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황제펭귄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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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결론: 17세기 튤립 버블과 최근 비트코인 급등을 비교하되, 투자에 전재산을 걸지 말라는 메시지다. 튤립 버블의 배경: 16세기 유럽은 종교 갈등이 잦았고, 네덜란드는 독립전쟁 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종교의 자유와 독립국 지위를 얻었다. 네덜란드 번영: 종교적 자유 덕분에 유대인 등 금융업 종사자가 이주해 금융 중심지가 되었고, 플루트선 등 조선·무역업이 발달했으며 최초의 주식회사 동인도회사가 설립되었다. 일본과 조선과의 연결: 네덜란드인은 나가사키 데지마에서만 교류가 허용되었고, 하멜은 동인도회사 소속으로 표류해 조선에 왔다. 튤립의 역사: 튤립은 중앙아시아에서 오스만 제국을 거쳐 네덜란드로 전해졌다. 구근 번식이 어렵고 재배에 약 7년이 걸려 희소성이 컸으며, 최고가 품종은 집 한 채 값에 달했다. 선물 거래와 버블: 아직 수확하지 않은 구근을 미리 사고파는 선물 시장이 생기고, 서민까지 대출로 투자에 뛰어들었다. 1636~1637년 사이 가격이 급등했다가 곧 폭락해 구근이 휴지조각이 되었다. 비트코인 비교: 비트코인은 약 1년 만에 1600~1700만 원대에 도달했고, 발행 속도 감소와 채굴 난이도 상승 등으로 가치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 가격이 유지되면 튤립과 다르다는 여지를 남겼다. 리스크 및 결론: 뉴턴이 주식(남해회사)으로 손해를 봤다는 일화를 들며, 전재산이나 감당 못할 큰돈을 투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출연자 전망: 비트코인이 장기적으로 튤립과 다른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조건부 기대를 밝혔으나, 단기 방향에 대한 구체적 예측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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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황제펭귄입니다. 오늘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비트코인과 관련된 얘기를 좀 해보고 싶은데요. 요즘 각 메인 포털에 들어가서 전자화폐 관련 기사를 보면 댓글들이 달려 있습니다. 댓글을 보면 코인을 사느니 튤립을 사겠다, 이거 완전 튤립 파동, 거품이 아니냐는 얘기들이 많이들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이게 되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튤립 파동에 대해서 한번 알아봤는데,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도 많았고 왜 비트코인과 비유되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여러분께도 알리고 싶어서 이 콘텐츠를 계획해 봤습니다.
이 파동은 네덜란드와 튤립의 만남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먼저 당시 17세기 네덜란드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다음 튤립의 역사, 즉 튤립이 어디에서 왔고 왜 네덜란드에서 인기가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6세기 유럽은 종교 대립과 갈등이 번번이 일어나던 곳이었습니다. 네덜란드도 그중 하나였기 때문에 전쟁에 휘말리게 되는데요. 결국 17세기에 네덜란드는 독립 전쟁을 통해 종교의 자유를 인정받고 독립 국가로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이 그림 자료는 베스트팔렌 조약을 묘사한 그림인데요. 제가 학창 시절에도 배웠을 만큼 정말 유명한 조약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이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종교의 자유를 확보했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혹시 더 자세한 내용을 아시거나 다른 의견이 있으시면 댓글로 달아주세요.
다시 돌아와서, 이 조약의 후폭풍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네덜란드로 들어왔다는 겁니다. 특히 가톨릭을 믿는 스페인의 경우 금지하는 게 많았는데, 예를 들면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 같은 것을 대체로 부정적으로 봤어요. 그 유명한 『베니스의 상인』 같은 소설도 있잖아요, 살 1파운드를 떼어 주는 이야기 말이에요. 그래서 유럽의 유대인을 비롯해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편견 없고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네덜란드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 결과 암스테르담이 금융업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되죠.
이런 사례는 다른 나라에서도 발견되는데요. 여러분은 스위스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보통은 시계나 맥가이버 칼 같은 것을 떠올릴 겁니다. 시계 하니까 생각나는 일화가 있는데, 대학교 때 프랑스인 교수님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요. 교수님이 "세계가 생각하는 스위스제 럭셔리 시계가 뭐냐"고 질문을 하셨는데, 저는 주저 없이 손을 들고 "롤렉스요!"라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교수님이 고개를 저으셨어요. 럭셔리 시계라면 파텍 필립을 말하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파텍 필립의 존재를 처음 알았고 가격을 찾아봤는데, 정말 멘붕이 왔습니다. 제가 지금 스와치를 갖고 있는데, 파텍 필립에 비하면 장난감 수준이더라고요. 아무튼 이런 얘기를 한 의도는 스위스가 시계를 정말 잘 만든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계들도 처음부터 스위스가 잘 만들었던 게 아니에요. 프랑스의 위그노 교도들이 종교 박해를 피해 스위스로 이주했고, 그들이 갖고 있던 시계 제작 기술이 스위스에 자리 잡으면서 스위스 시계가 세계를 선도하는 상품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와서, 네덜란드는 금융업 말고도 조선업과 무역업이 발전하게 됩니다. 지금 보시는 그림이 '플류트선'이라는 배인데요. 이 배는 이전 배들과 비교하면 획기적인 부분이 많았습니다. 첫째, 갑판 폭을 줄여서 필요한 노동력을 줄이고 세금을 적게 냈습니다. 당시 배들은 갑판의 폭을 재서 통행료를 냈다고 하는데, 갑판 폭을 줄이면 통행료가 싸지는 거죠. 둘째, 갑판은 줄이고 선실 부분을 크게 만들어 적재량을 높였습니다. 어떤 설명에 따르면 다른 배들보다 두세 배 더 많이 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셋째, 속도가 빨랐습니다. 다른 배들이 한 번 갔다 올 때 두 번 갔다 온다는 얘기도 있었고요.
이렇게 되니 네덜란드는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무역에서 얻는 이익이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무역업이 발달하게 됩니다. 무역업에서 네덜란드는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게 되는데, 이 회사가 얼마나 대단했으면 영국이 그 시스템을 그대로 따라 해서 자기들도 동인도 회사를 만들어 운영할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게, 동인도 회사는 우리와도 상당히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요. 역사를 공부하신 분들은 『하멜 표류기』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책의 저자인 하멜이 바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이었는데, 일본 나가사키로 가려다가 표류하여 조선에 오게 된 겁니다. 또 놀라운 사실은 당시 일본도 조선처럼 쇄국 정책을 취하고 있었다는 점이에요. 그런데 일본은 네덜란드만큼은 나가사키 앞바다에 '데지마'라는 작은 인공섬을 만들어 네덜란드인들을 그 안에서만 살게 하고, 좁은 길목으로만 통하게 하면서 교류를 했다고 합니다. 일본은 그렇게 네덜란드의 학문을 배우면서 문명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죠. 17세기 네덜란드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이 정도면 가늠이 잡힐 겁니다.
여기까지 보면서 우리가 짚어야 할 점은, 17세기 네덜란드가 최고 전성기를 맞이한 나라였고, 금융과 무역 덕분에 재정적으로 엄청 부유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튤립의 역사를 알아보겠습니다. 튤립은 오른쪽 그림에 나와 있듯이 흔히 중국 원산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는 중국과 중앙아시아 사이에 있는 톈산산맥 일대가 원産지라고 합니다. 이 꽃은 험준한 산맥을 지나 상인들의 손에 의해 오스만 제국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오스만 제국은 튤립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해서 그들의 그림이나 장식에 자주 이용했다고 합니다.
그럼 오스만 제국에서 성공을 맛본 상인들이 다음에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바로 돈이 넘쳐나는 나라, 네덜란드로 튤립을 가져가게 됩니다. 그리고 튤립은 상인들의 생각처럼 얼마 안 되어 대박을 치게 되었습니다. 튤립이 히트를 친 이유는 공급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튤립의 구근, 즉 씨앗 같은 것에서 완전한 튤립으로 키우는 데 평균 7년이 걸리고, 그 와중에 상당수가 성체가 되기 전에 죽는다고 합니다. 또 희귀한 품종을 만들기가 상당히 어려웠는데요. 사진에 보이는 '셈페르 아우구스투스'라는 품종은 당시 가장 비싼 튤립이었고 집 한 채 값에 맞먹었다고 합니다. 정말 어마어마하죠.
튤립 거품이 생기기 전에도 튤립 가격은 이미 상당히 비쌌다는 뜻이고, 사람들은 튤립을 재배하면 돈이 되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튤립으로 역전 인생을 꿈꾸게 되었고, 튤립을 사고파는 일이 엄청 빈번해졌습니다. 이 그림은 당시 네덜란드의 인물 풍속 그림인데요, 빨간 동그라미 쪽을 자세히 보시면 튤립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까 말씀드렸듯이 튤립은 재배하여 꽃을 피우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사람들은 아직 피지도 않은 튤립을 미리 거래해 버리게 됩니다. 예를 들면 "내년 7월에 빨간 튤립 구근을 1개에 100원씩 5개 사겠다"처럼 약속을 해 버린 거죠. 이것이 바로 주식 하면 흔히 듣는 선물 시장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튤립의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올라갔고, 부유층뿐 아니라 가난한 서민들까지 빚을 내서 튤립을 사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부동산과 같은 거죠. 예를 들어 내가 500원밖에 없는데 아파트 가격이 1000원이라고 해 봅시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이유는, 집값이 2000원으로 뛸 걸 알았기 때문이죠. 그러면 집을 팔았을 때 원금 500원으로 1000원의 이득을 보게 되니까요. 이처럼 튤립도 투기의 대상이 되어버린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열망과 달리 튤립 거품은 금방 꺼지게 됩니다. 어느 순간부터 튤립 거래량이 확 줄어들었고, 튤립 가격도 곤두박질치게 됩니다. 이 그래프에서 가로는 시간을, 세로는 튤립 가격을 의미합니다. 11월 12일부터 다음 해 2월 초까지 가격이 200 근처까지 올라갔다가, 2월 초 이후 가격이 바로 휴지 조각이 되어 버렸습니다. 불과 1년 사이에 가격이 저렇게 올랐다가 내려간 거예요.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선물 거래로 튤립을 사고파는 것이 엄청나게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가격이 정점을 찍고 있었는데, 다음 날 폭락했다면, 그 시점에 선물 계약을 했던 사람은 거의 쓰레기를 돈 주고 산 셈이 되었죠. 튤립 파동은 단 1년 만에 끝났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 아닐까요?
현재 비트코인 가격은 1600만~1700만 원대를 형성하고 있는데요. 이는 불과 1년 만에 도달한 금액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튤립에 비유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지금 비트코인은 정치·경제적 외부 요인들도 작용했지만, 화폐 생산 난이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채굴 시스템 등으로 하나하나의 가치가 높아져서 지금의 가격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이 가격이 2년 뒤, 3년 뒤, 10년 뒤에도 높게 유지된다면, 비트코인은 더 이상 튤립에 비교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여담으로, 저도 남의 회사 주식을 샀다가 호되게 당한 적이 있는데요. 미적분을 발견하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도 주식은 예측하지 못했다고 하죠. 그래서 제가 시청자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부디 전재산 혹은 그에 상응하는 큰돈을 함부로 투자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더 재미있는 영상을 올릴 테니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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