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미상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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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 출신 엔지니어 양몽송(Liang Mong-Song)의 이직 경로(TSMC→삼성→SMIC)를 추적한 영상. 삼성 이직 후 TSMC와의 영업비밀 소송(1심 패소, 2심 승소, 삼성 근무 금지 판결)을 소개하고, SMIC에서 28→14→7나노 공정 진전에 기여한 역할과 내부 갈등을 설명. 결론적으로 SMIC 이탈은 국내 파운드리(DB하이텍, SK하이닉스 등)에 긍정적이라는 관측을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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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경쟁이 뜨겁습니다. 핀펫 공정이다, GAA 공정이다 하면서 3나노 기술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요. 하지만 한 단계 더 들어가 보면 삼성전자와 TSMC의 격차는 사실 전방위적입니다. 삼성이 웬만큼 노력해서는 파운드리 분야만큼은 TSMC와의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고들 하죠. 반면 10년 전에는 삼성의 파운드리 사업이 TSMC의 기세를 누르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당시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의 핵심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한때 TSMC의 최고 기술 브레인으로 꼽혔던 중국인이었습니다. TSMC의 핵심 인력을 삼성전자가 스카우트한 보기 드문 사례였습니다.
반전은 삼성전자와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자 이 사람이 이번에는 중국의 SMIC로 이직하면서 시작됩니다. 한국, 대만, 중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에서 모두 근무한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인물입니다. 대만에서는 이 사람을 반도체 분야의 여포, 반역자, 현대판 삼성간첩이라고 비판하고, 요즘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쓰는 "삼성간첩"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죠. 하지만 중국에서는 반도체의 천재, 중국 반도체 산업의 구세주라고 부릅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삼성 LSI 사업부 부사장으로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1950년 대만에서 태어난 양몽쑹(楊夢松)은 버클리 대학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AMD에서 근무했습니다.
가족 관계를 보면 양 씨의 부인은 한국인인데, 그 경력도 눈길을 끕니다. 반도체를 전공했던 이 씨는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다 반도체 엔지니어가 된 한국 여성입니다. 1992년 양 대표는 대만으로 돌아와 TSMC의 R&D 부문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2003년에는 TSMC가 130나노 구리 공정 기술로 IBM을 넘어서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지금까지도 핀펫 공정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꼽힙니다. TSMC에서 500개가 넘는 특허를 출원했을 정도로 기술 개발의 핵심 역할을 했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2009년 2월 양몽쑹 대표는 TSMC를 사직하고 중국 칭화대 전기전자연구소 교수로 활동하다, 반년 만에 삼성 재단 산하의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자리를 옮깁니다. 15년 넘게 TSMC의 핵심으로 일했던 인물이 최대 경쟁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것은 경제적 인센티브보다 훨씬 큰 동기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부인이 한국인이라는 요인도 컸겠지만, 한국에 대한 반감이 큰 대만 사회 분위기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양 대표가 떠난 이유에 대해 TSMC 동료들과 임원들의 생각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늘 자신이 회사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고 자랑했고, 승진에 대한 야망이 컸으며, 팀플레이가 어려웠다는 평가입니다. 솔직하고 회사에 대한 충성심은 크지만 말이 너무 많다는 것이죠. 경쟁사로 이직한 사람을 좋게 평가할 수는 없지만, 삼성에서 다시 중국의 SMIC로 옮긴 것을 보면 당시 TSMC 동료들의 주장을 단순한 배신감에서 나온 비난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TSMC를 떠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양몽쑹 대표와 수년간 치열한 내부 경쟁을 벌였던 동료 쇼우룬(사장) 최고기술책임자 때문입니다. 나이도 비슷하고 거의 같은 속도로 승진해 온 인물인데, 2006년 TSMC를 퇴직하면서 후계자로 인텔 출신 인물을 추천했고, 또 쇼우룬을 차기 리더로 적극 지원하자 이에 대한 반감으로 사직했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 장중머우 회장은 쇼우룬을 추천한 이유는 전문성 때문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쇼우룬은 시야가 넓고 전반적인 업무 능력이 출중한 반면, 양몽쑹은 치밀하고 창의적인 능력은 좋지만 시야가 좁고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본 것이죠.
애플의 아이폰용 AP와 칩 생산 계획을 따낸 삼성은 애플 워치 물량까지 넘겨받았고, 이 여파로 TSMC 주가는 폭락하며 1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습니다. 양몽쑹이 삼성에서 성과를 내자 TSMC는 그가 영업비밀을 유출했다는 혐의로 대만 법원에 소송을 제기합니다. TSMC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삼성전자의 연간 파운드리 매출이 4억 달러 미만이었다가, 삼성이 애플 A 시리즈 프로세서 생산을 시작한 2010년 이후 파운드리 매출이 12억 달러로 늘어난 것이 양몽쑹 대표가 영업비밀을 유출했기 때문이라고 본 겁니다.
TSMC는 삼성의 기술이 IBM의 영향을 받아 제품 설계와 구조가 IBM과 유사했고, TSMC와는 매우 달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양몽쑹이 삼성에서 일하기 시작한 2009년 이후 삼성이 내놓은 45, 32, 28나노 제품의 특징과 구조를 보면 TSMC와의 차이가 확연히 줄어들어 두 회사 제품이 극도로 유사해졌다는 반박이 나왔습니다. 외부 전문가들이 전자현미경으로 IBM, TSMC, 삼성에서 생산한 반도체의 주요 구조 재료를 비교한 결과, 삼성 제품은 TSMC와 매우 유사해 구조만으로는 차이를 느낄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TSMC는 이를 근거로 양몽쑹 대표가 자사 기술을 유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대만 지식재산법원 1심에서는 TSMC가 패소합니다.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양몽쑹 대표의 노동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TSMC의 요청이 기각됐습니다. TSMC는 항소했고, 2014년 5월 대만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성균관대학교가 삼성과 특별한 관계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TSMC가 제출한 자료를 보면, 양 대표가 객원 교수로 강의한 시간에 비해 한국에 더 많이 체류했고, 실제로는 그 시간에 삼성에서 근무한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양 대표의 성균관대 교수 신분은 실체가 없고, 실제로 강의한 곳은 삼성전자 공장 안에 위치한 삼성의 기업 교육기관 SSIT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결국 SSIT를 일반 대학으로 볼 것인가, 삼성의 산하 기관으로 볼 것인가가 최대 쟁점이었고, 법원은 SSIT를 삼성의 산하 기관으로 판단했습니다. 2심 판결에 불복한 양몽쑹 측은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기각됐고, 2015년 12월 31일까지 삼성전자에서 일할 수 없다는 판결이 확정됩니다. 이는 기업 고위 간부가 경쟁 금지 기간이 끝난 뒤에도 경쟁사에 입사할 수 없다는, 법리상 다소 논란이 될 만한 대만 역사상 최초의 판결로 기록됐습니다.
재판이 끝나고 공백기를 가진 양몽쑹 대표는 삼성과의 계약 기간이 끝난 뒤 SMIC에 스카우트됩니다. 2017년 10월 16일 SMIC는 임시 이사회를 열어 양몽쑹을 공동 CEO 겸 R&D 이사로, 자화이준(赵海军)을 공동 CEO로 임명했고, 당일 SMIC 주가는 20% 넘게 올랐습니다. 당시 중국 언론은 "중국 반도체 산업의 획기적 사건이며, 양몽쑹 시대에 진입했다"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자리를 잡은 양몽쑹은 삼성전자에서 함께 이끌던 엔지니어 팀을 SMIC로 합류시켰고, TSMC 시절 함께 일했던 주메이청을 최고기술책임자로 영입하는 등 200여 명 이상의 반도체 전문가로 팀을 꾸렸습니다. 경업 금지 조항 때문에 구성원들을 곧바로 제품 개발에 투입할 수는 없었고, 28나노 공정의 수율 향상 같은 업무부터 참여시켰습니다.
SMIC 이적 1년 만에 양몽쑹은 28나노 공정의 수율을 크게 개선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중국 내 경쟁사 UMC가 2018년에 98%의 수율을 달성했고, TSMC 난징 공장도 5월부터 대량 생산을 시작하면서 SMIC의 28나노 제품은 경쟁 우위를 잃게 됩니다. 이에 양몽쑹은 28나노 공정 개발이 너무 늦었고 SMIC가 기회를 놓쳤다고 판단해, 22나노 공정 개발을 중단하고 14나노 공정으로 건너뛰자고 주장합니다. SMIC 내부에서는 기술적 문제를 들어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양몽쑹은 밀어붙였고 14나노 공정 수율을 3%에서 95% 이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양몽쑹이 14나노 양산에 성공하자 미국은 14나노 노광장비에 대한 대중국 수출 금지 조치를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SMIC는 네덜란드 ASML에 노광기를 발 빠르게 주문했고, 2020년 3월 장비를 인도받습니다. 이후 SMIC가 2년 만에 14나노에서 7나노로 도약할 수 있었던 데에도 양몽쑹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러나 TSMC에서처럼 SMIC에서도 양몽쑹은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5G 휴대폰 수요가 늘면서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용 전력관리칩 재고가 부족해지자, 공동 CEO 자화이쥔은 전력관리칩 생산 확대를 제안했지만 양몽쑹은 이에 반대했습니다. 기술력이 떨어지는 제품 생산보다 신기술 개발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신기술 개발을 중시하는 이 주장은 중국 정부의 반도체 발전 정책과 부합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받았지만, 한편으로 전력관리칩 생산이 지연되면서 주주들의 불만이 커졌고, 자화이쥔과의 불화도 외부에 알려지게 됩니다.
SMIC의 내부 갈등이 결정적으로 터진 것은 2020년 12월 장수위안(蒋尚义)이 SMIC 부회장으로 복귀하면서입니다. 장 부회장은 과거 양몽쑹이 삼성으로 이직하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던 인물이었고, 그의 복귀에 불만을 품은 양몽쑹은 이사회에 사임서를 제출하고 이를 통과시킵니다. 다만 SMIC는 양몽쑹이 여전히 공동 CEO로 재직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양몽쑹을 "중국 반도체 산업의 마법사"라고 불렀습니다. 한국, 대만, 중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에서 핵심 역할을 하며 10년 넘게 이만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는 평가입니다. 명목상으로는 SMIC 공동 CEO이지만 이미 사임을 통보한 상태여서, 그의 다음 행보가 어떨지도 관심사입니다.
양몽쑹의 이탈로 SMIC 파운드리 사업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중국 시장을 공략 중인 DB하이텍이나 SK하이닉스 시스템IC 등 국내 파운드리 업체들에게는 긍정적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파운드리에서 3나노 첨단 제품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미래의 먹거리이고 현재의 주력은 14나노 이하 제품들이기 때문입니다. SMIC의 지난 2분기 매출을 보면, 지역별로는 중국 비중이 66.1%, 공장별로는 90나노 이상 라인 비중이 42.7%에 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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