 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불패의 명성을 얻었지만, 마지막은 비참했다.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의 웰링턴 공작이 이끄는 연합군에 패배한 후 대서양의 외딴섬 세인트헬레나에 유배되어 1821년 숨을 때까지 복귀하지 못했다. 집중된 병력 운용과 기동력을 이용한 분산 격파 등 현대 육군 교리 대부분을 만들어낸 천재 전략가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03. 일부에서는 워털루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이 단 1시간만 더 늦게 전장에 도착했어도 프랑스가 결정적 승리를 거두며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 의견에 반대한다. 워털루 전투 이전에 벌어졌던 스페인 살라망카, 러시아 보로디노, 그리고 독일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군대는 연전연패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요인이 나폴레옹을 패망으로 이끌었을까?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20년 넘게 이어진 전쟁으로 병력 자원이 고갈된 것이 가장 직접적인 이유였겠지만, 영국이 압도적인 경제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러시아가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을 어기고 영국과 교역을 재개한 것, 그리고 스페인 사람들이 영국의 지원을 받으며 게릴라전을 펼친 것도 결국 영국이 제공하는 값싸고 질 좋은 공산품과 풍부한 식량 때문이었다.

04. 나폴레옹 전쟁이 주는 교훈은 주식시장에도 적용된다. 1980년 카터 대통령과 1992년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라고 집권 3년 차에 주식시장을 부양하여 재선에 성공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러나 1980년에 일어난 석유 파동과 1991년 걸프전 이후의 경기 침체는 이들의 꿈을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와 맞붙은 클린턴의 유명한 선거 구호,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가 그토록 인기를 끌었던 건 결국 불황 때문이었다.

05. 물론 필자는 2019년 주식시장이 몰락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1929년 세계 대공황 이후 전 세계 중앙은행이 경기 불황에 대처하는 법을 깨달은 덕분에, 과거에 비해 호황은 길고 불황은 짧은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예로 미국 경제는 2009년 3월 바닥을 치고, 이 책을 쓰고 있는 순간까지 10년째 호황을 누리고 있다. 따라서 2019년 세계경제가 극심한 불황으로 고통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미국 대통령의 캐릭터 혹은 재선에 대한 동기만으로 세상을 예측하는 것에 반대할 뿐이다.

06.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가 이 책을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 역사를 바꾼 중요 사건의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해의 폭을 넓혀 보자는 것이다. 물론 이 책 한 권을 읽는다고 세상일이 명쾌하게 다 설명되지는 않겠지만, 영웅의 행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세계사의 입체적 면모를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07.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출발점이 그해 10월 말에 발생한 주가 폭락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경제학자가 공감하는 것 같다. 참고로 세계 대공황이란 1929년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전 세계적 경제 침체를 말한다. 가장 직접적인 충격을 받았던 미국의 경우, 1929년 국민총생산을 100이라고 가정할 때 1933년에는 73.7까지 축소되었다. 단 4년 만에 경제 규모가 무려 26.3%나 줄어들었으니 경제가 얼마나 큰 타격을 받았는지 짐작될 것이다.

08. 그러다 보니 1929년 10월에 발생한 주가 폭락 사태에 대해서도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 많은 논쟁을 다 소개할 수는 없으니 최대한 간략하게 주가 폭락의 원인을 짚어 보기로 한다. 1929년 10월 미국 증시가 무너진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그 이전에 주가가 너무 많이 오른 데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 스탠더드 앤 푸어스 500 지수는 6.8P에 불과했으며, 배당수익률은 무려 7.3%에 이르렀다. 배당수익률이란 주가 대비 주당 배당금의 비율을 표시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주가 100달러에 거래되는데 주당 배당금이 3달러라면 이 회사의 배당수익률은 3.0%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5.4%에 불과했으니 주식 배당수익률 7.3%는 대단히 높은 것이었다.

09. 여기에 라디오와 자동차 같은 새로운 제품에 대한 수요가 할부판매에 의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기업 실적이 개선되자 주식시장에 불이 붙었다. 이 대목에서 당시 주식시장 분위기를 가장 잘 전해 주는 사례를 소개할까 한다. 1929년 여름, 새뮤얼 크로더라는 기자가 당시 세계 1위 자동차 회사인 GM의 금융 담당 전무이자 민주당 전국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존 라스코브에게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으로 재산을 증식하기 위한 투자 방법을 물었다. 그러자 라스코브는 미국 경제가 전례 없는 산업 팽창의 순간에 있으니 매월 15달러의 자금을 들여 우량주에 투자한다면 20년 후 약 8만 달러의 재산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하며, 모든 투자자가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단언했다.

10. 라스코브뿐만 아니라, 대공황이 발생하기 2주 전인 1929년 10월 15일 세계적인 경제학자 어빙 피셔는 뉴욕의 펀드 매니저와 각 회사의 재무 담당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주식 가격이 곧 정점에 이르지 못할 만큼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단언했다. 나아가 1928년 12월, 대공황 직전 마지막 의회 연설에서 쿨리지 대통령은 "지금까지 어떤 시기에도 현재 나타나는 것만큼 마음에 드는 전망을 만난 적이 없을 것입니다. 국내는 평화와 만족이 있으며 번영은 기록적인 최고치입니다"라고 낙관론을 펼쳤다.

11. 그도 그럴 것이 1925년에서 1929년 사이 미국의 공장 수는 18만 4천 개에서 20만 6천 7백 개로 증가했고, 생산액은 608억 달러에서 680억 달러로 늘었다. 그뿐 아니라 1922년 67P였던 산업생산 지수는 1929년 6월 126P에 달했다. 그러나 주식 투자의 매력은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1928년에는 주가수익비율이 16.3배까지 상승했고, 배당수익률은 3.48%까지 떨어졌던 것이다. 참고로 주가수익비율이란 기업이 한 해 벌어들인 주당순이익과 주가를 비교한 것이다. 예를 들어 주당 100달러에 거래되는 기업의 주당순이익이 10달러라면 이 회사의 주가수익비율은 10배가 된다.

12. 주가수익비율만 보고 버블인지 얼마나 저평가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절대적인 잣대는 없다. 다만 과거 평균 수준에 비해 주가수익비율이 너무 높을 경우에는 어떤 투자자든 위험이 커진다고 볼 수 있다. 1871년부터 1920년까지 S&P 500 지수 주가수익비율 평균이 14.9배였던 것을 감안할 때, 1928년 미 증시는 이미 고평가 국면에 진입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13. 주식시장의 열기가 달아오른 가운데 여러 가지 위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한 번도 주식에 투자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시장에 대거 참여했고, 레버리지 투자를 통해 투자 자금 규모를 불려 나가는 사례가 늘었다. 이 대목에서 잠깐 레버리지 투자에 대해 살펴보자. 예를 들어 10만 달러의 자기 자본을 가진 투자자가 원금의 2배에 해당하는 부채를 쓴다고 가정하면, 그의 총 투자 규모는 자기 자본 10만 달러와 차입금 20만 달러를 합쳐 30만 달러가 된다. 만일 그가 투자한 주식이 20% 상승한다면 그는 주식투자로 6만 달러의 수익을 얻는 셈이 되며, 부채에 따른 이자를 감안해도 자기 자본 대비 투자 수익률은 40%가 될 것이다. 부채 덕분에 투자자의 실질적인 투자 수익률이 크게 늘어남을 알 수 있다.

14. 그러나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하면 레버리지 투자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예를 들어 1년 동안 주가가 30% 하락한다면 그의 총 투자금은 21만 달러로 줄어들 것이며, 자기 자본은 단 1만 달러만 남게 된다. 여기에 차입금 20만 달러에 대한 이자 2만 달러를 감안하면 순자산은 -1만 달러가 된다. 물론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이 이를 그대로 지켜볼 리는 없다. 차입금을 상환하지 못할 정도의 주가 폭락을 겪을 때 '마진콜'이 발생한다. 마진콜이란 말 그대로 추가적인 담보 주식이나 현금을 예치하지 않는 한 강제로 보유 주식을 매도해 부채를 해소하겠다는 통보를 의미한다. 결국 레버리지 투자가 급격히 증가한 상황에서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하면 연쇄적인 매도 공세가 발생하게 된다.

15. 이런 일이 1920년대 후반 미국 주식시장에서 대규모로 벌어졌다. 1924년 말 레버리지 투자 규모는 22.3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1927년 말엔 44.3억 달러로, 그리고 1929년 10월 대공황 직전에는 88.15억 달러로 불어났다. 주식시장의 격언에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이 있는데, 1929년 10월의 상황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초보 투자자의 비중이 높아지고 투자 매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시장 금리가 상승한 것은 주식시장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시장 금리 상승의 원인은 다음 장에서 설명하기로 하고, 레버리지 투자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시장 금리가 오르면 발생하는 두 가지 문제를 살펴보자. 첫 번째 문제는 차입 이자율의 상승이 곧 투자 수익의 악화로 이어진다는 것이고, 또 다른 문제는 일부 투자자들이 금리 상승을 계기로 주식보다 채권 투자가 더 매력적이라고 판단해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보유 주식을 매각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16.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연방준비은행의 재할인율이 1928년 2월 3.5%에서 1929년 8월에 6.0%까지 인상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재할인율이란 중앙은행이 민간 은행에 대출해 주는 금리라고 보면 된다. 연방준비은행이 중앙은행에서 빌리는 금리가 올라가면, 은행들이 고객에게 돈을 빌려줄 때 제시하는 대출금리도 더 상승하게 된다. 이 결과 은행 간 시장에서 거래되는 단기금리, 즉 콜금리도 급등하기 시작했다. 1928년 1월 콜금리는 4.1%에 불과했지만, 1929년 7월에는 9.23%까지 상승했다. 다음 장에서는 대공황을 유발한 금리 인상이 어떤 배경 속에서 일어났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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