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영교수 · 한국인
요약 보기
이 영상은 빈센트 반 고흐를 죽음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해설하는 서양미술사 강의이다. 결론: 증권·투자 관련 예측이 없는 미술사 강의로, 종목·지수에 대한 가격 방향 발언은 없다. 생애와 가족: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형이 같은 날 사산된 뒤 1년 뒤 태어나 죽은 형의 이름과 정체성을 물려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동생 테오와 1대1에 가까운 관계였으며 테오가 평생 생활비를 대주었다. 직업과 종교: 미술품 거래상으로 일하다 해고된 뒤 전도사 등 종교 활동에 빠졌고, 신학 공부의 어려움과 과격한 행동으로 쫓겨났다. 이후 그림을 통해 민중을 위로하겠다고 결심했다. 화풍 형성: 파리에서 인상주의·신인상주의 영향을 받았고, 아를 시기에 강렬한 색채의 독자적 스타일이 정립되었다. 이후 생레미 정신병원과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마지막 3년간 작품 대부분을 그렸다. 작품·사진 논쟁: 자화상과 사진 진위 논쟁(캐나다 주소 기록 등)을 소개하며 실제 얼굴 모습은 확실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다음 회차 예고: 고흐가 왜 죽었는지를 다음 시간에 다룰 예정이다.
다듬은 글
자 안녕하십니까 어디 먼저 계십니다. 빈센트 방고 그 문제 작가 방고를 한번 심심도 있게 달아보시겠어. 그니까 이게 지금 제가 좀 더 심도 있게 말씀드리는 게예요. 그 일반적으로 이게 시중에서들을 수 있거나 블로그 뭐 찾아서 바로 뜨는 거 가지고는 이게 안 되고 그거를 넘어서서죠. 남들이 할 수 없는 보다 신층적인 그다음에 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그죠. 그런 측면에서 그 조금 더이 제가 말씀을 많이 드리고 있습니다. 그 얘기 자꾸 길어지는데요. 근데 이제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게 일반적인 그 좀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이런 적학적 어떤 논리적인 베이스 없이 이등을 해.
이것도 지금 이거 보시면 아이고이 이렇게 쓰면 안 되는데 연구도 제대로 안 돼 있고 지금 보면 이거 어떻게 이렇게 썼는지 그럴 그런 감이 있습니다. 자 그래서이 반고우는 자 앞에 먼저 간단히 이걸 간단히도 아니지 이또 한번 더 시간 걸릴 텐데요. 정리하시고 들어가 쉬워요. 오히려 오히려 쉽습니다.음 음. 그래서 어 단고 이게 이게 앞부분 생일부터 하면은 이게 너무 재미없고 너무 정신이 없고 어 뒤에 이제 그래서 그래서 그 더 잘 더 잘 알 수가 없고요. 흥미도 떨어지고 근데 오히려 더 본질적인 부분은이 뒷부분에 몰려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반고는 순서를 그죠.
처음부터 하는게 아니라 이제 거꾸로 그죠. 거꾸로이 반국의 죽음부터 근데 사실 그 죽음에 모든게 들어가 있다고 볼 수도 있어요.이 죽음에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이 빈센트판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어떤 예술 관념을 가지고 있느냐 아 이거하고 또 직결되는 겁니다. 직결되는 얘기 정말 중요한 얘기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이제 보시면요. 세잔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은요. 그래서 우리 어쨌든요 순서대로 거꾸러 갈 텐데 뭐 그럴 만한 이유도 있어요. 우리 사실 작품이 더 중요하잖아요. 작품이 그죠. 뭐 인생 삶도 참 중요하겠지만 그래서 앞에 삶의 얘기는 너무 길고 실제로 작품이 광고의 그 주요 작품들은 사실 우리가 아는 작품들 그죠?
그 뭐 예를 들면 뭐 감자 먹는 사람들 그런 거 한두 개 빼고는 다 이때 그려진 거거든요. 마지막 3년 그죠? 마지막 3년 동안에 그려졌습니다. 그래서 아를 그다음에 생네미 정신병원 그죠? 그다음에 오베르 시주얼에서 중에 자살한 그고요 3년 동안 집중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그 뭐 거꾸로 가는게 더 맞아요. 그래서요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는 게예요. 그래서이 앞부분 이야기는음 근데 앞부분 이야기도 물론 하다 보면 뭐 끝도 없어요. 끝도 없는데 그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고요. 우리 미약적 관점에서 그렇습니다. 어떻게 그래도 앞부분 간단히 보시면 물론 요건 나중에 또 또 관련된 아주 중요한 부분들은 또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게 될 텐데요.
나 지금 거꾸로 가면서 근데 먼저 지난번에 한번 말씀드렸지만요. 이게 반고가이 태어나는 거부터 이게 이게 어떤 그 숙명 운명적인 거 했다라는 이런 또 해석이 또 아주 강하게 또 있습니다. 그게 요거든요. 태어난게에 53년 3월 31일 태어났는데 네덜란드요. 네덜란드 약간 약간 뭐 딴 그 시골 정도 그런데 요게 태어난 날짜가 1년 전에 딱고 1년 전 52년이죠. 52년 3월 30일에 같은 이름을 가진 형. 그죠? 형이 사사나로 태어난 날짜와 똑같은 날짜 태어났다는 거예요. 그죠? 1년 전에 그 자기 그 부진이 장남인데 여기 장남이라면 아 육남의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그 사실 자기가 태어나기 1년 전에 이제 그죠?
자기 엄마가 첫 아이를 낳았는데 낳기 전에 애 이름까지 지었고 그런데 얘가 이제 태어났을 때 이제 바로 사죠. 죽어서 태어났다는 거예요. 어 그래서 그 이름을 그대로 그 그 1년 뒤에 태어나는이 빈센드반 고한테 그대로 준 겁니다.음 그런데 [목을 가다듬음] 거기서 그 이름만 주었다는게 아니라 그랬잖아 얘기때 그죠.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게 이름만 준게 아니라이이 엄마가 어이 엄마가 아이 그 1년 전에이 못 태어난 그 영혼 그죠? 죽은 애가 영혼 영혼을 믿는 거니까 그죠? 영혼이 이제 그 영혼이 그대로 여기 온 거다. 새로 1년 뒤에 그 날에 찾아와서 다시 [콧방귀] 태어난거다 하고 해서 그 죽은 애의 그 뭐 화신 또는 그죠.
그 죽은 애가 아쉽게 죽고 걔가 다시 태어난 거를 여겼어요. 어릴 때부터이 태어날 때부터 하 그거부터 이제 상당히 그 센세드 방고의 그 자정체성과이 그 그런 거 사회적 관계 내에서 커다한 문제가 생겼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육남이지만 다른 명하고는 상당히 다 다르게 컸어요. 집안 내에서도 그렇고 벌써 그요 때문에 사 운명적인 그래서 벌써 이것부터 이게 좀 심상잖아요. 이제 대중들이 보기엔 한마디로 좋은 떡밥이긴 하죠. 이게 이렇게 많은 떡밥이긴 합니다. 그죠? 이거 가지고 어 실제로 그 큰 정신적인 영향을 주긴 합니다.이 사건이 그래서 그건 나중에 또 말씀드리고요.
그다음에 정말 중요한 사람을 얘기 안 할 수가 없는데 그것부터 한 4년 뒤에 죠. 그 사이에 그죠. 그 자기 여동생 하나 낳고 그다음에 남동생 응. 그다음에 여동생 여동생 남동생 이렇게 태어나거든요. 음. 음. 그래서 그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죠.이 동생 태오반고호 그죠? 반고호. 근데 이게 네덜란드는 우리가 왜 그이 반이 왜 그 그죠?이 폰 뭐 영어로는 오브 그죠? 프랑스어로는 드 해 가지고 그죠. 이거를 이제 안 붙이잖아요. 그게 이제 원래 어느 지역의 누구란 뜻이니까요. 그죠? 어느 지역이만 그 뒤에 나오는게 지역. 그니까 그 지역 땅을 가진 귀족인 거죠.
보통. 그죠? 그죠? 그 폰이나 뭐 이렇게 또는 뭐 드가 붙으면은 그 귀족인 거예요. 그게 없으면은 귀족이 아닌 거고 그죠. 그죠? 그 땅을 가지고 있다는 거 어느 땅의 누구라는 거니까. 그래서 왜 그이 현대화가 되면서 그 평민들이나 그 하층민들이 막지 멋들을 막 뒤에다 드을 붙였다는 거 아니에요. 그죠? 자기가 그 귀족 출신이라는 거를 이렇게 그 뻥치기 위해서 우리나라도 똑같잖아요. 족보 만들어서 족보 사고 만들고 이래 가지고 뭐 양반 아닌 사람이 없는 것처럼 그죠. 출식 가문이 그런데 요게 요게 그 여기서는 아니라 네덜란드는 이게 어쨌든 아마 거기서 출발을 했을 텐데 그냥 이거 자체가 성이래요.
성고가 그니까 우리가 우리는 그냥 고라고 많이 부르잖아요. 그죠? 그니까 고라고 부르면 안 된다는 거. 원칙상 그 반고호라고 다 붙여서 불러야 되. 이게 이게 그냥 성이래요. 성고호가 그 성 그냥 그냥 성이고 어 그러니까 고라고 부르면 이게 이게 안 어쨌든 안 된다는 겁니다. 그죠? 우리 물론 이제 고라고 많이 부르잖아요. 많이 불렀잖아요. 그죠? 그 그런 식으로 해서 요거 뛰고 냥냥 고후 고후 이렇게 불렀는데 원칙성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네덜란스냥 반고 자체가 성이고 그다음에이 비센트가 이제 이름인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요 성의 반고가 있는 거고 그죠?이 이 태오가 이름인 거고 형은 이제 젠트가 이름인 거고 그래서 어쨌든이 자기 동생 남동생 태오반고가 태어났는데 이게 너무너무나 중요해요.이 태오반고가 너무너무나 중요한게 뭐 결론은 간단해요.이 태오반고가이 없었으면은 없었으면은 당연히 빈센트도 없었다.
그죠? 오늘날에 빈센트도 없었고 뭐 없었으면 당연히 그 뒤에 뭐 뭐 그 뭡니까? 그이 정신병이나 자살이나 이런 것도 없었다는 거예요.이 태오가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그래서 거의 둘이 그죠 1과 2분 1 정도로 봐야 돼요. 옛날에 그런 노래도 있었는데 1과 1 그죠? 어 1과 1 정도로 봐야 됩니다. 1과 1음 자 그래서요. 어 그래서요 이제 두 명의 그 탄생 나머지 6남배도 있었다는 겁니다. 6남배도 있었고 나중에 문제 좀 얘기하도록 하시고요. 그래서 뭐 정말 간단한 생애를 보시면요. 처음에는 당연히 얘들 잘하다 보면은 그죠 28 청춘 16세 17세 18세 되면은 다 직업을 갔잖아요.
그때는 10대 후반에는 그죠 오늘날랑 다르죠. 그죠? 그때는 그냥 대충음 그까 우리나이로 중학교 끝나면은 뭐 지금도 그렇잖아요. 지금도 왜 그 가끔 우리나라에서 예전에 그 뭡니까? 그 그 이제 그 학교 진학할 때 우리나라 그 일반 근대화 시절에 학교 진학할 때 야 어떻게 다 그 고등학교 그를 임문 계열 고등학교 쉽게 말하면 대학을 갈 목적이 고등학교를 가느냐 실업계도 가야 된다. 왜 그죠? 그죠? 실업계는 잘 안 가고 그죠? 뭐 공고 뭐 상고 뭐 여상 예전에는 그죠? 그런데 잘 그런 데는 사람들이 그 그죠 낮게 취급하고 대부분 다 어떻게 7 80% 이상이다 응 대학갈 목적에 고등학교를 가는 거 이건 잘못된 거다라는 그런 식 얘기가 있었는데요.
그러면서 꼭 예를 드는게 야 독일이나 이런데 봐라. 거기는 그냥 중학교 정도 그 중학교 졸업한다는게 16세잖아요. 그죠? 졸업하면은 대부분 다 실업계 고등학교나 그죠? 기술이나 이런 거를 배우고 이렇게 간다. 대학 갈 사람들은 정말 그 2, 30%밖에 안 된다. 그 진학 자체를 그렇게 얘기하는 경우가 예전에 많이 있었습니다. 음. 그러니까 근데 그게 그게 이제 이런 그 전통이라는 거. 쉽게 말해서 거기는 대충 중학교만 마치면은 돈을 벌었다는 거죠. 그죠? 바로 취직을 해서 맞게 맞죠. 나이상으로 그죠. 16세 16대 17세가 되면은 뭐 더 그 대학 갈 더 그 하이 그 스쿨 갈 사람들만 대학가 그 그쪽 코스로 가는 거고 나머지는 다 그냥 직업 전선에 뛰어되는 그래서 마찬가지로이 비센트도 그렇고 동생도 그렇고 다 16세쯤 되면은 일자리를 찾아요.
근데 이제 일자리를 찾는게 당연히 예전에는 어떻게 했습니까? 아는 사람 또는 친척들이 와서 야 여기 와서 일해라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보통 그죠? 그러니까 이것도 마찬가지로 그이 빈센트 가문이 나중에 좀 말씀드리겠지만 할아버지 때부터 그 미술품을 거래했어요. 왜냐면 네덜란드가 미술품 거래가 엄청 그 그죠. 네덜란드 황금기에서 언제부터니까 램브란트 그 시대부터 해서 거의 뭐 한음 최초로 그 그런 그 일종의 투기적인 그죠 투기 또는 투자적인 목적의 유지품 거래가 가장 활발했던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네덜란드가 그 그 빈센트의 할아버지 때 또는 사실 그 윗부터이 미술품 거래를 하는 사람들이었고음 그래서 그 감 가문의 그 일종에 그 가업 비슷하게 내려온 거죠.
그래서 어 핀센트의 삼촌이 근데이 이쪽은 또 그 이름을 계속 물려서 쓰더라고요. 그렇잖아요. 그죠? 물려서. 그러니까 물론 이제 우리는 오늘날에는 왜 그 물렸을 때도 구분하잖아요. 뭐 케네디 뭐 주니어 케네디 이렇게 구분을 케네디 뭐 원 뭐투 뭐 구분을 해서 이름도 붙여 주는데 여기는 그 완투쓰 뭐 이런 구분 없이 그냥 그 이름 그냥 갖다 막 쓰더라고요. 그래서이 빈센트 반고우란 이름이이 가문에 무지 많아요. 그 위 올라가면 센트 윈슨트 반고우라는 그 그냥 그 다 풀 네임이 똑같은게 너무나 많고 실제로이 빈센트 반고이 태오가 태오반고가 아들을 낳을 때도 그 애 이름이 빈센트반 고우였어요.
똑같았어요. 철자 안 틀리고이 자기 그 큰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불려 준 거죠. 그러니까 이게 그 어떻게 보면은 후대 역사학사들에서는 골치 아픈 거죠. 이게 누구냐 그죠? 누구냐고 잡은 겁니다. 그러고 이거 역사들 학설뿐만 아니라 자기들끼리도 헷갈렸나 봐요. 자기들끼리. 그러니까 자기들끼리도 이렇게 이게 좀 줄여서 부르는 말이 있는 거죠. 그죠? 그니까 2 3촌은 뭐 센트 3천 이렇게 불렀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죠? 그죠? 빈센트 3천 이러면 아 누구 말하는 거냐라고 또 확인을 해야 되니까 자꾸 여러 명이니까요. 음. 자, 그래서 어쨌든 그래서이 집안에서이 센트 3천 말고도 한 세 명인가요 같은 형들 중에 세 명인가가이 그 미술품 거래하고 연관된 일들을 합니다.
미술품 거래. 음. 자, 그래서이 센터 3천이 운영 설립하고 운영하던 그 구필엔 NC라는 요런 그 [목을 가다듬음] 여기 회사에 입사하죠. 뭐 이거는 뭐 오늘 예전에도 예전에는 오늘 내이나 그죠? 야 그에 나이 됐으면 저한테 보내세요. 제가이 가르치고 이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된 거죠. 마찬가지로 태오도이 센트이 불러 가지고 똑같이 미술품 거래를 배웁니다. 자 그래서 어이 빈센트는 어 그렇게 미술품 거래를 배우고 그래서 이제 지점이 여러 군도 있을 거 아니겠어요? 그죠? 네덜란드 그 헤이그에도 있고 뭐 파리에 이제 본점 네또 런던 한 여섯 개 정도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저런 지점에서 그죠.음 음.
그래서 그 근무하다가 이제 불성실로 그죠. 이제 한마디로 회사 다니기 싫고 뭔가 다른 그죠. 그래서 어쨌든 해고 해고가 됩니다. 그래서 한 25 3세쯤에 해고가 되고 일자리가 없으니까 뭐 이것저것 돌아다니면서 이때는 좀 일했나 봐요. 이게 한편으로는 어떤 이유에서 진짜 그 이유 같은데 이유 유럽 연합이 막 돌아다니면서 아니 네덜란드이 쪽 가서 뭐 영국 가서 일자리도 얻을 수 있고 이렇게 그죠 이게 이때는 뭐 비자나 이런 시스템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은 어쨌든 더 왕내가 자유롭던 거 같아. 이거 보면은 좀 그래요. 더 한편으로 어 더이 왔다 갔다 자유로운데 가서 막 일자리 하고 막 결혼하고 막 그쪽 사람하고 그죠?
막 애 데리고 있죠. 왔다 갔다 하는게 더 자유로웠어요. 오히려 아마 그 장벽은 그 1차 2차 세계대전 지나면서 더 장벽들이 생겼을 거예요. 국경을 잘 넘어갈 수 없게만 한다. 이때는 정말 자유로웠다는 거 사실 저희가 이전까지 봤었어도이 참 자유로웠잖아요. 그죠? 막 이렇게 가서 저쪽 가서 결혼하고 뭐 그 뭐 애가 어디 딴 데로 가고 이러는 거. 음. 그래서 정말 유럽에 영국, 네덜란드, 뭐 벨기에 프랑스 막 5만 대터 돌아다니면서 그렇게 일자리를 찾았는데 그 2일내는 흥미를 잃고 흥미를 점점 이르면서이 종교에 빠져듭니다. 그래서 종교에 빠져드는게요 이미 시작된 거죠.
45년 요요 일 막 할 때부터 이미 종교에 빠져들면서 아무래도 자기 그 부처이 목사니까 목사고 뭐 그러니까 그러다 보니까 이게 야 내가 뭔가 신의 소명을 받은 거 아니냐 이런 식에 이제 그죠 나는 이런 거 안 받고 어 일 세상 일 하는 것보다는 근데 이제 이게 이게 문제가 있어요. 이것도 또 엄청 얘기 할 수가 있는데 이것도 무슨 문제가 있냐면은요. 그 일종의 그 레디컬리즘이라고 볼 수 있어요. 레디컬이란 말이 뭡니까? 레디컬이라는게 레디컬 그죠? 원래 원래 라디컬 그 그 영어 그 영어 루트 그죠 이게 어원이 같잖아요. 라드가 루트 뿌리란 뜻이에요.
뿌리 그죠. 그러니까 그 우리가 근본주의라고 번역하기도 하고요. 그죠? 레디컬리즘을 뭐뭐 이슬람 근본주의 또는 이슬람 뭐 원리주의 또는 뭐 극진주의 이렇게 번역하는데 그 뜻 자체는 뿌리예요. 뿌리. 뿌리 그죠? 뿌리주의 그 원리주의라는 거죠. 그니까 원리의 그거 이제 그 말 고대로 한다는 거예요. 그죠? 이 이슬람 원리라는게 원래 그 알라와 그 당시 그 초기 선도자들의 가르침을 오늘날 환경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적용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왜 그 아프가니스탄의 뭐 탈레 같은 탈레바 같은 경우에는 그러니까 여성들은 나의 교육 안 시키고 이런 거 아니야.
그죠? 그 말 그대로 그죠? 옛날 2년 전 그 1500년 전 말 그대로 레디컬하게 말 그대로 적용시키는 그게 이제 레디컬리즘 아니에요. 근데 이고가 마찬가지로 그 레디컬리즘이에요. 레디컬리즘. 그러니까 자기 그 부친이나 요런 또는 그 뭡니까 뭐 그 가톨릭이나 그런 쪽에 가르침을 받아야 되는게 아니라 자기가 공부해서 자기가 성경을 자기가 번역해요. 자기가 자기가 자기가 네덜란더로 번역해 가지고 네덜란드네덜란드로 네덜란더를 영어로 번역하고 다른 언어로 번역하고 뭐 그러면서 그러니까이 또 그런 것도 있네. 단편들 이게 정말 국제적이라는게 그는 언어를 벌써네 개를 하나 그러면은 그죠.
네덜란드어 벨기에어 그죠 프랑스 영어 이렇게 어 그구 다 꽤 상당히 잘했어요. 다 그래서 그런 교사를 한 겁니다. 그래서 프랑스 교사하고 어쨌든 그래서 그 자기가 직접 번역하면서 자기는 그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겠다. 레디컬이지만 그죠? 예수가 그 성경에서 했던 말을 그대로 하겠다라는 그런 그런 레디컬적인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어 이렇게 신학 공부를 하게 되는데 또 신학 공부 실제로 하면 그거 다르잖아요. 자기 생각하고 그죠? 자기 생각하고 다르니까 안 맞는 거예요. 그다음에 워낙 어려운 겁니다. 사실 신학 공부가 이게 쉬운게 아니죠.
신학 공부가 이게 그 원래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하는 거 아니에요. 예전에는 그죠? 별게 많잖아요. 철학도 해야 되고 또 그걸 떠나서 철학 또 기초 소양 그다음에 그 라틴어 그죠 그리스도 이런 거 다 해야 되거든요. 그죠? 좀 더 나가면 히브리어까지 하고 또 수학도 그때 가르쳤고 그래서 그 공부가 갑자기 많이 해야 되니까 얘가 못 견디는 거 자기 그냥 신앙만 있으면은 하나님에 대한 그 신앙과 이웃에 대한 사랑 이것만 있으면 된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게 뭐 이제 배울게 많고 이거 공부 한 적도 이거 그런게 없으니까이 못 견디는 거야.
공부가 너무 어렵다 이래요. 얘가 그러면서 이제 그럼 좀 거기서 멀어지는 거지. 그래서 결국에는이 목사 시험이 떨어지고 그죠.이 그 신학대학 신학 대학에 정식 신학대학에 들어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이제 그런 그 사설 뭐 그런 그 교류 배우는데 비슷한 데서 평신도 뭐 저 그 설교사도 하다가 그러다가 이런 전도사 그죠? 전도자 탄광전 등에서 하다가 이제 결국에 이제 쫓겨납니다. 쫓겨나는게 그게 그것도 마찬가지 그 그것도 똑같아요. 그것도 전도사가 가지고 그이 상고 어떻게 가서 그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대로 그대로 그대로라는게 뭡니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다 주고 그래서 그거 아니에요. 그죠? 어 뭐 그런 식으로 뭐 하니까 오히려 사람들이 야 우리 전도사님 미쳤나 봐. 맛이 갔나 봐. 유부 등등하고 또이 보낸 데서도 이게 평이 안 좋고 막 돌발적인 행동을 하고 어쩌고 하니까 결국 전도사들 이제 그다 해보고 그 못 하게 됩니다. 음. 그래서 빈센트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안 나오지만요. 빈센트 반고가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였어요. 공산주의자 좀 더 민중주의적인 그 사상 자체로는 그래서 그이 농민 농민이나 민중 그죠? 민중들의 어떤 그 소박한 사 그러니까이 공산주의도 좀 낭만적 공산주의죠.
뭐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런 거에 특별히 빠진 건 아니지. 이거 뭐 저팔게도 많지 않을 거지. 어쨌든 그때 튼 이때가 칼 마르크스가 1867년에 자본론을 쓰던 때 아니겠습니까? 1867년 그죠? 요런게 이제 그 자본론이 쓴 그 사회 현실에 들어맞는 거예요. 탄광천에서이 정말 노동자들이 그죠? 탄거로 마시고 노동하고 어 죽으면은 그냥 버려지는 거고 어 그런 식의 그 시대였기 때문에 트반고가 이렇게 같이 생활을 하면서 그 사회주의적인 성향이 성향이 강하게 가지게 됩니다. 사회주의적인 성향 그래서 특히 민중주의적인 성향을 자 그래서 어쨌든 뭐 그 정도 봐 얘기 길어지니까 이거 그 정도로 그래서 앞얘기도 할게 많아요.
이제 사실 예수라고 상관이 없 큰 상관은 없지만요. 자 그래서 크게 나올 수 있겠습니다. 태어나서 어 이제 다 교육 어느 정도 받은 다음에 일자리를 했는데 특히 일자리 중 일자리에서 중요한 거는 그 미술품 거래상이 거기가 저도 자기 직업이 되는 거죠. 왜냐면 이때 그래도 이게 공부한다고 사실 이거 공부를 많이 되잖아요. 그이 작품 저 작품 다 봐야 되고 그죠? 이게 진짜냐 가짜냐 또 어떤 작품이 더 뛰어나냐 뭐가 유행이냐 이런 거를 다 알아야 되기 때문에 뭐 계속 그 [콧방귀] 미술관 다니고 이러면서 공부도 하고 배우고 이랬던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그래도 나름 그죠. 나중에 미술할 때 엄청난 뭐 큰 자산이 된 거죠. 사실은 그죠? 음. 자신이 그 직접 그림을 그릴 때요. 자, 그래서 그게 중요하고 그다음에 한편으로는 요거 그죠? 한편으로는 그 종교에 아주 깊게 심취하던 뭐 그런 시기가 있었습니다. 근데 요것도 상당히 중요해요. 그래서 사실은 그 뭔가 나다 타인들한테 희생하는 삶을 살겠다라는게 한평성가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게 또 이제 또 중요한 얘기가 되겠습니다. 자, 그래서 일단 그 정도 얘기를 하시겠고요. 자, 그래서 여기서 결국 그이 종교 활동을 더 이상 그 하기가 어려워지게 되면서 자기가 무엇을 발견되냐면은 그 그림을 통해서 사람들한테 봉사하겠다.
이런 생각 이게 그런 시작되 시작 자체는 시작 자체는 자기가 그 위대한 화가가 되겠다기 된다는 것도 있지만은요.이 그림을 통해서 그죠. 어 세상을 좀 그 좋게 그죠. 특히이 가난하고이 민중들의 삶을 그죠. 얼루 만지고 사실 그게 제일 중요해요. 민중들이 살아 어 만진다. 그런 식 그거를 그림을 두면서 할하는 그런 작가가 되겠다라고 이제 그렇게 결심을 합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작가가 되기로 결심을 한 후에 근데 이제 이게 마땅치 않죠. 이게 마땅치 않게 뭐냐면은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잖아요. 어릴 때부터 그죠? 어 그래서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려고 시도를 했지만 계속 그 트러블이 되는 거예요.
이렇게 그 누구의 소개로 어떤 화가를 만나기도 하고 그죠. 어 이런 화가 저런 화가 만나서 이것저것 옮겨 다니면서 자기 계속 습작을 하면서 배우지만 결국에는 그 어느 하나를 제대로 배우지 못 정착하지 못하고 이렇게 거의 뭐 떠돌이죠. 그래서 집에 왔다가 또 집 나갔다가 또 왔다가 또 싸우고 나가고 뭐 계속 이런 식의 뭐 떠돌이 생활을 합니다. 그래서이 얘기도 뭐 정말 함께 많죠. 그래서 그 결심하고 한 그죠 5, 6년 거의 뭐 6년 정도 초창기 숙련기 모색길를 보냅니다. 그러다가 이제 결국 안 되겠다 해 가지고 33세에 늦은 나이지만은 뭔가 한번 제대로 배워 볼까 해서 그 네덜란드의 그 아 벨기 벨기 벨기 그죠?
벨기의 애골드 보자르 안트베르페는 거기에 일단 그 입학을 합니다.이 좀 정식으로 좀 배워 보려고요. 어 그러다가 그것도 이제 금방 때려치고 파리로 옮겨오는 거죠. 그죠? 근데 어쨌든 정신을 뭔가 배워야 되겠다. 그런데 하다 보니까 야 결국 그 당시 문화의 중심은 파리 아니에요. 그죠? 어 그래서 이제 파리로 오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마침 이때 그 파리에 자기 동생 그 태오가 파리 그 지점에서 본점에서 본점이죠. 본점에서 그 뮤출품 거래 상을 하고 있었어요. 음. 그래서 어 그래서 이제 그 파리로 오게 되는 겁니다. 음. 그런데 이제 그게 이제 왜 그 거기서 이제 뭐가 될 정도로 중요하냐?
여기서부터가 중요해. 여기서부터. 여기서부터 뭐가 중요하냐? 요게 본격적인 화가 되기를 결심한 후에 들어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그러면 뭘 먹고 사느냐는 문제잖아요.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이 무엇을 먹고 사느냐? 아니 그림을이 뭐 이거 진짜 말 그대로 아카데미 나온 것도 아니고 초자에 아카데미라도 나왔으면 그래도 남들 초상화라서 싸그래 초상하도 그려주고 이렇게 예 최소한의 풀치를 한많이 할 텐데 이거는 그것도 안 되는 아예 그죠 아예 그 안 되는 그런 상태 아니에요. 그죠? 뭐 게다가 성격은 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고 이러니까 뭘 먹고 사느냐 그게 제일 중요한 문제 사실은 사실 그게 제일 중요한 문제라고 그 볼 수 있는데 이제까지 그 반구의서이 이런 서술들이나 전기들은 그걸 너무 무시했어요.
잘 안 썼고 그거를 사실 제 그게 제일 중요한데 그렇지 합니까요? 그죠? 응.서도 뭐 서울대 애들 맨날 그 음대 애들 미대 애들데 맨날 한 얘기가 왜 뭐 먹고 사냐 그렇잖아요 이게이 더 막막하잖아 자기들이 한평 한게 이거밖에 없는데 야 이거 가지고 뭐 뭘 먹고 자냐 그렇잖아요 그죠 이게 문제인 거죠 뭐 어 여튼 그렇습니다. 사실 사실 그렇잖아요. 이게 그 이거 뭘 뭘 어떻게 먹고 사요? 여기서 바로 아까 말씀드린 그 태오이 태오가 자기 동생 아니에 태오는 그래도 나름 이렇게 태오도 똑같은 길을 갑니다. 똑같이 태오도 16살 되던 이제 센터촌이 소개로 헤이그 지점에서부터 일을 시작해 가지고 일을 배워서 이제 파리까지 와 가지고 나름 이제 태오는 성실하게 그 어 아트 딜러 미술품 딜러를 합니다.
그런데 그 동생이이 돈을 대주는 거예요. 생활비를 이때부터 이때부터 죽을 때까지 이게 결정적이에요. 이게 이게 이게 결정적입니다. 이게 이게 이게 딱 그 상황을 봤을 때 이게 결정적인데이 믿이 그지 안 나와요. 그런 게다.이 그 어떻게 보면 제가 절이 제일 중요한 거 같은데 그러니까 이게 태오가 태오가 계속 한 매달 매달 돈을 보내 주는 거 매달 매달 생활비를 대지 않았으면은 아 어떻게 그러면 그렇겠어요? 그럼 저 살면서 딱 하나 팔았는데 딱 하나 150프랑 벗고 하나 딱 300프랑이가 벗고 딱 딱 하나 팔았는데 어떻게 먹고 살았겠어요?이 동생이 동생은 정규직 정규직이니까요.
그죠? 아트 딜러 정규직으로 계속 어고 그때는 그래도 나름 미술품 거래 시장이 막 확장되는 때 아니었습니까? 그죠? 어 그래서 그 월급 받아서 동모 생님도 계속 그 어 총각이니까 그죠? 자기 형한테 계속 돈을 보내 준 겁니다. 보내주고 물론 대신 그건 있죠. 어, 형이 계속 그림 그리다가 이제 그 그림은 그림을 자기한테 이제 보내라. 그죠? 그래서 뭐가 자기가 이제 팔 수 있으면은 그죠. 어, 되는 거니까요. 그죠? 자, 어쨌든 그래서 그걸 그거를 바탕에 깔아야 됩니다.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경제적인 그 배경은 그 태오가 다 전적으로 떠앉고 부담했다.
동생이. 그러니까 우리가 세잔이 그때 말씀드 세잔이 그렇게 지금 멋대로 혼자 막 그림 그릴 수 있잖 이유 딱 하나잖아요. 그죠? 아버지가 그냥 잔뜩 돈을 불려주는 바람에 남 눈치 아무것도 안 보고 그냥 쫙 그냥 그림 그죠 무한정 그릴 수 있었던 것처럼 그래서 독적인 어쨌든 스타일 하나가 이뤄낸 것처럼 그런 사람이 없으면 사실 힘들어요. 겁니다. 그죠? 음. 자, 그래서 그 이제 태오가 이때부터 그 돈을 대준 겁니다. 생활비를. 생활비를 대주고. 음. 그래서 둘이 1과 1이라는 거예요. 1과 1 태오. 태오와이 반 빈센트 반거는 자 그러다가 자기가 보다 넓은 그죠이 문학 [목을 가다듬음] 예술 미술의 중심인 파리에 가서 물론 이제 그 빈센트도 이런 얘기를 들었죠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이미 나온지 10년도 넘었고 막 새로운 화풍들이 막 나오면서 인기를 끌고 뭐 하니 그런 소문을 접하였고 그래서 아 파리에 가서 보다 더 이런 거를 또 접해 봐야 되겠다라고 해서 다시 그 이제 옛날 파이머 할 때가 아니에 다시 와서 이런 인상을 섭합니다.
그래서 그 조로주 쉐라 같은 걸 보면서 엄청 그 충격을 받고 격찬을 하고요. 야 이게 [목을 가다듬음] 쉐라가 제일 뛰어나다. 우리 쉐라할 때 했었죠. 그죠? 어 쉐라가 정말 뛰어나다. 그다음에 모네 뭐 이런 모네나 마네 이런 그림들도 다 보고 느가 그림들도 보고 그런 스타일을 처음 접하고 거기 영향을 크게 받은 거죠. 영향을 크게 받고 또 여러 작가들 중에 나옵니다. 여러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영향을 봤습니다. 그래서 파리 시기에 태오와 둘이 함께 살면서 둘이 같이 살면서 한 그죠음 6 7 거의 한 2년쯤 넘게 그니까 거의 벌써 나이가 35까지 가는 거예요.
이제 35로 넘어가 버린 거죠. 그죠? 그리고 실제 작품은 그 뒤에 나오는 겁니다. 그죠? 거의 파리시기를 지나면서 어 그니까 이때까지는 미쳤다는 말은 듣지 않았어요. 좀 야 조금 그죠 사회 잘 어울리지 못하고 근데 자직 그런 상황 맞잖아요. 자직 제대로 된 직장을 안 가지고 있으면 아무래도 자기 버리도 없고 그러면은 사회하고 사람들하고 살 그 사교적이지는 못하잖아요. 그 정도였는데 이제 드디어요 아르로 넘어가면서 나는 정말이 나만의 어떤 예술 이런서 벗어나서 하고 싶다라고 하면서 아로 이제 내려갑니다. 그니까 이것도 다 태어가 돈대 준 거예요.
태어가 다 돈을대 줘 가지고음 그래서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거 난프랑스 그죠? 난 프랑스 아를 가서 이월이죠. 가서 한 1년 조금 넘게죠. 그죠? 어 1년 좀 넘게 여기서 작업을 하는데 근데 이제 아시다시피 그죠? 고객을 불러 가지고 그죠? 같이 우리 그 미술가 유토피아 공동체를 만들어 보자 했는데 이제 그 이제 거기서 발짝 일어나고 뭐 귀를 자르고 난리나지고 나중에다 하시고요. 그래서이 드디어 우리가 정신병이라고 하는 정신 지방 요게 오는 겁니다.요 알을 시기에. 음. 그런데 어쨌든 이때부터 강렬한 색채를 통한 어떤 감정의 표현이다라는 요요 바로이 특유의 스타일.
요게 이제 드디어 정립이 됩니다. 그죠? 노란 해바락이 이제 아주 물결치듯 그죠? 하는 이런 그 반고어 특유의 그림. 근데 뭐 거의 뭐 죽기 3년 전이죠. 그죠? 어 그다음에 그러다가 이게 이제 살기가 힘들어져서 그 왜냐면 계속 이게 반복되니까요. 발짝이. 그래서 아예 정신 병원에 아예 들어가도록 그죠.이 태워하고 협의해서 정신병원에 들어갑니다. 우리 정신병원도 이거 돈을 내야죠. 태오가 돈을 또 다대 준 거예요. 2번비를 그냥 준게 아닙니다. 다 그냥 다 계속 태우가 2번비를 대주면서 생미에 있는 이런 요양원 요양원 정신병 환자들 모아놓은 요양원이죠.
거기에서 한 딱 1년이죠. 한 1년 정도 어 머니다. 머물면서 요양원에서 발과 작업을 반복하면서 여기서도 수많은 명작들 그죠? 그 별이나는 밤 이런 등등 작품들이 막 탄생을 합니다. 음. 그런데 이제 이게 너무 살기가 힘들어 가지고 왜냐면 이게 살기가 힘든게 진짜 고독한 작품 활동인 거예요.이 주변에 친구를 살릴 수가 없어. 진짜 미친 사람들이 옆에 옆방에는이 진짜 미친 사람들 아니에요. 근데 이때는 정말 진짜 미친 사람 뭐 알콜 환자 뭐 별의별 그죠? 사람들이이 특히 정신병이 많은게 이해가 돼요. 요때가 정신병 그 우리가 이미 했었지만은요.
그 까미끌로델도 그죠? 정인병 가고 그죠. 또이 반고의 막내 여동생도 정인병에서 40년을 살아 죽어요. 막내 반고우의 막내 여성생 다섯째 육남매 중에서 다섯째 그다음에 여동생으로 막여동생으로 그 근데 그게 그러만한게 이게 아까 그 칼 마르크스가 자본돈스지라 그랬는데요. 그 정신병인 거예요. 현대화로 인한 정신병. 현대박 그걸 어떻게 보면이 사람들은 직접 직접 그걸 그 아마 지금보다 더 할 겁니다. 지금도 저희 뭐 인터넷을 인터넷이 없던 시대 살다가 지금 인터넷 사용한 시대가 됐는데이 엄청난 그 간극이 있잖아요. 근데 그때 사람들은 더했을 거라는 거예요.
바로 어릴 때 농촌 시절 농촌이나 전통 사회지금 그런 가족의 이런 어떤 종교 이런게 있는데 그곳이 급착스럽게 부셔져서 완전히 산업화가 되는 거야. 산업화 확 넘어가는 그러니까 사람들이 정병이 엄청 온 거죠. 그죠? 그래 가지고 그때 그거에 한 가지 그 도피처로 알콜 중독 그죠? 알콜 중독 막 오고 그다음에 또 그것에 또 한 가지 도피처로 그 환락문화 그죠? 환락문화 그래서 왜 포드사 같은 경우에는 그죠 아시잖아요. 포 포드 그죠 그이 컴베 벨트 앞에서 똑같은 [목을 가다듬음] 동작만 반복적으로 8시간 다 미친다는 거 아니에요? 그죠?
그러니까 땡 끝나고 나가면 공장물 열리면은 바로 앞에는 술집 뭐 저 카페 뭐 그죠 무슨 뭐 매음물 이런 데가 쫙 해서 그 그 화려해 그 쾌락문화 또 집에 가면 또 TV에서 또 막 그죠 화려한 그런 자극적인 거 그런게 열린 겁니다.음 그래서 근데 그게 달리 말하면 그 정신병이 그렇게 많았다는 거예요. 그게이이 19세기 말고 20세기 초에 그 정도로 사람들은음 정말 그 정신적인 위기를 많이 겪었고 그래서 그런게 정말 많았다는 거예요. 그런 정신 요양원이 그죠. 저 정신병 환자들만 모아 놓은 알콜 중독자와 안전이 미쳐 버린 사람 등등 모아 놓.
그래서 그 정말 곳곳에서 다 있었어요. 곳곳에. 음. 근데 그거를 잘 관찰해 가지고 미션 뚫고 가면 그런 관광 역사 같은 거 쓴 거 아니겠습니까? 음. 자, 어쨌든 그래서요.이 요양원 가소. 근데 자기는 그림을 그릴 때는 멀쩡한데이 옆에 사람 보면 같이 미치는 거지. 그죠? 옆에 그죠. 옆에 진짜 다 도른 사람들 진짜. 음. 어쨌든 1년 동안 엄청난 명을 탄생 탄생시켰지만이 생활을 너무나 힘들어했어요. 왜? 아예 친구가 없으니까 그죠? 친구가 없고 오로지 그냥 편지로만 그 태오랑 이렇게 그 왕내하면서 했으니까 너무 힘들어서 아 힘들다.
나 이제 꺼내 달라 말자한 거 같다. 그래서 결국 이제 태오랑 의사랑 합의해서 꺼내게 됩니다. 꺼내서 어 그냥 꺼낼 순 없고 일단 꺼내 나와서 일단 그래도 진단은 받아야 될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계속 그 관찰 관찰과 이런 보의학적인 조언을 받아야 되니까 오베르 쉬르즈라고 하는 우리 이제 소배 나왔었죠. 그죠? 피사로도 살고 세잔도 머물었던 그 가세 [콧방귀] 박사 그죠? 의사 가세 가세가 있는 오베로 시즈아로 이제 가세 박사한테 보냅니다. 그래서 어 거기에가 가지고 마지막 한 70일 동안음 살면서 엄청난 그 하루 한 점상에 다작을 하고 또 이전보다는 요들은 좀 거칠어요.
그림이 좀 약간 거친게 있는데 이제는 거침과 어느건 경렬과 통제된 혼동과 질선을 보다 좀 좌롭게 통합 통합하는 통합하는 좀 더 깔끔하면서 물론 그 색채 같은 건 가은 많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서 좀 더 그 조금 더 거침은 좀 사라진 좀 조화로운 그런 스타일로 어 마무리가 됩니다. 자, 그래서요 어 주요 작품은 마지막 3년 동안 그졌고 그래서 유하로 남긴게 한 860점 정도 유하 유화는 860점 수묘는 한 뭐 1,00점 뭐 그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들어오면서 보통 이제 거꾸로 보시겠습니다. 자, 그래서 어쨌든 요렇게 어쨌든 그래서 우리가 요렇게 보시면 됩니다.
크게 크게 그림은요네 개가 보통 나올 거예요.네 개가 앞에 것도 있지만은요. 그러니까 그죠 파리식이 그림도 꽤 많아요. 파리지 그림은 많은데 이제 아직 완성도는 떨어지고 아직 자기 스타일은 아니죠. 자기 스타일이 난이 여러 스타일을 실험하는 그래서 파리시기 그림이 있고 그다음에 아를시기 그다음에 생레미시기 그다음에 오베르식이 렇게 셋으로 제가 그림을 계속 이제 표기를 할 겁니다.음 음. 자, 그래서요. 아이고데 이게 간단히 소개만 한다고도 시간 한짝 거 한번 이제 책을 한번 간단히이 읽어 보시고 책 제책 제가 구매했으니까 아 그래서 그거이 얘기를 이렇게 간단히 할 수가 이게 정말 그 오류가 오류라기보다 이게이 지적인 불성실이지 학문적이 숫자 아이 책이 몇개 있는 거 가지고 그래가지고 조금만 찾아보면 될 텐데.
자, 그래서 봅시다. 222페이지 그죠? 222페이지 222페이지 반고음 고통받은 화가의 조상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빈센드 반고훈의 예술적 신조는 네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라였다고 한다. 그래서 10년이라는 짧은 활동 기간 동안 자주 10년이죠. 딱 그죠? 여기 아까 여기 그죠? 여기 대충 실제로 그림을 그린 거는 10년이에요. 여기서 80년부터 1894년에 90년. 근데 뭐 제대로 그린 거는 뭐 뒤에 한 5년 그죠? 8인식이 포함하면 5년이고 실제로는 주요 작품은 3년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그쪽 작품을 집중적으로 보시겠습니다.
10년이라는 짧은 활동 기간 동안 반구는 태양이 이글거리는듯한 풍경와 생각의 잡던 소정화들을 나다. 자 그런데 이제 참 나중에도 언급드리겠지만 나중에 정리할 때 언급드리겠지만요. 이게 시대가 바뀐게 있어요. 지금 뭐가 바뀌었냐면은 우리가 지금 세잔을 봤잖아요. 세잔. 근데 세잔은 물론 인상주의자들도 그랬죠. 그래도 그 이제 느누느라 모네나 이런 인상주의자들도 아카데미를 들어가려고 하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또는 이제 그 들어갔다가 그만두기도 하고 요런 사람들인데이 세잔 물론 세잔으로 떨어진 사람이죠. 세잔 그다음에 그 반고후 그다음에 그 저 고갱 그죠?
풀 고갱 이렇게 되면은 [목을 가다듬음] 이거 미술를 배운 적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이게지가 막힌 거야. 이게 이게 이제부터 그죠?이 이게 그죠? 이게 바뀐 겁니다. 그죠? 미술을 어릴 때부터 뭐 예를 들어 미켈란 라파엘로나 다 어릴 때부터 뭐 이렇게 하고 하겠는데 이거는 지금이 사람들은 뭐 어릴 때 그 고객도 어릴 때 저 젊을 때까지 계속 증권 거래하고 뭐 안 했었거든요. 그거도 마찬가지예요. 지금이 20대 후반인이 해가지고 이제 뭐 서살 다 돼서 하는 거고 그죠? 세잔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산도 어릴 때 안 하고 대학 갈 때부터 조금 취미로 좀 하기 시작하다가 된 거고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보면 비전문가들죠이 비전문가 그림을 어린터 전문으로 하지 않은 이런 화가들이 지금 전 성계가 되는 거예 지금이 그렇게 볼 수 있는 겁니다.
그죠? 어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피카소가 독특한 거예요. 어떻게 보면 왜 피카소는 그래서 정통으로이 빛을 교육을 해 가지고 그죠.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랬잖아요. 그죠? 어. 자, 그래서 어쨌든 그래서 그거 하나는 또 기억을 해 두시기 바랍니다. 이게 그냥 넘어갈게 아니라 아, 이게 뭔가 세잔, 고갱 고부터는 아, 어릴 때부터 그림을 배우지 않아. 한마디로 그러니까 그것도 있는 거죠. 기초가 부족한 거예요. 저희가 세전하면서 맨날 기초가 부족하다고 했잖아요. 이게 사실 기초가 부족한게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것도 그것도 인정을 해야 돼요.
어, 그냥 고객고 뭐 세단이니까 야, 대단하다. 뭐 이거 기초가 부족한게 아니라 응. 그걸 알면서 한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도 왜 기초 교육 비용을 한 적이 받은 적이 없으니까 기초가 부족한 거는 맞아요. 근데 기초가 부족한 것보다 우리 다른 면에 이제 가치를 두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가치를 작품을 평가하는 거지. 그 오리지널할 그 아카데믹한 의미에서의 기초가 부족한 건 분명히 맞습니다. 진짜 허접해요. 이게 이게 그림을 적이 없는 사람들이니까요. 자, 그래서 그것들 생각을 하셔야 됩니다. 음. 자, 그다음 보시겠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종교 활동과 사회봉사에 헌신했었다. 그래서 여러 직업을 두루 거쳤지만 모두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둔 그는 자신에게 무시했다.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27세에 그는 미술을 통해 자신의 인류회를 구현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죠? 아까 여기 쓴 것처럼 22 그의 그림은 가난하고 불행한이들을 위로하는 그죠? 얼음 만지는 그죠? 그런 그림들로 노동자들 또는 농민들 그죠? 노동자 농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니까 어쨌든 이게 처음에 미술를 하기 시작한 동기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그 종교 활동 목사나 전도사로는 힘들 힘들다면은 그러면은 내가 미술를 통해서이 사람들의 마음을 얼음만 주고이 사람들의 삶을 그죠 그 드러내겠다 그죠?
사람들한테 알리고 얼음만 줄 수 있도록 하겠다. 그리고 사랑을 전하겠다. 그런 그게 이제 기본 출발점이었어요. 동기. 동기 자체는. 음. 그리고 사회주의적인 동기도 분명히 있다는 겁니다. 사회주의자예요.이 큰 틀에서 보자면은 물론 리젠트는 뭐 종교적인 얘기 뭐 정치적인 얘기는 뭐 거의 뭐 한 적도 없고 그러지만은요. 1886년 8위에서 인상주자들의 그림을 발견한 반고의 작품 세계는 완전히 변호가 말았다. 그죠? 그런 동기를 시작 동기를 가지고 시작하고 돌아다녔는데 이제 8위로 와서 그죠 와서 야 이거 새로운 세계가 열린 거죠. 어 그러니까 이거는 그 관고가 자기가 그 아트 딜러 잠깐 할 때 봤던 그림이 아니잖아요.
그 인성이 그 뒤에 나왔으니까 그죠? 그걸 그만 둔 다음에 바로 나오거든요. 바로 이와서 나오기 때문에 야이 새로운 인상주에 대한 그림 추격을 받은 겁니다. 그래서이 어두운 색채는 밝은 색상으로 사회적 사실주의 이요런 면이 있다는 겁니다. 사회적 사실주의의 테마는 빛으로 가득한 야외 풍경으로 바뀌었다. 인상주자들의 그 밝고 그죠? 그 화려한 원색주의를 받아들인 거예요. 원색주의. 하지만 해발하기 그림이 가능한 이들의 집벽을 화나게 꾸밀 수 있도록 단돈 40세트에 나왔다는 이러에서 보듯 그의 인정주 정신은 변하지 않았다. 그림을 뭐 싸게 팔고 어 뭐 그 그런 일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그림을 꺼 그려 가지고 정말 싸고리 없어 추성 오프랑을 받은 적이 있는데 오프랑 받고 딱 나왔는데 그 앞에서 그때는 또 이제 그 시골에서 올라온 그 길거리 여성들 말들 갈 갈 것 없는 그 여성들 몸을 팔아서 하루 몸 팔을 그 그런 여성이 자신을 유혹하길래 그냥 바로 자기가 저녁 먹을 오프랑을 바로 던져 주고 집으로 왔다 그런 일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그 이제 그 인도주의 정신 약간 사회주의적인 어떤 민중주의적인 정신이 있다는 겁니다.의 밑에주 그래서 그러나 농부들에게 숨겨져 있는 시를 표현하려는 그니까 시라는게 쉽게 말하면 아름다운 마음이에요.
그래서 이게 낭만주의자입니다. 기본적으로이 낭만주의 낭만주의적 사회주의라고 볼 수 있어요. 낭만주의적 자 223페이지 맨으로 올라가세요. 그거를 표현하려는 그의 야심은 인간의 병을 치유하는 자연의 압도적인 힘을 표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것도 낭만주의죠. 그죠? 자연주의 그 자연에 따른다는 거 낭만주입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그런 그는 나의 그림은 내가 말론 할 수 없는 것들을 보여준다라고 말했으며 또 나는 시골에서 건강함과 풍요로운 힘을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니까이 시골 시골이나 농민 또는 자연이라는게 이게 뭡니까? 이게 이성의 반대말이에요.
이성이나 문명의 반대말. 그래서 낭만주자들이 그 당시 기본적인 모토가 아니니까 자연으로 돌아가라. 근데 자연이라는게 그이 저런 뭐 그 야생의 자연을 말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자연적인 본성 옛날의 본성으로 돌어가다는 겁니다. 그죠? 우리가 그럼 그 반대말이 뭐냐? 그 반대말이 이성이에요. 이성. 이성 인공 그죠? 그러니까 지금 현대화가 되면서 그죠. 그 자연적인 본성을 억누르고 이성으로 모든 것을 바꾸고 뭐 따지고 하는데 그래서 이제 세상이 멸망해 안 좋게 된다. 뭔가 모든 일은 다 따지기 때문에 이게 싸우고 서로 죽이고 갈등이 발생하는 거다.
그니까 따지지 말고 우리가 따지지 않던 자연 그죠? 농민 어린이 왜냐면 어린이는 농민들은 따지지 않잖아요. 뭘 따지 계산하지 않고 순박하거든요. 그죠? 타고난 본성과 감동대로 살아가는 그래서 이제 그 그 그래서 낭만주의입니다. 낭만적 바탕. 근데 그게 이제 낭만주의적 사회주의죠. 자, 계속하시겠습니다. 그래서 고후의 짧게 끊어지는 화필과 밝은 보색의 색상 체세기는 인상지의 [목을 가다듬음] 영향을 받은 것이긴 하지만 정말 강하게 받았죠. 저 고가 그죠. 그 색채 분할법이라든지 이런 걸 다 배웠어요. 그죠? 인상 주자들자들한테 색 이렇게 짧게 끊어서 어 그 원색을 가지고 짧게 끊어서 하는 색채 분할법 또는 뭐 브로큰 컬러에서 색상을 여러 격으로 쌓는 거.
그래서 아시다시피 보호 색 이거 엄청 두껍잖아요. 그죠? 그 색칠하게 막 2mm 뭐 5mm 방 막 두껍습니다. 그래서 여러체를 겹쳐서 칠하는 거 등등 그런 거를 인상주자들한테 배웠고요. 하지만 그의 유지를 매우 독창적인 것이었다. 그 독창적이라는게 그렇게함으로써 그 감정을 표현하는 거죠. 바로 밑에 나옵니다. 그래서 그는 관학적인 범이 관학이라는게 아카데미 그죠? 아카데미를 번역한 겁니다. 아카데미적인 응 그 당시 그 아카데미 에콜드보자의 아카데미적인 기법에 대해 혐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신은 일부러 부정확하게 그려서 나의 비사실적인 그림이 직접적으로 사실을 그림보다 그림보다 더욱 진실되게 보여가고 싶다.
그래서 이것이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어 그래서 어 마 읽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얼마법은 그의 모든 그림들에서 인상조의 색법을 구현하면서 열정적인 기질 말이 좋아. 열정적인 기질이지.이 대중들은 이거를 이제 우리가 광기로 보죠. 광기 그죠? 어떤 광적인 그런 기지에서 나온 감정을 나타내고자 했다. 그래서 이게 바로 표현주의예요. 그래서 다음으로 나오는게 바로 표현주의가 나오는 거거든요.이 보호이 책에서도 표현주로한테 큰 영향을 줬습니다. 어쨌든 감정의 표현이네요. 음. 그래서 그의 영웅이었던 고경과 마찬가지로 그도 역시 사실적인 기법을 혐오했던 것이다.
근데 이게 아까 말씀드린게 바탕이 있는 겁니다. 일부러 부족하게 그리기도 했지만 정확하게 그릴 수도 없다는 거예요. 귀쪽은 부족해 가지고 우리 세잔처럼이 맞습니다. 고객도 마찬가지예요. 고경도 그렇고 그 고후도 그렇고 세전도 그렇고 아 그거를 맞추려다 보면은 다른게 안 되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못 하니까 그거를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다는 겁니다. 시하고 사실이 할 수 있는 것을 그에 집중해서 한 건데 이제 다시 그거 보시면 지금 읽은 거 다시 보시면요. 그니까 나의 비산적인 그림이 직접적으로 사실 그린 그림보다 더욱 진실되게 보인다.이 진실된다는게 두 가지 의미입니다.
두 가지 의미. 하나는 증강 현실이에요. 증강 현실 아시죠? 그죠? 증강 현실 그죠? 현실을 왜곡해 가지고 그쪽을 더 두드러지게 그죠? 더 두드러지게. 우리가 왜 목을 좀 길게 하면 좀 더 우아하게 보이고 이러잖아요. 그죠? 왜 우리 긴 목에 맛나 이런 거 그죠? 그 배웠잖아요. 그죠? 우리가 그 마녀리즘에서 좀 길게 또 손도 좀 늘고 길게 하면은 이게 현실을 좀 증 증강하면서 더 그 나타내고자 하는 그런 표현하고자 하는 그런 그 느끼 느끼고자 하는 그런 그 어떤 그 아름다움이나 감각을 더 할 수 있는 그 이게 첫 번째 증강 현실이고 두 번째는 그 감정의 표현이에요.
감정. 감정 그죠? 진실이라는 말이 꼭 진실 진실된다는게 그 두 의미라는 겁니다. 한편으로는 감각적인 의미로서 그 현실을 보다 강렬하게 현실을 증명하는 그런 의미고 또 하나는 진실이라는게 그거로부터 어떤 감정 그래서 바로 밑에 있는 그 감정을 나타내고자 그죠? 어 그린 사람 또는 내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이 담고 있는 감정을 나타내고자 했다라는 거. 자 이렇게 보시겠습니다. 자 그다음 계속 보시겠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고의 그림에 나타나는 왜곡된 형체와 폭발적으로 제도되는 색체들은를 정신 분열증의 증거를 해석하고 정신 분열증이라는 말이 아주 20세기 중반에는 아주 뭐 정설이었죠.
거나 정신분열증이다. 수습과 겁이 많았던 고후는 고독과 질리병 좌절감에 항상 잘렸다. 우울과 환일을 번갈하게는 조울증이 잘렸던 그는 자신이 규강된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회화해 두시에 10년 동안 800여점의 유하와 소멸을 남겼다. 그래서 뭐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860여점 정도의 유하와 1점이 1한 200점이 되는 소멸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먹는 것도 이준체 그림을 열중했으며음 밤에는 모자한테 양초를 내려고 그림을 그렸다는 그는 자신의 작품을 나를 재정신으로 돌아오게 하는 번개 회출이라고 부르면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자신의 인생을 창조랑 넘치는 새로운 삶으로 바꾸어 놓았다.
간고는 예술의 자신의 아 자 그래서 앞으로 살펴볼 주제가 그겁니다. 망고는 과연 진짜 정신병자였냐 이제 그런 거 그죠. 그런 것도 앞으로 살펴보시겠습니다. 그래서 반고는 예술에 자신의 모든 것을 같이 부르한 천재의 원형이었다. 부른 천재 요런게 이제 과연 또 이제 문제가 되는 말입니다. 이게 다 이제 후대의 그 그 관점을 집어넣은 표현들에이 그냥 읽을 수 있는 표현이 아닙니다. 그는 내 가슴에 절반을 무너지고 말했으며 나는 이제 예수의 인생을 걸었다고 쓰고 있다. 그 인생을 매우 슬 것이었다. 승진의 그의 작품은 거의 인정받지 못했고 단 한 점만이 팔렸을 뿐이다.
그래서 애정 생활도 불의 연속이었다. 몇 명의 여성들에게 구회했지만 몇 명이 아니라 꽤 많았죠. 한 이거 못 해나지만 전불 거절 당했고 한 노처녀가 마침내 그의 구회를 받아들렸으나 양치의 반대 음독 자살하고 말았다. 진짜 자살을 안 하 자살했나 어쨌든 자살했니까 아홉살 많은 여성하고 이렇게 하다가 둘이 결혼하다 이제 안 되고 있자 그런 사람 이런게 많아요. 이런 걸 얘기하면 너무 길어지고 나중에 잠깐 겠습니다. 이런 그에게는 예술만이 유일한 피난처였다. 태양을 찾아 남부로 내려간 고부는음 여기서 나는 보이는 것과 느낀 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자신의 법칙에 충실하게 내 마음 내게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189년 중에서 90년 사이에 그는 알을 지방에 생 네면 요양원을 고쳐 마침 의사가 가세히 부어가 오별리를 머물렀는데 그 사이에 신경 세악과 환각 잘리긴 했지만 유수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권들을 연달라 그려냈다. 3년 사이에요. 그죠? 이것을 그는 자연의 영감을 받아 그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인 노란색. 노란색이 이게 어떤 뭐 신 신 신적인 그런 그 영혼의 색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노란색. 그래서 노란색을 주로 사용해 측무와 만기한 꽃나무들을 봤죠. 보리밭을 보리밭이 아니 이전에 번역도 잘못했어요. 이게 이게 밀밭인데 왜 보리밭이 어디 있어?
보리이 옛날 우리나라 보리 보리시대 어떤 사람인가? 저 위에 그 제목이 그 위에 있는 그림 있잖아요. 까마이라는 보리밭이 아니라 까마귀는 밀밭입니다. 아니 보리밭이라는 이게 번역을 어떻게 한 거예? 보류 보리밭 아닙니다. 밀밭 까마이가 나 밀밭입니다. 밀 그래서 밀을 제배했죠. 소랑세에서는 무슨 보리를 [콧방귀] 자 그래서요 이제 본문을 오셨어요. 어 생미의 요양원의 환자로 있으면서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은이 시기의 작품의 특징인 고요한 겹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외교는 3일 내에 밤을 했다고 한다.이 작품 시작됐으 편지를 보면 밤은 그죠 낮보다 더 활개 넘치고 생생한 색을 가득차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창전렬에 들떠 있으면서도 항상 내가이 작품을 완성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두려워하고 그림은 항상 나를 무섭게 한다고 했습니다. 자,이 작품에서는 곡선의 화필이를 통해 구비치는 운동감을 표현하고 있으며 달과 별들이 폭발한 나열지로 넘쳐 있다. 그의 편지를 보면 내 작품은 우연히 그려진 것이 아니며 뚜렷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그린 것이다라는 구조를 볼 수 있다. 별이 빛나는 밤은 역동적인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심하게 잡힌 장소입니다. 위로 찔리서 있는 특별나물 수직성은 교회의 자 이렇게 표 교회의 뾰족에 의해 반복되고 있고 언덕과 하늘의 사선들은 각각과 구비치는 소용도리의 부심점을 향해 보이고 있다.
수직적인 형태들은 보는 이의 시선이 그림 바깥쪽을 기능을 하고 있다. 또한 어두운 색의 직백나무는 반대편에 밝은색으로 진동량을 맞추고 있다. 사물의 형태는 화필의 율동적인 흐름에 의해 전체적으로 혼란스럽기라는 표현이 있게 통합되고 있다. 그니까 요게 그 지금 그 별이 빛나는 밤 잔뜩 얘기한 거 아닙니까? 그죠? 별이 있는 밤에서 넣어놓는 거 같은데 어디다 그죠?이이 그림 그죠?이 그림 이금에 대한 자 설명한 거 아니시겠어요? 그러니까 이게 이게 좀때 나오겠지만은요. 일반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설명합니까? 일반 대중들은 지금 왜냐 제가 써놨잖아요.
그죠? 오늘 미쳤기 때문에 정신이 돌았기 때문에 돌르면은 세상이 빙빙이 돌다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얘가 돌아 가지고 세상을 다 뱅빙 도는 것처럼 그났다는 거예요. 요게 일반 대중적인 그런 생각입니다. 그죠? 대중적인음 야 돌아서 다 그냥 맨 돌게 그죠? 좀 정신없이 그렸다라는이 과연 이제 그런 거야. 그니까 어쨌든 요게이요 그림을 꼭 해당하는 거라기보담은요. 일반적인 얘기예요. 일반적으로 아이 한고의 작품은 내모대 광기 그 감정한 감정인데 그 감정이 광기라는 거예요. 그죠? 광기 격정 주최하지 못하는 광기가 뭐 표출돼서이 확률하게 나타난 거다.이 이게 이제 기본적인 그 이해라는 거예요.
대종들의 기본적인 이해가 그죠. 그죠?이 이게 어쨌 어쨌든간에 이렇게 연결돼 있어요. 그죠? 안 오는 뭔가 주최할 수 없는 그 광기와 그 격종이 그것이 표출돼서 이렇게 뭐 그림으로 뭐 뱅뱅 미쳐서 돌려서 그렸다는 운동 사실하고 전혀 다르게 그죠. 어 사실하고 전혀 다르게지 한마디로 미친 놈이 보는 세상은 그랬다는 거예요. 그죠? 어 그게 대중적인 그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유포된 그런 통이 되겠습니다. 과연 이제 그런지가 볼 수 있는지 앞으로 쭉 이제 얘기하시겠습니다. 결국 그 그센트반고의 성신질환 과연 이게 미친 거냐? 응 어떻게 미친 거냐?
자, 그 얘기 앞으로 해 보시겠습니다. 자, 계속 이루시면서 반고는 죽기 전까지 72일 동안 한 70점 넘게 작품을 매일같이 그날 정도로 창조에게 붙었다 이렇게 그이 오베르 마지막에 가서 가서 [콧방귀] 극도의 [목을 가다듬음] 긴장된 상태였을 텐데도이 작품들의 기어는 정점에 이르러 형태의 단수나 그림자 없는 밝은 색체의 연속 그리고 특유의 표현을 놓치는 화필법 등을 연습해 구사하고 있다. 그의 담당 의사인 가시는 나는 그의 작품을 볼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발견한다. 그런 위대한 학을뿐 아니라 설학대라고 말 그러나 간구우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그의 동생의 원조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항상 의기 조침에 있었다.
그는 편지에 내 그림이 팔릴 때까지 너를 도울 방법이 없구나라고 쓰면서 그 지금 10년 동안 그냥 계속 동생 한이 매달 붙여주는 돈 가지고 사는 거 아니에요. 10년 넘게 그죠. 음. 음. 음. 그러나 언젠가 내 그림이 물감값 이상의 가격에 팔릴 날이 올 것이다. 물감값 이상으로 판이 거의 없다는 거예요. 몇 개이 싸게 파는 것도음 쓰면서 아 먼저 썼다고 한다. 1990년 반에 의사가사의 조상은 경매가서 역사 출가위 82 맞더라. 그리고 아시죠? 저희가 나중에 보시겠어. 저 위에 있는 그림이요. 그때도 한번 했었죠. 저희가 르노아를 할 때 했었는데요.요 그림에 대한 얘기도 또 다시 복습을 하시겠습니다.
자 그래서 여기는 좀 써 있네요. 그죠? 재정적인 압박감을 호소하는 동생의 편지를 받은 후이 동생이 어려워진 거죠. 근데 어려운 유지가이가 왜 왜 왜 어려워졌겠습니까? 동생이 경제적으로 왜 어려워지는지 10년 동안 계속 돕라고 보는 거 그니까 그 형 돈하고 계속 돈을 보내줬는데 그니까 오히려 형 형한테 많이 보내고 자기는 아껴 쓰는 거죠. 오히려 오히려 그랬어요. 오히려 근데 이게 어려워지면 왜 어려워질 것도 딱 하나가 있죠. 그렇죠. 결혼을 결혼을 하게 되면 좀 문제가 생긴 거야. 이게 그게 이게 자사를 듣게 된다는 겁니다. 이게 이게 사실 어떻게 보면 단순해요.
이게 이게 어떻게 보면 단순한데 사람들이 너무이 정신 지뭐 이런 거 낭만적으로 생각했는데 아니라는 거 이거 보시면은 객관적으로 그벌써 이게 그러니까 바르게 보세요. 이게 그죠이 재정사 같은 왜 생겼느냐 이게 지금 결혼을 했고 애가 생겼고 이러면 당연히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게 이게 문제가 생기죠. 그죠? 시간 생깁니다. 이게 그래서 그 편지와 뭐 이제 그 얘기 상승하겠습니다.이 말련에 그런 일이 발생했어요. 그래서 그의 짐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 부분은 마지막 편지에 나라 인간이 무슨 순가 있을 것인가라고 뭐이 취지 비슷했는데 뭐이 말은 아니고요.
말은 좀 다릅니다. 어쨌든 저거 보내놓고 들판에 나가 건충으로 자신이 아 머리가 아니고 자신의 배인데 왜 머리 머리가 아닙니다. 머리졌으면 바로 죽었죠. 어떻게 이게이 그까 이게이 사람 어떻게 번역을 하거나 썼는지 모르겠지 이거 자신의 배를 가슴 아을 쐈는데 배를 쏴 가지고 그이 가슴이 뚫린 것도 아니에요. 이게 가슴이 뚫리면 담배 못 피죠 그죠 그죠 죽을 때도 담배 계속 피고 있었거든요. 그 배 쪽에 산처가 나는데 이제 아무래도 거기 담염이 쫙 되면서 그죠 복마이지 되면서 담염으로 해서 죽은 거로 그렇게 그래서 자신의 그가 배를 쏘 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로부터 이루고 세상을 떠났는데 정신이 잠깐 정신이 잠깐 계속 정신은 정신은 들어 있었어요. 정신사의 마지막 유원으로 인생 이쁘다. 누가 이런 말 안 했는데 이런 문장은 안 했습니다. 좀 다른 말 했는데 여러 말을 했는데 여러 말 했어요. 여러 말 왜냐면 계속 거의 한 30시간 이상 깨어 있었으니까 깨 가지고 계속 파이프 담배 피면서 있었으니까 말을 많이 했습니다. 이제 이런 말은 없고요. 장례식장에서 의사를 가진 울먹이며 그분은 정직한 사람이었고 위대한 화가였다. 그는 인도주의와 예술이라는 그 두 가지 목을 가지고 있었다.
그를 사랑할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그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지루함 속에서 사느니 열정 쓸 수 있도록 말하는 뭐 이런 말은 뭐 너무나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이게 이제 한 가지 어 문제가 뭐냐면은요. 고가 남긴 이게 또 그니까 고가 유명해진 이유가 있어요. 유명해진 이유가이 편지가 다 남았다는 거예요. 그죠? 이게 엄청 났어요. 이게 이게이 편지 효과가 엄청난데 그죠? 이게 왜냐면은 그게 있잖아요. 이게 20이 초나 중간만 해도 중간이 뭡니까? 우리나라는 뭐 20이 후반까지도 컬러 인쇄가 불가능했다는 어려웠죠. 컬러 어려웠죠.
그죠? 인쇄가 컬러로 그니까고 그러면이 컬러로 봐야 되는 거잖아요.이 흑백 소용 없잖아요. 흑백 사진 찍어도 소용 없고 그죠? 어 그러니까 컬러로 봐야 되는데 당연히 어떻습니까? 당연히이 컬러 사진은 너무나 드물고 직접 가서 그 보지 않은 이상은음 또는 뭐 그 그죠 그 모사품 모사품도 비싸겠죠 그때는 그죠 보장에서 직접 그가 전 세계 그 그 감성들이 그 알 길게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대신 문학적인 글 그죠 편지는 인쇄해서 책으로 인쇄하면은 거는 그죠 컬러가 아이들에서 쫙 퍼져나갈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게 참 결정적이었어요. 가가 남냐 800여요통의 그런 편지가 요게를 크게 알리는데 그다음에 더더군다나 다른 예술가와 뭔가 차별적으로 다른 예술가들은 그런 건 이제 별로 없잖아요.
그런 편지는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은 그런 건 별로 없는데이 반고는 계속 그 태우 동생한테 돈을 받으니까 그죠 받고 또 이제 그 대신 그림을 보내 주는 거잖아요. 그죠? 그림 혹시 안 팔릴지 모르 안 팔리겠지만 팔릴지 모르니까 계속 그림을 보내 주는 건데 그러면서 계속 편지를 보낸 거예요. 그 편지가 10년 동안이니까 엄마하게 남았죠. 그래서 그거를 나중에 정말 아유 저희가 그거 아니고 저 맨 저 저가는이 세 번 정도 이렇게 돼 있더라고요. 아 이거 보 엄두가 안 나가지고 볼 엄두가 안 나지 근데 그걸 또 이렇게 간출이고 해서 정말 많이 나와 있습니다.
또 문학적으로 그게 각색돼서 이렇게 그 반고우의 무슨 뭐 편지 무슨 편지에서도 주제별로 어 그래서 반고우가이 크게 문학적인 그런 어울리면서 크게 유명해졌다는 그런 얘기를 드릴 수가 있는데요. 근데 거기서 이제 한 가지 그 단점이 뭐냐면은 그렇기 때문에이 반고의 인생과 반고의 생각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을 갖다 붙여도 웬만하면은 다 그 편지에서 타낼 수가 있어요. 구절을 그렇게 있어. 그죠? 해당해 구절을 그죠. 그죠? 그 이게 거꾸로 갖다 맞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죠? 거꾸로 어이 반고에 대해서 어떤 뭐 평론을 쓴다. 이론을 뭐 그 한다라고 했을 때이 후대인 저자가 자기 것들을 생각한 다음에 찾아보면은 그거 넣을 그런 비슷한 구조자들을 찾을 수 언제 언제든 찾을 수 워낙 편지가 많으니까요.
그죠? 어 단 그게 또 단점이에요. 그런 면에서는. 그래서 단점이라보다면 그 그런 연구서들을 경계해야 된다는 겁니다. 음. 자, 그래서 어쨌든 결정적인 사항은 지금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바로 그 사실이에요.이 동생이 10년 동안 돈을 매달 돈을 보내 줬는데 동생이 결혼하고 결혼까지 버텼는데 애가 나왔어. 이러면서부터 동생이 이제 급격히 어려워진 거죠. 근데 동생이 어려보다 보겠습니까? 이때부터는 그 이걸 누가 주고 있는 거예요. 당연히 당연히 그 와이프가 이게 동생이면은 차라리 동생하 얘기가 되는데이 동생의 와이프한테 이게 얘기가 안 되잖아요.
이게 이게 정득이라는 거예요. 이게 이데 참 역설적으로 이제 결국 그 와이프가 반고를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죠. 그죠? 그 재수 씨가 없었으면은 광고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이렇게 된 거죠. 참 여서 그렇습니다. 그게 그 그예요. 그게 미묘한 근데 어쨌든 저희는 이렇게 딱 들으면 직관적으로 너무너무 영하잖아요. 아 그게 제일 중요했겠다라는 알 수 있잖아요. 그죠? 근데 이제까지 쓴 반거 연구소들 보면은 그건 그렇게 쓴 거는 5%도 안 돼요. 확대한 뭔가 낭만적인 뭐 이런 거 그죠? 뭐 예수 미치고 아니면 다 사람들한테 절교당하고 어 사회적 소외 여기 있었잖아요.
그죠? 뭐 유전적인 소외 요것도 정말 많죠. 그죠?이는 거보는 이게 그 안에 집안에 자살하는 무이 많다. 꽤 많아요. 그죠? 어, 근데 그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유전적일 수도 있는데 꼭 유전이 아니더라도이 환경 자체에서 그래요. 이당이 당시 환경이 현대와 되는 환경 사람 미치게 한다는 겁니다. 음. 아니면 사회 접속에 그죠? 또는 사랑의 실패, 작품 뭐 이런 거 등등 아 이게 이게 자격을 하자 하는데 죽기까지 한 것은 결정도 자살까지 한 것은 결국에는 직접적인 압박 그거는 사실 경제적인 압박 아니겠느냐라는 썰을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거 같습니다.
음. 자, 그래서요. 어쨌든 맨 밑에서 225페이지 맨 밑에서 넷째줄 그러나 반고는 자신이 오늘날 이토록 명성을 누릴 줄 상상을 죽 상상을 못했겠죠. 뭐 어 반공 하면은 가장 유명한 화가니까요. 그죠?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이 반고예요.이 설문 조사는 뭐 압도적입니다. 일반 대정들은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화가 반고 또는 가장 많이 알려진 화가 반거입니다. 그리고 가장 비싼 화가도 비싼 화가 딱 세 명 아니에요. 그죠? 그 레온더 다빈치 그다음에 베르메르라고 하는 그죠? 베르메르 그다음에 이제 반고이 세 명이 각이 거의 만먹는 자 [한숨] 그래서 그의 작품을 불멸의 것으로 만들고 있는 유민은 아마도 화가 그림을 그려야 한다.
다른 것들은 차율이라고 그 신다 이거 가다 붙치면 갖다 치는 거고 이걸기보다는 그 그 만들어진 그 역사적인 그 배경과 그 사람들의 현대 예술에 대한 생각이 있는 거예요. 그게 반고가 어쨌든이 유명해진 불멸의 요론이 된 것은 사실 이것 때문이에요. 근데 이게 이게 우리 수업을 통해서는 이게 잘못됐다. 객관적이지 않다라고 얘기를 하겠지만은요. 요게 그죠. 대통적으로 널리 통 유포 그 반고는 그 그 각까지 이유로 어쨌든간에 여러 이유로 미쳤다. 그죠? 정신줄환에 시달리다가 그것이 점점 더 심해지면서 어 점점 더 관계업히면서 결국엔 이제 죽음에 이르게 된 그런 참 비운의 비극적인 작가다.
어 그리고 바로 그 주최할 수 없는 그 정신질한 광기가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기본적인 열쇠가 되고 그것이 이제 막 표출된 것이다. 그죠? 여기 이렇게이 24페이지 까마귀 밀바도 까마귀가 막히자 이렇게 그죠. 어, 그 이거 이것도 이것도 그 거기 이제 그 보시 224페이지에 그 그 응 까마귀가 나는 그 밀밭입니다. 이것 아니고요. 밀밭이 그림 보시면요. 밑에 그죠? 그 이렇게 써 있습니다. 그 자살하게 직접 제작한이 작품에 대해 이거는이 작가가 영화 보고 쓴 거예요. 거꾸로. 이거 말도 안 되.이 반공 영화에서이 이렇게 표현했거든요.
근데 아시잖아요. 우리 영화라는게 이게 다 픽션 아니에요. 그죠? 오늘 오늘날 뭐 뭐 왕의 남자니 뭐 이런 거 다 막 이게 딱 이게 사실하고 많이 어긋나잖아요. 많이. 근데 그걸 이제 본 사람 그게 그게 사실일 것처럼 이거 지금 막이 미술사를 썼으면서도이 영화 보고 썼어. 영화 보고 이거 어 영화에서 이렇게 영화에서 이렇게 나오살하게 직전에 이런 밀밭에서 이거를 쫙 그리는데 영화에서 갑자기 까마귀 때가 막 납니다. 그거를 탁 보고서 얘가 확 돌아가지고 이게 이제이 까마귀 까마귀가 흉 팍팍 찍는 거야 이거 그죠 찍어 검은 까마귀 점을 찍어서 그 까마귀를 그리고 이때 총을 쏘고 죽는 뭐 그런 거로 나와요 영화에서 근데 이게 방고의 마지막 그림도 아니고 아니고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근데 어쨌든 그런 식으로요. 그죠. 여기 밀밭이나이 까마귀 그죠. 까마귀는 탁탁 위로 꺾이고 밀밭은 아래로 꺾이는 이런 어떤 그 작가의 그 격정적인 그죠.이 길 모양도 그렇고 그런 거 광기를 그죠. 내 광기를 표출하다가이 마지막 그림을 남기고 총을 써서 자살했다. 뭐 그런 이제 얘기. 근데 사실 그것 때문에 유명해진 거예요. 근데 어떻게 보면 왜냐면 대중들은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대중들은 우리가 앞에서 하시잖아. 이기적 그죠. 그 선생님 그 앞에서 그 남만주기 예술관님이 뭡니까? 아이 예술은 좀이 예술 하는 인간들은 좀 미친 놈들이다.
그죠? 좀 미쳐야 한다.이 맨정신 의론이 제대로 못한다. 그죠? 예술가들은이 살짝이 맛이 같다. 그리고 진짜 천재는 좀 이게음 천재는 곧 광인의 다른 말이다. 요런 관념에 딱 부합하는 사람이야. 여기 요요요 해석이 그죠. 어 사실 그래서 유명해진 한 겁니다. 그니까 반고 하면은 딱 그렇게 떠오르는 거잖아요. 그죠? 이거 정말 비극적인 예수가의 저녁이고 바로 그 천재성은 광기랑 통하고 사람들한테 버림받고 결국 인정받지 못하고 하지만 요절 예. 그 요절하고 그죠? 요절 요절하고 그죠? 그런 나중에 이제 후대에 죽은 다음에 인정해지고 그 공식에 딱 그 공식을 만든 거 때문에 어떻게 유명해진 겁니다.
사실은 근데 물론 우리 수업을 통해서 아 이게 당연히 맞지가 않는다는 걸 이제 하겠지만은요. 한편으로 꾸고 때문에 명해진 거예요. 것은 여기 너무나 딱 부합하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의 생각에 그리고 물론 그 생각은 현대적 예술 관념 쉽게 말하면 예술과이 실생활이 분리가 되면서 19세 말을 거치면서 현대적 여술 관념이 완성되면서 우리가 이제 그 가지게 된 관념의 그 일부가 되겠습니다. 그렇게 형성된 거죠. 이게 역시 오래 걸릴 줄 알았습니다. 빈전트 이거 이게 짧게 한다고 아까이 앞에 얘기 이거 이게 이게 이거 줄이 진짜 딱 두 페지로 줄였는데도 이것도 한 30분 걸렸죠.
이것만 하는 것도 자 그래서 다시 감조드리지만은요. 그 마지막시기 그죠? 그 수리기 그다음에 여기 제일 중요합니다. 파리 파리시기 한 3년 그다음에 아를 생미 그죠? 그다음에 생님이 정신병원 요양원 그다음에 오베르 오베르가 줄여서 합니다. 줄 줄여서 오베르 오베르에서의 마지막 70일 그래서 저희는 여기에 집중할 것이고요. 그리고 여기가 열쇠입니다. 여기 앞부분 좀 상세할 텐데요. 그까 결국에는이 과정을 못해서 여기에 와 가지고 그거가 엄청 열정적으로 다작을 하다가 결국 자살한 거 아니에요. 70일 딱하고 자살했는데 그 왜 자살했느냐 [목을 가다듬음] 그죠?
어, 그거를 보면은 아, 그걸 이제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은 앞부분도 쫙 다 풀려 나온다는 겁니다. 정신병이나 그 그림이나 스타일 이런 것까지도 다 풀려 나옵니다. 나름. 음. 자, 그래서 일단 우리가 광고 하면은 워낙 워낙 그 대중적으로 그 많이 알려진 인물이고 한데 그런데 또 대중적으로 잘못 알려지거나이 그냥이 블로그나 이런 거 봐서는 모르는 그죠. 그이 깊이 있는 좀 내용이 있어야 되겠죠. 아무래도. 그죠? 이에서는요. 차별 차별성이 있게 뭔가 깊이 있는 이제 그게 처음으로 이제 생각이 바로 요겁니다. 제가 그니까 우리는 빈센드 반고의 얼굴 모습을 정확히 모른다는 거예요.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는 거예요.
윈트반고가 이게 윈트 반고는 사진을 거의 남기지 않았어요. 그래서 현재 남아 있는 사진 딱 한 장이에요. 한 장. 그 이게 특이한게 왜냐면은요. 이게 지금 사진술이 그죠. 19세기 초중반에 이제 발명돼서 19세기 후반에는 엄청 크게 발달했거든요. 지금이 반고 시대는 사진 뭐 다 찍었어요. 다 그죠? 다 항상 사진을 찍고 해서 엄청나게 대중화됐던 그런 시기였는데 19세기 후반 근데이 이데 또 이런 사람들 있잖아요. 사진 촬영을 극도로 피하는데죠. 사진 촬영을 싫어했어요. 사진 촬영을 싫어했고 어 물론이 사진 촬영을 싫어했다는게 여러 이유죠.
근데 여러 이유데 어떤 사람들이 싫어합니까? 사님 짓게 싫어하는 사람들 오늘날 어느날 좀 있지 않아요? 아니 자신감 없는 사람 자신감이 없거나 그죠? 그러니까 남들한테 뭐 보여주는게 싫은 사람 좀 그죠. 그러니까 좀 좀 사회 좀 뭐라 샤이하면 그걸 뭐라 그럽니까 이게 자신감이 떨어지는 한마디로 사회적이지 못한 사람들이에요. 사실은 그죠. 그 그 사회적인 사람들 막 하는 사람들은 막 SNS하고 이런 사람들은 막 찍어서 막 뭐든지 막 올리 가잖아요. 근데 사진 찍기 싫어하는 사람 분명히 오늘날에도 있는데요. 그죠? 아, 내 모습 보이기 싫고 잘 어울리기 싫고 이런 사람 사진을 안 찍어요.
그니까 이게 이제 그런 성향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죠? 한편으로는. 그래서 어쨌든 사진 체력을 극도로 피했고 성인이 된 성인되는 이유 사진을 찍은 적은 뭐 전혀 없는 곳으로 전혀 없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어, 그래서 너무나 싫어해서 그래서 자신의 여동생 그 빌죠. 빌 헬미나 줄여서 그냥 빌딩으로 보낸 편지 요렇게 썼어요. 사진은 우리보다 더 빨리 바란다. 근데 아마 이제 그때 사진은 그랬죠. 그때 사진은 한 10년만 지나도 기술상으로 흑백 사진이지만 이게 뭐 사진이 바라잖아요. 그죠? 바라지만 그림으로 그린 초상화는 여러 세대에 걸쳐나 있지.
게다가 그림으로 그린 초상화는 대상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담아 요거 중요한 표현입니다. 나름 대상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담아 감정을 표현한 작품이야. 우리에게 남은 옛 내덜란드 사람들의 흔적은 무엇일까? 초성하라는 거죠. 지금 자기들이 보는 건 옛날 사람들 초성화를 보고 있지. 무슨 사진을 보고 있느냐. 어쨌든 뭐 이렇게 뭐 나름 그 쓴 건데요. 어쨌든 사진 촬영은 이제 싫어했어요. 싫어해서 사진 남대 딱 한 장입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그이 여동생 그죠?이 남매 중에 다섯째 그죠? 맨 막내 아들이 아들이 하나 더 있고요. 다섯째 막내 여동생 여동생이 비미나 만고의 9년 아래 나름 그이이 빈센트가 동생들하고 다 친한 건 아니에요.
제일 친한게 태오였고 그다음에 그나마이 여동생 여동생하고 좀 친했습니다. 편지를 좀 보내고요. 그래서이 여동생도 나름 네덜란드 축기에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했어요. 페미니즘 근데 페미니즘 운동이 페미니즘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페미니즘 운동 또는 여성 노동 운동이죠. 사실은 그죠. 여성들이 왜냐면이 여한 환경에서 노동을 했잖아요. 우리나라 옛날 왜 구르공단 그 막말로 공순이라고 하듯이 그죠. 그런 환경이었죠. 그죠? 산업화시기에. 그래서 그런 그 여성 노동 운동 그러면서 여성 초기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음. 그런데 이제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이게 사회적으로 이제 아무래도 그 당시 보수적인 사 시선이 안 좋잖아요. 그래서 조발성 치매진단을 받고 사실인지 알 수가 없어요. 왜냐면 이게 똑같습니다. 저거랑 그 그 까미크로들 집어넣은 거랑 그죠. 옆에서 꼴 보기 싫으면은 그냥이 진단서 때려서 넣고 그냥 집어넣으면 끝나는 거 아니에요. 그죠? 이거 정확한 내마은 알 수가 없어요. 어쨌든 치매 진단 받고 1902년 정신병에 강제 수용됐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강제 수용됐다는게 들어가서 밥을 안 먹었어요. 그래서인 그 혼자 혼자 자기가 급식을 안 해 가지고 사람이 밥을 어어지로 넣어 주고이 이랬답니다.
이성이 그러니까 이게 강제로 수용된 거죠. 그래서 어쨌든 그래서 4년 동안 갖춰죠. 40년 동안 그이 당시에 정말이 정신병원이 그 쉽게 말하면 인간 폐인 만드는 그죠? 어떻게 보면은 일반 감옥보다 더 무서운 거죠. 그죠? 지금 또 더 무서운 그런 식으로 어 까미들도 그렇게 꺼내더라도 목 안 꺼내지고 집어넣어 버리고 한 것처럼 그런 식의 한반도 그렇다는 거예요. 그 집안에서 어 누구 이렇게 탁 결정 내리 드려 보내고 막 이렇게 그죠 이런 그 어 저는 정권에서도 그렇고 권력자들도 그죠 권력자들도 누구 정신질환 판정 때리고 그냥 집어넣어 버리고 이런 식의 그런 일이 많았다는 겁니다.음 그래서이 여동생도 어 어쨌든 근데 이렇게 기록이 남아 있으니까 야 이거 왕고 집안의 그 내력이다.
거 미쳐서 자살했고 말이야. 그죠?이 이 심전이 동생 동생 태워도 동생도 미쳐 자살했다는 거예요. 반고가 자살하고서 어 6개월 뒤에 동생도 자살했다. 어 근데 사실 자살한 거 아닙니다. 그래서 그래서 어 유전적으로 이렇게 많이 20세기 이런 얘기 많았어요. 방고 집안에이 자살한 사람이 내요. 많았는데 이제 자살이 이런 말씀 좀 더 그들면 그렇지만은 이게 사회가 혼란하고 정신병이 오면 자살들도 자살도 늘어나는 거예요. 이게 꼭 꼭 유전적인 것만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요 요 당시 자살이 많았던 게예요. 어. 음. 그렇습니다. 자, 그래서 고성제 얘기하고요.
자, 그래서 지금 사진 얘기 그래서 반고는 사진이 남아 있는게 딱 하나밖에 없어요. 그게 이제이 사진입니다.요 사진 딱 하나 남아 있는 겁니다. 음. 그래서 딱 넥타에 딱 매고 그래서 오른쪽에 것이 현재 남아 있는는 거의 유일한 사진이고요. 이번에 지금 여기 가시잖아요. 암스테리담. 그래서 제가 걸 다 써 놨어요. 이번에는 그죠? 그 만고 미술관 미술관에 가면 사진을 볼 수 있겠습니다. 음. 그래서 1873년 1월를 찍은 사진으로 왜 그죠? 미술품 딜러로서 처음 이제 취직을 했잖아요. 취직하기 그죠? 취직을 이미 했고 그다음에 이제 런던으로 자기 반령을 받으러가 런던 지점으로 근무을 가기 몇 달 전에 부모님께 드리기 위한 목적 그니까 부칠의 생인이 2월 8일인데 그 1월에 찍은 거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요게 이게 자식들이 이제 밖에 나가 있으니까 아마 이게 있게나 봐요. 그죠? 제가 지금 잃었습니다 해서 거기서 사진 찍어 가지고 편지를 보내는 거죠. 부모님한테 부모님이 그거 보고서 아 너구나 이렇게 그죠. 그 그런 그 관습 그 당시에 그런 그 그 일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 나가서 멀리 나가서 일을 하니까 자기 사진을 찍어서 그러니까 자기 사진 찍기 싫었다. 그래도 아마 그래서 부모님 때문에 찍은 거 같아. 이때까지는. 음. 음. 근데 요게 이제 스무살 때거든요. 막 스스살 됐을 때 그 이유 찍은게 없다는 겁니다.
요거 다 나와야 되는 거예요. 자, 그다음에 이제 하나가 요런게 이제 그 최신 문헌 문헌상으로 20세기 문헌들이 다 이제 잘못된게 오랫동안 잘못 알려진 사진. 그래서 남아 있는 그의 사진은 성인이 되기 전에 찍은 두 장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계속 정말 최근까지요. 2018년까지 그걸 알려줬다는 거예요. 2018년까지 정말 최근죠. 근데 그중 한 장이 동생 태오의 것으로 식별 및 공식 확인되었다. 그니까 이래서 이게 허술하다는 거예요.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게 학문적 과학적 엄밀성이 없어지면 이거 하는 사람들이 이게 아 또 근데 그런 말 이유도 있어요.
이게 특별히 누가 이게 뭐 이게 우리가 과학이나 공학 지원하듯이 뭐 지원하는 건 아니니까 냥 틈틈히 틈틈히 그냥 아람이 이렇게 하는 거라서 개인들이 열정을 연구하는 거서 그렇긴 한데 아니 제가 봐도 저저도 이거 처음부터 처음부터 그 진짜 제가 그 젊을 때부터 아 좀 이상하다 생각을 했었어요. 뭐냐면은요 이거 나오고 요거 나오기서요 사진이 나와요.요 사진 요게 그니까 여기 딱 두 개가 나와요. 그니까 그 후이 책 보다 보면은요.요 요 요게 여기 나오잖아요. 바로 옆사지는 처시랑 공개되니 이제까지 출판된 많은 문헌에 윈드 반고의 어린 시절 13살 때 학교 어디고 입학하고 요럴 때 그런 사진이다 해서 요거 13살 응 요거 13살 그다음에 그거 옆에 요게 나와 아까 요거 잠 잠 요게 나옵니다.
아까 저 사진이 고후살 때 요거는 고후 19살 때만으로 19살라고 딱 두 개가 나오는데 이게 안 닮았잖아요. 이거랑 닮았습니까? 이거랑 어 진짜 거꾸러 가냐 이거랑 덜 닮았어요.이 옛날이 저 딱보다 처음에 그니까 야 안 닮았는데 이거 이상한데 이거 이게 이렇게 바꿀 수가 있네 이거 이거도 조금 또렷한데 이거는 좀 이렇게 이목이 좀 흐릿하잖아요. 그죠 좀 떨는데 전 좀 저 예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거기 실려 있으니까 그래 뭐 잘하면서 많이 변했나 보지뭐 이런 생각 했었죠. 근데 이렇게 보시면 이렇게 닮았다는 거 아시겠죠? 그죠?
이건이 그죠? 이거는 그죠? 이거는 그리고 뒤에 사진 보면 더 그래.이 동생이거든요. 동생 그죠? 그이 동생 동생 태오의 21살 그니까 요게 16살 이제 막 이제 동생 태오가 그 샘트 3삼촌에 의해서 국필렌 씨의 그 수습 직원이 돼서 이제 그 대통으로 막 배우기 시작할 때 그죠? 그때 이제 찍은음 이제 찍은 사진입니다. 딱 봐도 이거랑 이게 이거지. 이 어떻게 이게 이게 이거겠느냐 그렇잖아요. 그죠? 이거는 너무 너무 다르잖아요. 그죠? 아무리 형제라도 이제 4년 차도 나고 어 형제는 좀 닮은 것 같기도 하지만 근데 좀 그렇게 담지도 않았어요.
이게 그 고랑이 동생은 그렇게 담지 않았거든요. 빛 비슷한 라이트 때 아니에요. 2살 때고 그죠. 여기 이제 20살 때니까 좀 다르죠. 그죠? 얼굴 형태가 약간 그죠? 얼굴 형태가 형제지만은 그죠? 닮은 구속도 있지만 닮지 않았는데 그러니까 저는 예전부터 미술사 책 볼 때마다고 책 볼 때마다 이게 항상 나오는데 아 이거 얘가 아닌 거 같은데 어쨌든 아닌가 생각은 저도 못 했죠. 그냥 뭐 좀 많이 바뀌었구나. 좀 다르구나. 어릴 때랑 결국 이게 아닌 걸 판명 난 거지. 아 이걸 구별을 못 해. 그래서 어쨌든 이게 그죠. 최근에 이제서야 최근에야 최근에야 그 좀 아까 말했었던 것처럼 최근에야 공식적으로 그 이반고 미술관에서 아 이거는 그이 사진은 그동안 고후의 사진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아니다.
이거는 동생 태오. 태우의 16살 때 사진이다라고 공식 확인됐습니다. 2018년에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제 현재 남 남 남은 반고의 유일한 사진은 이거밖에 없는 거예요. 이거밖에. 그리고 이게 이게 그러만한게이 그럼이이 동생은 이걸 언제 찍었느냐? 아까 똑같아요. 그때 7월 1월에 요것도 7월 1월에 그 부모님 생일에 다 그죠? 다 따로 형생 형제들이 따로 따로 나가 있으니까 그날 이제 부모님한테 편지 보내면서 저 지금 이렇게 지내요 해 가지고 그죠? 지금 현재 이름밥 근황 그죠? 근황 사실 찍어 가지고 부모님한테 보낸 거죠. 어 그래서 형도 일에 찍어서 보내고 그죠.이 지금이 태오도 이제 막 새로 일 배우러 나 집에서 멀리 나와 가지고 브리젤까지 갔으니까 멀리 간 거잖아요.
그죠? 브리젤에서 자기 사진 찍어 가지고 부모한테 보낸 거죠. 그러니까 딱 다 그렇게 맞아 떨어져요. 어 그니까 그렇게 딱 맞아 떨어지고 보면 알 텐데 그죠. 그거를 왜 연구가들이 이제까지는 지금 거의 100년 넘게 100년 넘게 이걸 거의 70년 넘게 오류를 그게 그니까 모든 책에 다 그렇게 실려 있어요. 다 이제까지 거의 나온 책에 다. 어쨌든 오류를 바로 잡겠습니다. 그렇게 자 그런데 이제 이게 또이 반고가 워낙 유명하잖아요.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저도 이거이 기억나요. 이거이 뉴스에 나온 적이 있어요. 뉴스에도 어 뉴스 2004년이니까 아마 이때쯤 뉴스에 나왔겠죠.
그죠? 어 그 이게 워낙 유명하니까 반고. 자 그래서 1990년대 초에 톰 스탠포드라는 남성이 메사수체스 그죠. 미국에 그죠. 골통품 가게에서 오래된 성직자 사진첩을 넘기다가 골통부 가게니까 그죠. 오른쪽에이 사진 그죠.이 사진을 발견하였고 야 이거 반고가 닮았네라고 생각해서이 감정을 의뢰했습니다. 의뢰했는데 이제 그쪽 그죠. 그죠? 미국 쪽에 그쪽 그이 법이학 연구소 법이학이니까 이제 죽은 시체 검원하고 이런데 아니가 있어요. 뉴헤이븐이 법이학 연구소에서 이렇게 발표한 거예요. 이거 저도이 이거 본 기억이 나요. 20년 전이죠. 거임 이마의 크기 눈 모양 심지어 머리카락 한올 한올까지 대주해 본 결과 가장 미세한 부분까지 일치했고 수염에 가장 가는 털까지도 일치했다면 이건 반고의 사진이다라고 이제 여기서 발표했어요.
그래서 야 반고의 사진이 발견해서 난리가 났었거든요. 이게 막 뉴스에 나왔어요.음 근데 이렇게 지금 밑에다 사 사진사 이름도 있고 그죠? 사진사 이름 그 주소이 그 받는 주소까지 다짝 나와 있는데 근데 이게 이게 이게 무슨 말이냐? 아 이게 어떻게 똑같냐 해서이이 초상아랑 비교한 겁니다.이 초상아이 초상아 이게 아시죠? 이거 유명한 초상화 아니에요. 그죠? 여기 뒤에도 제가 해 놨는데 방구의 초상어로서 아주 유명한 아 요하죠 이거 그죠? 어 그죠? 유명한 요거 생 내미식기 그 정신병원에서 그린 36살 그도 가장 그래도 마지막 초성화 중에 하나로 여겨지는이 초성아 이거랑 그죠?
어 이거랑 딱 대절한 거예요. 저저 사진을 아까 그 사진을 딱 봐서 아까 좀 나왔잖아요. 그죠? 뭐 털 여기 뭐 수염 그죠? 수염 하나 머리카락 뭐 수염 뭐 이거 다 귀 모양 다 대조해 가지고 그죠? 이렇게 발표를 했는데 응이 믿을 수 있겠느냐? 이게 이게 과연 광고의 진짜 사진이냐 딱 보면 좀 그룩하잖아요. 근데 저희가 생각했을 때도 아이 당시에 이런 사람들 많았겠죠.이 응 그죠. 저 당시에 저렇게 수염 기르고 이러 그래서이 사진이 빅토르 모랭 지금 밑에 어쨌든 어쨌든 사진에 이게 그이 그 히스토리가 쓰여 있는 거니까 모랭하 주소가 쓰여 있는데 옆에 주소가 근데 빅토르 모랭이라 사신사가 188년 1월 경에 벨기의 브리세의 목사를 그니까 요걸 딱 들으면은 어 그럴 때도 돼요.
그죠?이 이 한고가 목사 집안이고이 뭐 전도사 목사 이런 경력도 있고 또 벨기에 뭐 이런데 왔다 갔다 했고 86년 이때 아직 완전히 어쩌고 저기 그 8위로 넘어오기 전이고 뭐 그래서 야 이거 이게 이게 약간씩 잘못들 수 있지만 비슷하게 그때 대충 들었던 그죠 뭐 그런 얘기가 기록되 있는 거 아니냐라고 해서 또 이게 또 혹해요 이래서 혹하다는 거죠 그죠 벨기에 부리실 목사 목사라고 하니까 그런데 어쨌든 문제는이 사진 아래에는 아까 그 주소가 그 주소가 벨기에도 아니고요 주소가 이게 그죠? 이게 캐나다 주소예요. 캐나다 주소. 의 그런 의무점이 남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쨌든 요거는 현재이 사진 비즈 반 사실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고요. 왜냐면은 그 암스텔 다음에 반고미술관는이 사진이 비전트 반고 찍은 사진임을 꾸준히 부정해 왔다. 그니까 이제 야의 사람들은이 연구소는 야 우리가 발견했다.이 관고의 사진이다.라고 요렇게 여기서는 했지만은 연구소에서는 아니다.음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게 무엇보다도 여러 정항이 하나도 안 맞는 거예요. 데이터 저항이 안 맞고 그 당시에 이런 사람 많았겠죠. 그죠? 그죠? 그 당시 저런 저런 차림과 저런 수염과 저런 두상을 가진 사람이음 이거랑 이렇게 비교하면은 너무나 그니까 어쨌든 지금 말씀드리는게이 고가 자기 얼굴을 그렸는데 이게 자신의 그 진짜 모습이냐 이렇게 보기도 어렵다는 거예요.
왜냐면 형태를 왜곡하고 감정을 중심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그래서 아까 그런 제목을 다른 겁니다. 제가이 우리는 반고후에 그죠 그 얼굴을 모른다는 정확한 얼굴을 좀 정확히 모른다는 거예요. 사진 남겨지는 거 성인이 된 이후에 사진도 없고 그죠? 음. 그렇기 때문에. 자, 그다음에 어쨌든 또 그래서 반고가 워낙 유명하니까 또 사진이 또 나왔어요. 또 사진이 또 이런 사진이 어, 이런 사진이 또 프랑스에서 발견됐습니다. 근데 이거는 야, 이게 지금 응. 이게 지금 여기 파이프 담배. 그래서 반고는 파이프 담배를 엄청 피어요. 근데 파이프 담배 피는 사람.
요게 골고라고 추정하는 곡라면은 여섯 명 중에서 그렇게 보이십니까? 알 수가 없죠. 옆에 수염이나 이런 거 봤을 때는 좀 그런 거 같긴 한데 얼굴은 좀 약간 살쪄 있고 근데 살을 쩔 수 있어요. 요게 지금 만약에 맞다면은 이게 지금 파리 시절에 찍은 거거든요. 8이 그니까 8위로 왔을 때 그 반고가 8위로 넘어왔을 때 자 그래서 최근 이게 1887년으로 나옵니다. 1887년이 사진이 찍은 연도가 1887년에 제작된 사진 현장이 발견되었는데 그래서이시기 87년은 단고가 8회에 있던 때입니다. 어 그 8에 있던 때니까 이게 단고가이 밥을 잘 안 먹었어요.
밥을 잘 안 먹고 아무래도 이제 보내 준 생활들 가지고 자기가 이제 으니까 잘 안 먹었는데 이게 지금 이때는 파리를 왔을 때는 태워하고 같이 사는 거거든요. 그럼 밥은 잘 먹었겠지. 그 살이 좀 썼다는 거야. 그 그래서 그렇게 볼 수 있어. 살이 살이 오르면 금방 볼이 오르잖아요. 그죠? 안 먹던 살이 좀 오르면은 그죠? 태오랑 같이 살면서 형제랑 같이 살면서 좀 식사를 챙겨 먹으니까 좀 볼이 좀 올랐고 뭐 그렇게 [콧방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근데이 머리 모양은 좀 비슷한 거 같은데 머리 윗머리는 이게이 눈매나 이런 건 좀 따져 봐야 되는데 어쨌든 근데 이제 이게 이게 그렇다는 거죠.
비록 반고가 사진 찍기를 깊이했다고 하는데 문제는이 여러 명이 어울리는 자리에서는 그냥 그죠가 지킬 수도 자연스럽게 지킬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죠? 이게 그 그러니까 그죠? 자기 단독 사진은 안 찍었어도 여러 명이 술 마시면서 어울리니까이 찍었다는 그래서 지금 사진에는 테이블에 둘러 앉아 술을 마시는 여섯 명의 남성이 있다. 이들이 이제 화가 집단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사진 속에는 에밀 베르나르와 폴갱으로 강하게 수정된 물 이것도 100%는 말할 수 없어. 근데 거의 맞는 거 같아요. 어이 에밀 베르나르이 유명한 그 나중에 나옵니다.이 그 반 그 반구 장례식에도 아주 유명한 사람인데요 요요 이거는 거의 뭐 99% 맞고 에밀 베르나라고요 사람은 요거는 고객이 거의 한 8, 90% 맞는 거 같아요.
고객 얼굴이 내라 봤을 때 잘 이제 좀 헷갈리죠. 옛날 사진이라서 그러니까 지금 에밀 베르나르 고개이 다 친한 사람이 누구냐이 한 고하는 거예요. 이때 새로 어울리고 알았으니까 파리에서 이렇게 어울려서 술 마시던 그런 그림 아닐까? 화감. 자, 그래서 어, 이들은 반고 가까운 사이였다. 그래서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 가운데 있는 사람이드 반고의 가능성이 제게 되었습니다. 자, 그런데 이제 물론이 사진 사진 자체가 이제 귀한 과거 자료입니다. 요런 사람들이 발견된 사진 속에 인물에 대해서는 이게 야, 그래도 바센트 방고가 너무 닮지 않았다는 이견이 우세합니다.
아무래도. 그죠? 좀 그렇죠. 그죠? 좀 닮았다 보기 좀 어려운게 있어요. 그죠?이 사람이 빈트고라고. 음. 그래서 아직은 어 그래서 또 사진과 관련해서 알려지는 다른 정황이 없어요. 사진만 그냥 나온 거기 때문에 정도 없는 바 빈센트의 반고를 찍은 사진으로는 뭐 공식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자 그래서 어쨌든 비센트 반고의 사진은 그 단 한 장 그죠? 아까 우리가 봤던 20살 딱 막 막 스스 됐을 때 찍은요 사진 딱 하나라는 겁니다. 음. 자, 그다음에 [콧방귀][목을 가다듬음] 그다음에 그 위드 반고의 이제 초상화를 통해서 우리가 이제 그 모습을 그죠.
어, 자화상 자화상을 통해서 젠드반고의 이제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볼 수가 있죠. 근데 자상도 왜곡된 거기 때문에 이게 잘 알 수가 없다는 거예요. 자, 그래서 어쨌든 반고는 확인된 것으로는 32점 이상 뭐 34점이라고도 하고 어떤이 책에는 뭐 40 점 나왔는데 이것도 아닌 거 같고요. 한 30점에서 34점 정도의 사상을 남겼는데 근데 이게 그 정작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낸 오베르시르 우와즈 마지막 그죠? 70일 동안에는 사상은 안 그랬어요. 마지막 시기에는 오히려 그 나름 안정적으로 그림에 뭘 또할 수 있었던 C였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죽기 얼마 전 모습은 더 알기 어려워요. 죽게 직전의 모습은음 그리고 이제 그가 남긴 자상 중에서 시기적으로 마지막 것은 1889년 죽기 1년 전에 생레미 요양원 그죠? 정립병원에서 그린 세 점이 있는데 그 두 점 중 하나가 마지막 자화생일 것으로 수정되는데 어느 것인지 확길치 않습니다. 자, 그래서 둘 중에 하나 그죠? 요거 아니면은 어 요거가 이제 마지막 자화상입니다. 그 이후로는 자화성을 안 그렸어요. 그래서 자화성을 안 그렸습니다. 요거 아니면은 요거 요건데 어쨌든 요것도 유명한 자와상이죠. 그죠? 그래서 뒤에 이제이 회월이이 아주 전형적인 그 반고후에 그 시그니처 그죠?
그 문의가 됐습니다. 회월이 그죠? 음. 그걸 그걸 따라서이 옷 그죠? 또 옷까지도 이렇게 다 회오리적인 그런 물이 그물결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반고는 생램이 요양원에서 그린이 그림을 올라올 때 가지고 왔어요. 오베르시즈 올라올 때 남쪽에서 가지고 올 가져 와서 먼저 가세 박사에게 보여 주었고 가세 박사이 그림 열광 안이 그림을 다시 이제 태오에게 보내면서 한동안이 그림을 자세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내 얼굴 표정 훨씬 차분해졌지만 이렇게 태어나기 전까 그죠. 그래서 내 눈빛은 전과 마찬가지로 보내 보인다. 그죠? 눈빛이 조금 있습니다.
음. 어쨌든 이거냐? 이게 마지막 자화상이냐? 아니면 이게 마지막 자화상이냐? 근데 제가 보기엔 이거 같긴 해요. 요거 요거 요거는 그 똑같아요. 아까랑 반고는이 자화상을 그 모친의 생일을 앞두고 모친에게 보냈다는 거예요. 그죠? 그 사진을 안 찍으니까 사진 안 찍고 이제 저 지금 이래요 해 가지고 이제 그림 그려 가지고 편지 넣어 가지고 그 어머니한테 보냈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님 편지 꽤 보냈죠. 나름. 그래서 그림을 그죠. 아주 크게 그린 거 같지 않죠. 그죠? 어 작게 빨리이 그려서 그다음에 또 이제 딱 차이점 있잖아요. 엄마한테 보내는 거니까 숨을 깎은 거 같아.
깨끗하게. 그죠? 자기 지금 정신병원에 있는데이 수염 뭐 이렇게 해가지고 뭐 이저 뭐 뭐 격정해 뭐 이런 거 할 수 없잖아요. 그죠? 엄마한테 뭔가저 깔끔하게 해서 그 수염 없는 자화상 드니다. 그죠? 그고 반구 그림 중에서서 수염 없이 좀 그래도 좀 나름 깔끔하게 그렸죠. 그죠? 그죠? 깔끔하게 그려서 자기 엄마한테 저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보는 그런 그림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 이게 맨 마지막 거냐? 이게 맨 마지막 자화상이냐? 그거는 아직 그 의견이 아니고 있습니다. 음. 그리고 어쨌든이 자화성은요. 여기서 나오네요.
그죠? 어쨌든 고가 비싸다는 게예요. 이게 지금 이게 거의 1,1억 원이야. 1,억 원. 그것도 30년 전에 30년 전에 이렇게 팔렸기 때문에 지금은 이거 어떻게 되겠어요? 한 세 배, 네배, 4세배, [콧방귀] 네배가 뭡니까? 그 물가로 따도 다섯 배 되지 않나? 거의 30명 30년 그 거의 지금 뭐 다빈치 그립하고 만 먹겠네 거의 그 그죠 엄청 비싸 그래서고 그림이 되게 비싸고 다빈치 베르메르 그림이 딱 그 그 정도 급으로 응 그 당시에도 역대 세 번째였고 뭐이 단순 단순 환산이 그 당시 1억 원인데 죽 어마어마하겠죠 그래서고 그리고 그렇게 비싸네 나오면 무지무지 비싸요.
그니까 당연히 또 그 뒤에 어떻게 씁니까? 또 위작 그죠? 이게 위작이 또 이게 또 엄청 함께 또 유행을 했습니다. 위작이. 자, 그다음에요. 우리가 이제 또 생각해 볼 수 있는게 지금 우리가 이제 그 그 관심사 그거 아니에요. 광고의 그 야, 이게 진짜 얼굴이 뭐냐? 진짜 얼굴. 그래서 이거는 자기가 그린 거 자기가 그린 건 자꾸 왜곡하니까 그죠?이 좀 감정을 집어넣고 하니까 그거보다는 다른 사람이 그린 성가가 더 정확할 수도 있어요. 다른 사람이 그린 거. 그래서 다른 사람이 그린게 있거든요.이 그니까이 그림이 그래도 제일 정확한
뭐라고 인정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그림이 그래서 이거는 이것도 그거가 33살 때니까 뭐 거의 뭐 그 나이 들어서 한 거죠. 그래서 다른 호 주신의 화가가 이렇게러 이러 해서 그린 건데요. 그러니까 요게 요게 그림이 지금 변색돼서 어두워진 거고 원래 보고 나면 요렇게 나오지 않았겠느냐. 그래서 요게 여기 쓴 것처럼 그의 모습을 가장적으로 묘사한 처상화 아니겠느냐라고 그렇게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적이란 말 아시죠? 그죠? 있는 그대로 그죠? 사실적 그니까 이런 거 외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림 아니겠네. 요게 제일 그렇게 인정받고 있습니다.
음. 자, 그다음에 오늘 뭐 그림만 간단히 보시고 다음에 또이어서 하시겠습니다. 그다음에 요런 그 스케치도 있어요. 어쨌든 이게 지금 형제인데 이게 이게 태오 동생이고 이게 고후인데 확실히 다르죠. 그죠? 어 확진 잘합니다. 고호랑 고호랑 태온 다 태우는 것도 좀 깔끔하고 그거는 확실히 좀 얼굴이 좀 그죠 각이 좀 있고 그다음에 또 어 요거 우리 보셨죠? 그죠? 뚜로즈 롯데기 그린 그죠? 롯데기 그린 고후에 34살의 고의 그 카페에서 이렇게 술 마시고 있는 요거 또 중요합니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옆 옆면초상화 그죠? 네.
그런데 문제는 롯도이 제대로 똑바로 그리지 않아요. 그죠? 롯트랙도 있는 사실 주정 지금 집 어때로 그리잖아. 그죠? 막 이상하게 그죠? 막 외곡시켜서 못생기게 그죠. 그니까 그리고 믿을 수가 없어. 그 그러니까 아까 그 그림을 제일 믿음만 하다는 거야.이 그림을 응이 [목을 가다듬음] 그림을 그래서 제일 믿음만하 이거는 그냥 좀 약간 이름 없는 화가가 이름없는 화가가 원래 또 그대로 그리잖아요. 그죠? 그대로 그랬기 때문에 아 제일 사실적으로 그린 고의 얼굴 같다라고 우리가 여길 짓습니다. 33살의 그래서 롯트랙도 믿을 수가 없고 그 롯데도 믿을 수 없는게 뭔가 좀 격정적이잖아요.
그죠? 좀 생긴 게. 응. 그다음에 이제 한 가지 이제 흥미. 아, 그다음에 또 요것도 이것 또 고객이 건 이것도 믿을 수가 없죠. 고갱도 지금 어대로 그잖아요. 지금 어대로 있는 그대로 안 그리잖아요.이 오히려 고경 닮아서 자기 자기처럼 그랬어. 고를. 그죠? 어. 그거를 자기 얼굴식으로 그려놨어요. 그래서 이거 이것도 제대로 그 믿을 수 없고 제일 유명한 그림이긴 하지만은요. 음. 그다음에 이게 이제 그가 죽은 다음에 그림에요. 죽은 다음에. 이건 또 문제가 있는게 이게 그 의사가 그래서 볼 가세가 이게 아마추어가 거예요. [콧방귀]
그래서 자 조금 그런데 그래도 믿을 수가 좀 있어요. 그래도 요거는 그래도 어 그 죽은 모습 죽은 다음에 지금 이제 눈 뜨고 입 벌리고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눈 뜨고 입고 죽어서 가세가 요걸 딱 눈 가려주고이 다무기 한 다음에 바로 그렸다고 합니다. 요거 그래서 요거 요거 가서 보실 겁니다. 암스테 가면요 요거 똑같은 작품이 있 요게 있 요게 있습니다. 암스테르 여기 암스테르이죠. 그죠? 똑같은 작품도 그려서 동생한테도 주고 그래서 그 죽은 모습 사진을 안 찍었으니까요. 그때 이렇게 됐고 그다음에 또이 가제가 그래도 고후를 그려서 또 요렇게 그린게 있어요.요
애칭. 이건 애칭입니다. 애칭. 돈파나. 그죠? 그거에 죽은 모습. 그죠? 조금 [콧방귀] 이상해지. 이렇게 돼. 그죠? 앞에 좀 더 맞는 거 같죠? 여기. 그죠? 그죠? 요게 그죠? 좀 더 죽은 그 모습에 좀 더 맞는 거 같습니다. 음. 그다음에 요것도 있고 요거를 또 그다음에 또 시를 지난 다음에 또 색칠를 했어요. 근데 좀 이상하죠. 색칠하고 나니까 그죠. 그죠? 점점 이상해죠. 볼 다 제가 색칠했는데 점점 이상해져요. 그죠? 이상해지는 고를 계속 기리면서 나름데 뭐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쨌든 여기까지가 그 여기까지가 다른 사람들이 그린 그 고후의 얼굴 모습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그 정도밖에 없어요. 또 의외로 많지도 않아요. 다른 사람들이. 그리고이 고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 건 아니니까요. 자, 그래서 오늘 이제요 정도 하시겠고요. 다음 시간에 이제 본격적으로 되겠네요. 그죠? 고가 결국 왜 죽었느냐 그 문제가 되겠죠.이가 우리가 다 문제가 이거서 만약에 좀 더 하고 어 뭐 어떻게 자세를 이루게 됐는지 사실 다음에 또 하셨습니다.

Comments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