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미상 ·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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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5천 루피로 시작해 인도 주식시장의 대표 투자자가 된 Rakesh Jhunjhunwala의 생애를 다룬 추모·전기형 영상. 타타티(1986년 5만주 매수, 3개월 내 수익), Titan 장기 보유(평균 3루피, 사망 시 Titan 가치 1.1만 크로어 이상), Lupin 매수, DHFL·Videocon 등 손실 사례, 하락장 공매도로 이익을 낸 1992년 사례, Akasa Air 설립 등을 소개. 예측 발언 없음.
다듬은 글
흰 셔츠를 입고 눈빛이 반짝이는 한 남자가 휠체어에 앉아 있습니다. 뒤로는 뭄바이 증권거래소 BSE 건물과 아카사 항공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장면은 갑자기 1985년 뭄바이의 좁은 차왈이나 오래된 방으로 돌아갑니다. 1985년, 주머니에 단 5,000루피뿐이었고 뒤를 봐줄 대부(후원자)도 없던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투기 시장이라 부르던 달랄 스트리트의 신비로운 세계에 발을 들입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는 파멸만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37년이 지난 2022년 8월 14일, 그가 숨을 거뒀을 때 그는 4,000억 루피(400크로레) 가치의 제국을 남겼고, 인도 주식시장의 역사를 영원히 바꿔 놓았습니다.
이것이 라케시 준준왈라의 이야기입니다. 1960~70년대 뭄바이의 중산층 가정, 주가가 인쇄된 흑백 신문지가 떠오릅니다. 라케시의 아버지 라데시얌 준준왈라는 소득세 공무원이었고, 저녁마다 친구들과 주식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열두 살 라케시는 그 대화를 몰래 엿들었습니다. 신문이 준 가르침도 있었습니다. 라케시가 아버지에게 왜 감정이 변하냐고 묻자, 아버지는 뉴스를 읽으라고 했습니다. 오늘 세계 어딘가에서 전쟁이 나면 내일 뭄바이에서 기름값이 바뀐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한마디가 라케시를 세계를 보는 사상가로 만들었습니다.
1985년 라케시가 공인회계사(CA)가 되자, 그는 주식시장에 뛰어들겠다고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단 1루피도 주지 않을 것이며, 친구에게 빌리는 것도 허락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실패하면 회계사 일을 하라는 조건이었습니다. 라케시는 형의 고객에게 은행 정기예금(FD)보다 높은 수익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그렇게 첫 자본 5,000루피를 모았습니다.
1986년 라케시는 첫 큰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타타티(Tata Tea) 주식 5,000주를 주당 43루피에 샀습니다. 차 생산량은 줄었는데 수요는 매우 높으니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분석이었습니다. 주가가 143루피를 넘기자 석 달 만에 50만 루피의 이익이 났습니다. 1986년의 50만 루피는 오늘날의 수억 원에 해당하는 큰 돈이었습니다.
얼마 뒤 그는 사사 고아(현재의 베당타)에 투자했습니다. 주당 20~25루피에 산 주식은 65~70루피로 오르더니 결국 2,200루피까지 치솟았습니다. 라케시 준준왈라는 이제 달랄 스트리트에서 잘 알려진 이름이 되었습니다.
1990년대 초의 왕은 하샤드 메타였습니다. 그는 시장을 강세로 보았지만, 라케시와 그의 멘토이자 DMart 창립자인 라다키산 다마니는 주가가 허공에 떠서 오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기업의 진짜 가치는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것입니다. 라케시는 이 시기 약세 투자자(베어)로 움직였습니다.
1992년 하샤드 메타의 스캔들이 드러나 시장이 폭락했습니다. 그때 준준왈라는 공매도(숏 셀링)로 수억 루피를 벌었습니다. 이 일을 겪으며 라케시는 깨달았습니다. 공매도로 가계는 꾸릴 수 있지만, 진짜 부자가 되려면 장기 투자자이자 강세 투자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그에게 '빅 불(Big Bull)'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라케시 준준왈라는 타타 그룹 계열사인 타이탄(Titan) 주식 6,000만 주를 주당 평균 3루피에 샀습니다. 왜 그렇게 베팅했을까요? 그는 인도인의 소득이 늘면 사람들이 동네 시계를 버리고 타니스크 같은 브랜드 시계와 보석으로 옮겨 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타이탄 주가는 여러 번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팔라고 했지만 라케시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같은 주식은 3,000루피 안팎에 거래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무렵 타이탄 지분의 가치만 1만 1,000크로레가 넘었습니다.
제약 분야에서는 루핀(Lupin)을 헐값에 사들였고, 이 종목도 여러 배의 수익을 안겼습니다. 반면 DHFL, 비디오콘, 만다나 리테일 같은 종목에서는 수백 크로레를 잃기도 했습니다. 그는 실수는 사람이니까 하는 것이며, 빨리 인정하고 빠져나오는 법을 배우라고 말했습니다.
2021~22년 라케시가 새 항공사 아카사 항공(Akasa Air)의 설립을 발표하자 전 세계가 놀랐습니다. 항공업은 투자자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분야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만나러 갔을 때, 그의 셔츠에는 주름이 있었습니다. 모디 총리는 트위터에 "단 한 명의 라케시 준준왈라"라고 적었습니다. 준준왈라는 휠체어에 앉아 자신의 항공사가 이륙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2022년 8월 14일, 62세의 나이에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의 철학은 이것이었습니다. 돈은 수의에 주머니를 달아 주지 않는다. 시장에서 벌었으니 시장과 나라에 돌려주겠다. 그는 자신의 재산 상당 부분을 자선 신탁에 맡겼습니다.
라케시 준준왈라는 단순한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 믿었던 인도의 힘을 상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늘 말했습니다. 인도를 믿는다면 시장을 믿으라고. 빅 불은 떠났지만, 그의 가르침은 달랄 스트리트의 모든 심장 박동 속에서 계속 살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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