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경제나침반채널진행자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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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두 달 만에 179원 하락한 원인을 정부 개입·외국인 자금·금리 등 외부 요인으로 보기보다, 기업들이 쌓아둔 달러가 8월 법인세·자사주 소각·배당 등 원화 지출 일정이 겹치며 풀린 결과로 분석. 환율 하락의 지속 여부는 8월 27일 금통위, 8월 28일 잭슨홀 연설, 8월 31일 법인세 마감 등 일정에 달려 있다고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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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이 1559원에서 1380원까지 두 달 만에 179원이 빠졌습니다. 그런데 이 하락을 만든 건 국력이 아니라 달력이었습니다. 환율 얘기만 나오면 늘 같은 반응이 돌아옵니다. 올라도 걱정, 내려도 걱정이면 뭘 어쩌라는 거냐고요. 그래서 오늘은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따지지 않겠습니다. 대신 세 가지만 확인하겠습니다. 누가 이 달러를 풀었는지, 왜 하필 8월이었는지, 그리고 언제 잠기는지. 이 세 개만 알면 나머지는 직접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올해 6월 8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50원까지 올라갔습니다. 2009년 3월 이후 17년 3개월 만에 최고치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찍었던 자리로 다시 올라간 셈입니다. 그리고 두 달 뒤인 8월 21일 같은 환율이 장중 1380원 30전을 기록했습니다. 그 사이에 179원이 사라졌습니다. 비율로는 11.5%입니다.
여기서 하나만 먼저 짚고 가겠습니다. 환율이 1300원 아래로 내려갔다고 알고 계신 분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1300원대에 들어온 겁니다. 8월 19일 종가가 1397원 70전이었는데, 이날이 작년 9월 말 이후 11개월 만에 앞자리가 1300으로 바뀐 날이었습니다. 1400원 선이 깨진 것이지 1300원 선이 깨진 게 아닙니다. 사소한 구분처럼 보이시겠지만, 오늘 영상에서 볼 것은 얼마까지 내려갔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환율은 결국 값입니다. 달러라는 물건의 값이고, 물건값이 그렇듯 누가 얼마나 내놓느냐로 정해집니다. 내놓는 사람이 많으면 값이 떨어지고, 다들 쥐고 있으면 값이 오릅니다. 그러니 두 달 만에 값이 11% 넘게 빠졌다는 건, 그동안 안 나오던 달러가 어디선가 시장으로 쏟아져 나왔다는 뜻입니다. 질문은 하나로 좁혀집니다. 그 달러는 누구 손에서 나온 걸까요?
월급 통장을 떠올려 보시면 감이 잡히실 겁니다. 연봉이 그대로여도 통장 잔고는 매달 요동칩니다. 월급이 25일에 들어오는데 카드값이 14일에 빠져나가면, 그 열흘 동안은 통장이 텅 비어 보입니다. 연봉이 줄어서가 아닙니다. 들어오는 날과 나가는 날이 어긋나서 그렇습니다. 총액이 아니라 타이밍이 잔고를 흔드는 겁니다.
나라 단위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한 해에 벌어들이는 달러 총액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달러가 시장에 나오는 시점이 한쪽으로 몰리면 값은 아주 크게 움직입니다. 이번에 벌어진 일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번 하락에서 이례적인 건 폭보다 속도였습니다. 올해 원달러 환율의 월평균 변동폭은 47원입니다. 한 달 안에서 위아래로 그만큼씩 흔들렸다는 뜻입니다. 이 정도 숫자를 거슬러 찾아보면 외환 위기였던 1997~1998년, 그리고 금융위기 직후인 2008~2009년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위기가 아닌데 위기 때의 속도가 나온 겁니다.
물론 달러 자체가 약해진 영향도 있습니다. 주요 통화에 비해 달러가 센지 약한지를 보는 점수판이 달러 인덱스인데, 이 점수판이 100선이 무너져 98.8, 8위까지 내려왔습니다. 세계적으로 달러 힘이 빠진 건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7월 한 달만 놓고 보면 우리 돈은 8.81% 비싸졌습니다. 2009년 3월 이후 가장 큰 폭이었고, 주요국 통화 가운데 1위였습니다. 다른 나라 돈들도 같이 비싸지긴 했지만 우리 돈이 유독 앞서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쪽에만 있었던 이유가 따로 있다는 얘기입니다.
댓글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설명입니다. 정부가 나서서 눌렀다는 겁니다.
당국이 환율을 직접 끌어내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기가 가진 달러를 시장에 파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방법에는 흔적이 남습니다. 외환 보유액이 줄어듭니다. 7월 말 우리나라 외환 보유액은 4,279억 5천만 달러였습니다. 한 달 전보다 오히려 5억 9천만 달러 늘었고, 두 달 연속 증가입니다. 세계 순위도 6월 말 기준 10위로, 직전 달 13위에서 세 계단 올라섰습니다. 곳간을 헐어 환율을 눌렀다면 나올 수 없는 그림입니다. 알리바이가 성립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무죄라고 끝내면 절반짜리 답입니다. 개입에는 두 종류가 있기 때문입니다. 달러를 파는 개입과, 기업에게 말을 거는 개입입니다. 앞의 것은 통계에 남지만 뒤의 것은 어디에도 안 남습니다. 그리고 뒤의 것은 실제로 있었습니다. 환율이 1560원에 근접하던 6월, 금융당국은 은행들을 불러 긴급 회의를 열었습니다. 달러 예금을 공격적으로 마케팅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고, 투기적인 외환 거래를 들여다봤습니다. 합동 외환 점검이 나갔고, 수출기업 간담회도 함께 열렸습니다. 겉으로는 협조 요청이지만 사실상 압박이라는 지적이 그때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이 후보를 지워야 하는 이유는 시간표에 있습니다. 그 압박이 한창이던 6월에 환율은 1559원이었습니다. 압박이 통했다면 그때 내려갔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시기 내내 주요 수출 기업들은 달러를 그대로 쥐고 있었고, 환율은 1500원대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당국이 기업의 달러 보유를 직접 통제할 수단은 제한적입니다. 압박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다만 179원을 만든 힘은 아니었습니다.
8월 11일부터 18일까지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8조 1560억 원을 순매수했습니다. 거래일 연속 순매수는 7개월 만이었고, 같은 주 코스피는 11.5% 올랐습니다. 외국인이 우리 주식을 사려면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사야 하니, 환율을 끌어내리는 힘이 맞습니다. 숫자도 작지 않습니다.
다만 이 돈의 성격을 보셔야 합니다. 올해 상반기 내내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316억 달러어치 팔았습니다. 8월의 순매수는 그 흐름 위에 얹힌 숫자입니다. 새 세입자가 들어온 게 아니라, 이사 나가려고 짐을 싸던 사람이 짐을 도로 푼 쪽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그 순매수의 87%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두 종목이었습니다. 한국 시장 전체로 돈이 들어온 게 아니라 반도체 두 종목으로 몰린 겁니다. 그래서 이건 환율의 원인이라기보다, 같은 이유에서 나온 다른 현상에 가깝습니다.
7월 16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2.50%에서 2.75%로 올렸습니다. 위원 일곱 명 만장일치였고, 금리를 올린 건 3년 6개월 만입니다. 미국 금리와의 격차는 0.75%포인트로 좁혀졌습니다. 간격이 좁아지면 우리 돈을 들고 있을 이유가 조금 더 생깁니다. 방향은 맞습니다.
채권 쪽 숫자는 더 큽니다. 세계 주요 채권이 담기는 큰 바구니에 우리 국채가 들어간 뒤 석 달 동안 외국인의 국고채 순매수는 약정 기준 37조 3천억 원이었습니다. 덩치만 놓고 보면 앞의 두 후보를 압도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확인할 게 있습니다. 그 돈의 30% 가량이 일본계 패시브 자금인데, 이쪽은 환헤지 비중이 높습니다. 환율이 어떻게 변하든 손해를 안 보게 미리 보험을 드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원화를 사는 효과가 상당 부분 상쇄됩니다. 눈에 보이는 37조 원과 실제로 환율을 밀어 올리는 힘 사이에는 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새 후보를 다 세워 봤습니다. 정부는 곳간을 헐지 않았고, 외국인은 나가던 걸음을 멈춘 정도였고, 금리는 방향은 맞지만 힘의 상당 부분이 상쇄됐습니다. 셋 다 공범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셋을 다 합쳐도 179원이 다 설명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눈에 걸리는 게 하나 있습니다. 후보들의 공통점입니다. 정부, 해외 투자자, 해외 자금, 전부 바깥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계속 밖을 보고 있었던 겁니다. 달러를 가장 많이 쥐고 있는 쪽이 바깥에 있을 거라고 전제하고서요. 그 전제를 내려놓고 시선을 안으로 돌려 보겠습니다.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 경상수지 흑자는 1910억 1천만 달러였습니다. 반기 기준 사상 최대입니다. 나라 전체가 벌어들인 돈이 밖으로 나간 돈보다 그만큼 많았다는 뜻인데,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네 배가 넘습니다. 6월 한 달만 떼어 봐도 497억 3천만 달러 흑자로 월간 사상 최대였고, 같은 달 상품 수출은 월간 기준으로 사상 처음 1000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경상수지는 38개월 연속 흑자인데, 2000년대 들어 가장 긴 기록입니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이렇게 사상 최대로 벌어들이던 바로 그 시점에, 우리 돈은 17년 만에 가장 쌌습니다. 나라가 역대급으로 벌고 있는데 화폐값은 바닥이었던 겁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버는 것과 바꾸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수출로 달러를 벌어도 그 달러가 저절로 원화가 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 은행에 가서 달러를 팔고 원화를 받아야, 그때 원화 수요가 생기고 원화값이 오릅니다. 그 절차를 밟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벌어도 환율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김장을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가을에 배추를 아무리 많이 담가도 독을 열지 않으면 밥상에는 안 올라옵니다. 창고에 있는 것과 상에 오른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6월 말 기준으로 국내 거주자가 은행에 넣어 둔 외화 예금 잔액은 1133억 3천만 달러였습니다. 이 가운데 달러 예금이 978억 달러입니다. 역대 최대치입니다. 그리고 이 통장의 주인이 누구인지가 핵심입니다. 전체 외화 예금의 87.4%가 기업 예금입니다. 기업이 넣어 둔 달러 예금만 따로 떼어 봐도 855억 8천만 달러로, 역시 역대 최대입니다.
개인이 여행 갈 돈을 조금씩 모아 둔 게 아니라, 수출로 달러를 버는 회사들이 그 달러를 그대로 은행에 넣어 둔 겁니다. 기업들이 달러를 안 풀고 쥐고 있는 거 아니냐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다면, 그 짐작은 맞았습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심증이었고, 이제는 한국은행이 매달 발표하는 숫자로 확인된 겁니다.
이 금고가 채워진 과정도 볼만합니다. 3월에는 잔액이 1021억 달러까지 줄었습니다. 한 달 만에 153억 달러 넘게 빠진 역대 최대 감소폭이었습니다. 그러다 4월부터 6월까지 석 달 연속으로 다시 차올랐습니다. 한국은행은 그 배경으로 대기업이 받은 수출대금을 꼽았습니다. 이 통장은 버는 속도에 맞춰 꾸준히 불어난 게 아닙니다. 크게 비웠다가 크게 채우기를 반복합니다.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통장입니다.
한 가지 오해는 짚고 가겠습니다. 기업이 나쁜 마음을 먹은 게 아닙니다. 환율이 계속 오르는 동안 달러를 달러인 채로 두는 건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오늘보다 내일 바꾸는 게 유리한데 굳이 오늘 바꿀 이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반도체 쪽은 상반기 수출이 1924억 달러로, 작년 한 해 실적을 반년 만에 넘어섰습니다. 들어오는 달러는 많고 바꿀 이유는 없었으니, 금고는 계속 차오릅니다.
문제는 누구의 의도가 아니라, 그 달러가 몇 년째 한 방향으로만 쌓여 있었다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이 구조에는 결정적인 성질이 하나 있습니다. 쌓인 것은 언젠가 쓰인다는 것. 그리고 쓰일 때는 한꺼번에 쓰인다는 겁니다.
범인을 찾고 나면 반드시 남는 질문이 동기입니다. 몇 년 동안 쌓아만 두던 금고가 왜 하필 이번 여름에 열렸을까요?
답은 하나가 아니라 셋입니다. 그리고 이 셋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부 원화로만 낼 수 있는 돈이고, 지급 시점이 같은 여름에 겹쳤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달이 있습니다. 카드 결제일이 오고, 관리비 고지서가 붙고, 하필 자동차세까지 같은 달에 몰리는 달. 월급이 들어온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 달에는 어쨌든 통장에서 목돈이 나가야 합니다. 올 여름 우리 기업들에게 그런 달이었습니다.
**첫 번째 청구서는 공장입니다.** 날짜는 7월 10일입니다. 이날 SK하이닉스는 미국 나스닥에 ADR을 상장했습니다. 미국 증시에서 사고팔 수 있게 만든 우리 회사 주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공모가는 주당 149달러로 확정됐고, 여기서 조달한 돈이 약 265억 달러입니다. 우리 돈으로 40조 원 가량입니다. 외국 기업이 미국 증시 상장으로 조달한 금액으로는 사상 최대였습니다. 종전 기록이던 알리바바의 25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규모가 아니라 용처입니다. 이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보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청주의 어드밴스드 패키징 시설, EUV 노광 장비를 비롯한 생산 설비, 전부 국내입니다. 미국에서 달러로 조달했는데 공사는 경기도와 충청북도에서 합니다. 용인의 땅을 다지고 청주에 건물을 올리는 데 달러를 낼 수는 없습니다. 인건비도, 자재비도, 협력업체 대금도 전부 원화입니다. 이 달러는 들어오는 순간부터 원화로 바뀌기로 예정된 돈이었습니다. 실제로 7월에 우리 돈이 주요 통화 중 가장 많이 비싸진 직접적인 이유로, 이 자금이 순차적으로 원화로 바뀔 거라는 기대가 지목됐습니다.
**두 번째 청구서는 자릿수가 다릅니다. 주주 환원입니다.** 8월 19일 SK하이닉스 이사회는 40조 원 규모의 자사주를 사들여 전량 소각하기로 결의했습니다. 회사가 자기 주식을 사서 아예 없애는 겁니다. 이걸 시작으로 최대 100조 원 안팎의 주주 환원을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나왔습니다. 이틀 뒤인 8월 21일에는 삼성전자 이사회가 올해 주주 환원 규모를 약 90조 원에서 110조 원 사이로 의결했습니다. 종전 최대였던 2020년의 20조 3천억 원과 비교하면 다섯 배 수준입니다. 이 가운데 3분기에만 정규 배당을 포함해 30조 원 가량이 현금으로 나갑니다.
이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짚고 가겠습니다. 두 회사 모두 주주 환원 재원의 기준을 잉여 현금 흐름의 50%로 잡고 있습니다. 벌어들인 돈에서 공장 짓고 설비 사는 데 쓴 돈을 빼고 남은 현금, 그 절반을 주주에게 돌려주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남은 현금의 상당 부분이 지금 달러로 은행에 들어 있습니다. 배당금은 주주 계좌로 들어갑니다. 자사주를 사려면 국내 증시에서 원화로 사야 합니다. 두 회사가 아무리 달러로 벌었어도, 주주에게 건네는 순간에는 원화여야 합니다.
**세 번째 청구서는 금액으로는 작지만 마감일이 있습니다. 세금입니다.** 정확히는 법인세 중간예납입니다. 1년 치 법인세의 절반가량을 8월에 미리 내는 제도인데, 올해 8월 중간예납 규모는 46조 원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보통은 10조 원에서 17조 원 사이였으니 세 배가 넘습니다. 근거는 단순합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상반기 합산 영업이익만 놓고 15%를 잡아도 36조 7천억 원이 나옵니다. 반도체가 벌어들인 이익이 워낙 컸기 때문에 세금도 그만큼 커진 겁니다.
그리고 세금은 달러로 못 냅니다. 국세청은 원화만 받습니다. 회계 장부에 달러가 아무리 많아도 납부 화면에 찍히는 건 원화 금액입니다. 앞의 두 청구서는 시기를 조절할 여지가 있습니다. 배당 지급일도, 자사주 매입 기간도 회사가 정합니다. 그런데 세금에는 회사가 정할 수 없는 날짜가 하나 붙어 있습니다. 8월 31일입니다. 그날까지는 원화로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환율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상관없습니다.
이제 세 장을 겹쳐 보겠습니다. 7월 10일, 8월 19일과 21일, 그리고 8월 31일. 몇 년 동안 한 방향으로만 쌓이던 달러가 어느 날 마음이 바뀌어 풀린 게 아닙니다. 원화로만 낼 수 있는 청구서 세 장의 지급 시점이 같은 여름에 겹쳤을 뿐입니다. 국력이 올라가서가 아니라, 달력이 그렇게 짜여 있었던 겁니다.
반론이 가능합니다. 결국 우리가 잘 벌어서 생긴 일 아니냐는 겁니다. 절반은 맞습니다. 잘 벌었으니 금고가 채워졌고, 잘 벌었으니 세금도 배당도 커졌습니다. 다만 순서를 보셔야 합니다. 잘 벌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환율이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상반기 내내 그랬습니다. 환율이 내려간 건 그 돈을 써야 할 이유와 날짜가 생긴 다음이었습니다.
개인도 다르지 않습니다. 여행 날짜가 잡히면 환율이 마음에 안 들어도 결국 환전을 합니다. 마감일이 붙은 지출은 가격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청구서에는 마감일이 있습니다. 마감일이 있다는 건, 끝나는 날도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까지가 이번 하락의 전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궁금하신 건 지금 환전을 해야 하는지, 조금 더 기다려도 되는지일 겁니다. 앞에서 왜 하필 지금 열렸느냐고 물었는데, 그 질문에는 뒷면이 있습니다. 그럼 언제 닫히느냐입니다.
성수기가 정해진 가게를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손님이 몰리는 기간이 달력에 있고, 그 기간이 지나면 매출도 같이 끝납니다. 사장의 능력이 갑자기 떨어져서가 아닙니다. 달력이 넘어갔을 뿐입니다.
그래서 남은 물량을 세워 본 곳이 있습니다. 한 증권사의 추정입니다. 두 회사의 주주 환원 재원 가운데 절반에서 60% 가량, 금액으로는 148조 원에서 178조 원을 6개월에서 12개월에 걸쳐 나눠 환전한다고 가정했습니다. 여기서 해외로 다시 나가는 돈을 빼면, 시장에 실제로 풀리는 달러는 15조 원에서 45조 원 정도입니다. 이 물량이 환율을 끌어내리는 효과는 누적으로 18원에서 77원으로 계산됐습니다. 같은 분석이 제시한 앞으로 1년의 환율 범위는 1325원에서 1400원입니다.
숫자보다 성격이 중요합니다. 이 힘은 무한정이 아닙니다. 총량이 정해져 있고, 나눠서 나오고, 언젠가는 소진됩니다.
여기서 흐름을 뒤집는 자료도 있습니다. 외환 당국은 8월 25일 시점에 반도체 기업의 추가 환전 수요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봤습니다. 두 회사는 이미 상당한 원화 현금을 갖고 있어서, 주주 환원에 쓸 돈 전부를 달러를 팔아 마련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려간 179원 가운데 일부는 실제로 팔린 달러가 아니라, 앞으로 팔릴 거라는 기대와 그 기대에 올라탄 매도로 만들어진 셈입니다. 기대가 앞서 갔다는 증거는 주식 시장에서 먼저 나왔습니다. 삼성전자는 사상 최대 규모의 주주 환원을 발표하고도 8월 24일 주가가 8% 급락했습니다. 소각 물량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발표가 곧 실행은 아니라는 걸 시장이 하루 만에 확인한 겁니다.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도 보겠습니다. 블룸버그가 국내외 금융회사 28곳의 전망치를 모아 중앙값을 낸 자료가 있습니다. 올해 12월 1400원, 내년 말 1350원입니다. 지금 1380원대는 이미 올해 연말 전망치 아래에 있습니다. 갈 만큼 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되돌릴 수 있는 조건을 같이 보셔야 합니다. 세 가지입니다.
첫째, 이번 주 금융통화위원회입니다. 8월 27일에 열립니다. 전문가 일곱 명 중 넷은 기준금리를 3.00%로 올릴 것으로 보고, 나머지 셋은 동결을 봅니다. 올리면 우리 돈이 더 비싸질 재료가 하나 붙고, 동결이면 그 재료가 빠집니다.
둘째, 8월 28일 잭슨홀 미팅입니다. 새 연준 의장의 첫 기조연설이 예정돼 있습니다. 미국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최근 장중 5.34%까지 올라 2007년 이후 19년 만의 최고치를 찍었는데, 그 배경에는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를 시장이 확신하지 못한다는 사정이 있습니다. 이 연설에서 그 의구심이 풀리면 달러는 다시 강해질 수 있습니다.
셋째, 엔화입니다. 원·엔 재정 환율은 100엔당 800원대까지 내려왔습니다. 2년 만에 최저 수준인데, 일본은행이 금리를 더 올리면 이 자리는 다시 밀려 올라갈 수 있습니다.
바닥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저도 모릅니다. 다만 지금이 어떤 성격의 국면인지는 알 수 있습니다. 실적이 만든 국면이 아니라 일정이 만든 국면입니다. 그것만 알아도, 한 번에 다 바꿀지 몇 번에 나눠 바꿀지는 스스로 정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국면이 이어지든 뒤집히든, 그 전에 확인해 볼 게 하나 있습니다. 이 179원 가운데 이미 내 지갑까지 도착한 몫이 있는지입니다.
먼저 오해 하나를 정리하겠습니다. 7월 수입물가지수는 전달보다 1.0% 내렸습니다. 두 달 연속 하락입니다. 밖에서 사 오는 물건들의 값이 평균적으로 내려갔다는 뜻이니 좋은 소식이 맞습니다. 그런데 같은 지수를 작년 7월과 비교하면 여전히 18.7% 높습니다. 떨어졌다와 싸졌다는 다른 말입니다. 높은 산에서 조금 내려온 것이지, 평지로 돌아온 게 아닙니다.
한국은행도 이 부분을 조심스럽게 설명했습니다. 원재료와 중간재 수입 가격 오름세가 둔화되면서 소비자 물가 부담은 다소 완화되겠지만, 그 정도는 소비재 가격에 반영되는 시차에 따라 달라진다는 겁니다. 실제로 7월 소비자물가는 2.8% 올라 석 달 만에 2%대로 돌아왔습니다.
환율은 택배처럼 도착합니다. 발송됐다는 알림이 왔다고 물건이 문 앞에 온 건 아닙니다. 중간 집하장을 거쳐야 하고, 어떤 물건은 먼저 오고 어떤 물건은 한참 뒤에 옵니다.
이미 도착한 곳부터 보겠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앞서 말씀드린 자리까지 내려오면서 원화 환전액은 19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7월 원화가 비싸지던 국면에서 개인의 환전 수요는 74% 늘었습니다. 해외 주식 쪽으로도 갔습니다. 개인 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는 6월 6억 3300만 달러에서 7월 46억 4200만 달러로 뛰었습니다. 밖으로 파는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2분기 온라인 해외 직접 판매, 이른바 역직구는 1조 2232억 원으로 작년보다 38.7% 늘었습니다. 2분기 기준으로 5년 만에 최대입니다. 여행업계도 외국인 손님을 받는 영업을 다시 넓히고 있습니다.
공통점이 보이실 겁니다. 전부 환율에 직접 붙어 있는 창구들입니다. 환전소, 증권 계좌, 해외 결제는 며칠이면 반영됩니다. 아직 안 온 곳은 장바구니와 외식비입니다. 원재료가 배에 실려 들어오고, 공장을 거쳐 완제품이 되고, 유통을 지나 가격표에 붙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게다가 값을 내리는 쪽은 올리는 쪽보다 언제나 느립니다.
그렇다면 반대 질문도 해 볼 만합니다. 환율이 올라가면 수출 기업에는 좋은 일 아니었나요? 한국무역협회가 수출기업 1만 8371곳을 분석한 결과가 있습니다. 환율이 10% 오를 때 단기적으로 영업이익률이 나아지는 기업은 61.8%였습니다. 절반이 훨씬 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파급 효과까지 넣고 보면 그 비율이 19.9%로 떨어집니다. 수입 원자재값이 오르고 국내 물가가 따라 오르면서 생산비가 늘어나는데, 그 인상분을 판매가에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급락이 공짜인 것도 아닙니다. 중견기업연합회 조사에서 하반기 수출 악화 요인 1위는 환율 변동성 확대였습니다. 47.3%가 이것을 꼽았는데, 원자재값이나 인건비 상승보다 높은 순위입니다. 수출 단가를 낮출 여력이 없다는 기업이 72.5%, 해외 바이어에게서 가격을 내려 달라는 요구를 받은 기업이 40.5%였습니다. 방향이 문제가 아니라 속도가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 1400원에 맞춰 1년 사업 계획을 짠 회사에게는 급등이든 급락이든 똑같이 계획이 어긋납니다.
마지막으로 구조적인 사실 하나만 짚고 가겠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회사가 코스피 상장사 순이익의 약 70%를 차지합니다. 이번 환율 하락을 만든 것도 이 두 회사이고, 그 하락의 부담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것도 이 두 회사입니다. 부담은 나머지 쪽에 더 무겁게 갑니다.
179원을 만든 건 정부도, 외국인도, 국력도 아니었습니다. 몇 년 동안 한 방향으로만 쌓이던 달러가, 원화로만 낼 수 있는 청구서 세 장이 같은 여름에 겹치면서 풀린 겁니다. 잘 벌어서 내려간 게 아니라, 쓸 때가 와서 내려간 겁니다.
처음에 월급 통장 이야기를 했습니다. 잔고를 흔든 건 연봉이 아니라 날짜였다고요. 나라 단위에서도 똑같았습니다. 이번 환율은 우리 경제의 체력이 만든 숫자가 아니라, 몇몇 회사의 지출 일정이 만든 숫자였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볼 것은 환율 숫자 자체가 아니라, 그 일정표가 언제 비는지입니다.
하나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한국은행이 매달 발표하는 거주자 외화예금 잔액입니다. 6월 말 978억 달러가 역대 최대였다고 말씀드렸는데, 이 숫자가 다시 늘기 시작하면 기업이 달러를 도로 쌓고 있다는 뜻입니다. 금고 문이 다시 닫히는 신호입니다. 검색만 하면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8월 27일 금통위와 8월 31일 법인세 마감일만 달력에 표시해 두시면 됩니다.
이런 국면이 처음도 아닙니다. 2007년 10월에는 원화가 비싸져 장중 900원대 선까지 갔고, 그 강세의 부작용이 다음 정부가 고율로 방향을 트는 배경이 됐습니다. 방향이 어느 쪽이든 빠른 변화는 그다음에 반작용을 만듭니다. 바닥을 맞추는 건 아무도 못 합니다. 다만 지금이 어떤 국면인지 알면, 한 번에 바꿀지 나눠 바꿀지는 정할 수 있습니다. 맞히는 쪽이 아니라, 틀렸을 때의 비용을 줄이는 쪽으로 생각을 옮기면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국면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금고 문이 아직 열려 있다고 보시는지, 슬슬 닫히는 중이라고 보시는지 댓글로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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