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톺아보는경제진행자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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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500의 장기 우상향은 사실이지만 회복까지 걸린 기간은 6개월~5년 5개월로 제각각이다. 2008년 사례처럼 인출 시점이 겹치면 수익률 순서 위험으로 노후 자금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 국내 투자자의 레버리지 ETF 쏠림, 실부담 비용·환율 등 숨은 비용을 짚고, ISA·IRP 등 세제 계좌 활용과 자금 사용 시점 점검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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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이야기가 나오면 늘 따라붙는 말이 있습니다. 떨어져도 기다리면 결국 오른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을 반박할 생각이 없습니다. 지난 100년을 놓고 보면 실제로 그래 왔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길게"가 얼마나 긴지는 거의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2008년에는 그 길게가 5년 5개월이었습니다. 고점에서 떨어진 돈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입니다. 그 사이에 정년을 맞은 사람은 회복을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손실이 난 계좌에서 생활비를 꺼내 쓰기 시작하면 계산이 아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S&P 500은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500곳을 한 덩어리로 묶어 놓은 지수입니다. 이 기업들이 평균적으로 얼마나 올랐는지를 보는 숫자이고, 뉴스에서 미국 증시가 올랐다 내렸다 할 때 나오는 그 지수가 바로 이것입니다. 퇴직금 일부를 미국 주식에 넣어 두셨다면, 그 돈의 성적표는 사실상 이 숫자를 따라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2020년 봄을 떠올려 보시죠. 코로나가 퍼지면서 시장이 무너졌습니다. 2월 19일 고점에서 3월 23일 바닥까지 거래일로 23일이 걸렸고, 그 사이 약 33.9%가 사라졌습니다. 계좌를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고작 반년 뒤인 8월 18일에 원래 자리를 되찾았습니다. 이 정도면 기다릴 만합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 사례를 기억합니다.
그런데 회복이라는 말에는 숫자 하나가 빠져 있습니다. 얼마나 걸렸느냐입니다. 2007년 10월 9일이 고점이었고, 2009년 3월 9일 바닥까지 517일 동안 내려갔습니다. 다 내려갔을 때 손실은 56.8%였습니다. 절반이 넘게 사라진 겁니다. 517일은 짧은 소동이 아니었습니다. 1년 다섯 달 동안 계좌를 열 때마다 어제보다 줄어 있는 걸 보며 지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돈이 원래 높이를 되찾은 날은 2013년 3월 28일입니다. 고점에서 세면 5년 5개월입니다. 코로나 때의 반년과 이 기간이 똑같이 "회복"이라는 한 단어로 묶입니다.
- 1987년 10월 19일: 하루 만에 20.47%가 빠졌습니다. 지수 역사상 가장 큰 하루 낙폭입니다.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데 1년 9개월이 걸렸습니다. - 1929년부터 1932년까지: 지수는 86% 가까이 내려갔습니다. 회복될 거라는 말은 그때도 있었고, 결과적으로 틀린 적은 없었습니다. 다만 그 과정은 한 사람의 일생에 걸치기도 했습니다. - 2022년 1월 3일 고점 → 10월 12일 바닥: 25.4% 하락. 앞 사례보다 얕았지만 원래 높이를 되찾은 건 2024년 1월 19일이었습니다. 얕게 빠졌는데도 2년이 걸렸습니다.
최근 네 번의 하락은 모두 회복으로 끝났습니다. 그래서 "길게 보면 오른다"는 말이 근거로 쓰입니다. 다만 걸린 시간은 반년짜리도 있고 5년이 넘는 것도 있었습니다. 언제 그 자리에 서 있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일이 됩니다.
지금 이 지수는 사상 최고치 근처에 있습니다. 올해 들어 최고 기록을 27번 새로 썼다는 뉴스가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락 이야기가 남의 일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5년 5개월이 걸린 2008년의 하락도 시작 직전까지는 최고치 경신 뉴스가 이어지던 시장이었습니다.
2008년에 정년을 맞은 한 분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회사 배지를 반납하고 나온 그해에 계좌가 반토막 났습니다. 그것이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퇴직하고 다섯 해가 지난 뒤였습니다. 그 다섯 해 동안 그분의 계좌는 통계상 "회복 중"이었습니다. 나중에 그래프로 그려 보면 아무 문제 없는 구간으로 기록됩니다. 그런데 그 구간을 사는 사람에게는 매달 관리비가 나가고, 해마다 명절이 돌아옵니다. 자녀 결혼식이 그 안에 있었을 수도 있고, 병원비가 크게 들어간 해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회복은 통계의 시간이고, 생활은 사람의 시간입니다. 두 시간은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습니다.
떨어진 만큼 오르면 본전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절반이 빠졌으면 절반이 오르면 되는 것 아니냐고요. 저도 예전에는 그렇게 암산했습니다. 그런데 이 계산은 틀렸습니다.
마트에서 만 원짜리 물건이 반값에 들어갔다고 해봅시다. 5,000원입니다. 그럼 이 물건이 원래 가격을 다시 회복하려면 얼마가 올라야 할까요? 두 배가 올라야 합니다. 내려갈 때의 절반과 올라올 때의 두 배는 같은 크기가 아닙니다. 숫자로 확인해 보면, 20%를 잃으면 25%가 올라야 본전입니다.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낙폭이 커질수록 필요한 상승률은 훨씬 빠르게 벌어집니다. 56.8%를 잃은 계좌가 본전으로 돌아오려면 131.5%가 오르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시장이 두 배를 넘겨 올라야 겨우 시작한 자리에 선다는 뜻입니다. 5년 5개월이라는 기간이 나온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퇴직금에서 1억 원을 떼어 미국 주식에 넣어둔 분이 있다고 해봅시다. 2008년을 지나며 이 계좌는 4천만 원대가 됐습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생각합니다. 시장이 그만큼만 올라주면 본전이겠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남은 돈이 두 배를 넘겨 불어나야 1억에 닿습니다.
내려갈 때와 올라올 때 드는 힘이 애초에 다릅니다. 그래서 회복은 항상 하락보다 오래 걸립니다. 이것은 시장이 다정해서도 야박해서도 아닙니다. 산수가 원래 그렇게 생겼습니다.
또 회복만 놓고 봐도 매번 잘 풀린 것은 아닙니다. 1999년 말부터 2009년 말까지를 통째로 계산하면, 배당까지 더한 연환산 수익률이 -0.9%였습니다. 꼬박 넣어뒀는데 시작한 자리보다 조금 못한 데서 끝난 겁니다. 이 구간을 흔히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릅니다. 반대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연평균 총수익률이 약 14.8%였습니다. 시장도 지수도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었는데, 어느 시기를 통과했느냐가 결과를 통째로 바꿔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우리가 고를 수 없습니다. 잃어버린 쪽을 40대에 통과했다면 견딜 만합니다. 아직 벌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요. 정년을 앞두고 통과했다면 남은 시간의 상당 부분이 그냥 지나간 겁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넣어두고 건드리지 않는 사람 기준입니다. 다른 데서 생활비가 들어오고 있고, 이 계좌는 없어도 되는 돈이라면 5년이든 10년이든 기다리면 됩니다. 그런데 이 계좌에서 이번 달 생활비를 꺼내야 하는 사람이라면 계산이 통째로 달라집니다. 모으는 동안의 하락과 꺼내 쓰는 동안의 하락은 이름만 같고, 실제로는 전혀 다른 사건입니다.
모으는 중이라면 하락이 꼭 나쁜 소식만은 아닙니다. 매달 같은 돈을 넣고 있는데 값이 내려가면, 같은 돈으로 더 많이 담게 됩니다. 마음은 불편해도 계산으로는 손해가 아닙니다. 모으는 사람에게 하락장은 견디는 구간이면서 동시에 담는 구간입니다.
꺼내 쓰는 중이라면 이야기가 뒤집힙니다. 이번 달 생활비를 만들려면 계좌에서 얼마를 팔아야 합니다. 값이 내려간 날에도 팔아야 합니다. 관리비 날짜는 다가오고, 병원은 다녀와야 하고, 카드 결제일은 시장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떨어진 값에 파는 순간 그 몫은 회복의 기회를 영영 잃습니다. 나중에 시장이 제자리로 돌아와도 이미 팔아버린 만큼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락은 모으는 사람에게는 사건이고, 꺼내 쓰는 사람에게는 사고입니다.
쌀독을 떠올려 보시죠. 쌀독에서 쌀을 퍼내는 일은 풍년에도 하고 흉년에도 합니다. 먹는 걸 멈출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흉년이 언제 오느냐가 결과를 가릅니다. 쌀이 아직 가득할 때 오는 흉년과 바닥이 슬슬 보일 때 오는 흉년은 같은 흉년이 아닙니다.
이것을 부르는 말이 있습니다. 수익률 순서 위험입니다. 평균이 똑같아도, 나쁜 해가 언제 오느냐에 따라 결과가 갈린다는 뜻입니다. 은퇴 후 평균 수익률이 같은 두 사람이 있어도, 한 사람은 나쁜 해를 은퇴 직후에 만나고 다른 사람은 한참 뒤에 만나면, 마지막에 남는 돈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분야를 오래 연구한 웨이드 파운은 은퇴 첫 해의 수익률이 은퇴 소득 계획의 지속 가능성에 단일 항목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정리했습니다. 얼마나 잘 굴렸느냐보다 언제 시작했느냐가 앞섭니다. 그리고 그 시작 시점은 우리가 정한 것이 아니라 회사가 정년을 정해 준 결과입니다.
그래서 기준선이 하나 있습니다. 안전 인출률입니다. 모아둔 돈에서 해마다 몇 퍼센트씩 꺼내야 오래 버티는지를 정해 놓은 기준입니다. 이 비율을 넘겨 쓰기 시작하면 원금이 줄어드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집니다. 모닝스타가 잡은 올해 기준은 3.9%입니다. 모은 돈이 30년 동안 마르지 않으려면 해마다 이 정도까지만 꺼내라는 뜻입니다.
같은 연구에 반가운 대목도 있습니다. 시장이 나쁠 때는 지출을 줄이고 좋을 때는 조금 더 쓰는 식으로 조절하면, 꺼낼 수 있는 비율이 5.7%까지 올라갔습니다. 얼마나 잘 굴리느냐만큼 얼마나 조절하느냐가 결과를 바꾼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조절은 시장이 정해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합니다. 반대쪽 결과도 있습니다. 은퇴하고 첫 5년에 부진한 수익률을 만나고도 쓰던 대로 계속 쓴 경우, 자금이 완전히 바닥날 확률이 훨씬 높게 나왔습니다. 나쁜 해를 만난 것보다, 나쁜 해에도 쓰던 대로 쓴 쪽이 결과를 갈랐습니다.
가장 최근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가구의 평균 자산은 지난해 3월 말 기준 6억 95만 원이었습니다. 숫자만 보면 넉넉해 보입니다. 그런데 같은 조사에서 전체 가구 자산의 75.8%는 실물 자산이었습니다. 집이나 땅처럼 팔기 전에는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입니다. 가구주 나이가 많을수록 그 비중이 더 높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아까 그 평균 자산은 내일 아침 통장에서 꺼낼 수 있는 돈이 아닙니다. 상당 부분은 지금 살고 있는 집입니다.
필요한 돈을 거꾸로 계산해 보면 감이 옵니다. 한 달 생활비를 300만 원으로 잡아보겠습니다. 1년이면 3,600만 원입니다. 여기에 앞서 본 안전 인출률 3.9%를 적용하면, 금융자산이 9억 2천만 원쯤 있어야 이 생활이 30년 갑니다. 그리고 이것은 시장이 평범하게 굴러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은퇴 첫 해에 계좌가 반토막 나면 이 계산은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합니다.
이 계산을 아는 사람일수록 마음이 급해집니다. 그리고 그 조급함은 마음속에만 머물지 않고 계좌의 흔적을 남깁니다. 국내 투자자가 미국 주식에 넣어둔 돈은 지난 8월 31일 기준으로 1,883억 달러가 넘습니다. 우리 돈으로 약 256조 원입니다. 그럼 그 돈은 무엇을 사는 데 쓰였을까요?
지난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한 달 동안 국내 투자자가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반도체 3배 레버리지 ETF였습니다. ETF는 여러 종목을 한 바구니에 담아 주식처럼 사고파는 상품이고, 3배 레버리지는 지수가 1% 오르면 그 3배를 따라가도록 만든 상품입니다. 좋을 때는 3배로 오르지만, 내릴 때도 똑같이 3배로 내려갑니다. 반년이면 회복되던 하락도 이 상품 안에서는 전혀 다른 모양이 됩니다. 이 상품 한 종목에 들어간 순매수 금액이 23억 7,905만 달러였습니다. 같은 기간 S&P 500을 그대로 담은 지수형 상품은 8위였고, 금액은 2억 2,701만 달러였습니다. 1위와 8위의 차이가 10배가 넘습니다.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 가운데 4개가 레버리지 상품이었습니다. 지수에 묻어뒀다고 말하는 동안 실제로 계좌에 담긴 것은 다른 쪽이었던 셈입니다.
이 흐름은 최근 더 빨라졌습니다. 국내 투자자의 레버리지 상품 순매수는 지난 5월 4억 달러였는데, 다음 달 12억 8천만 달러로 늘었습니다. 한 달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버스 정류장을 떠올려 보시죠. 버스가 제시간에 안 오면 사람들은 시간표를 다시 확인하지 않고, 지나가는 차를 아무거나 잡아탑니다. 급해지면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달라지는 겁니다. 이것은 개인이 유난해서 생긴 일만도 아닙니다. 국내에서 특정 레버리지 상품에 대한 규제가 나온 뒤, 그 돈이 미국의 3배 상품으로 옮겨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막힌 쪽이 아니라 열린 쪽으로 흐른 겁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국내 대형 증권사 개인 계좌 약 10만 개를 들여다본 연구가 있습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의 기록입니다. 해외에 투자한 사람들이 실제로 얻은 수익률은 12.9%였습니다. 같은 기간 S&P 500은 26.3% 올랐습니다. 미국에 투자했는데 미국 지수의 절반도 따라가지 못한 겁니다. 부지런히 사고팔았는데 가만히 둔 것보다 못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같은 연구에 숫자가 하나 더 있습니다. 개인들이 해외에서 담은 종목은 명목상 1,561개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위험이 집중된 종목 수는 15개에 그쳤습니다. 목록은 길었지만 위험은 한 줌에 몰려 있었다는 뜻입니다.
지수를 그대로 담았다고 해서 위험이 완전히 나뉘는 것도 아닙니다. 지난 9월 4일 기준으로 S&P 500에서 정보기술 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은 38.2%입니다. 이름은 500곳인데, 무게는 앞쪽 몇 곳에 쏠려 있습니다. 상위 10개 종목만 합쳐도 지수의 절반이 넘습니다. 한 종목의 비중이 에너지 업종 전체보다 큰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 배 상품으로 갈아탄 돈만 반도체에 몰린 것이 아닙니다. 지수를 산 분들도 이미 그쪽에 상당한 몫을 걸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산 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500이라는 숫자가 주는 안심만큼 나뉘어 있지는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젊은 층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같은 기관의 다른 보고서를 보면 50대와 60대의 거래 빈도가 한창때의 젊은 층에 못지않습니다. 좁아지는 시야는 나이를 가리지 않고, 남은 시간이 짧을수록 더 커집니다. 늦게 시작했으니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는 계산은 계산만 놓고 보면 합리적입니다. 다만 그 계산이 앞에서 본 회복 기간과 만나면 결과가 반대로 갑니다. 세 배로 빨리 가는 상품은 내려갈 때도 세 배로 내려갑니다.
무엇을 샀는지가 정해졌다면 남은 질문은 하나입니다. 그중 얼마가 내 손에 남느냐입니다. 이것은 시장이 정하지 않습니다. 수익률표에 잘 드러나지 않는 항목들이 내 몫을 조용히 깎습니다.
먼저 비용입니다. 상품에 표시된 총보수는 국내 상장 S&P 500 ETF들이 수수료 인하 경쟁을 거치며 연 0.0047%까지 내려왔습니다. 만 원을 맡겨도 1년에 1원이 안 붙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빠져나가는 돈은 다릅니다. 실부담 비용률이라는 값이 따로 있습니다. 표시된 수수료에 더해, 상품을 굴리면서 사고팔 때 생기는 비용까지 합친 값입니다. 이 값이 진짜로 내 몫에서 빠지는 금액입니다. 국내 상장 S&P 500 ETF들의 실부담 비용률은 0.1387%에서 0.2281% 사이였습니다. 표시 수수료의 20배에서 35배입니다. 순서도 바뀝니다. 표시 수수료가 가장 싼 상품이 실부담으로 따지면 두 번째였고, 표시 수수료로 세 번째였던 상품이 실부담에서는 가장 저렴했습니다. 제일 싼 것을 골랐다고 믿은 사람이 실제로는 두 번째를 고르고 있었던 겁니다. 어느 상품을 사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기 전에 확인할 칸이 하나 더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음은 환율입니다. 지난 9월 4일 원·달러 환율은 1,359.3원에 마감했고, 그날 하루에만 9.4원이 내렸습니다. 원화가 강해지면 달러로 사둔 자산은 원화로 바꿀 때 값이 줄어듭니다. 같은 지수를 담은 상품이라도 환율 영향을 그대로 갖는 쪽과 환율을 막아둔 쪽이 있습니다. 상품 이름 끝에 붙은 괄호 'H' 한 글자가 그 차이를 뜻하기도 합니다. 최근 한 달을 보면, 환율 영향을 그대로 갖는 쪽은 4.53% 내렸고, 환율을 막아둔 쪽은 0.12% 올랐습니다. 담은 지수도 기간도 같았는데, 갈린 건 이름 끝 글자뿐이었습니다. 비용과 환율이 겹치면 체감은 더 커집니다. 지수 수익률 표에는 둘 다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뉴스에서 본 숫자와 내 계좌에 찍힌 숫자가 다르게 느껴지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배당입니다. 받은 배당을 쓰지 않고 다시 투자하면 결과가 꽤 달라집니다. 올해 5월 기준 최근 30년 연평균 수익률은 10.312%였습니다. 가격 움직임만 보면 6~7% 대에 그치는데, 그 차이를 배당이 메웠습니다. 기간을 100년으로 늘리면 배당이 전체 수익의 약 40%를 차지합니다. 절반 가까운 몫입니다. 그런데 배당을 받아 생활비로 써버리면 이 몫은 처음부터 없던 것이 됩니다. 꺼내 쓰는 분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대가가 얼마인지는 알고 하는 편이 낫습니다.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것은 몇 년 뒤 다른 자리에 서게 만듭니다.
시장이 얼마나 오를지는 우리가 통제하지 못합니다. 비용도 환율도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직접 고를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같은 물건을 담아도 어느 봉투에 넣느냐에 따라 손에 남는 것이 달라진다면, 우리는 봉투를 먼저 골라야 합니다. 그 봉투가 바로 계좌입니다.
ISA라는 세금 혜택 계좌가 있습니다. 올해 1월 기준이 바뀌었으니 지난해 기준 숫자는 이제 맞지 않습니다. 연간 납입 한도가 4천만 원으로 늘었고, 그해 다 채우지 못한 한도는 다음 해로 넘어갑니다. 누적으로는 2억 원까지 담을 수 있습니다. 비과세 한도도 올랐습니다. 일반형은 500만 원까지 비과세이고, 소득 조건을 충족해 서민형으로 분류되면 1천만 원까지 세금이 붙지 않습니다. 초과분에도 일반 계좌보다 낮은 9.9%의 분리과세가 적용됩니다. 같은 돈을 일반 계좌에서 굴렸다면 15.4%를 냈을 것이니, 상품과 수익률이 같아도 남는 돈이 달라집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3년은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기간은 처음 돈을 넣은 날부터 셉니다. 3년을 못 채우고 해지하면 혜택을 반납하고 일반 계좌 세율로 다시 정산합니다. 그러니 꺼낼 시점이 3년 안에 있는 분에게는 이 계좌가 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제도가 좋으냐 나쁘냐를 따지기 전에, 내가 언제 꺼낼 사람인지가 먼저입니다. 올해는 국내투자형 ISA도 새로 생겨, 이자와 배당을 합쳐 연 2천만 원을 넘어 그동안 가입이 막혀 있던 분들도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RIA 계좌도 있습니다. 해외 주식을 판 돈을 국내 주식이나 국내 주식형 펀드로 옮기면 세금을 깎아 주는 계좌입니다. 판 금액 5천만 원 어치까지가 대상이고, 그 안에서 남은 이익에 양도소득세를 면제하거나 감면해 줍니다. 다만 감면 비율이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봄까지 판 몫은 전액 공제받았지만, 여름으로 넘어가며 80%로 내려왔고, 지금은 50%입니다. 이 계좌 자체도 올해 12월 31일에 없어집니다. 옮긴 돈을 1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도 붙어 있습니다. 조건이 붙은 제도라 누구에게나 맞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있는지 모르고 지나가는 것과, 알아보고 나서 쓰지 않기로 하는 것은 다릅니다. 앞의 것은 실수이고, 뒤의 것은 선택입니다.
오늘 저녁에 시간이 나신다면, 계좌를 열기 전에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시기를 권합니다. 상품 이름부터 보지 마시고 이것부터 적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첫째 줄: 이 돈을 언제 꺼낼 계획인가? 날짜가 정확할 필요는 없습니다. "1년 뒤쯤", "5년 뒤쯤"이라고만 적어도 충분합니다.
둘째 줄: 지금 계좌에 담긴 상품 이름은 무엇인가?
두 줄을 나란히 놓고 보면, 지금 들고 있는 것이 그 기간을 버틸 수 있는 물건인지가 드러납니다. 꺼낼 시점이 3년 안에 있다면, 그 돈은 이름이 무엇이든 성격이 다른 돈입니다. 오래 묻어둘 수 있는 돈과 같은 자리에 두면 안 되는 돈입니다. 그 판단은 상품 설명서에 적혀 있지 않습니다. 우리 각자의 달력에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달력은 남이 대신 봐줄 수가 없습니다. 같은 상품을 들고 있어도 옆자리 사람과 남은 기간이 다르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것을 들고 있는 겁니다.
다음에 누군가 "길게 보면 오른다"고 말하면, 그 '길게'가 몇 년인지 한 번만 되물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질문 하나가 2008년의 5년 5개월을 내 달력 위에 올려놓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계좌에 든 돈을 언제 꺼낼 계획이신가요? 그 시점을 댓글에 적어 주시면, 그 기간에 맞는 이야기를 다음 편에서 준비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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